녹지국제병원과 ‘뱀파이어 효과’

[워커스] 세상평판

[출처: 김용욱]

지난 12월 5일 국내 최초의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이 제주도에서 설립허가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12월 경제자유구역에서 외국인 전용병원으로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된 지 16년만이다. 당시는 국내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외국인만 설립할 수 있었으며, 환자도 외국인만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2006년 2월 제주도특별자치법은 제주도에 외국인 영리병원과 내국인 진료를 허용했다. 같은 해 7월에 경제자유구역에 국내의료법인이 자본 합작형태로 영리병원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2012년 8월에는 외국 면허를 가진 의사 비율 등을 규정한 시행령 및 규칙이 통과돼 외국 영리병원 유치를 위한 관련 제도도 완비됐다. 2013년 2월 중국의 텐진화업그룹이 제주도에 국내영리병원 1호인 ‘산얼병원’ 설립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영리병원 설립 움직임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그해 8월 이에 대한 승인을 무기한 보류하기도 했으나, 다시 2015년 4월 제주도에 ‘녹지국제병원’ 설립계획서가 제출되자 12월에 결국 이를 승인했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이를 뚜렷하게 반대했다. 지난 10월 ‘녹지국제병원 공론화를 위한 도민참여형 조사 숙의토론회’에서 참여 배심원단 200명 중 180명이 참석한 가운데 투표를 진행한 결과, 참석자 58.9%(106명)가 영리병원 불허를 선택했다. 찬성의견은 38.9%(7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종 허가권자인 제주도지사가 도민의견과는 정반대로 허가를 결정했다.

제주도의 설립 허가과정에서 보건복지부는 ‘제주도에서 판단할 문제’라며 묵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내국인 진료금지’가 ‘진료거부’에 해당하지 않아 의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려주기도 했다. 제주도특별법에는 ‘내국인 진료금지’ 규정이 없어 의료법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의료법은 ‘진료거부를 금지’한다. 그래서 제주도가 복지부의 자의적인 유권해석을 근거로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한 것은 상위법인 의료법에 저촉된다.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주체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제주도지사가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를 발표한 이후 곧바로 내국인 진료금지 조건에 항의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내용은 이후에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영리병원은 없다’고 공언했으나, 제주도 영리병원 설립을 계기로 영리병원설립 요구가 확산될 공산이 크다. 현행법상 경제자유구역에서는 외국인 의료기관 설립이 가능하다. 경제자유구역은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당진·아산·평택),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동해안(강릉·동해), 충북(청원·충주) 등 전국에 8개 권역이 존재한다. 2014년에도 인천 송도에 국제병원을 설립하려 했으나 투자자가 없어 무산된 적이 있다. 부산시도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내 명지국제신도시에 수년째 영리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시도해왔다.

영리병원에 대한 특혜는 상당한 수준이다. 녹지병원의 경우 외국인 투자기업과 같은 세제 혜택을 받는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3년간 전액 감면받고 그 후 2년간은 반액을 감면받는다. 지방세 역시 취득세는 전면 면제되고, 재산세도 10년간 면제, 3년간 수입자본재에 대한 관세도 물지 않는다. 공유수면 사용료 등 각종 부담금은 50%, 개발부담금은 전부 면제된다. 일반 의료법인의 경우 22%를 적용받는 법인세액 중 사실상 면세 범위가 최대 50%에 그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특혜를 누리는 셈이다. 정부가 ‘의료산업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놓는다면 경제자유구역에서의 영리병원 설립요구가 증대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의료영리화를 막고 의료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 ‘원격의료’는 의료인과 의료인 사이의 진료효율화를 위한 수단으로 한정해 병원의 영리자법인 설립을 금지하고, 부대사업은 현행 법률에 한정하는 내용을 천명했다. 그러나 정권 초기 ‘문재인케어’를 내세우며 건강보험보장성 강화정책 등을 추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명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의료민영화 정책을 완성하는 행보를 걷고 있다. 앞서 거론했듯 영리병원 허가 과정에서 제주도의 행보를 사실상 묵인하거나, 허가를 내리는 데에 보건복지부가 사실상 기여했고, 허가 결정이 이뤄진 후에는 ‘책임감을 갖고 잘 운영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법’이라고 불렸던 ‘규제프리존법’이 ‘규제자유특구법’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지난 9월 정기국회를 통과하면서 기업을 위한 무제한의 규제완화도 가능하게 됐다. 최근 임명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근혜-최순실법’의 하나인 ‘서비스산업발전법’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표명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시절 이를 ‘의료민영화법’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와 더불어 기획재정부 등은 ‘2019년 경제정책방향’으로 ‘서비스산업활성화대책’을 제출하고, 의료산업활성화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의료민영화는 느닷없이 시작된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8일 제1차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에서 당시 김동연 부총리는 규제완화에 대한 정부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곧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영리병원 설립 허용과 원격의료 규제개선 등 9건의 혁신성장 규제개혁 과제’를 기재부에 건의했다. 그리고 8월 16일에는 문재인대통령이 ‘선한 기능’을 언급하며 ‘원격의료’를 추진해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첨단·혁신의료기기 산업 육성과 첨단재생·바이오의약품 규제완화 법안,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허용 법안 등을 ‘보건의료 혁신성장을 위해 가장 파급력있는 분야’라고 언급하며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민영화와 ‘촛불의 아이러니’

‘영리병원 허가’는 ‘의료민영화’를 완성하는 퍼즐 중 가장 핵심적인 조각을 이어붙인 것이다. 한국사회 보건의료시스템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인 ‘건강보험제도와 의료기관의 비영리성’이라는 댐이 무너지는 균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47병상밖에 안되고 외국인관광객을 주 대상으로 하는 작은 병원이 무슨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제주도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의료산업육성과 일자리창출’이라는 명목으로 영리병원 설립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영리병원 허용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예외 기관이 생기고, 이 병원에서 어떤 진료나 치료를 하는지 정부가 알기도 어렵게 된다. 당연히 진료비가 올라갈 것이다. 영리병원이 만들어지면 주변 병원들도 영리를 추구하게 되고, 결국 의료비가 상승하게 된다. 주변 병원들도 영리병원으로의 전환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이른바 ‘뱀파이어 효과’다.

이명박 정부 초반에 타올랐던 촛불의 주된 요구는 ‘의료민영화 반대’였다. 10년이 지나고 ‘촛불’의 힘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의료민영화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촛불의 아이러니’다.[워커스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