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신앙한 게이들의 이야기

[어서 와요, 소소부부네]

소소부부는 결혼 후 부부로서 소송도 진행하고 언론 인터뷰에 응하기도 하지만 사실 부부가 되지 못할 뻔했다. 소주가 어릴 적부터 키워온 오랜 꿈이 천주교의 사제, 신부님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비 신학생으로서 신부님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밟던 소주는 지도하던 성직자들에게 커밍아웃했다가 ‘마귀에 씌었다’라거나 ‘병에 걸린 것이니 치료받아야 한다’라는 얘기를 듣고 꿈을 포기하고 교회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는 성직자들의 혐오 발언 덕분에 소주와 오소리가 만나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었지만(웃음).

한국 사회에서는 일부 보수기독교인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적 언행을 접하기가 쉽다. 퀴어문화축제의 장이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투쟁의 현장 등 곳곳에서 ‘Real 리얼 러브’를 외치며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이쯤 되면 성소수자들이 기독교를 싫어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혐오는 싫어하겠지만,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믿음을 굳건히 지켜가는 기독교인 크리스천들도 아주 많다.

길벗 “나도 꿈이 신부님이었어.”

소주 “나도 그런데. 나도 신부님이 되려고 했었는데.”


  소소부부와 길벗 [출처: 소소부부]

8월의 어느 날, 소소부부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여전히 지키며 자신을 천주교 신자라고 소개하는 친구 ‘길벗’을 만났다. 길벗은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상근활동을 하는 활동가다. 길벗의 꿈도 소주와 마찬가지로 신부님이 되는 것이었다. 둘 다 이제 그 꿈은 버렸지만.

오소리 “길벗은 언제 성소수자라고 인지하고 정체화했어?”

길벗 “전 애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 내 세계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던.”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만나게 된 길벗의 전 애인도 길벗과 마찬가지로 성직자를 꿈꾸며 고민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성직자를 꿈꾸지만, 성소수자로서 사랑하는 것도 고민하던 게이들. 길벗은 일반(비성소수자를 가리키는 말)인 것처럼 행동하고 성소수자인 것을 철저히 감추고 있었는데, 전 애인이 어떻게 기가 막히게 길벗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고백했다고 한다. 길벗은 그렇게 예전에 사귀던 애인 얘기를 우리 부부에게 계속 들려줬다.

길벗 “전 애인이 나를 좀 힘들게 해서 내가 찼어. 어렵게 헤어졌는데 마음 정리가 안 되는 거야. 군대가 내 도피처였지. 그렇게 한참이 지나 마음이 조금 정리가 된 후에 내가 전 애인한테 한번 연락해야겠다 싶은 거야. 미운 감정이 많았는데 그게 조금 정리돼가고 있어서.”


우리 부부는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하느님을 신앙한, 신부님이 꿈이었던 게이들의 사랑 이야기.

길벗 “그런데 걔가 이미 하늘나라에 갔더라고. 스스로 먼저 세상을 등진 거야…. 내가 알게 됐을 때는 이미 수일이 지난 후였더라고. 너무 감당이 안 돼서 왜 그렇게 됐는지 당장 알아야겠어서 나와 전 애인의 관계를 알고 있던 친구들한테 다 전화해서 물어보고 그랬지. 내가 게이인 걸 밝히면서. 이때가 내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정체화하기 시작한 시기야.”


들어보니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가족과 큰 불화가 생긴 것이 길벗의 전 애인이 세상을 먼저 떠나게 된 이유였다.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유로 가족들은 장례식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 애인이 전형적인 시골 마을 출신이었는데 가족들이 동네에 소문나는 것을 두려워한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길벗은 친구들끼리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길벗은 그전까지는 눈물도 흘리지 못하다가 추모의 시간이 돼서야 펑펑 울었다고 했다.

길벗 “애도할 기회가 없었던 친구들끼리 모여서 추모의 시간을 갖고,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드리고 그랬는데 어쩌다 그 신부님이 내 전 애인이 자살했다는 얘기를 알게 된 거야. 복음 말씀하고 강론이 이어지는데 그때 그 신부님이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얘기한 거야.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내 친구들이 앞에서 다 듣고 있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를 포함해서 친구들이 다 교회에서 멀어지게 됐지. 그게 내가 지금 성당을 안 나가게 된 이유야. 물론 아직 하느님을 믿고 당당하게 내가 신자라고 소개하긴 해. 사람들이 만든 종교는 내가 믿는 교회가 아니지만, 하느님은 여전히 믿는 거지. 교회랑 하느님이랑 똑같지 않구나, 싶더라고.”

오소리 “여보도 여전히 신을 믿어?”

소주 “나도 뭐랄까, 종교는 버렸지만, 신앙이 여전히 남아있어.”


신부님이 되려다 소소부부의 일원이 된 소주처럼, 길벗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곧 앞두고 있다. 신부님을 꿈꾸던 게이들과 오소리는 꿈이 이뤄졌으면 다들 결혼 못 할 뻔했다고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었다.

종교를, 신을 믿는다는 것은 뭘까? 헐뜯고 단죄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성소수자의 사랑도 다름없이 축복해주는 것, 그게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진짜 실천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소소부부를 비롯한 많은 성소수자는 오늘도 사랑하고 평등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