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호가 ‘개헌’을 몰랐던 이유

[워커스 이슈1] 개헌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1)

“저게...개헌이라는 거죠?”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한 장면. 의원입법 과정을 ‘개헌’이냐 묻던 조세호의 ‘개헌드립’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요즘이다. 누군가는 그의 해맑은 질문에 빅 웃음을 터뜨렸을지 모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뭔 얘기냐’라며 어리둥절할지도 모를 일. 실제로 A활동가는 《워커스》 회의에서 개헌 이슈를 취재했던 모 기자의 고충을 전해왔다. 시민 인터뷰를 하고 싶어도 개헌에 대해 아는 시민이 없어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언론들은 새해 벽두부터 ‘2018년 3대 정치 이슈’, ‘무술년 최대 화두 개헌’, ‘국민이 바라는 개헌’ 등의 이슈를 쏟아냈다. 몸집 좋은 언론사들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개헌에 대한 시민의 생각을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1월 15일 여론조사 발표에 따르면, 국민 83.3%가 ‘개헌이 국가와 국민의 삶에 중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열광적인 지지’다. 정말 다수의 국민들이 개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까. 《워커스》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개헌의 열기를 직접 취재해보기로 했다.


천연동 개헌 여론

올 초, MBC 뉴스데스크는 전 인턴기자를 개헌 관련 ‘시민 인터뷰’에 등장시켜 ‘보도 조작’이라는 뭇매를 맞았다. 곧바로 MBC는 객관적인 인터뷰를 위해서는 ‘진짜 일반인’을 써야 하는데 신중치 못했다는 점을 반성했다. 그래서 《워커스》는 신중해지기로 했다. 《워커스》 사무실이 위치한 서대문구 천연동 일대에서 ‘진짜 천연동 시민들’을 만나보자고 마음먹었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비탈길에서 만난 70대 여성이었다. 신원을 밝힌 후 “개헌에 찬성하시느냐”고 묻자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며 잘라 말했다. 한 말씀만 해 달라고 쫓아가니 “똑똑한 사람들한테 물어봐야지 나는 모른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 개헌에 반드시 담고 싶은 내용이라도 말해 달라”고 그를 졸랐다. 결국 그는 “기자면 기자답게 해야지 왜 나를 인터뷰하느냐”고 역정을 내며 떠났다.

이번에는 언덕을 오르고 있는 70대 남성에게 “개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말을 걸었다. 그는 “그게 뭔 말이냐”며 되물어 왔다. 정부에서 헌법 개정을 추진 중인데 여차여차 이런저런 상황이라고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는 “이제 정신이 이상해져서 잘 모르겠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났다.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50대 여성도, 교회 앞에서 만난 70대 남성도 모두 “잘 모르겠다”는 말 뿐이었다.

10대, 20대에 기대를 걸어본다

인터뷰이의 연령을 대폭 낮추자고 마음을 먹었다. 겨울방학으로 텅 빈 D중학교 교정 앞에서 가까스로 10대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개헌에 대해) 잘 모른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은 채 사라졌다. 이번에는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들을 붙잡고 ‘개헌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문재인은 아는데 개헌은 모른다”고 했다.

마지막 희망은 대학이었다. K대 교정을 거니는 20대 남성에게 “현재의 개헌 논의에 대해 어떤 입장이냐”고 물었다. 입술을 달싹거리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고 답변을 시작했다. 심지어 할 말이 많은 듯 아주 길게. 그는 “현재 대통령제를 바꿔서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지금 개헌 국면은 국회에 힘을 부여하는 것인데, 한국 국회는 내각제를 받아들일 수준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떤 말이든 그저 감사하게 받아 적을 따름이었다.

임대아파트 앞에서

이 기세를 몰아 임대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 벤치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세 명의 노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개헌’에 대해 물었다. “꿀꿀이 죽 먹어 봤어?” 한 노인이 대뜸 기자에게 날을 세웠다. “아...아뇨.” 요즘 젊은 것들은 어려움을 모른다는 기나긴 질책 끝에, 그가 내린 ‘개헌’의 결론은 “대통령은 대통령 일을 잘 하면 되고, 국민은 국민의 의무를 다 하면서 된다”는 다소 알쏭달쏭한 것이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노인은 개헌도, 권력구조 개편도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지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인터뷰 장소 주위를 서성이던 단지 경비원은 “개헌은 무슨 개헌이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노인들이 모두 혀를 차며 자리를 뜰 때까지 탈무드 정신의 중요성과 징기스칸과 몽골족의 역사, 그리고 박정희의 업적과 전두환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정치연설을 늘어놨다.

앙꼬 빠진 개헌의 역사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 일이다. 과연 ‘헌법 개정’으로 내 삶이 바뀔 것이라 생각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정치권이 아무리 박 터지게 싸워도, 언론이 아무리 여론몰이를 해도 ‘딴 세상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이는 지난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대한민국에서는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총 9차례의 개헌이 이뤄졌다. 아홉 번 모두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이었다. ‘개헌’은 집권 장기화를 위한 묘수로 통했다. 독재 정권 하에서 개헌이 빈번하게 이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이승만은 2차례, 박정희는 3차례, 그리고 전두환은 한 차례의 개헌을 실시했다. 반면 통상 ‘아래로부터의 개헌’이라고 평가 받는 개헌은 단 두 차례. 1960년 4.19혁명 이후 국회 주도의 의원내각제 개헌(3차),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뤄진 대통령 직선제 개헌(9차)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두 차례의 ‘아래로부터의 개헌’마저도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이었다는 점이다.

헌법에는 대통령의 임기나 권력구조 형태만이 명시돼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중심으로 한 권리보장은 헌법의 가장 큰 기본 원리 중 하나다. 애초 1948년 제헌헌법에서 기본권은 총 23개 조항으로 시작했다. 9차례의 개헌 과정에서, 이 기본권 조항들에도 살이 붙었다. 제헌헌법에 명시됐던 기본권 중 빠진 조항은 단 한 개. ‘노동자의 이익분배 균점권’이다. ‘이익균점권’이란 노동자들이 노동력 제공에 대한 임금뿐 아니라, 기업의 이익 가운데 일부를 분배받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제헌헌법 제18조에는 ‘사기업에 있어서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했다. ‘이익균점권’ 조항을 삭제한 것은 다름 아닌 박정희 정권이었다.

제헌헌법 이후 ‘기본권’ 조항에 살이 붙기까지는 12년이 걸렸다. 이승만이 재선을 위해 시도한 1952년 발췌개헌(1차 개헌)과,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 제한을 폐지한 사사오입개헌(2차 개헌)에서 기본권은 논외였다. 1960년 이승만이 4.19혁명으로 물러나고, 국회 주도로 이뤄진 3차 개헌에서야 몇 가지 기본권 조항이 신설, 개정됐다. 거주이전의 자유와 통신 비밀 보장 조항이 일부 강화됐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도 명시됐다. 자유와 권리 보장 강화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에 대한 권리도 강화됐다. 다만 이때 헌법재판소가 정당 해산을 명령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유지돼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의 근거가 됐다.

기본권, 독재정권이 애정한 선전도구

아이러니하게도, 역대 개헌에서 가장 많은 기본권 조항을 추가한 이는 바로 박정희 정권이다. ‘기본권 강화’는 독재 정권이 ‘권력 연장을 위한 개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가장 좋은 선전 도구였다.

실제로 1962년 5차 개헌에서는 기존 22개의 기본권 조항을 27개로 늘리고, 세부 조항들을 삽입했다. 이 때 추가된 기본권 조항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 ‘언론, 출판, 집회에 대한 허가 금지’,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 ‘근로자의 고용 증진에 대한 국가의 역할’,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 등이었다. 노동3권 역시 ‘법률 범위 내’ 보장한다는 단서 조항을 없앴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뒤.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에서 자신이 만든 기본권 조항은 물론, 기존의 조항들까지도 모조리 개악했다. 거주 이전, 직업선택,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앞에는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이라는 단서 조항이 달렸다. 노동3권도 ‘법률이 정하는 범위 안’으로 도로 집어넣었다. 기본권 제한 사유에는 ‘국가안전보장’이 추가됐고,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조항도 사라졌다. 신체의 자유를 침해받을 때 법원에 구제를 청구할 권리와, 고문 등에 따른 진술이 유일한 증거일 경우 유죄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는 조항도 자취를 감췄다.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이라는 단어가 명시된 것도 이 때 부터다.

‘인권유린’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전두환 정권도 헌법에서의 기본권을 강화했다. 물론 ‘7년 단임 간선 대통령제 개헌’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장치였다. 전두환은 1980년 개헌에서 유신헌법의 독소조항을 대부분 폐지했다. 각 기본권을 법률로서 제한한다는 단서 조항도 대부분 삭제했다. ‘학살자’로 불리는 그가 헌법에 ‘행복추구권’, ‘무죄추정의 원칙’을 비롯해 ‘근로조건에서의 인간의 존엄성 보장’ 등을 명시했다는 사실은 꽤 ‘웃픈’ 일이다.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개헌이 있었나

1987년 6월 항쟁으로 말미암은 9차 개헌. 이를 통해 그토록 마지않았던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해냈지만, 기본권에서만큼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큰 틀을 뛰어넘진 못했다. 당시 제, 개정된 기본권 조항은 언론, 출판, 집회 허가제 폐지와 형사피해자의 재판 진술권, 대학 자율성, 최저임금제, 여성 노동의 차별 금지, 환경권 등이었다.

마지막 9차 개헌 이후 약 30년 간, 정권들은 매번 개헌 논쟁을 일으켰다. 개헌 화두는 모두 대통령이나 대선 유력 주자의 입에서 시작했다. 쟁점은 모두 권력구조 개편이었다. 실제로 1990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합당 기저엔 내각제 개헌 밀실 합의가 있었다. 1997년 김대중과 김종필의 ‘DJP 연합’의 조건도 내각제 개헌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레임덕 탈출을 위한 정국 타개용으로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를 2년 남긴 2007년 1월, 4년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당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4년 중임제 개헌 여론조사는 찬성 30%, 반대 67%였다.

노무현 정부의 원포인트 개헌을 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 비판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개헌 논의로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고 질책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대통령 임기 말이 되자 줄줄이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을 시도하며 4대강 사업으로 악화됐던 여론을 잠재우려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0월 최순실 사태라는 권력형 비리게이트를 돌파하기 위해 4년 중임제 개헌 이슈를 던졌다. 박 전 대통령이 화두로 올려놓은 개헌 이슈는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개헌 이슈가 흘러나오는 곳은 여전히 ‘권력 형태’를 둘러싼 정쟁의 현장이다. <워커스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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