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노영민·김조원 싸운 게 국민과 무슨 상관?

[1단 기사로 본 세상] ‘싸웠다’ ‘안 싸웠다’ 논쟁할 바엔 올해 정기국회 건너뛰자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한 지난 주, 중앙일보가 독특한 기사를 내놨다. 실내에 50인 이상 모이는 걸 금지하면, 곧 있을 정기국회 때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하냐는 거다. 중앙일보는 지난 21일 4면에 ‘300명 모이는 국회 본회의 어쩌나’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9월 정기국회 때 국회 본회의를 어떻게 할지 걱정하면서 “원격‧화상 출석과 표결이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법적 근거가 부족한 것이 고민”이라며 “국회의원은 표결 시 회의장에 있지 않으면 표결에 참가할 수 없다(국회법 111조)”를 걸림돌로 제시했다.

국회는 거리두기 어쩌할꼬

이번 집단감염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회가 이를 무시하기도 어렵다. 이미 영국 등 몇몇 나라는 코로나19 종식 때까지 원격 출석과 표결이 가능토록 조치했다. 우리 국회는 당연히 이런 걸 미리 했을 리 만무하다.

얼마 전 민주당 대표단 회의에 참석한 기자가 확진 판정 받아 민주당 지도부가 자가격리에 들어가기도 했다. 어쩌면 이번 정기국회 땐 의원들이 49명씩 릴레이 투표하는 진풍경을 볼 수도 있겠다.

  중앙일보 8월 21일 4면

한국일보는 한술 더 떠 국회 의원회관을 ‘코로나 레드존’이라고 명명했다. 보안 때문에 의원실 컴퓨터는 외부에서 접속 못 하도록 막아놔서 보좌관들의 재택근무는 아예 불가능하다. 이런데도 민원인과 기자들은 하루에도 수천 명씩 드나든다. 보좌진에게 “예의 없어 보이니 마스크 벗으라”고 지시하는 정신 나간 의원들도 꽤 있다.

정기국회는 ‘보좌관의 무덤’

한국일보는 지난 25일 6면에 ‘통제 허술 의원회관 코로나 레드존… 상주 보좌관들 위험 속 업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국회 사무처는 지난 20일 모든 국회기관과 부서에 공문을 보내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인원에 대해 재택근무제 및 시차 출퇴근제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라”고 했다. 그러나 2400여명에 달하는 국회의원 보좌진은 통째로 빠졌다. 보좌진은 공무원이긴 하지만 채용과 해고가 개별 의원들 말 한마디에 달렸기에 국회 사무처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정기국회가 코앞이다. ‘정기국회는 보좌관의 무덤’이다. 해마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대폭 보좌진 물갈이가 이뤄진다. 7명의 보좌관 전원을 교체하는 의원실도 허다하다. 국정감사 때 주요 언론사 머리기사를 장식할 만한 큰 폭로꺼리를 만들지 못한 보좌관은 곧 무능한 보좌관으로 찍힌다. 20대 국회 때 진보정당의 한 의원실은 해마다 보좌관이 통째로 바뀌기를 반복하기도 해 해당 정당 관계자들이 ‘사고 의원실’로 치부하기도 했다.

한국에 국회의원만큼 일 안 하고, 못 하는 가성비 낮은 직업이 또 있을까. 왜 자기 못 나 그런 걸 애꿎은 보좌관에게 화풀이 할까.

  한국일보 8월 25일 6면 머리기사

우리 국회는 하는 것마다 수박 겉핥기다. 정부가 지난 21일 여행업과 항공업, 공연업, 항공지상조업, 면세점, 공항버스, 전시국제회의업, 관광운송업, 관광숙박업 등 8개 업종에 대한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기간을 내년 3월말까지 연장했다. 이들 업종은 9월 15일이면 지정기간이 끝나기에 대책이 시급했다. 그런데 이들 업종에 종사하는 하도급업체 노동자들은 ‘일반업종’으로 분류돼 연장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항공업종만 봐도 대한항공 비행기 청소업무는 원청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한국공항이란 회사에 항공기 지상조업을 맡겼다. 한국공항은 인력파견업체인 이케이(EK) 맨파워에 도급을 줘 청소를 시킨다. 대한항공과 한국공항은 항공업과 항공기 지상조업종이지만 실제 비행기를 청소하는 이케이 맨파워는 그냥 인력파견업체라서 8개 지원 연장 업종에서 빠진다. 아시아나도 마찬가지다.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아시아나케이오(KO)로 이어진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실제 비행기를 청소하는 사람은 아시아나케이오 소속이다.

매일경제신문은 지난 22일 12면에 정부가 ‘특별고용업종 지원 연장했지만… 하도급 쏙 빠져’란 제목으로 정부의 허술한 정책을 비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이 출석한 가운데 21일 전체회의를 열었지만 이를 제대로 비판하며 바로 잡으려는 국회의원은 등장하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은 한심하게도 “2차 대유행 시 IMF 때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나”라는 질문을 던졌고, 장관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답변하면서 서로 개그만 했다. 정치는 뭐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매일경제 8월 22일 12면

이재갑 장관은 “고용유지지원 기간이 상한에 다가가는 기업에 대해서는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백날 천날 하는 실태조사인데도 이를 나무라는 의원은 없었다.

25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는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조원 전 민정수석과 싸웠는지 안 싸웠는지 다투고 있었다. 박대출 미래통합당 의원은 노영민 비서실장에게 “김 전 수석에게 2주택을 처분하라고 해서 얼굴을 붉히면서 싸웠다는 보도가 있다”며 진위를 물었다. 이에 노 실장은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노영민 김조원 싸운 게 국민과 무슨 상관

노 실장이 계속 싸움을 부인하자 박 의원은 운영위 밖에서 대기 중이던 김외숙 인사수석을 불러 같은 질문을 했다. 김 수석도 “싸운 적 없다”고 답했다. 박 의원은 질문을 거듭한 끝에 김 수석으로부터 “언쟁한 적은 있느나 싸운 적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한국일보는 26일 10면에 국회 운영위 상황을 “노영민 ‘다주택 문제로 김조원과 안 싸워’… 김외숙은 ‘언쟁 있었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잘들 논다.

  한국일보 8월 26일 10면

이참에 올해 정기국회는 폐점하고 여론조사 같은 걸로 내년 예산 짜는 게 어떨까 싶다. 그 편이 말도 안 되는 놓고 말싸움이나 하는 정치권 안 봐서 전 국민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쪽지예산이니, 힘 있는 여야 중진의원 지역구 예산 챙기기 같은 구태도 없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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