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오슬로세대, “절박함을 말한다”

팔레스타인 활동가 카람 대중강연회...싸우며 희망 찾아간다

“서울이 8m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를테면, 미국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와서 이웃의 집을 빼앗아 허물고 거기에 자신의 가옥을 짓고 점점 거주지를 확장하는 겁니다. 매주 한두 채는 강제철거를 당하죠. 마을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면 몸과 짐 수색을 받아야하고 물론 신분증도 제시해야 하구요. 외출하는 목적도 밝혀야 합니다. 외국인이 총을 가지고 다니면서 마을 사람들을 폭행하고 살인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죠. 모스크도 차지하려 들기도 하고요. 돌을 던졌다거나 위협적으로 봤다는 이유로 또는 아무 이유도 없이 군인들이 집에 갑자기 쳐들어와 잡아가기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당신은 그런 곳에서 태어났고 태어난 뒤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장벽과 검문소가 촘촘히 옭아맨 팔레스타인 마을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카람이 물었다. 스크린에 출력된 팔레스타인 지도를 마주한 청중석에선 조심스런 한숨만 새어나왔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팔연대)가 21일 마련한 “서안 일기: 지금 팔레스타인에서는?” 대중강연회. 이 자리에서 지난 5년 간 팔레스타인 국제연대운동(ISM)에서 폭력과 저항의 현장을 기록하고 국제연대를 조직해온 활동가 카람이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전했다.


“팔레스타인 10대는 왜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가?”

카람은 우선 언론이 충돌이 악화됐다고 보도하지만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만 태어나 점령밖에 당해보지 않은 세대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일어선 저항이라는 것. 또 충돌이 아니라 점령에 대한 저항이 고조된 것이라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카람이 겪고 있는 서안의 현실은 불법정착민의 폭력이 일상적이며, 매일 새 검문소가 지어지고 토지가 수탈되며, 일주일에 최소 4-5명이 살해되는 현장이다. 가자에서는 고기잡이를 하러 바다에 나갔다가 이스라엘 해경에 공격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스라엘 군인에게 돌이라도 들고 던지다가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면 이스라엘 군인이 다가와 다시 총을 쏴 살해한다고 한다.

10대가 이스라엘군에 끌려가면 성인 감옥과 다르지 않은 감옥으로 간다. 몇 년 동안 수감되기도 하고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15세의 한 소년은 감옥으로 잡혀갔다가 이미 수감돼 있던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기도 했다. 카람은 젊은 사람치고 감옥 한번 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정치인들은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집권 팔레스타인 파타는 부패했으며, 이를테면 팔레스타인 다수는 가난해도 정치인들은 라말라에 호화주택과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청년들은 계속해서 투쟁하고 있지만, 자치정부는 오히려 이스라엘 정부에 협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것이 거리의 10대가 느끼는 서안의 현실이라고 카람은 말했다. 10대들은 이런 고통을 조금이라도 되돌려 주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쇠붙이를 든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폭력적이라고 하지만 보통 팔레스타인 10대들은 중무장한 이스라엘군을 상대로 새총, 돌, 화염병을 들고 싸우고 있다. 그리곤 최루탄과 실탄을 맞는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후 사망한 팔레스타인 모두는 민간인이었지만, 이스라엘 측에서는 군인이었다는 점도 점령에 대한 절박한 저항을 설명한다고 카람은 짚었다. 태어나서 점령밖에 겪지 못한 세대들, 얼마나 절박했으면 자기 목숨을 걸고 나가는 것일지 우리는 모두 생각해봐야 한다고 카람은 강조했다.


“이스라엘 불법정착민의 폭력, 국가가 주도”

이스라엘의 폭력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카람에 따르면, 3개월 전만해도 불법정착민이 팔레스타인인의 한 집을 방화해 4인 가구 일가족이 불길에 휩싸였다. 4살짜리 아이는 살아남았지만, 1살짜리 동생은 산 채로 불타 죽었다. 한 근본주의 유대인은 종교적인 복장을 하고 대검으로 소녀를 포함해 6명을 찌르는 일도 있었는데, 이스라엘군은 당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카람은 이러한 불법정착민들의 폭력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는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면서 발을 빼려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태도를 주시하면 이스라엘인의 폭력은 국가가 주도하는 폭력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현 법무장관은 팔레스타인인 임산부는 테러리스트를 낳을 것이기 때문에 모두 죽여야 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고 카람은 전했다.

카람에 따르면, 주변 아랍 국가들도 이런 이스라엘을 감싸고 있다. 이집트에 팔레스타인인은 합법적으로 갈 수 없지만 이스라엘인들은 가능하다. 요르단에도 이스라엘 대사관이 있어서 이스라엘인들이 갈수 있고, 걸프국은 비밀리에 이스라엘산 무기를 다량으로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고 한다.

카람은 이런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막대한 지원 때문이라고 확언했다. 미국은 세계 각국에 식민지를 갖고자 하고, 끊임없이 확장하고자 하고,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의 가장 중요한 미국의 거점이라는 것이다.

카람은 미국 언론들은 이스라엘 편에서 보도하는 태도도 같은 문제라고 봤다. 그에 따르면, 중립적이라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만 봐도 지난 50일 사이 팔레스타인인의 폭력에 대한 보도는 36건이나 됐지만, 이스라엘인의 폭력은 2건에 불과했다. 또 팔레스타인인과 ‘공격’을 함께 사용한 보도는 117회에 달했지만, 이스라엘인에 대해서는 17회에 그쳤다.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현실도...싸우며 희망 찾아간다

그렇다면 점령의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의 삶은 어떨까? 한 청중의 질문에 카람은 “충분한 휴식을 갖는 것”이라고 답했다. 카람은 “지난 여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에 다친 한 아이가 자신의 품에서 죽은 일도 있었다”면서 1년이 지나서야 현실 감각을 되찾게 됐다고도 말했다. 폭력을 기록하고 저항을 위한 연대를 조직하는 활동. 매일 일어나는 살인과 강제퇴거 속에서 그가 에너지를 유지하는 길은 주변 사람들과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이야기하고 산을 가거나 수영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라며 한국 활동가들에게도 충분한 휴식을 가질 수 있기를 당부했다.

카람은 또 한국 청년들에 대해서도 “자본주의 시스템에 갇혀 사는 것은 세계적으로 같은 현실이고 팔레스타인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어떻게든 살 의미를 만들려고 싸우는 청년들이 많다”면서 “많은 이들이 활동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절대 희망을 잃지 말자”고 제안했다.

이날 강연회는 새라 팔연대 활동가의 순차통역으로 진행됐다. 행사는 “저항의 중심에서 직접 뛰면서 몸으로 기록한 ‘카람’”을 초청해 팔레스타인의 최근 투쟁에 대해 듣고,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에 결합하는 국제 활동가들이 받는 현장 교육을 한국에도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팔연대는 23일 오후 4시 카람 활동가와 함께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본 아랍정세”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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