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위기와 불안정성, 모두 미국의 책임

[워커스 한반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면적 대화에 나서야

북미 간 ‘말 폭탄’이 잦아들면서 한반도에 찾아온 최악의 위기상황은 일단 정지됐다. 한국은행이 10월 27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3개월 만에 반등했다고 하니 그 동안 심리적으로는 매우 불안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한반도 위기에 대한 대중들의 불안정성은 상식적·이성적 측면에서의 전쟁 가능성보다는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가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출처: 사계]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이

그동안 한반도 정세는 역동적이고 우발적인 경향이 많았다. 이는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 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상호 강경 대응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자국의 이익만을 좇아 일방적·폭력적으로 대북 적대시정책을 관철해온 미국 때문이다.

북한 문제 해결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던 1994년 제네바협정은 북한의 핵개발 포기와 그에 상응한 대북 제재 해제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북미 간 새로운 협상의 시작 등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이 협정을 대부분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물론 제네바협정 체결 이후 북한이 소량의 농축우라늄을 보유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핵실험을 하진 않았다. 금창리 핵시설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북한 스스로 사찰을 받아들여 제기된 의혹을 해소했다. 2000년 10월에는 군부실세이자 권력 서열 2위인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을 미국에 보내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진정성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스스로 폭파시키기도 했다. 이 정도면 북한은 할 만큼 한 거다.

하지만 미국은 핵개발 포기의 대가로 연간 50만 톤씩 공급하기로 한 중유 공급을 비롯해 제네바협정을 처음부터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미국은 10년 내에 북한이 붕괴할 것이란 시나리오 하에 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은 시작부터 협정의 배경과 전제가 달랐던 것이다. 그 결과는 2006년 북한의 제1차 핵실험으로 나타났다. 결국 1994년 제네바협정이 체결된 후 12년 동안 남한과 북한 모두는 미국으로 인해 허송세월한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불가능하게 하면서 지금과 같은 위기를 가져온 주범은 미국과 남한의 수구-보수 세력들이다. 물론 현재의 위기를 악화시킨 또 하나의 원인이 미국의 독자적 대북선제공격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대북제재를 앞장서 촉구했던 문재인 정부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책임도 미국이

북한의 ICBM 실험발사와 6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됐다. 그것은 북한이 실질적인 핵무기 능력을 보유하게 됐고 이로 인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된 것이다.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비확산회의’에 참석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은 “우리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협의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비확산) 회의장에서 밝혔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북미 간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9월말 중국 방문 당시 북한과 2~3개의 대화채널을 열어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현재 북미 간 직접 대화 채널은 미국의 조셉 윤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북한의 박성일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현안 문제를 논의하는 이른바 ‘뉴욕 채널’이 대표적이다. 오바마 행정부 말기 북미 대립이 격화하면서 뉴욕 채널도 끊겼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복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 6월 뉴욕 채널을 통해 북한에 억류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혼수상태란 것을 알렸고, 조셉 윤 대표가 급히 방북해 웜비어를 송환해 오기도 했다. 이는 11월초 트럼프 대통령의 한중일 등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북핵 긴장을 관리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제기된다.(조선일보, 2017.10.2.)

게다가 대북제재의 실효성이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가 전제돼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판명이 났다. 최근 북한이 강도 높은 대북제재의 압박을 견뎌내기 위해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등 내부 결속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소식이다. 이것만으로 북한의 내부적 불안정이 높아질 것이라든가 체제가 공고화될 것이라든가 여부를 전망하기는 이르다.

당장 한반도의 정세가 변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달라지는 단계에 들어섰다. 북미 간, 한중 간 대립이 더욱 강화되고 있고, 산업·금융·재정 등 경제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위협 요인이 발생하게 되었다.(배성인, “요동치는 한반도와 부르주아 정치의 한계”, 『진보평론』, 73호, 2017 가을호) 미국에 의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가 심각하게 꼬여버렸다. 트위터 정치를 구사하는 트럼프는 좌충우돌이고 종잡을 수 없다. 대중정책은 변덕스럽고, 대북정책도 불분명하다.

따라서 문제 해결은 미국에 달려 있다. 미국이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책임도 미국 몫이다. 결국 트럼프의 의지가 관건이다. 북한의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에만 매달려 협상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성과를 거두려면 한반도 냉전구조에 가담한 모든 당사국 사이에 적대관계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제국주의 국가이자 패권 국가이며 군산복합체인 미국에게 당장 이러한 노력은 기대난망이다. 중국을 지렛대 삼아 북한을 압박하려는 방법은 성공 가능성이 약하다. 미국의 설득과 요구에 대해 중국은 앞에서는 압박하고 뒤에서는 도와주는 이중전략을 구사해 왔기 때문이다. 설령 중국이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더라도 김정은은 자기 주민들을 희생시켜서라도 핵무기를 지킬 가능성이 더 크다.

북한은 비핵화가 아닌 ICBM 공격 여부를 놓고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철수 등을 의제로 미국과 직접 협상을 시도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협상력을 높이는 ‘최고의 압박과 개입’을 지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은?

북미 간 대립과 갈등이 다시 한번 격화되면 ‘코리아 패싱’은 현실화될 것이다. 지지율에 의존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무능함은 취임 초기 트럼프 행정부와의 강력한 동맹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미정상회담을 너무 서두르다 트럼프의 ‘덫’에 걸렸으면서도 성공적인 회담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자화자찬하다가 자승자박이 됐다. 미국 내 강경파의 압박과 국내 보수세력의 눈치만 살피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남한의 일부 세력이 ‘코리아 패싱’에 분노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 그렇게 했으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는 명분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에 전략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충고는 벌써 옛말이 됐다. 사드 배치를 처리하는 과정도 일관성과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의 차별성을 찾을 수 없다. 지난 유엔 총회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발언과 한미일 회의에서의 태도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일 뿐이다. 지지도와 표 관리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한반도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드 조기 배치, 예방공격, 한국의 독자제재 강구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노선과 압박에 더 이상 밀리지 말고 담대한 구상으로 미국을 설득해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단순한 신정부가 아니라 촛불이 탄생시킨 정부다. 문재인 정부가 의존하는 지지율 정치는 노동자민중들만 생각하고 담대한 타개책을 제안할 때 상승한다. 문재인 정부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와 운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동북아 평화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는 미 제국주의 정책이 노골화되는 조건에서 한반도 정세를 더욱 격화시키는 모든 군사적 행위와 제재조치를 중단해야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한반도에서의 핵 대결은 남과 북 모든 노동자 민중에게는 재앙일 뿐이다. 지금은 핵을 둘러싼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전면적 대화에 나설 때이다.[워커스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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