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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스 이슈(1)] 사회적 합의주의 보다 ‘새로운 계급 운동’

최근 미국에선 ‘현대 자본주의 최대의 도박판’이 벌어졌다. <뉴욕타임스> 11월 16일자의 표현이다. 온라인 쇼핑몰계의 거인, 아마존 제2 본사 유치 공모전이 그것이다. 아마존은 모두 33개 빌딩을 건설해 현재 시애틀에 위치한 본사와 같은 규모의 제2 부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일자리 5만 개에 50억 달러(약 5조7500억 원)를 투자한다고 할 만큼 판돈부터 어마어마하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면 500억 달러의 유치 가치가 예상된다. 이 때문에 최근까지만 해도 아마존 공모부서는 신청문의로 북새통을 이뤘다. 지난 10월 19일 마감일까지 접수된 신청자 수는 모두 238건에 달하는데, 최근 파산한 푸에리토리코 주뿐 아니라 캐나다와 멕시코에서도 신청이 쇄도했다. 미국 뉴저지 주는 아예 70억 달러 상당의 특별감세안까지 내놓았다. <가디언>이 미국 도시들이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19세기의 낡은 딜레마에 다시 빠졌다고 지적할 만큼 정부들은 아마존에 앞다퉈 레드카펫을 깔았다. 이미 미국정부가 지난 2년 동안 아마존에 지원한 보조금은 최소 2억4100만 달러(약 2643억 원)1)에 달하는데도 말이다. 2014년 국제노총(ILO)이 최악의 기업으로 뽑을 만큼 노동권을 헌신짝처럼 취급하지만 모두가 아마존을 원한다.

[출처: Jean Pierre Hintze/flickr]

추락하는 계급

정작 아마존을 최악의 기업으로 뽑았던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률은 매해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올 초 미국 노동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도 미국 노조 조직률은 10.7%로 2015년에 비해 0.4%(240,000명)가 줄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세계적으로도 노조조직률은 계속 쪼그라들고 있다. 2015년 OECD 평균 노조조직률은 17%로 30년 전에 비하면 약 13% 감소했다.2)

노동자의 살림살이도 내리막길이다. ILO 통계에 따르면, 세계 전체 실업률은 2007년 5.5%에서 2009년 6.2%로 최고점을 찍은 뒤 하락했으나 여전히 5.7%(2017년)를 유지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2017년 13.1%로 예상되는데 평균실업률의 2배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에선 2명 중 1명이, 개발도상국에서는 5명 중 약 4명이 불안정 노동자이다. 연간 세계 실질임금 성장률은 2007년 3.4%에서 2015년 1.7%로 절반으로 떨어졌다.

제3 세계 민중, 여성, 이주노동자일 경우 내리막길은 더욱 가파르다. ILO의 ‘2017 국제 권리지수’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등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세계 최악의 지역으로 평균 노동권 지수가 전년도 4.26에서 4.53으로 악화했다. 아프리카 노동권 지수도 3.32에서 4.00으로, 아시아 또한 4.00에서 4.14로, 북미에서도 3.16에서 3.5로 악화했다. 2017년 세계성차별지수는 여전히 68%를 밑돈다. 최근 리비아에선 공식 노예시장까지 생겼다.

세계 노동자들 스스로도 어두운 미래를 직감하고 있다. ILO가 2016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3%가 일자리를 잃을까봐 걱정한다. 지난 2년 동안 10명 중 4명이 자신이나 가족이 실업이나 노동시간 단축을 강요받았다. 4명 중 3명이 빈부 격차가 늘어날 것이며 56%는 저임금 이주노동자와 경쟁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75%가 노동조합이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길 바랐다.

세계 경제 위기 10년,
사회민주주의의 한계와 배반


후퇴하는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은 2007/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경유하며 더욱 악화됐다. 그리고 이 경제위기는 지난 반세기 남짓 추진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지구적 생산 관계 속에서 세계 민중이 자본주의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반증했다. 미국 발 금융 위기의 연쇄 작용 속에서 금융과 부동산 시장의 몰락과 서구 정부들의 구제금융 및 긴축, 그리고 이에 따른 중국과 아시아에서의 저성장,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의 연쇄적인 경제 위기와 혁명 및 잇따른 전쟁, 원유 및 원자재가 폭락에 따른 남미 등 자원 추출국가에서의 경제 위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제 자본주의의 장기 불황 속에서 저개발국가와 함께 서구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도 모두 바닥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불안정 속에서 각국 정세는 더욱 우경화하여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를 필두로 서구뿐 아니라 아시아, 남미 등 모든 지역에서 극우가
위세를 부리고 있다.

이러한 정치 환경은 결국 1980년대 영국 대처리즘과 미국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구의 사민주의 정부는 90년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반발에 힘입어 집권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신자유주의의 또다른 모습으로 자본주의의 위기를 민중에 전가했다는 점에서 공동의 책임을 지니고 있다. 결국 이들은 2007/8년 세계 경제 위기를 전후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그리스와 스페인 등에서 줄줄이 몰락했다.

  2004년 독일 하르츠 반대 시위 [출처: 위키피디아]

사민주의 노조주의의 책임도

그러나 사민주의 정부의 몰락은 실은 사민주의의 노조주의 실패의 결과이기도 하다.

애초 서유럽에선 2차 대전의 종식 뒤 화해 무드 속에서 노조를 포함한 정치활동이 보장되면서 노조운동과 이의 정치적 대표체로서의 다양한 좌파 정치운동이 발전해갔다. 영국에서는 대중정당으로서 노동당과 노조 간 관계가 강화됐고, 독일에서는 사민당이 ‘노동자의 당’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신생 사회당 보다 독일 점령에 맞선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공산당의 인기가 더 많았지만 구소련 몰락 후 사회당이 부상했다. 사민당과 노조 간 관계는 스웨덴에서 가장 강력했으며, 1970년대까지 파시스트 독재가 지속됐던 스페인과 포르투갈만 예외적이었다.

자본주의 호황기에 각각 집권한 서구의 사민당 정부들은 노동시장을 규제하고 완전 고용을 보장하면서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케인즈주의의 경제 정책을 편 한편, 노조 다수는 임금투쟁을 자제하고 정부의 파트너가 됐다. 최소 30년 동안 이 합의는 다양한 형태로 지속됐다.

그러나, 1970년 초 찾아온 불황 속에서 이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결국 서구 사민주의 정부는 우파에 정권을 내주거나 스스로 우경화됐다. 그러나 80년대 우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불만 속에서 90년대 말 영국 토니 블레어와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 사민주의 정부들이 다시 집권하게 됐다. 하지만 이들은 제3의 길, 신중도라는 이름으로 민영화와 노동유연화를 확대하며 또 다른 신자유주의 모델로 나아갔다. 대표적으로 토니 블레어 영국 정부는 ‘일하는 복지’를 통한 복지 삭감, 규제완화, 자본시장 육성, 철도 등 공공기관 민영화를 추진했는데, 영국통계청에 따르면, 소득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대처 집권 기간의 평균 29에서 35로 악화될 정도로 사회는 양극화됐다.

하지만 사민당 정권과 가까운 서구 노조 지도부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최악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노조들은 사회적 대타협의 방식 등으로 이를 용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조에 대한 기층노동자들의 신뢰는 떨어져 갔다. 결국 이 갈등은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노조 지도부 그리고 기층노동자 간의 긴장을 증가시켰고 이 균열은 계속 커져 왔다.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노조주의의 위기>(2009년)라는 책을 공저한 런던 미들섹스대 국제고용관계학과의 마틴 업처치(Martin Upchurch) 교수는 “사민주의의 위기는 사민주의 노조주의의 모델의 잠재적 위기로 변모됐다”며 “이전에는 사민주의의 노조주의에 도전이 항상 정당 내에 수용되거나 산업 관계 제도에 의해 중립화됐지만 이제는 질적으로 변화했다”고 지적한다.3)

새로운 계급 운동, 계급 정치...#사회주의

이 같은 사민주의 노조운동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노동자 운동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은 이중적인 혁신 전략을 펴고 있다.

하나는 산업 변화에 조응하는 노동운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한국의 몇몇 노동운동처럼, 비정규직, 비공식부문, 여성, 이주노동자 등 산업변화에 따라 형성된 미조직 노동자를 위한 노동운동이다. 이미 미국에선 미조직 노동자가 다수인 서비스부문에서의 저임금노동 문제를 공론화한 15달러 운동이 세계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운동에 불을 지핀 바 있으며 독일에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보건노동자들의 새로운 노동운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의 정치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영국에선 또 다른 신자유주의를 강행한 노동당 내 블레어주의에 반발하여 노동당을 등진 노동운동 진영이 당내 좌파 제레미 코빈 당수 선출을 계기로 다시 노동당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며 공동 행보를 취하고 있다. 이를테면, 영국공공노조, 유나이트 등 노조들이 제레미 코빈 노동당수의 사회화 정책에 적극 결합하고 있다. 독일 노동자 운동은 사민당과 녹색당 연정의 2003년 신자유주의 정책 ‘아젠다 2010’ 도입을 계기로 새로운 좌파정당인 좌파당(die Linke)을 건설했다. 이들은 여전한 사민주의 주류의 노조운동 속에서 현장 조직 및 사회운동과 공동투쟁을 강화하는 방안들을 중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노조운동의 반대가 주로 거리에서 이뤄졌는데 민주주의를 중시하며 경제적 요구에 한정하지 않는 노조연대(SUD)와 같은 독립 노조의 투쟁이 주목받고 있다. 경제위기 후 극우가 부상한 네덜란드에서는 네덜란드노총(FNV)과 노동당(PvdA)이 비공식적 제휴 관계를 유지했지만 1982년 우파정부의 네덜란드 판 노동유연화 모델인 ‘바세나르 협약’과 ‘신노선 협약’에 이어 노동당도 ‘노동유연성 협약’을 실시한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보다 좌파적인 사회당이나 녹색당과 협력하고 있다.[워커스 37호]

[각주]
1) 미국 비정부기구 ‘굿잡스펄스트’ 보고서
2) OECD 2017년 고용전망
3) Martin Upchurch, The Crisis of Social Democratic Trade Unionism in Western Europe

[참고]
오창룡, 때늦은 ‘사민주의’ 열풍에서 경계해야할 것들, 참세상 주례토론회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2847
Martin Upchurch, The Crisis of Social Democratic Trade Unionism in Western Europe, Global Labour Column.
http://column.global-labour-university.org/2009/11/crisis-of-social-democratic-trade_8878.html
Mario Candeias, EINE FRAGE DER KLASSE. NEUE KLASSENPOLITIK ALS VERBINDENDER ANTAGONISMUS
http://www.zeitschrift-luxemburg.de/eine-frage-der-klasse-neue-klassenpolitik-als-verbindender-antagonis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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