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해방 없는 팔레스타인 해방은 없다”

[INTERNATIONAL3]

2019년 9월 26일, 팔레스타인 여성 수천 명이 자유와 안전, 해방을 외치며 거리를 메웠다. 시위대는 여러 형태의 폭력 피해자들과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정치범들의 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며 팔레스타인 사회의 명예살인과 가부장제 및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규탄했다.

시위는 이스라엘에 군사점령된 팔레스타인에 국한되지 않았다. 점령된 도시 라말라, 예루살렘, 가자의 담을 넘어 하이파, 자파와 같은 현대 이스라엘의 도시에서도,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사는 레바논의 베이루트와 독일 베를린에서도 동시에 시위가 열렸다. 점령지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 디아스포라 상태의 난민이라는, 세 그룹의 전체 팔레스타인인을 대표하는 상징성 있는 시위였다.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는 한 달 전 서안지구의 베들레헴에서 21살 여성 ‘이스라 고라이옙’이 ‘명예 살해’를 당한 사건 때문이었다. 고라이옙은 곧 약혼할 남성과 함께 찍은 비디오를 소셜 미디어에 올렸단 이유로 남성 가족들에게 살해됐다. 충격적인 소식에 팔레스타인 전역이 들끓었다. 한 달 간 식민 해방과 여성 해방에 대한 논의가 폭발적으로 이어졌다. 젠더 폭력, 여성혐오 살해,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여성 수감자들에 대한 폭력, 이스라엘 군사점령의 폭력, 가정 폭력, 몸에 대한 통제권을 보장해 줄 법률의 미비 등 마구 쏟아지던 논의들은 하나의 운동으로 수렴됐다. 바로 딸리아트( تاعلاط , 아랍어로 ‘궐기’) 운동이다.

[출처: Oren Ziv ActiveStills]

팔레스타인 여성이 처한 상황

명예살인 등 가정폭력으로 살해된 점령지 팔레스타인의 여성은 2018년에 23명, 2019년 11월 기준으로는 벌써 30명에 달한다. 알려지지 않거나 자살로 위장된사건 등을 생각하면 집계 되지 않은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여성을 위한 법률지원 및 상담 센터(WCLAC)’에 따르면 2011년 형법 개정으로 가정폭력범에 대한 처벌이 약간 강화된 뒤 자살로 위장하거나 자살을 강요하는 사례가 늘었다. 9월 26일의 시위 이후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두 명의 피해자가 더 드러났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29번째 피해자는 아버지에게 살해당한지 한 달 만에 아버지의 집 앞마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11월 6일 살해된 서른 번째 피해자(18)의 사인은 가족들의 구타로 인한 뇌출혈이었다. 사상자 숫자에 반영되지 않는 피해는 어느 곳에서나 그렇듯 더욱 크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팔레스타인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와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라는 이중의 억압적 구조 속에 살고 있다. 두 억압 구조는 때로는 각각 작동하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결합돼 억압을 복잡하게 만들고 그 밀도를 높인다. 예컨대 ‘팔레스타인 여성을 위한 법률 지원 및 상담 센터(WCLAC)’에 따르면 젠더 폭력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과 같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늘어난다. 이스라엘 군사점령 당국에 끌려가 구타를 당하거나 고문을 당하는 등 직접적인 폭력을 경험한 남성들은 어떻게든 그 억압의 경험을 해소하고자 한다. 이 때 분노와 폭력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 즉 여성과 어린이에게 향하곤 한다. 이는 팔레스타인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억압의 도구로 폭력이 일상적으로 행사되는 분쟁 지역에서 젠더 폭력이 기존의 구조와 결합해 강화된다는 점은 오랫동안 지적돼왔다.

그런데도 팔레스타인에서의 가정폭력은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가족의 문제’라며 개인적 혹은 사회적 문제로 간주돼 정치적 영역에서 분리해서 다뤄졌다. 또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스라엘의 군사점령과 식민화에 맞선 민족해방운동이라는 대의에 밀려 정치적 담론장에서 제외됐다. 한때 해방운동 세력 중에도 우선은 민족해방이 절실하기 때문에 여성해방 등 다른 문제들은 민족 해방이 선취된 후에 논의하자며 오지 않는 미래로 과제를 미루는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경험하는 현실에, 군사점령만 끝나면 모든 가능성이 열리는 장밋빛 미래 따위는 없다.

딸리아트 운동

딸리아트 운동은 국경을 넘는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들의 연대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에 맞선 민족해방운동의 그늘 속에서 오랫동안 부차적 문제로 치부됐던 젠더 불평등을 사회·정치적 담론의 중심으로 끌어오고자 한다. 이들이 내건 슬로건 “여성해방 없는 팔레스타인 해방은 없다”는 운동의 지향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딸리아트 운동은 “젠더 폭력이 개인적인 문제나 개별적 범죄가 아니라 폭력과 부패로 점철된 전체 시스템에 내재된 사회적 조건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젠더 문제는 모든 팔레스타인 여성과 남성의 문제이자 정치적 문제가 된다.

“우리는 시민사회 제 단체와 정치 운동 안에서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남자들이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에 맞선 우리의 투쟁에서 수행하는 ‘민족을 위한’ 역할을 한다는 구실로 그들의 폭력을 눈감아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사실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들의 고독한 싸움은 군사점령에 필적할 만한 긴 역사를 가진다. 특히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 영국을 필두로 한 서구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탓에 팔레스타인 사회에 서구 사상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 페미니즘은 서구에서 주입된 사상이라고 쉽게 비난받았다.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나 경제적 지위 향상과 같은 문제에 기본적인 합의점이 생긴 후에도 여성운동은 민족해방운동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실제로 남성 공무원들은 이번 시위 주관자들에게 해방운동 중 이스라엘에 체포돼 수감된 여성 정치범의 사진을 들라고 요구했다. 페미니스트이기 이전에 민족해방운동에 복무하는 운동가임을 입증하지 않으면 너희의 운동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물론 여성 수감자들의 사진을 젠더 폭력 희생자들의 사진과 함께 들고 행진했다.

하지만 이것은 검열자들이 시켰거나, 여성운동과 분리된 의제로서 해방운동을 생각했기 때문에 한 행동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군사점령과 식민화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로서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다.

‘리마 나지’ 활동가의 말은 그런 입장을 선명히 보여준다. “자유라는 개념은 분할할 수 없다. 여성의 권리를 위한 싸움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화에 맞선 싸움과 같은 개념에 뿌리를 둔다.”

군사점령과 페미니즘

71년 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인종청소하며 들어선 이래, 이스라엘은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회를 파괴하고 분열시키며 폭력을 선동했다. 또 팔레스타인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를 이용해 젠더와 계급 억압을 심화시켰다. 이스라엘이 자의적으로 그은 국경선과 추방당한 난민의 귀환 금지 정책은 팔레스타인 사회를 조각내고 단절시켰다. 사람과 조직 간에 연결이 약화되고 사회가 분열되며 운동이 파편화된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딸리아트 운동은 무너진 투쟁 전선을 다시 구축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가부장제가 공모하는 끔찍한 현실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페미니스트들의 연대라고 얘기한다. 연대를 통해 각자가 어디에 있든, 정의롭고 안전하게 투쟁할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도시 하이파와 자파의 딸리아트 운동가들은 이스라엘의 유대인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이스라엘 점령당국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회의 여성 인권이 취약하다는 점을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 중 하나로 삼는다. 때문에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들은 식민화의 현실을 지우고 팔레스타인 사회의 가부장제만을 문제 삼는 점령자의 논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언제나 해방운동의 주요 행위자로서 인티파다(민중봉기)와 같은 역사적 투쟁 때마다 비폭력 운동을 이끌어 왔다. 딸리아트 운동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딸리아트는 여성 수감자의 석방을 요구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규탄하는 등의 여러 시위를 계속 조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위에 나올 수 없는 처지의 여성들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젠더 문제가 여성과 남성 모두의 문제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남성들의 참여도 늘고 있다. 세계 곳곳의 디아스포라 팔레스타인인들의 관심과 반응도 뜨겁다. 개인적으로 내가 아는 국내외 다양한 팔레스타인 친구들, 특히 여자 친구들이 모두 관심을 갖는 여성운동을 처음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