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이탈리아, 라이터 켠 여성 사회주의자

[지금, 여성사회주의자] 풀뿌리 정치운동 실험하는 비올라 카로팔로 ‘민중에게 권력을(PaP)’ 당 대표

흰 천 마스크에 두 개의 구멍이 나 있다. 지난해 세계 GDP 순위 8위를 기록한 국가, 이탈리아 남부 최대 도시 나폴리에 위치한 카르다렐리병원이 직원에게 제공한 마스크다. 비올라 카로팔로(Viola Carofalo) ‘민중에게 권력을(PaP)’ 당대표는 지난 3월 20일 이 사진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그리고 이를 “30년 동안 공중보건을 해체한 결과”라고 기록했다. 보건노동자 마스크가 이쯤이면, 다른 이들의 여건은 얼마나 더 비루할지 짐작할만하다.

[출처: @ViolaCarofalo]

안전 대신 이윤, 기업 대신 사회를 차단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코로나19 감염국이 된 이탈리아는 전 사회가 블랙아웃 상태다. 학교와 공공시설은 물론 국경도 폐쇄된 지 오래다. 하지만 누적사망자가 4032명에 달한 21일까지도 금속노동자나 텔레마케터 등은 어김없이 출근해야 했다. 정부가 11일 폐쇄령을 발표했지만, 이탈리아공업총연합 콘프인두스트리아(Confindustria)의 압력 때문에 공장, 콜센터, 물류 등 많은 산업이 여기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많은 노동자들은 마스크나 장갑, 소독제는 물론 손 씻을 비누도 없이 일을 해야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감염 대신 파업을 선택하기로 했다. 앞서 3월 9일 이탈리아 남부 포미글라노에 위치한 피아트(FIAT) 노동자들이 이에 항의하며 살쾡이 파업(노동조합 지도부의 허가 없이 노동자들이 자발적인 파업을 하는 것)을 벌였었다. 북부 카오르소에 있는 전자공장 바르톨리니 픽업이나 카세르타에 위치한 TNT 창고 물류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11일 정부가 주요 생산시설을 제외한 채 전국 폐쇄령을 내리자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대표적인 이탈리아의 평조합원 노동조합(Unitaria di Base, 기초위원회) USB(Unione Sindacale di Base, 기초노조의 연합)가 12일 모든 비필수산업의 즉각적인 폐쇄를 요구하며 32시간 파업을 조직했다. 기초위원회 중 유일하게 이주노동자가 참가하고 있는 또 다른 평조합원 노조 신디케이트교차기초위원회연합(SI cobas)은 총파업을 제안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이탈리아 주요노총 이탈리아노동총연맹(CGIL)이나 이탈리아노조연맹(CISL), 이탈리아노동조합(UIL)은 거리를 뒀지만 평조합원들의 조업 중단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탈리아 코로나파업 노동자들 [출처: https://sicobas.org/]

노동자들의 조업 거부로 12일에만 최소 12개 공장이 생산을 포기했으며, 파업은 피에몬테, 밀라노, 토스카나, 에밀리아 등 전국으로 뻗어갔다. 파업 노동자들은 정부가 건강과 직업 안전, 사회 보호와 위기 비용을 노동자가 지불하도록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파업이 확산되자 CGIL 등 노조연맹과 정부, 사용자단체는 13일 오후부터 18시간에 달하는 긴급 화상회의를 진행해, 조업 중단의 경우 임금을 국가실업수당기금을 통해 보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기업의 노동자나 이 합의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파업을 고수했다. 파업이 1주일 이상 이어지자, 결국 21일 이탈리아 정부는 비필수 산업 모두에 폐쇄령을 내렸다.

파업에 나선 다수의 노동자들은 포테레알포폴로(Potere al Popolo, 민중에게 권력을, PaP)(1)라는 신생 좌파단체연합 소속이다. PaP는 이탈리아 풀뿌리 정치운동의 재건을 목표로 2017년 11월 출범한 정치조직이다. 이미 이탈리아 전역에서 150여 개의 지부가 결성됐을 만큼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여기에는 사회센터부터 전투적인 노조와 급진 좌파 정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또는 사회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 PaP의 대표가 바로 비올라 카로팔로다.

  비올라 카로팔로 [출처: @ViolaCarofalo]

“민중에게 권력을”

“아이보단 수백 번의 투쟁을 택할 것이다.” 카로팔로의 팔에 새겨진 타투 문구다. 여성 억압에 맞섰던 그리스 신화 속 인물 메데이아가 했던 말이다. 10대 시절부터 정치 활동을 해온 그는 그람시, 베르톨트 브레히트, 프란츠 파농, 블랙팬서를 좋아하지만, 좌파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좌파와 늘 싸워왔다. 페미니스트이자 철학자, 그리고 여성 사회주의자인 그는 지난 30년 간 이탈리아 사회주의 정치의 실패를 경험 삼아 새로운 계급정치를 실험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의 노총이나 매번 민주당으로 달려갔던 좌파 정당에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이후 2등 노동자로 떠밀려온 여성,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를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러한 카로팔로의 정치에는 이탈리아 공산주의 혁명가 그람시와 이탈리아 남부 상호부조의 풍토, 유럽 경제위기와 ‘급진민주주의’를 중시하며 부상한 포데모스 등 신생 정치 세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우리는 좌파가 아니라 코뮌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는 동료 활동가들과 점거한 ‘Ex OPG-Je so' pazzo’(전 교도소 정신병원-이 소 파초)(2)을 거점으로 풀뿌리 정치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카로팔로가 태어난 나폴리는 1970년대 말 첫 번째 실업자운동이 생겨난 지역이다. 동시에 노동 문제가 항상 사회운동의 중심이 된 곳이기도 하다. 그는 이탈리아에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했을 무렵, 아버지가 말했던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질 것이다’라는 속담을 종종 떠올린다. 아버지의 말처럼, 이제 나폴리의 빈민은 더 가난해졌지만, 그럼에도 전투적인 운동 기풍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풍토는 그가 공부한 철학이나 정치학, 그리고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클래쉬시티워커스(Clash City Workers)라는 단체에서 활동했는데, 이 단체는 계급 분석에 근거한 정치를 촉진하는 전투적인 집단이었다. 이들은 과연 “오늘날 누가 노동계급인가(Dove sono i nostri)”에 관심이 있었고, 이러한 질문은 후에 책으로도 발간됐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조직에 어려움을 겪는 현재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조직이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들은 ‘이 소 파초’를 점거하고 PaP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 30년 동안 이탈리아의 노동환경이 후퇴했음에도 좌파정치는 새로운 활력을 만들지 못했다. 전후 이탈리아공산당(PCI)이 파시즘 정권에 저항하며 전후 두 번째로 큰 정당으로서 현대사를 시작했던 때와는 달랐다. 좌파는 반공주의와 반우파 구호 속에서 우경화했다. 이에 반발한 이들이 이탈리아재건당(PRC)을 창당했지만 그들 또한 2006년 우파 베를루스코니의 재선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중도좌파 정부에 참가했다. 결국 노동계급 다수는 신자유주의 노선과 해외 파병에 찬성한 그들을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노동계급의 여건은 갈수록 뒷걸음질 쳤다. 사회적 격차는 커졌고, 유럽 경제위기의 타격은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향했다.(3) 특히 2011년 이탈리아가 리비아 침공에 가담한 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난민이 밀려왔고, 이미 실업이 만연한 이탈리아 노동시장은 이들을 노예의 신분으로 흡수했다. 심지어 마피아는 난민을 팔고 성매매를 시키는 ‘난민사업’으로 마약보다 더 높은 수익을 냈다. 사회는 이미 폭발 직전에 있었다.

이러한 이탈리아의 증상은 최근 코로나 사태로 보건 부문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애초 이탈리아는 1970년대 고양된 노동자계급 대중투쟁에 힘입어 1978년 보건개혁을 통해 보편적인 건강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북부의 반발로 보건제도가 지방으로 이양됐고, 이양된 지역에서 다시 민영화됐으며 유럽연합(EU) 가입 후에는 재정 협약에 따라 보건 예산을 삭감했다. 특히 10년 전 유럽 경제위기 후에는 가장 심각한 긴축이 보건 분야를 강타했다. 지난 10년 간 보건부문에서만 370억 유로(약 50조 원)가 삭감됐고, 모두 10만 명 이상의 보건노동자 일자리가 줄었다. 중환자실 병상수도 5천 개(독일 8만 개)로 곤두박질 쳤다.

카로팔로와 활동가들은 정부가 돌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목했다. ‘이 소 파초’를 점거한 것도 새로운 노동계급과 만나기 위한 도전이었다. 카로팔로는 “언제나 같은 사람들끼리 모였다. 우리 정치 활동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이 소 파초’를 점거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지역사회에 이야기를 하고, 그들을 초대하고, ‘우리가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것이었다”고 회상한다.

‘이 소 파초’ 활동가들은 처음부터 이 거점을 전투적으로 운영했다. 당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4개월 밤낮을 이곳에서 보냈고, 이를 거점으로 지역 노조 및 단체들과 함께 직접행동을 조직했다. 예를 들면, 점거한 공간에 노숙인의 잠자리를 마련해 시당국으로부터 거주지로 보호받으려는 투쟁을 진행하면서, 또 다른 빈 시설을 점거해 더 많은 주거지를 확보하는 투쟁을 벌였다. 이주노동자에 불법 노동을 강요하는 사업장에 항의 방문을 하고, 불법적인 난민 인정 절차를 강요하는 지역기관을 폐쇄하기도 했다. 물론 노숙인과 이주민,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 건강, 성, 문화 등을 주제로 상담이나 지원 사업, 토론, 정치 집회도 진행한다. 말하자면, 일상에 밀착한 전투적인 지역사회센터인 셈이다.

그러나 ‘이 소 파초’는 그보다 ‘민중의 집(Casa del Popolo)’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한때 노동자계급의 지역·정치적 거점이었던 전통을 존중하는 것이다. 또 이탈리아 혁명가 그람시가 지적했듯, ‘북부의 내부 식민지’인 남부에는 대규모 산업이나 국가 기반시설이 부족한 대신 상호원조나 지역운동의 뿌리가 깊다. ‘이 소 파초’는 바로 이 사례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이 모델은 현재 탈산업화와 경제위기, 긴축에 ‘남부화한 북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소 파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치 플랫폼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새로운 풀뿌리 정치운동

  2017년 12월 17일 PaP 첫 번째 전당대회 현장 [출처: https://jacobinmag.com/]

PaP가 처음으로 논의된 때는, 2016년 12월 렌치 민주당 정부의 헌법 개정 반대 시위에서였다. 지역 노조나 풀뿌리 사회단체가 시위에 참여하면서 결국 정부의 헌법개정안은 좌초됐다. 하지만 2018년 총선이 다가오는데 시위에 참가한 이들을 대표하는 정치 세력은 없었다. 경제위기 때 터져 나온 대중적 불만에 힘입어 창당한 오성운동당(M5S)은 점점 더 사회 문제를 이주민에게 돌렸다. 진보세력은 자유와평등당(LeU)을 창당하자고 제안했지만 이들은 민주당의 긴축에 동의했던 자들이었다. 게다가 극우는 더욱 득세했다. 이즈음 카로팔로를 비롯해 ‘이 소 파초’ 운동가들은 새로운 정치운동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그리고 2017년 11월 첫 회의가 진행되던 날, 전국에서 800명 이상이 모였다. 카로팔로는 “이들은 수십 년 막다른 골목에서 환멸을 느끼며 새로운 영감을 찾던 운동가들이었다”고 회상한다.

PaP에 참가하는 다수는 여성,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소농이다. 이탈리아 정치에서 원내 좌파는 내리막길을 걸어왔지만, 원외 좌파들의 활동은 활발했다. 예를 들면, 최근 코로나파업을 일으킨 ‘기초위원회’라는 뜻의 ‘코바스’가 그런 사례다. 평조합원 중심의 코바스는 대규모 연합 노조에 대한 급진적인 대안으로 1980년대 처음 결성돼 현재까지 가입자 수가 늘고 있는 노동자 단체다. 현재 CC, CUB, USB, USI-AIT, SLAI Cobas, SI Cobas 등 다양한 기초위원회가 조직돼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탈리아 노조 조직률은 유럽에서는 드물게도 증가해 왔다. CGIL 등 주요 노총은 PCI 후신으로 주로 민주당과 연계를 유지해왔지만, 이들 자율적인 노조와 단체들은 정부에 비판적이다.

또한 많은 사회센터들이 이주민이나 무주택자에 대한 지원 활동을 활발히 벌여왔다. 대표적으로 ‘이 소 파초’는 노조나 세입자조합들이 빈 건물을 점거해 집 없는 이들에게 주거를 제공한다. 경제위기와 긴축 시대에 자라난 밀레니얼 세대도 중요한 정치 주체다. 이탈리아에선 고교생이 2012년 11월 정부의 교육예산 삭감에 맞서 70여 개 학교를 점거한 사례가 있을 만큼, 이 세대는 저항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결국 PaP는 2017년 12월 이탈리아 주요 좌파정당인 이탈리아재건공산당(PRC)과 이탈리아공산당(PCI)의 지지를 받아 총 8개의 정당연합을 결성했다. 이듬해 3월에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총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극우가 더욱 득세하면서 득표율은 1.1%에 그쳤다. 선거 이후, 재건공산당(PRC)과 이탈리아공산당(PCI), 반자본주의좌파(SA), 남부의당(PdS)은 다시 PaP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공산주의네트워크(RdC), 급진사회주의운동(MRS), 사회주의재생(RS) 등 정치단체와 지역 노조 및 연합들, 특히 클래시시티, 고속철도반대운동, 파이프라인반대운동 등 다양한 운동세력이 PaP를 지키고 있다. 카로팔로는 “우리는 명명가가 없고 주류언론에선 완전히 블랙아웃돼 있다. 선거에서 이기면 좋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정치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재 PaP는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빈민과 노숙인,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등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된 지원체계를 재조직했다. ‘빨간 전화’라는 이름으로 노동 및 보건 관련 상담을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부는 식료품이나 의약품을 지원하는 비상 거점으로 운영된다. 교도소 폭동이 일어난 후에는, 과밀한 교도소 문제를 지적하며 긴급 사면도 주장하고 있다.

카로팔로의 정치는 분명 가난한 소농과 이주민, 비정규 노동자, 청년 실업자가 다수인 이탈리아 남부의 특수한 사례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 동시대 노동계급을 조직하려는 그의 전투성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카로팔로는 “우파는 이민자 때문에 비상사태라고 했지만 진정한 비상사태는 착취가 표준이 되고, 매춘으로, 범죄로, 끊임없는 고통으로 내모는 이 사회 자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자선이 아니다. 우리는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이 소 파초 모습 [출처: 이 소 파초]


[각주]
(1) PaP는 창설 선언문에서, 일상의 실천과 자치 실험, 사회적 배우기와 대중적인 참여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는 반자유주의, 반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스트, 세속주의를 추구한다고 명시한다.
(2) OPG는 Ospedale Psichiatrico Giudiziario(사법정신병원)의약자이다. ‘이소파초’는 ‘나는 미쳤다’라는 뜻으로 이곳을 점거한 활동가들이 지은 이름이다.
(3) OECD에 따르면, 이탈리아 소득불평등(지니계수)은 2009년 0.315에서 0.334로 증가했고, 비정규직은 2009년 15.9%에서 2018년 18.0%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