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국가인권위원회를 지키기 위한 한국의 역할

[이슈3]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뉴스가 쏟아졌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발표한 후 탈레반의 공세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앞서 2020년 3월, 트럼프 행정부는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해 2021년 5월까지 철군하기로 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9·11테러 20주년인 올해 9월 11일까지 철군할 것을 발표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져나오길 희망했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배제하고 탈레반과 직접 평화협정을 벌였다. 협정에 따라 미군 철수가 임박해오자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통제력은 급속히 붕괴했다. 탈레반의 공세로부터 6개월은 버틸 것이라는 미국의 전망은 맞아들지 않았다. 급기야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탈레반에 항복하고 외국으로 피신하면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은 기정사실이 됐다.

이같은 혼란 속에서 탈레반을 피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는 아프가니스탄 시민의 모습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한국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미군이 철수하면 우리도 저런 꼴(?)을 당한다고 주장했다.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면 아프가니스탄 정부에서 일했던 이들에게 보복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무엇보다 과거처럼 여성에 대한 끔찍한 인권침해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국제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반면 부시 행정부의 9·11테러 보복에서 시작된 탈레반 정권 붕괴와 미국이 주도하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결과적으로 내전을 끝내지 못했다는 평가도 잇따랐다. 미군 철수로 아프가니스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탈레반이 과거와 같이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점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는 가운데, 분명한 것은 한국 사회가 (필자를 포함해)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년간의 미군 주둔 이후 탈레반이 다시 주도권을 잡은 것을 두고 ‘탈레반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지지’로 해석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다양한 민족적 구성과 이로 인한 갈등은 미국 철수 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며, 이들이 어떤 국가로 나아갈지는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군 철수와 탈레반에 대한 저항이 이어지고 있는 불확실한 현재, 필자가 이 문제를 다루기로 한 이유는 아프가니스탄에 관해 꼭 소개하고 싶은 사람과 기관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국가인권위원회

2001년,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아프가니스탄 정부 수립과정에서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독립국가인권위원회(Independent Human Rights Commission)’가 설립됐다. 헌법 제58조에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조항도 담겼다. 비록 대부분의 예산이 UN의 지원으로 이뤄졌지만, 설립 이후부터 현재까지 내전을 비롯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고 평가받는다. 이것은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이 5년마다 실시하는 등급심사에서 아프가니스탄 국가인권위원회가 3번 연속 ‘A’등급을 받은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가인권기구가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활동하지 못할 경우 ‘B’등급을 받기도 한다. 이를 감안하면 아프가니스탄 인권위원회는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의 성과로 봐야 할 것이다.

  2015년 몽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인권기구 포럼에 참가한 시마사마르 위원장 [출처: 국제민주연대]

아프가니스탄 인권위원회가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위원회를 설립하고 최근까지 이를 이끌어온 시마 사마르(Sima Samar) 위원장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1957년생인 사마르 위원장은 1982년 카불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소련 침공 당시 남편이 살해되자 파키스탄으로 피신해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위한 의료지원을 해왔다. 2001년에는 과도 정부 수립을 위해 개최된 아프가니스탄 부족장 회의(Loya Jirga)의 유일한 여성 멤버로서 부의장을 지냈다. 과도정부 5명의 부통령 중 유일한 여성 부통령이자 초대 여성부 장관을 역임했고, 2002년부터 2019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인권위원회를 이끌었다. 2019년 12월부터는 국내 실향민 문제에 관한 UN사무총장 고위급 패널(United Nations Secretary-General’s High- Level Panel on Internal Displacement)로 활동 중이다.

사마르 위원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군이 저지르는 인권침해를 강력하게 비판1)한 바 있다. 또한 숱한 살해 위협 속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의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해왔다.2) 지난 8월 12일에는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3)에서, 지난 20년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권리가 확장돼 사법부가 가정폭력을 다루는 수준까지 도달했지만,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이런 성취들이 후퇴할 것이라 우려했다. 인터뷰의 마지막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평등과 존엄한 삶은 사치가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은 존엄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지난 2015년 8월, 필자는 몽골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가인권기구 포럼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 NGO 회의에 참석한 사마르 위원장이 아프가니스탄 국가인권위원회가 처한 도전들과 활동을 설명할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마르 위원장을 포함해 아프가니스탄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활동가들의 미래가 불투명한 현지의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

한국의 역할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한국의 인권활동가들도 8월 20일에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파병 한국군의 통역을 도와준 이들의 난민 수용을 포함해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재건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 또한 요청했다. 그러나 해당 기자회견을 다룬 기사의 댓글을 보면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이다.

한국군을 도운 이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당연한 의무다. 한국군을 돕지 않았더라도 위기에 처한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마땅한 책임이다. 그런데도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국제사회에 인도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지 모색하는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이 문제를 책임 있게 다루지 않는 정치의 탓이 크다.

공언한 대로 탈레반 정부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자 한다면 20년 동안 활동해온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를 인정하고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현재까지 그 어떤 정부도 국가인권기구를 해체하거나 수장을 체포 또는 살해한 바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 탈레반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것들과 연동해 이들이 아프가니스탄 독립인권위원회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 정부를 포함한 우리 사회도 아프가니스탄 독립인권위원회에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이어가야 한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도 갖지 못한 국가인권기구를 20년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국가인권위원회를 지킬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것은 한국에게 부여된 피할 수 없는 책임이기도 하다. 9월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새 국가인권위원장도 이 문제에 신속히 입장을 내고, 정부에 필요한 권고를 해야 한다.

각주
1) “미군 탈레반 잡겠다며 멋대로 고문·가택침입”, 〈오마이뉴스〉 2004. 9. 15
2) https://www.un.org/internal- displacement-panel/content/ms-sima- samar
3) https://www.ndr.de/kultur/Afghanistans- Frauen-verdienen-ein-Leben-in- Wuerde,nineeleven1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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