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세계의 위드 테러리즘

[INTERNATIONAL3]

  지난 8월 2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 외곽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부상 당한 이들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출처: Democracy Now!]

1. 사건이 환기하는 테러리즘

최근 몇 가지 사건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먼저 8월 15일 탈레반이 20년 만에 미군과 나토군이 떠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입성하면서 정권을 되찾았다. 그리고 8월 26일에는 카불 국제공항 인근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170명 이상이 희생됐다. 이 테러는 IS 호라산의 소행으로 알려졌다. 10월 13일에는 노르웨이 남동부 지역의 인구 2만5000의 소도시 콩스베르크에서 화살 공격으로 5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덴마크 국적의 37세 남성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였다. 사건 발생 다음 날, 정보기관은 이슬람주의 테러 가능성을 언급했다. 잠정적으로 추정되는 범행의 동기는 2011년 노르웨이에서 77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브레이빅의 테러를 연상케 하며, 범행의 방법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0년)를 떠올리게 한다. 10월 15일에는 영국 보수당 하원의원이 지역구 주민과의 거리 모임 중 소말리아계 영국인에게 살해되는 사건도 있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했고,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범인이라고 발표했다.

각 사건은 해당 국가 고유의 맥락에서 발생했지만, 이슬람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되며, 연관된 현상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또 하나의 위험이 있다. 바로 이슬람 테러리즘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이는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떠올리게 한다. 둘 다 글로벌한 현상이며 여러 지역으로 확산하기 때문이다. 또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몰라 예방이 어렵고, 종식하기 어려운 점도 비슷하다. 이제 세계는 위드 코로나를 인정하듯 ‘위드 테러리즘’의 시대를 살고 있다.

2. 테러 확산에 대한 엇갈린 전망

많은 사람이 탈레반의 권력 장악에 우려를 표하지만, 한편에선 미군의 철수에 따른 변화를 이슬람주의자들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로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존재의의 중 하나로 외세에 대한 투쟁을 표방하는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이 사건이 승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이와 함께 탈레반의 정권 장악이 이슬람 테러리즘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디어는 대체로 테러리즘이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논조로 이야기한다. 광범위한 지역에 기반을 갖춘 탈레반에게 테러는 필수요소가 아니지만, 탈레반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알카에다의 향후 행보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미국과 나토 점령 시절보다 조직원 충원과 테러 준비 및 실행 등이 더욱 용이해질 것이다. 이번 카불 장악 후 탈레반이 수천 명의 수감자를 석방했는데 그중에는 알카에다 조직원도 상당수다. 이 역시 비관적인 전망의 근거로 꼽힌다.

반면 이러한 전망이 과도하다는 근거도 상당하다. 먼저 알카에다의 최근 행보를 보면 테러를 저지른 사례가 아주 적다. 반면 최근 카불 국제공항 테러를 저지른 IS에 대한 우려는 이보다 크다. 2020년 도하 협정을 통해 미군 철수의 대가로 이 지역의 테러를 근절한다는 약속이 있었음에도, 상황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다만 이들이 탈레반과 적대적인 관계라는 점에서 이후 활동에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 알카에다, IS 등 아프가니스탄에 기반을 둔 무장세력이 유럽이나 미국에 테러를 확산시킬 가능성에 대한 반론도 가능하다. 벨기에나 프랑스에서 테러를 준비하는 것이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시리아에서보다 훨씬 용이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탈레반의 권력 장악이 유럽이나 미국에 미칠 영향에 관한 전망은 과도한 우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인 해석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IS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아랍의 봄이라는 보편적인 성격의 정치변동이 그 자리를 대체했고 이제 테러리즘은 단발적인 사건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몇 개월 주기로 존재를 환기하는 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테러를 주된 활동방식으로 삼는 세력의 활동은 멈추지 않고, 이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참여 역시 여전하다. 테러리즘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강한 믿음이 형성되면 테러리즘 자체가 신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이 테러를 테러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신비주의적인 이념의 탄생은 세속적인 혁명이나 개혁의 실패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있다. 1848년 혁명의 실패나 제정 러시아의 개혁이 무정부주의와 테러리즘을 낳았던 것처럼, 아랍의 봄의 실패가 극단주의의 부활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다. IS의 사례가 이미 이 점을 입증한 바 있다. 한때 아랍의 봄의 결실을 이슬람 세력이 가져가는 듯했으나 이후 이슬람주의의 정치적인 길, 평화적인 길이 난관에 봉착했다. 다시 극단적인 노선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했고, 그것이 IS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3. 위드 테러리즘

이슬람 테러리즘은 무엇보다 아랍 세계의 현상이다. 아랍 세계는 아랍의 봄 이전까지만 해도 이슬람 세계에서,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적이고 억압적이며 부패한 면모를 보였다. 민주주의 제도를 통한 권력 장악이 어렵게 되자,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고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테러’라는 극적인 방식이 대두됐다. 하지만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리즘 노선의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이슬람 테러리즘의 중심인 아랍 세계의 어느 국가에서도 테러 세력이 정권을 잡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테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 20년간 이슬람 테러리즘이 확연히 약화했다고 볼 수도 없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 또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어느 곳에서도 사회의 현실은 확연히 나아지지 않았다. 그만큼 급진세력의 메시지와 행위 역시 그 효력이 유지되고 있다. 이슬람 테러리즘은 중동의 시민사회와 정치사회를 좌우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많은 나라에서 치안을 위협하는 중요한 현상이 됐기 때문에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될 것이다. 테러를 저지르는 이는 극소수이기 때문에 이슬람이나 무슬림을 테러리즘과 연계시키는 것 역시 지양해야 한다. 다만, 이 극소수의 행위는 무기나 은신처 등을 제공하는 후원자들과, 더 나아가 소극적으로 테러 행위를 지지하는 광범위한 집단과 함께 존재한다.

  이슬람국가(IS) [출처: 로어매그]

4. 테러리즘의 행위자들

테러리즘의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이슬람 테러리즘을 대표하는 조직이나 지역의 현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9·11테러 이후엔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시리아 내전 이후에는 IS가 이슬람 테러리즘을 대표하는 조직이었다. 여기에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보코하람이라는 존재가 테러리즘이 중동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세계 어느 지역에나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은 1980년대 말 대소항쟁과 1990년대 초 아프가니스탄 내부의 주도권 싸움을 거치며 성장한 조직이다. 반면 IS는 그보다 훨씬 뒤인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알카에다가 건설한 조직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07년 미군 진주 이후 수년간 자취를 감추었던 IS는 2011년경부터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우선 탈레반의 관심은 아프가니스탄에 국한돼 있다. 탈레반의 극단주의는 자국 내부에서 이슬람법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집권 당시 특히 여성에 대해 극단적인 정책을 펴 위반자에 대해 공개처형, 매질, 사지 절단 등의 처벌을 가했다. 탈레반 재집권 후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엑소더스가 나타난 것은 이러한 전례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반면 알카에다나 IS는 글로벌한 차원의 야심이 있다. 알카에다의 퍼포먼스 공간은 중동이라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가 아닌 아프가니스탄, 보스니아, 체첸, 카슈미르 등 주변부였다. 중동에서 세력을 유지하는 경우는 오랜 내전으로 피폐해진 예멘 정도다. IS는 알카에다보다 더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 왔다. 2014~2017년 시리아와 이라크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으나 이후 세력을 잃게 된다. 시리아의 마지막 근거지를 빼앗긴 뒤에는 2019년 3월 칼리파가 실패를 선언하게 되고, 그해 10월에는 조직의 일인자 알 바그다디가 사망한다. 그러나 완전히 해체된 것은 아니며 지하활동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슬람 급진주의의 새로운 시장은 바로 사헬(Sahel) 지역이다. 이곳은 사하라 사막 남부를 동서로 잇는 띠 모양의 지대다. 세네갈, 모리타니,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나이지리아, 차드, 수단의 일부 지역에 걸쳐있다. 이 지역은 사막화 진행에 따른 극심한 기아 현상을 겪어왔다.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배경으로 종족갈등 같은 사회갈등이 심화했고 이슬람주의는 이를 활용하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폭력성의 정도가 사회문제 정도에 비례하듯, 이 지역의 이슬람주의는 강한 폭력성을 띠고 있다. 테러리즘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유럽 역시 지금은 이슬람이 테러리즘의 중심에 있다. 정확히 얘기하면 1990년대 이후 대부분의 테러리즘은 무슬림이었거나 무슬림으로 개종한 이주민 또는 이주 배경 청년에 의한 것이었다. 중동 등 이슬람 사회와 다른 것은 보다 개인적인 차원의 행위라는 점이다. 테러가 발생했을 때 다소 성급하게 언급되는 ‘외로운 늑대’라는 표현이 의식적으로 이러한 평가로 이끄는 측면도 있다.

5. 또 하나의 테러리즘

우리는 이슬람 세계의 테러리즘을 이슬람과 연관 지어 해석하는 데 익숙하다. 이때 성전을 의미하는 지하드, 칼리프제 복원, 이슬람법(샤리아)의 실현, 이슬람을 탄압하는 기독교 서구에 대한 응징 같은 설명이 등장한다. 이와 달리 이슬람 테러리즘을 러시아에서 번성했던 아나키즘으로의 회귀로도 평가할 수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가진 이슬람공동체의 복원이라는 이상은 러시아 인민주의의 전통적인 농촌공동체의 이상화를 떠올리게 한다. 러시아 무정부주의자들은 언어를 통한 설득보다 행위를 통한 메시지 전달을 중시했다. 이러한 태도는 이슬람 테러리즘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무정부주의의 테러가 인쇄 매체를 통해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듯이 이슬람 테러리즘에서도 영상매체가 필수적인 수단으로 기능한다. 자살폭탄테러에 나서기 직전 결의에 찬 모습을 영상에 담는 등 인터넷을 통한 홍보가 이슬람 테러리즘의 필수요소가 됐다. 이슬람 테러리즘이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맞선 레지스탕스의 레토릭을 계승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하마스라는 명칭은 이슬람 레지스탕스를 의미하며 헤브볼라의 깃발에는 ‘레바논의 이슬람 레지스탕스’라고 표기돼 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독일군에 점령된 지역을 되찾으려 했듯이 알카에다 역시 미군이 주둔해 있는 이슬람 성지의 ‘회복’을 목표로 제시했다. 시아파만이 아니라 수니파의 테러리즘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메시아주의는 서구에 기원을 둔 유토피아적 종교운동의 일부이다.

6. 윤리적인 접근을 넘어서

어떤 폭력 사건을 테러 행위로 간주하는 순간, 국제사회와 명망가들은 반인륜적인 행위를 비난하는 논평을 쏟아낸다. 미디어로 이 소식을 접한 대중은 내 일처럼 분개하고, 초법적이고도 예외적인 대응을 촉구한다. 테러와 이슬람 급진주의는 동기부터 행위에 이르기까지 비합리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 현상을 대하는 외부세계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이성보다 분노, 경멸, 공포 등 감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경우에는 더욱더 심하다. 예를 들어 테러 경험이 많은 유럽인들이 이성적으로 이 현상을 바라보기는 쉽지 않다. 이로 인해 테러리즘이나 이슬람 급진주의에 대한 논의 수준은 과학적인 면보다 윤리적인 면이 앞서게 된다.

테러리즘을 대하는 자세는 분개와 경멸보다는 치명적인 피해와 사회적 해악을 막아야 한다는 결의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힘으로 억누르기는 어렵다. 테러리즘, 종교적인 극단주의라서 더욱더 그렇다. 비합리적인 행위에 비합리적인 태도로 대응해서는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극단의 시대에 환상을 가지지는 말아야 한다. 오래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비관주의에서 얘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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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어떤 폭력 사건을 테러 행위로 간주하는 순간, 국제사회와 명망가들은 반인륜적인 행위를 비난하는 논평을 쏟아낸다. 미디어로 이 소식을 접한 대중은 내 일처럼 분개하고, 초법적이고도 예외적인 대응을 촉구한다. 테러와 이슬람 급진주의는 동기부터 행위에 이르기까지 비합리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 현상을 대하는 외부세계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이성보다 분노, 경멸, 공포 등 감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경우에는 더욱더 심하다. 예를 들어 테러 경험이 많은 유럽인들이 이성적으로 이 현상을 바라보기는 쉽지 않다. 이로 인해 테러리즘이나 이슬람 급진주의에 대한 논의 수준은 과학적인 면보다 윤리적인 면이 앞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