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택시노동자, “극우 무도회 손님은 못태웁니다”

극우 정당이 주최하는 무도회 반대 승차거부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는 택시 노동자들이 나서서 극우 정당의 행사에 보이콧을 선언하며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오는 30일 빈 대통령궁 호프부르크에서는 ‘아카데미커 발’이라는 수천 명 규모의 무도회가 개최된다. 오스트리아에서 매년 900여 회의 무도회가 진행되지만, 극우 자유당(FPO)이 2012년부터 4년째 이 무도회를 주관하면서 논란을 낳아 왔다. 특히 올해는 택시 기사들이 이 무도회 손님은 태울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쟁이 더욱 열띠다.

  수천 명이 오스트리아 대통령궁 앞에서 극우 정당이 주최하는 무도회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택시노동자들의 대변인 카이반 아미리 씨는 “몇 해 전부터 이미 승차를 거부해 왔지만, 이제 우리 모든 동료가 이 운동에 나설 것”이라며 “아무도 (이 무도회와 관련하여) 누구를 태우고 어디로 가라고 말할 수 없다”고 독일 좌파언론 <정글월드>에 29일 밝혔다. “민주주의 사회, 특히 대통령궁에서 이런 무도회가 진행될 수는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두 해 전 국회에 극우 자유당이 3위로 부상할 만큼 보수화된 오스트리아 사회에서 택시노동자들이 무도회 거부 선언을 하자 여론은 곧 뜨겁게 반응했다. 승차거부를 선언한 노동자 다수가 이주민이어서 승차 거부선언은 더욱 주목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90년대 이란, 이라크, 쿠르드 또는 터키에서 빈으로 이주해왔다.

빈 지역의 한 신문은 “아카데미커 발: 이제 빈 택시기사들이 싸운다”고 전면을 털어 보도했다. 택시 기사들이 페이스북에 승차거부를 선언하자 5일 만에 1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다. 우익 라디오 방송인 FM4는 젊은 시청자들에게 택시 기사들의 극우 승차거부가 카페에서 키스하는 동성애자를 내쫓는 것, 디스코텍에 들어가는 흑인을 ‘뺀찌’ 놓는 것과 다른 점이 뭐냐고 선동하고 있다. 자유당(FPO)은 승차거부를 한 택시기사들에게 소송을 하겠다며 펄쩍 뛰고 있다. 이들은 “21세기 파시스트는 좌파에 의해, 단지 좌파에 의해서만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역공을 편다.

지난 3년 동안 수천 명 규모의 시위를 벌이는 등 이 무도회에 반대해왔던 오스트리아 좌파 진영은 택시기사들이 승차 거부 입장을 밝히자 크게 환영하고 있다. 그 사이 이 무도회 방문객은 3,000명에서 700명으로 줄었다. 무도회에 참가하려면 택시를 통해서만 올 수 있지만, 이제는 택시기사들마저 승차를 거부해 오는 길이 더욱 어렵게 됐다.

파시스트 반대는 문화적 정체성이 아닌 정치적 문제

해마다 이 시위에 참가해왔던 나치정권의 생존자 도라 시만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주년이 지난 후에도 극우가 대통령궁에서 그러한 반민주적인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사회가 공화국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빈 경찰은 올해 복면을 금지하지 않을 것이며, 경찰도 헬멧을 쓰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을 잠재우려 한다. 하지만 다시 경찰 2,500명을 투입할 계획이어서 충돌은 계속될 전망이다.

택시노동자들의 승차 거부를 제안해왔던 아미리 씨는 이제 오스트리아 좌파운동의 새로운 상징이 됐다. 그는 <정글월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에서 나는 공산주의자로서 공개적으로 행동할 수 없었지만, 여기는 민주국가다”라면서 “파시스트에 반대하는 것은 문화적 배경이나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입장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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