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반정부세력의 공세와 좌파의 분열

라틴아메리카 핑크타이드는 위기 아닌 조정국면

에콰도르의 ‘시민혁명’을 이끌고 있는 라파엘 코레아 정부가 최근 반정부 기득권 세력에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8월 12일 친정부 시위대는 수도 키토에서 대통령궁까지 행진했다. 다음 날인 8월 13일 반정부 시위는 폭력사태로 번져 민간인 20명과 기자 3명, 경찰 86명이 부상당했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상속세에 반대하는 반정부 우파의 시위는 베네수엘라 우파의 살리르(퇴진) 전략과 과림바(바리케이드) 전술을 모방해 정부 전복 시도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지난 7월 14일 과야킬 시에서 라파엘 코레아의 조국동맹(Allianza Pais) 당사가 폭탄 공격을 받았고, 정부소유 <엘 텔레그라포>지와 민간 <엘 우니베르살>지 본사에 폭탄 소포가 배달됐다.

‘가족의 가치’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이와 같은 격렬한 저항을 벌이는 반정부 세력은 라파엘 코레아의 시민혁명과 21세기 사회주의를 저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반정부 투쟁은 과야킬 우파시장인 하이메 네보트와 우파 대선 후보였던 기예르모 라소가 이끌고 있다. 이들이 8월 13일의 ‘전국민파업’을 주도했고, 여기에 우파 정당과 경제인 단체, 일부 노동조합과 원주민 단체들이 결합했다.

정치적 배경-코레아의 시민혁명까지

2006년 코레라의 집권 이전 에콰도르는 정치경제적 불안에 시달렸다. 1999~2000년 은행위기로 경제가 쇠퇴하고 빈곤이 증가했다. IMF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달러를 자국 화폐로 채택한 신자유주의 조치는 대중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경제위기와 민중의 저항으로 세 번이나 정권이 붕괴했다. 아바달라 부크람 대통령이 1997년 부패 혐의로 사퇴했고, 후임 하밀 아우아드 역시 2000년 진보적 군부의 압력과 원주민 민중봉기로 사퇴했다. 2000년 봉기를 주도했던 루시오 구티에레스는 2002년 대선에서 원주민 운동의 지지로 승리했지만, 신자유주의로 선회했다가 2005년 역시 민중저항에 부딪혀 축출당했다. 당시 구티에레스는 민중운동을 주도한 원주민운동 단체인 CONAIE의 지지로 당선돼 에콰도르의 차베스라고 불렸지만, 신자유주의에 굴복하고 부패에 연루되면서 불명예 퇴진해야만 했다.

구티에레스를 대신한 부통령 알프레도 팔라시오 정부에서 재무장관이었던 라파엘 코레아가 대중적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는 진보적 경제학자로 2005년 재무장관으로서 의료 및 교육예산 인상, 정부채권 이자 인하 조치 등 반신유주의 정책기조로 IMF, 세계은행과 대립했고, 세계은행이 에콰도르에 대한 차관을 취소하자 사임했다. 이후 혼란스런 정국에서 라파엘 코레아는 가장 신뢰할만한 정치인으로 부상했고, 2006년 대선에서 신자유주의 종식과 제헌의회 소집을 통한 새로운 진보적 헌법 제정을 약속하면서 승리했다.

코레아의 시민혁명과 민중운동의 분열

라파엘 코레아는 2006년 집권 이후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정권 대열에 합류했고, 2007년 제헌의회 소집, 2008년 헌법 국민투표 통과 등 정치개혁을 추진했다. 2009년 새 헌법 아래 열린 대선에서 52% 득표로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시민혁명의 정치적 기초를 마련했다. 그리고 2013년 대선에서도 56%의 압도적 득표로 승리하면서 21세기 사회주의를 향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에콰도르의 이런 사회적 변혁은 끊임없이 과두세력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부에 맞서 주요한 민중운동과 좌파 조직들이 투쟁하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되면서 혼란을 낳고 있다.

역사적으로 원주민운동 연합체인 코나이에와 에콰도르 맑스레닌주의 공산당(PCMLE)은 하밀 마우아드 정부(2000년)와 구티에레스 정권(2005년)을 퇴진시킨 반신자유주의적 민중봉기의 주역이었다. 또 2006년 대선에서 코레아를 당선시킨 광범한 좌파연대에 참여했다.

당시 라파엘 코레아는 조국연합(Allianza Pais) 정당을 결성하는 한편, 코나이에의 선거정당 파차쿠티크(Pachakutik), 공산당의 선거전선 인민민주운동(MPD)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다. 그러나 파차쿠티크는 코레아의 부통령 제안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루이스 마카스 후보를 대통령으로, 코레아를 부통령을 하는 연합을 역제안해 협상이 결렬됐다. 파차쿠티크와 MPD는 독자 후보를 냈지만, 패배한 다음 결선투표에서 코레아를 지지했다.

이런 분열과 앙금은 2009년 코레아 정부가 제시한 교육개혁 문제에서 다시 불거졌다. 2009년 4월 대선에서 52%의 득표로 승리한 코레아는 공교육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이 조치는 무능력 교사를 퇴출하고 공적 기금 회계를 개선하려는 것이었지만, MPD/PCMLE 계열의 교사노조(UNE)와 학생회연합(FEUE)의 반대에 부딪혔다.

개혁반대파는 코레아의 개혁은 교육을 재편해 “자본에 봉사”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한 반면, 개혁 지지자들은 교육계 내부에 자질 없는 교사들이 많고 공적 자금이 UNE를 통해 MPD로 흘러들어갔다고 비난했다. 한 퇴직교사는 MPD 소속의 친구들은 졸업장이 없어도 직업을 유지하지만, 자신은 전문가임에도 대체교사직 밖에 얻지 못해 일자리를 구하러 스페인으로 떠나야만 한다고 말했다. 결국 교육개혁안은 통과됐고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파차쿠티크와 MPD는 코레아 정부에 대한 반대를 더욱 강화했다.

2010년 9월 30일 경찰과 일부 군대가 합세해 급여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에 들어가 폭력사태로 치달았다. 경찰은 코레아가 수도 키토의 군부대에 나타나자 코레아를 공격했고, 고속도로와 공항을 봉쇄하고 국회까지 점령했다. MPD 지도자인 루이스 비야시스는 의회 밖 경찰과 합세해 반란을 일으킨 경찰들에게 맑스-레닌주의 세력이 그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경찰은 민중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경찰병원으로 피신했다가 구출될 때까지 8명이 사망하고 174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PCMLE/MPD와 파차쿠티크는 경찰봉기를 지지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파차쿠티크의 전 의원인 클레버 히메네스는 코레아가 사건을 지휘한 학살의 지도자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2010년 9월 사태가 에콰도르 좌파들 간의 관계에서 전환점이 됐다. 이후 파차쿠티크와 MLD/PCMLE는 우파와 긴밀하게 협력했다. 2013년 대선 직전 은행가 출신의 전 재무장관 기예르모 라소는 코나이에/파차쿠티크의 지도자 아이키 티누아냐를 러닝 메이트롤 지명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원주민 단체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선거 기간 동안 더 심한 일도 벌어졌다. 코나이에, 파차쿠티크, MPD 등은 다문화 좌파연합이란 연대체를 통해 제헌의회 의장이었던 알베르토 이코스타를 독자후보로 내세웠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하게 3.26% 득표에 머물렀고. 국회의석은 9석에서 5석으로 줄었다. 반면 코레아의 집권 조국연합은 국회 의석의 74%를 차지했다.

좌파의 분열과 시민혁명의 미래

연이은 패배 이후에도 이들 반정부 좌파는 코레아 정부에 대한 종파적 비난을 멈추지 않고, 정부의 제안과 프로젝트에 사사건건 반대했다. 정부가 야수니 지역의 석유에서 1%를 수용하겠다고 제안하자 이에 반대했고, 물과 노동법 개정에도 반대했다. 물을 사유화할 수 없는 공공의 권리라고 선언하고 가내 노동자와 비공식 노동자를 포함한 수백명의 노동자들을 사회보장제도에 통합하려는 내용이었음에도, 이 좌파들은 정부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점점 에콰도르 과두제 우파의 입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반면 농민 원주민 흑인단체 전국연합(FENOCIN)과 같은 다른 원주민 운동단체는 코나이의 분열전략을 비판하면서 코레아와 시민혁명을 지지하고 있다. 주요한 좌파조직과 민중운동이 새로운 사회변혁 과정에서 종파주의의 덫에 갇힌 것은 에콰도르만의 사례는 아니다. 현재 전체적으로 반동적 우파의 폭력선동은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고 있고, 현재의 혼란과 폭력사태는 오히려 시민혁명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 차베스 사망 이후 라틴 아메리카 좌파정권의 위기를 진단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이나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정권 아래서 벌어지는 연이은 폭력사태,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정부와 사회-민중운동 간의 갈등이 주요 현상으로 지목되지만, 상황은 복잡하다. 우파의 폭력선동은 대중적 지지를 결여하고 있고, 민중운동이나 사회운동의 지형도 단순하지도 단일하지도 않다. 그리고 오히려 온건좌파로 분류되는 브라질의 질마 후세피 정권이나 칠레 미첼레 바첼레트 정부가 반정부 우익의 공세와 부패문제로 홍역을 겪고 있다.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의 핑크타이드는 위기보다는 조정국면을 거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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