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돼지의 논란

[칼럼] 9조, 누구를 구조 하나?

최근 경제 위기가 확산하자 정부는 코로나 극복 추경 11.7조 원을 마련하고 여기에 9.1조 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마련해 하위 70% 가구당 100만 원씩 지원한다고 밝혔다. 또한 코로나 19로 인한 자금 애로 해소와 금융시장의 확고한 안정 유지를 위해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100조 원 규모로 확대한다고 한다.

[출처: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지금 논란이 되는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해 경기도 등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편성했다며 지방정부 부담액을 대지 않겠다며 논란을 키웠다. 지급기준 70%가 논란이 되자 민주당은 여기에 3~4조 원을 증액하면 전 국민 지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도 1인당 50만 원 지급을 위한 25조 원가량의 재원을 대통령 재정 긴급명령권 발동으로 마련할 것을 요구하면서 선거시기와 맞물려 포퓰리즘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치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한 푼이라도 더 주려는 것처럼 여야가 난리이고 다른 쪽에서는 국가부채를 걱정하며 포퓰리즘에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이 지원금의 성격은 정부 지원 정책 전체를 놓고 봐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100조는 정책금융기관의 선제적 기업자금 공급에 58.3조 원, 회사채 및 단기자금 시장 안정화 지원에 31.1조 원, 주식시장 수요기반 확충에 10.7조 원을 쓰겠다는 계획이다. 이 100조 원에 대기업과 관련된 지원은 총 69.7조 원으로 전체 기업지원의 2/3가 넘는다. 물론 정부는 제출된 문서에서 ‘중견기업(필요시 대기업 포함)’이라는 꼼수를 부렸고, 대기업 지원에는 많은 제한을 두겠다는 립서비스까지 남겼다. 하지만 최근 두산중공업에 만기 채권의 대출 전환과 직접 지원 등 총 1조 6천억 원을 지원했다. 대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앞서 밝혔던 일반적인 지원을 뛰어넘는 특별한 지원도 고려하게 된다.

게다가 정부가 말하는 대기업 지원의 제한조건은 대기업의 자구노력이다. 금융위원회는 항공업계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자구노력’을 전제로 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정부 돈 받기 전에 먼저 시장에서 돈 끌어오기 위한 노력을 하라는 얘기다.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시장에서 자금 조달을 위한 노력은 바로 인력 구조조정이고 해고다. 시장은 인력 구조조정이 전제가 안 되면 자금을 빌려주지 않는다. 이스타 항공은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수습 부기장 80명과 3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했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협력업체부터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가 점차 확산하고 있다. 결국 노동자의 희생을 조건으로 기업 즉, 대주주에게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부실 위험에 빠진 회사채를 포함해서 말이다.

한국은행은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로 다른 어떤 것에 우선해서 회사채 시장에 개입했다. 지난 2일에는 5.25조 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했고, 전액공급방식의 RP매입 제도를 도입해 사실상 양적완화에 나섰다. 한국은행의 이런 조치들은 회사채를 무제한 매입해 회사채 부실을 막겠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원래 시중은행만을 상대해야 하지만 상황이 엄중하다는 이유로 5개 증권사가 한국은행의 자산 매입대상에 들어왔다. 이번에 새로 11개 증권사를 더 추가했다. 대부분 재벌기업 계열의 민간 증권사를 은행 수준으로 대우해 부실을 막아주겠다는 의도다.

이제 정부 지원 정책의 큰 그림이 그려지는가? 긴급재난지원금 9.1조,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1.16조 등 대략 11조 원으로 정리하고, 나머지는 부실이 커지는 회사채 시장을 살리고 주로 대기업을 지원하겠다는 방안이다. 그러므로 긴급재난지원금과 이 돈을 둘러싼 논란은 정부 지원의 성격을 가리고 은폐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이 돈을 둘러싼 논란의 부추김은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고 그렇게 하라고 부추긴 셈이며, 정작 대마불사의 금강불괴를 타고난 재벌들은 이 논란을 이용해 부실 위험을 털고 그보다 10배, 100배나 되는 돈을 챙기려 하고 있다.

또한, 긴급재난지원금을 포함해 추경 얼마 더 했다고 이걸 도덕적 해이라고 문제 삼거나, 국가부채 비율을 높여 통화가치의 불안정성을 높인다는 데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정부 재정지출을 늘리면 정부 부채가 늘어나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등, 마치 국가부채가 원화의 안정성을 해치는 것처럼 우려하지만 우리나라 GDP 1931조 원(2019년도)에 비해 9조 원은 0.5%도 안 된다. 국가부채율 0.5% 늘어나는 것 때문에 그런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가? 지금 주요국들은 대부분 GDP의 10%에서 많게는 17%까지 경기부양책으로 내놓고 있다.

만약 정말로 국가부채율 증가로 통화가치 불안정이 우려됐다면, 한국은행이 부실 덩어리 회사채까지 매입대상으로 놓아 리저브(중앙은행 준비자산)에 지극히 불안정한 자산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지금은 RP 형태라 일시적이지만 위기가 심화하면 증권사가 다시 되살 수도 없기 때문에 회사채는 리저브로 쌓인다) GDP 0.5% 늘어나는 게 문제냐, 원화의 리저브 구성이 불안정해지는 게 문제냐? 현재 국면에서 진정 통화가치의 안전성을 걱정했다면 국가부채보다 한국은행이 회사채 무제한 매입에 나선 것에 더 우려했어야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왜? 회사채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도 대마불사다.

이런 주장 자체도 잘못됐지만 이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러면 금융시장 살리자고 국민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괜찮다는 말인가? 국민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너희는 국민들보다 금융시장에 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귀한가 보구나! 지금의 국가권력과 중앙은행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지 바로 지금 그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재난지원금으로 90조 원을 푼다고 하더라도 금융시장에서 부실 채권을 보증하고 부도난 채권을 막아주는 비용과 재벌 대기업에 사실상 그냥 준 돈보다도 적다. 이제까지 공적자금으로 지원된 돈은 168조 원에 달하고 그중 아직도 52.6조 원은 회수가 안 됐고, 30조 원 이상은 회수 못 할 자금으로 분류된다. 게다가 자금을 회수하면서 이자나 배당금 등 투자수익을 회수 원금에 포함해 이자 등을 뺀 원금 회수 액은 훨씬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공적자금 대부분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1년까지 나간 돈이 대부분이라 외환위기 당시 부실 금융기관의 채권을 사는데 돈이 나갔고 다시 재벌기업으로 빠져나갔다. 길게는 20년 넘게 사실상 그냥 가져다 쓴 돈이다. 국민들이 생계비로 9조 원 쓰는 것이 그렇게 국가부채에 부담을 주고 도덕적 해이라는 말인가?

상황이 이런데도 9조를 가지고 많네 작네, 70% 이상은 되네 안되네 하고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심상이다. 이 돈의 규모와 성격을 따지기에 앞서, 지원 규모조차 무제한이라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재벌 증권사 금융시장, 대기업 지원 비용에 대해 먼저 따져 물어야 한다. 경제 위기의 유발자이자 이제까지 고위험-고수익 채권으로 이익을 봐온 이들에게 무제한으로 지원해주는 꼴이란, 지역사회전염을 몰고 온 신천지에 코로나 확산으로 자금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며 돈을 무제한 지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9조 원은 바로 이들을 구조하기 위한 개밥일 뿐이다. 이것이 논란이 될수록 금융시장 지원은 당연시되고 재벌에 대한 특혜 지원도 눈감아 줄 수 있는 문제가 된다. 지금은 개밥에 현혹되기보다는 개밥을 던진 사기꾼과 개밥 뒤에 숨은 도둑놈을 가려 잡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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