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 시장 솔루션의 한계

[코로나19 특별기획]지식재산권을 통한 시장 독점과 백신의 진부화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12차 각료회의(MC-12)는 팬데믹과 식량 위기 대응 등 세 개의 각료 선언과 여섯 개의 각료 결정을 포함하는 제네바 패키지를 도출했다. 특히 코로나19 백신 특허를 기존 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TRIPs)에 비해 완화된 요건으로 강제실시 할 수 있도록 했다.


TRIPs 제31조는 특허의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e)을 규정하고 있다. WTO 회원국은 특허권자의 사용 허락 없이도 특허 물품의 자국 내 판매를 허용하는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에는 엄격한 조건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국가비상사태나 긴급한 상황에서, 특허권자와 합리적인 조건으로 실시계약을 체결하려는 노력이 무산된 경우에 한한다. 이와 함께 국내법에 강제실시권을 규정해야 하고, 강제실시를 하더라도 특허권자에게 적절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강제실시권 규정에도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강제실시를 할 수 없다. 특허 이외에 공개되지 않은 제조 노하우 등을 알지 못하면 백신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특허 강제실시만으로는 백신 생산이 불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강제실시를 선언하면 초국적 제약자본이 백신 공급을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했다. 이 때문에 TRIPs 조항에도 강제실시를 선언한 곳은 한 곳도 없다. 결국 화이자, 모더나 등 주요 코로나19 백신은 초국적 제약자본이 독점 생산했고, (공개되지 않았지만) 높은 가격에 팔려 선진국 중심으로 백신 보급과 접종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백신을 적절히 공급받지 못한 개발도상국과 저소득국의 상황은 나날이 악화했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00여 개 국가는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모든 나라의 코로나19 백신, 치료제, 진단기기 등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재산권협정(TRIPs) 면제를 요청했다. TRIPs가 면제되면 특허를 포함한 저작권, 영업 비밀 등의 지식재산권이 공개될 수 있고 백신 생산능력이 있는 개발도상국에서는 즉시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2년 반의 논란 끝에, WTO 각료회의는 코로나19 백신에 한해서만 TRIPs의 특허 강제실시 요건을 일부 완화했다. 이에 따라 국내 강제실시 근거법이 없어도 5년간은 행정부나 법원 명령 등으로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강제실시 발동 전에 특허권자로부터 실시 허락을 받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강제실시를 하더라도 TRIPs에 따라 특허권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다만 모든 회원국이나 개발도상국에 완화된 조치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할 능력이 없는(!) 개발도상국만 해당하는 조치다.

실효성 1도 없는, 백신 특허 강제실시 완화

합의 내용만 놓고 보면, 개발도상국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 코로나19 백신 강제실시가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강제실시 완화 조치는 아무 실효성이 없다. 앞서 TRIPs 31조에 따른 강제실시가 불가능한 이유도 완전한 백신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괄적인 TRIPs 면제가 아니라 형식적인 조치 일부만 완화되었기 때문에 강제실시의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공개된 특허 기술뿐 아니라, 공개되지 않은 제조 노하우나 영업비밀인 핵심기술 등을 알아야 백신 원료생산이 가능하다. 공개된 특허 기술 정보만으로는 오랜 시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특히 매일 확진자가 폭증하고 사망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백신의 빠른 생산과 보급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백신 특허뿐 아니라 노하우 등 공개도 핵심적인 문제였다.

일례로 모더나 백신을 위탁생산하는 계약(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완제의약품(Drug Product)과 원료의약품(Drug Substance) 위탁 생산방식이다. 완제의약품 생산(DP)은 삼성바이오와 모더나가 맺은 방식으로, 이미 생산된 백신 원액을 희석해서 병에 주입해 밀봉하는 것만 담당한다. 이 방식도 인체 투입 전 최종 단계이므로 무균처치 등에 대한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공정이다. 하지만 백신의 원료를 생산하는 공정은 아니다.

원료의약품(DS) 생산은 mRNA를 제조하는 기술과 mRNA를 세포까지 안전하게 전달하는 지질나노입자(LNP)관련 기술까지 이전받아야 가능하다. 현재 모더나 백신의 DS공정은 세계 바이오 위탁생산 1위 업체인 스위스 론자(LONZA)가 유일하다. 만약 한국이 코로나19 백신 강제실시를 하더라도 삼성바이오에서 모더나 백신을 당장 생산할 수가 없다. DS공정 기술과 공개된 mRNA 특허만으로는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스위스가 강제실시를 한다면 론자에서 모더나 백신의 생산이 즉시 가능하다.

하지만 백신 생산 능력이 있는 개발도상국을 이 완화 조치에서 제외해 강제실시에 따른 백신 생산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봉쇄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미국의 영향도 컸다. 미국은 2021년 초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고 그해 5월 코로나19 백신의 특허 면제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이 우려되기 때문에 중국은 특허면제 대상국에서 빠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각료회의 협상에서도 미국은 중국 배제를 분명히 했고, 결국 합의문에 “코로나19 백신 제조 능력이 있는 개발도상국은 이 협정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구속력 있는 약속을 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애초 백신 생산 능력이 없는 국가는 강제실시 완화를 적용해도 생산 기술이 없기 때문에 강제실시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국가들은 강제실시로 백신을 생산한 다른 국가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혹은, 무상으로 백신을 공급 받아야 한다. 그런데, 백신 생산 능력이 있는 (개발도상) 국가는 이번 강제실시 완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백신을 생산할 수가 없다. 또한 생산 능력이 있어 특허 강제실시를 하더라도 노하우 등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안에 백신을 생산할 수도 없다. 결국 지금의 강제실시 형태로는 백신을 적절히 생산할 수도, 공급받을 수도 없다.

국경없는의사회는 WTO 각료회의 선언문 공개 직후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이 협정은 모든 필수 코로나19 의료 도구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를 적용하지 않고, 모든 국가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팬데믹 기간 필요한 의료 도구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번 결정의 조치들은 의약품 독점을 해결하거나 생명을 구하는 의료 도구에 대한 저렴한 접근을 보장하지 않으며, 향후 세계 보건 위기와 전염병에 대한 부정적인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백신 불평등, 제약자본 독점 생산의 모순

영국과 스위스, 유럽연합(EU) 등 백신 특허를 가진 제약자본의 모국에서는 지식재산권 면제가 혁신을 저해하고 백신 개발과 보급을 늦출 뿐이라며 이를 반대해 왔다. 이들은 아프리카 지역의 낮은 백신 접종률이 백신 특허 문제라기보다 해당 국가의 취약한 의료체계, 냉장 보관과 운송 등 시설 부족, 백신 접종 기피 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저소득국의 취약한 의료현실이 백신 보급을 어렵게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코로나19를 종식하기 위한 백신 등 적절한 의료도구의 생산과 공급 문제다. 초국적 제약자본이 백신 생산을 독점하며 불평등이 발생하고, 전 세계 인류가 백신과 치료제, 검사기기 등을 제대로 제공 받지 못하기 때문에 팬데믹이 종식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초국적 제약자본의 백신 생산 독점의 근거가 지식재산권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면제를 요구한 것이다.

한편, 이들이 지식재산권 면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코로나19 종식이나 이를 위한 백신 불평등 해소가 목적이 아니다. 오직 초국적 제약자본의 독점적 생산을 유지할 목적으로 시선 돌리기를 위해 아프리카 지역의 취약한 의료현실 등을 인용한 것이다. 이는 백신 생산능력이 있는 개발도상국을 강제실시 완화에서 배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백신 제조 가능 국가에서 강제실시로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훨씬 더 많은 양의 백신이 빠르게 보급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WTO와 백신 특허 보유국들은 이 기회를 차단했다.

백신 생산의 독점 해소로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팬데믹 종식이나 엔데믹으로의 전환은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백신 불평등과 생산 독점은 코로나19 해법에 대한 빈국과 부국 사이의 국제적 대립 문제이자, 국내적으로는 독점적 생산수단에 대한 빈자와 부자 사이의 계급 문제인 셈이다.

선진국 국민이라도 모두가 평등하게 백신을 맞고 치료받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인종, 소득, 직종, 성, 연령, 지역 등에 따라 확진자는 차별적으로 발생했고, 사망률도 모두 달랐다. 백신과 치료 도구에 대한 보편적 접근이 어렵고, 백신 접종 비용 등이 개인 부담으로 전가될수록 의료 불평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초국적 제약자본의 독점 생산을 막기 위한 포괄적 지식재산권 면제는 국제적인 백신 불평등을 해소할 수단일 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백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다.

공급과잉과 백신의 진부화

독점과 시장 기반 코로나19 대응(시장 솔루션)은 백신 불평등을 확대할 뿐 아니라 문제를 증폭시켰다. 세계적으로 평등하고 적절한 백신 접종과 치료가 이뤄지지 못해, 특정 지역에서 확진자가 폭증했다. 열악한 보건 환경과 결합해 델타, 오미크론 등 신종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 기존 백신을 무력화하고 백신의 진부화(obsolescence)를 촉진했다.

기존 백신을 회피하는 변이 발생과 함께 확진자 폭증이 사이클처럼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신종 변이가 유행할수록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백신 개발이 필요했고, 백신은 1차에서 2차, 3차, 4차 부스터 샷까지 접종해야 할 지경에 도달했다. 이대로라면 3~4개월마다 백신을 계속 맞아야 하고 그럼에도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언제 엔데믹으로 접어들지 알 수가 없다.

한편, 코로나19 펜데믹이 2년 반을 넘어가면서 세계 시장의 백신 공급과 공급능력도 증가했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방식의 백신이 개발되고 공급도 증가했다. 그러나 변이 발생과 반복되는 위기 속에서 백신의 진부화와 함께 기존 수요가 감소하면서 백신은 공급과잉 상태가 됐다. 황당한 것은 이런 과잉 공급 상황에서도 아프리카 등 저소득국의 백신 접종률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공급과잉에서도 여전히 백신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22년 7월 23일 현재 전 세계에서 121억 회 이상의 코로나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 세계 접종률(1회 이상)은 62% 수준이다. 그런데 아프리카 에리트레아는 접종 횟수도 0이고 접종률도 0%다. 부룬디의 접종률은 0.12%, 콩고는 2%, 마다가스카르는 4%, 카메룬은 4%, 세네갈은 6%다. 아프리카 지역의 평균 접종률은 19%에 불과하다. 아프리카 12억 인구 중에서 아직도 9억 명 이상이 백신 접종을 단 한 차례도 못 했다.

과잉 공급 상황에서도 백신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는 냉동 보관 및 운송 등 시설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백신의 독점 생산 때문이다. 백신이 남아돌아도 저소득국은 일정한 특허료를 지불하고 백신을 들여올 경제적 여지가 없다. 무상으로 공급되더라도 백신의 빠른 진부화와 짧은 유통기한 때문에 시기에 맞춰 접종하지 못한다. 백신 무상 공급 계획인 COVAX를 통해 아프리카에 지원되는 백신들은 입도선매 방식의 공급계약 (선진국의 사전 싹쓸이 계약) 때문에 선진국에 먼저 보급됐다가 접종자를 찾지 못해 남아돌던 백신이다. 대부분 유통기한이 임박해 곧 쓰레기가 될 백신이라 아프리카 국가들도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독점과 시장으로는 해결 못해

국경없는의사회는 앞선 성명에서 “독점 및 시장 주도 원칙이 접근의 장벽이 되지 않는 곳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의료 도구가 공평하게 개발, 생산 및 공급될 수 있도록 생의학 혁신 시스템을 재고하고 개혁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 줄 것을 각국 정부에 촉구했다. 동시에 “기업과 정치적 이익을 보호하기보다 생명을 구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인류는 아직 코로나19 팬데믹을 끝낼 유효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독점과 시장 솔루션에 의존해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선진국 국민이 백신을 맞으며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환자 발생을 유지하는 동안 백신이 보급되지 못한 저소득국가는 의료 체계의 붕괴와 확진자의 범람 속에 변이 바이러스 발생 가능성을 높였다. 여기서 발생한 신종 변이 바이러스는 백신 접종을 끝낸 선진국으로 확산해 다시 팬데믹을 일으키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시장 솔루션으로는 기후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듯, 초국적 제약자본의 이윤을 지키는 독점과 시장 솔루션으로는 팬데믹에 대응할 수 없다. 시장 솔루션으로는 코로나19의 자연면역이 늘어 풍토병이 될 때까지 수년 동안 백신 접종을 반복하면서 치명률을 줄이고 의료체계의 붕괴를 방지하며 유지해 나가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 사이 초국적 제약자본은 변이 발생을 기회로 백신 접종을 반복하면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계속 벌어들일 것이다.

영업비밀로 제한된 핵심 기술과 제조 노하우와 같은 미공개 정보의 공개를 의무화하고 백신과 같은 필수 의료도구에 대한 강제실시를 할 수 있는 국가적 대응 능력(포괄적 TRIPs 면제)을 향상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또한 반경쟁(독점) 행위 및 공공 이익을 강제실시의 조건으로 확대하는 조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백신과 치료제 등의 개발, 생산, 유통, 공급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공조를 통해 코로나19 확산과 변이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만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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