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둘러싼 화폐전쟁, 글로벌 지불결제 시스템

[주례토론회] 비트코인, 거품인가 대안화폐인가

[편집자주-토론문]

비트코인을 둘러싼 오해와 놀라운 화폐적 기능

몇 달 전 최대 비트코인 환전소인 ‘마운트곡스’가 파산하면서 비트코인에 대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투기 상품, 사이버머니, 해킹 도난 등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주를 이뤘고, 지금도 비트코인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대부분 불안정한 투기상품 정도로 보도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나라들에선 비트코인 소득에 대해 과세를 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한다. 과세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정리된 바는 없지만, 과세대상으로 파악한다는 말은 제도권내로 비트코인이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이 실체가 없는 허구적 투기상품이라 치부했던 기존의 주류적인 시각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과세를 한다는 말은 그것이 실물적 가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런 가치를 이전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단 먼저 몇 가지 잘못 알려진 사실을 짚고, 논란이 되는 쟁점들을 건드려 보자. 해킹에 의한 ‘마운트곡스’의 파산은 비트코인 내부시스템의 문제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해킹이라는 말에서 쉽게 떠오르는 우리들의 이미지는 컴퓨터에 있던 자료가 삭제되거나 손상되었던 경험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계정으로 이동된 것이다. 비트코인을 전송시키기 위해서는 일종의 비밀번호가 필요한데 그것을 누군가 훔쳐서 임의의 계정으로 전송한 것이다.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비트코인 자체가 없어지거나 혹은 부풀려지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비밀번호 관리에 관여한 내부자 소행이거나 과거에 벌어졌던 손실분 혹은 투기적 거래에 따른 손실을 더 이상 메울 수 없어서 파산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비트코인의 보안기술에 대해선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먼저 왜 투기적 거래가 횡행하는지 들여다보자. 여기서 비트코인 환전소의 역할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원화를 달러로 바꾸기 위해선 각 은행의 외환거래 창구를 찾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화폐는 원화나 달러처럼 법으로 보장된 화폐지만, 비트코인은 법정화폐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인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기존 화폐들과의 교환이 이뤄져야 한다. 이건 마치 인터넷에서 게임머니나 포인트 충전을 위해 현실의 화폐를 지불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차이가 나는 점은 비트코인 환전소에선 비트코인을 실제 화폐로 바꾸는 일도 한다. 게임머니나 포인트를 현찰로 바꾸는 건 현실에선 거의 이뤄지지 않지만, 실제 화폐와 비트코인 간에는 활발한 상호거래가 이뤄진다. 마치 우리가 미국에 돈을 송금하기 위해서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거나, 달러를 벌어들인 국내 수출업체가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만약 달러의 경우와 달리 비트코인으로 환전하거나 비트코인을 획득하는 것에 별다른 효용이 없다면 비트코인은 별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게임에 별 관심 없는 사람에게 게임머니를 몇 만 포인트를 준다한들 별 의미 없는 것과 똑같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를 게임머니와 질적으로 다른 효용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핵심이다. 그것은 화폐의 여러 가지 기능 중 몇 가지를 비트코인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다른 중개기관 없이 개인 간에 직접적으로 지불결제 및 청산을 할 수 있는 기능이다. 현대 사회에선 이런 기능을 흔히 은행이나 카드사들이 수행한다. 우리가 컴퓨터 앞에 앉아 보안카드 번호를 눌러 인증을 받고 계좌이체를 하는 것과 동일한 기능을 비트코인이 수행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것을 수행하는 인격적 주체가 따로 있지 않다는 점이다. 비트코인 시스템 상에서 이뤄지는 과정은 마치 우리가 인터넷을 접속해서 여기저기서 소식들을 접하는 것과 비슷하다. 인터넷을 관리하는 주체가 따로 없듯, 비트코인 시스템을 통제하는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 듯, 비트코인 시스템 체계에서도 개인 계정을 임의로 수없이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계정 간 활발한 비트코인 거래를 행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라운 점은 계정 간 비트코인 거래내역을 누구나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계정아이디를 보고 계정 소유자가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 계정으로 거래되는 내역은 모두 공개된다. 지금 당장이라도 인터넷에 접속하면 비트코인 시스템이 처음 작동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행해진 모든 계정들 간의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투명성은 비트코인이 가지고 있는 지불결제 및 청산 시스템의 신뢰성을 보장해 준다. 마치 지구 머리 위에 커다란 투명한 금융거래 장부 혹은 호적등본이 있는 것과 같다. 혹자들이 지적하는 바처럼 은밀한 거래에 사용되는 사악한 투기상품이라고 말하기엔 곤란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거래라서 보안성이 확립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비트코인 시스템에는 현재 은행들이 운영하고 있는 보안성과 안정성을 훨씬 능가하는 기술이 내재되어 있다. 바로 분산컴퓨팅 기술이다. 비트코인의 거래 장부를 이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는 컴퓨터에 분산시켜 10분 단위로 동기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클라우드나 파일공유와 비슷한 원리이다. 10분 단위로 파일 덮어쓰기가 전 세계에 깔린 비트코인 사용자 컴퓨터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전 세계 퍼져 있는 거래 장부를 모두 해킹하여 10분 내에 조작하려면 현존하는 모든 슈퍼컴퓨터를 동원한 것에 1000배가 넘는 성능을 지닌 초슈퍼컴퓨터가 존재해야만 한다.

이렇게 안정성이 보장된 지불결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은 이것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화폐의 기능 중에서 지불수단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걸 의미이다. 만약 비트코인과 현실화폐간 안정적인 교환비율이 유지된다면 가치저장의 기능과 가치척도의 기능을 모두 수행하게 된다. 그래서 비트코인이 미래의 대안화폐로 부상할 수 있는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폴 크루그만 같은 노벨경제학 수상자들까지도 이 논쟁에 껴들고 있는 형국이다.

디지털화된 법정화폐와 비트코인, 대안화폐로서의 쟁점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의 대부분은 소위 말해 신용화폐이다. 3%만이 중앙은행이 발행한 실물화폐이고 나머지 97%는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통해 창조되는 신용화폐이다. 그리고 중앙은행은 이 신용체계를 지탱하기 위해 유사시 자금을 공급하는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신용화폐는 대부분 은행통장의 디지털 숫자로만 존재한다. 모든 거래는 디지털 상의 정보교환으로 이뤄진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현금 몇 만 원 정도만 필요할 뿐, 대부분의 지급결제는 모두 디지털 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렇게 디지털화 된 법정화폐의 모습은 신용카드사용이 아주 일반화된 현재의 모습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이미 현존하는 신용화폐시스템이 비트코인과 매우 유사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한다. 현실의 신용화폐시스템은 중앙은행을 포괄하는 국가에 의해 관리되지만, 비트코인은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는 개개인들의 협력에 의해 관리된다. 익명성이 보장된 계정 간 거래내역을 모두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고, 10분 단위로 분산 동기화되는 과정을 통해 지급결제 및 청산과정의 내역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신용화폐는 대출수요와 이자율에 따라 급격히 변동하지만 비트코인은 그렇지 않다. 총량이 정해져 있고 일정한 규칙과 프로그램에 의해 조금씩 발행된다. 신용창조 기능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이점이 매우 중요한데,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화폐기능은 무엇보다도 신용창조의 기능이 매우 핵심적인 요소이다. 흔히 국가의 통화정책 하에서 이뤄지는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이나 공개시장 정책, 재할인율 정책 등은 모두 시중은행을 통해 창조되는 신용통화를 조절하기 위한 정책들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비트코인은 현실의 화폐가 수행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능인 신용창조를 수행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비트코인을 두고 대안화폐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일까? 이것은 비트코인이 앞서 언급한 신용창조 기능을 원천적으로 거부한 것에서부터 이야기 해 볼 수 있다. 과거 30-40년 전과 비교할 때, 통화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자장면 한 그릇이 500원 하던 80년대와 비교하면 30년이 지난 현재는 물가가 10배 이상 올랐다. 그만큼 화폐가치는 떨어진 셈이다. 그리고 화폐가치의 하락은 그만큼 화폐가 많이 생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부양의 핵심 기능인 신용화폐 시스템이 낳은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경향 때문이다. 그래서 총량이 정해져 있는 비트코인은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는 셈이다.

물론 이것이 대안적이라고 평가해야 할지는 논쟁의 여지로 남는다. 왜냐하면 화폐가치가 하락한다고 하더라도 소득의 증가 폭이 그 이상 되면 화폐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손실이 충분히 메워지기 때문이다. 즉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문제인 것이지, 완만한 인플레이션은 현실에서 큰 문제로 부각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소득 상승 이상으로 물가가 오르는 경험을 많이 했던 터라 비트코인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반인플레이션 구조에 대해 신선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몇몇 비트코인 옹호론자들은 금처럼 정해진 총량을 유지하고 있는 비트코인이 과거 금본위제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렇게 총량이 정해진 화폐량 때문에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당시 화폐체제였던 금본위제가 공황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하는 역사적 분석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것도 적절한 비판은 아닌데, 급격한 디플레이션이 문제이지 완만한 디플레이션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화폐단위를 점점 크게 늘려왔던 것과 반대로 화폐단위를 점점 줄이는 방향으로 새롭게 만들면 된다. 이미 1 비트코인 밑으로 존재하는 소수점들을 다루기 편리하도록 새로운 단위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로 치면 1원 밑으로 존재했었던 1전과 1환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언급하면서 대안화폐로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쪽과 디플레이션을 언급하면서 화폐기근을 주장하는 양자간의 논쟁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화폐수량적 논쟁보다 더 근본적인 쟁점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화폐로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선 전제되어야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건 바로 타인이 지불 통화로서 받아들일 것이라는 기대감과 이를 유지시켜주는 사회적 네트워크이다.

이 기대감은 사회적 네트워크가 얼마나 통합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화폐의 영토는 최소한 한 개 이상의 공동체 영토를 가지고 있다. 현실의 달러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달러는 전 세계 모든 화폐공동체를 자신의 영토로 하고 있다. 어딜 가든 달러는 모든 화폐와 교환가능하다. 그래서 달러 세계체제는 미국 헤게모니의 실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비트코인이 아무리 뛰어난 보안성을 지닌 시스템이라고 해도, 국가권력에 의해 보증 받는 현존 화폐를 대체할 순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으로 대체된다는 건, 화폐주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정상적인 형태의 국가들이 그것을 별안간 받아들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몰고 올 금융혁신의 변화들

그렇다면 비트코인의 확산으로 인해 변화되고 있는 현실에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지금까지 지불결제 시스템의 역할을 해온 금융기관들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할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이주노동자 송금시장이 900조 원 가량 된다고 한다. 이들은 여러 단계의 절차와 높은 수수료를 물면서 본국에 돈을 송금해야 하는데, 비트코인은 개인이 직접 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메시지 보내 듯 간단하게 송금할 수 있고 환전수수료도 매우 낮다. 기존의 금융 인프라가 제대로 보급되지 못한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핸드폰 통신망을 직접 활용하여 비트코인을 송수신할 수 있다.

가령 국제연대에 관심이 많은 한국에 있는 사람이 멕시코의 사파티스타에게 후원금을 보내고자 한다고 가정하자. 지금 금융시스템에선 아주 복잡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수수료도 많이 지불해야 한다. 심지어 정치적인 이유로 후원금을 보내는 것이 거절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 시스템은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특정 주체가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 비트코인을 받은 사파티스타는 이것을 다른 환전소를 통해 자국 화폐로 바꾸면 된다.

또한 물건 구매할 때 우리가 카드를 사용하듯, 비트코인을 활용할 수도 있다.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가 1100조 원인데, 기존의 visa 카드와 같은 사적 신용네트워크를 이용하지 않고 바로 직접 비트코인을 활용하는 것이다.

현재 소액결제 시스템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활성화되어 있는 소액결제 시스템은 핸드폰으로도 가능할 정도로 잘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1000원 미만은 안 되고 수수료가 높은 편이다. 그리고 중간 대행업체들의 관리 허점을 악용하여 핸드폰 소액결제사기가 판을 치고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에선 누구도 가져갈 수 없도록 허공에 안전하게 비트코인 올려놓은 다음, 거래가 확인되어 특정 조건을 충족될 때만 자동 전송시킬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 중간단계의 다른 금융기관들을 이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소규모 공동체내에서의 지역통화를 만드는 것이 매우 쉽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보험사나 상조회사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도 있다. 비트코인은 공동체 참여자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복수의 비트코인이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월스트리트점거운동 진영에서 ‘프라잇코인’이라는 지역화폐를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매우 다양한 기술적 변용이 가능한 이유는 비트코인이 누구나 갖다 쓸 수 있는 오픈소스이고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위에 얹어서 활용하기 용이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IT기술과 접목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진다. 인터넷의 등장이 언어와 지리적 장벽을 허물었다고 한다면 비트코인은 금융플랫폼의 개방성과 확장성을 무기로 화폐의 장벽을 허물고 있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현재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가 아니라, 비트코인 시스템을 활용하여 각종 금융 중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으로 옮겨지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기술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잇따르고 있고, 기존 대형 온라인 상점들까지도 비트코인 결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변화는 그 동안 금융 중개 서비스를 독점했던 은행이나 카드사의 위상에 변화를 몰고 올 수밖에 없으리라 예상된다. 특히 지급결제에 활용되고 있는 외환의 비중이 줄어들기 때문에 달러 체제의 약화가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발생할 가능이 있다.

비트코인은 달러를 대체할 수 있을까? 비트코인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

하지만 비트코인의 유용성이 아무리 뛰어나고 하더라도 앞서 지적한 바처럼 달러나 원화와 같은 법정화폐를 당장 대체하긴 힘들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가 변하지 않는 한 완전히 대체할 수도 없다. 그건 자본주의 신용체계가 가지고 있는 특징 때문이다. 은행의 역할이 비트코인으로 인해 줄어들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인 신용창조의 역할을 비트코인 시스템이 대신할 순 없다. 비트코인 시스템은 기존의 국가 간 화폐 장벽을 넘어 글로벌한 지불네트워크를 매우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돈을 창조하는 신용창조의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국가 관리에 의한 신용창조가 중요한 이유는 ‘사적 노동의 사회적 가인정’을 끊임없이 재생산해야하기 때문이다. ‘사적 노동의 사회적 가인정’이란 아직 생산되지도 실현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통해서 은행이 사전인정을 거쳐 지불수단을 발행하고, 실제 이 지불수단이 유통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창업자금을 은행에서 빌려서 벤쳐사업을 하는 걸 떠올리면 된다. 아직 실현되지 못한 미래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은행은 여러 심사를 거쳐 자금을 대출한다. 그리고 이 자금은 사회적으로 단순히 그 사업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액면가에 해당하는 만큼 구매력을 지닌 증표로 널리 활용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신용화폐는 이렇게 ‘사적 노동의 사회적 가인정’이라는 국가관리 체계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신용화폐의 근간을 지탱하는 것이 중앙은행 시스템이다.(이런 측면에서 볼 때 현실의 생산에서 실현위기는 동시에 신용위기와 은행파산을 반드시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자본주의 생산과정과 화폐 재생산이 국가 권력에 의해 관리된다는 점을 이해하면, 기존의 비트코인을 둘러싼 대안화폐 논쟁이 중요한 현실 변화를 제대로 짚고 있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비트코인이 달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달러가 비트코인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의 등장이후 기술을 영토화 했듯이 비트코인으로 파생되는 기술을 영토화하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것이다.

이미 미국은 상원보고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 비트코인 양성화를 발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일본도 과세방침을 정하면서 이 기술을 제도화하려고 하고 있다. 심지어 은행들도 비트코인의 금융 중개 서비스 확대를 더 이상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환전소 역할을 직접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비트코인 최대 환전소였던 ‘마운트곡스’의 파산사태에서 보듯, 아직 제도적으로 정비되지 못한 영역에서 사적 불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겨냥하여 환전인증기관을 미리 선점하려는 시도도 벌어질 것이다. 또한 다른 한편에선 각종 해킹 사건으로 인해 신용정보 유출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세계적 현상을 볼 때, 안정적 기술을 갖춘 비트코인 시스템을 제도화하려는 필요성이 더욱 크게 제기될 것이다.

그렇다고 비트코인의 제도화가 기존의 달러체제를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진행될 것이라 단정 짓긴 힘들다. 왜냐하면 이런 변화는 달러체제가 발전하면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달러체제가 가지고 있는 화폐 권력의 독점, 변동환율에 의한 불안정성, 더 나아가 법화체계를 통한 공황의 사회적 할당 등을 지적하면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비트코인을 둘러싼 논란은 금융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도전이며, 이것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인터넷 기술을 통해 불쑥 등장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무주공산인 광활한 네트를 점령하기 위해 치열한 각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혁신의 기회는 곧 독점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토론문 끝] * 정리 : 송명관(참세상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