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율 논쟁과 “오래된” 마르크스적 이윤율의 역설

[기고] 자본주의 위기논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들(4)

0. 이윤율을 둘러싼 생산적 논쟁을 제기하며

먼저 일련의 이루어졌던 필자의 참세상의 기고글은 어떤 특정 인물이나 이론적 입장을 비판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 글은 더 넓은 범위에서 1970년대 후반 이래로 지속되는 자본주의의 장기침체 또는 이윤율 하락을 비판하기 위해 쓴 것이고, 따라서 이번 위기의 원인 그와는 상이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썼다. 그러므로 비판의 대상은 아리기 류의 세계체계론, 로버트 브레너, 또는 앤드루 클라이먼 등을 포괄한다. 물론 그들의 모든 이론적 측면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하고 있는 이론/실증 작업의 일부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들 이론의 정당성은 단순히 이윤율의 경험적 추계나 다른 여타 변수들의 추계방식 및 그 이론적 기반에만 기초하지는 않기 때문에 필자는 그 기고글 들을 통해 ‘논쟁을 개방’하려고 하였다.

필자는 다른 방식의 접근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계기들을 따라 자신들만의 접근방식을 통해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논쟁을 폐쇄하려는 시도에 있다. 실제로 필자는 대체로 프랑스의 경제학자 뒤메닐과 레비의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들의 논의가 세계 모든 지역에 똑같은 형태로 재현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이론은 각각의 사례를 통해 복잡해짐과 동시에 풍부해진다. 논쟁과 토론이 개방되어 있지 않으면 이는 불가능하다. 뒤메닐/레비가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그들의 접근방식과는 다른 양태들이 나타날 수도 있으며, 이는 이들의 오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 이론 전체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 이론은 열려진 체계이다. 마르크스의 논의가 현대경제와 역사적 동역학에 의해 수정되어야 하는 부분도 많다고 본다.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 초 러시아나 다른 곳에서 현실화 되었다고 해서 그 길을 쫓는 것만이 유일한 마르크스 실현의 대안도 아니라고 본다.

각각의 논의가 다른 식으로 마르크스주의적 논의를 재현할 수도 있고, 필자는 그것을 존중한다. 이를테면 이윤율에 대한 서로 다른 정의도 있을 수 있고, 가치이론에 대한 다른 정의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이윤율이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현실경제에서 만들어내는 영향력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그리고 많은 이론들이 그러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실증/경험적이든 이론적이든 말이다. 이 와중에서 서로 간에 있을 수 있는 문제제기는 당연한 것이며, 이론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또한 그렇게 풍부해진 이론이 우리가 기존에 생각했던 마르크스주의와 닮아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재현해낼 수 없는 정의는 무의미하다고 본다.

우리는 여기서 이윤율이나 이윤폭의 정의를 살펴보고 선대된 자본스톡 또한 새로 정의해보도록 한다. 또한 다른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비용 대비 이윤율 플로우라는 그 사람들의 마르크스적 이윤율도 추정해보고 그것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이윤율과 이윤폭

우리가 측정하는 이윤율(rate of profit)은 이윤(수입-비용)과 투자된 자본의 총량을 측정하는 것으로 이윤폭(profit margin)과 구별된다. 이윤폭은 자본이라기보다는 비용(노동을 포함하는) 대비 이윤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윤율을 측정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자본축적과의 관계 및 자본이 새로운 수입을 창출하는 역량(capacity or ability)를 측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윤율은 자본축적에 영향을 주고, 이러한 축적은 기술수준에 의해 생산으로 전환되며, 생산은 분배로 이어진다. 이러한 분배는 기술선택에 영향을 주고, 기술선택은 다음 기의 생산과 축적을 결정한다.

2. 회전기간

필자는 지난기고에서 T를 회전율(turnover rate)라고 표현하였으나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D. 폴리와 그의 후계자들의 작업에서 T는 회전시간(turnover time)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 『자본』에서 회전(turnover), 회전시간(turnover time), 회전수(the number of turnover)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먼저 회전시간은 고정자본의 도입과 함께 고정자본의 기대수명(lifespan)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D. 폴리의 작업에서 회전시간은 이른바 유통시간과 생산기간을 모두 합한 것으로 마르크스의 정의와 일치한다. 그는 이를 이른바 시간지체(time-delay)로 설명하였다. 이 시간지체를 해당 이윤율과 관련해 비용 플로우 대비 고정자본으로 표현하였는데, 이 비율이 클수록 회전시간은 길어진다. 혹은 고정자본에 비해 비용플로우가 작아도 회전시간은 길어진다. 이윤율과 자본회전에 관한 논의는 최근에 상당히 많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 Metroeconomica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에도 종종 실리고 있다. 그 논자들 중의 한명은 현재 CNRS-파리 1대학 연구소에서 같이 연구 중이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여기서 지면 상 풀어질 수 없는 논의를 그 저널들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3. 자본스톡

우리는 이윤율을 대체로 플로우가 아닌 스톡으로 평가된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생산적 소비로서 비용과 스톡을 구별한다. 수치 예는 예외적인 사례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연속시간 속에서 스톡을 고려한다고 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선대된 총 투하자본 스톡이 C=kC+(1-k)C라고 정의하자. C는 선대된(advanced) 총투하자본 스톡인데, 이중 k만큼이 고정불변자본에 들어가고 (1-k)가 유동불변자본 및 가변자본에 투입된다고 하자.


s는 t와 t0사이의 적분변수인 단위시간을 뜻하며, 우리는 대체로 위와 같이 스톡을 측정할 수 있다. 이는 이산적으로 표현해도 마찬가지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유입은 kC+(1-k)C 와 일치한다.
우리는 유출을
라고 할 것인데, 위의 식을 미분방정식 형태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시간 t에 대한 총투하자본스톡의 변화는 유입과 유출의 차이므로 다음과 같이 측정될 수 있다.


정의상 매기 마다 감가상각
와 유동자본 분 (1-k) 가 소모된다. 그러면 유출량
이므로, 이를 위의 식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이 변형된다.


간단히 감가상각을 0이라하고 이 식을 풀면


우변은 고정자본 분의 시간에 따른 축적경로를 의미하므로


만약 우리가 시간지체 또는 회전시간을 고려하면


따라서 우리는 D. 폴리와 같은 식을 얻을 수 있다. 실상 D. 폴리는 이러한 과정을 자본순환과정으로 복잡화하여 이미 보인 바 있다. <자본의 이해> 6장에 있는 이윤율에 대한 논의는 바로 이러한 이른바 생산기간 및 유통기간을 고려한 복잡화된 모형에서 얻어진 결과와 일치한다. 우리가 논의한 단순한 형태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에 무의미한 과정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유동자본은 매기 소모되고, 고정자본은 여러 기에 걸쳐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우리가 스톡(stock)이라는 경제변수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오래된” 마르크스적 이윤율과 신자유주의 위기의 역설적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다른 해석에 대해서 존중한다. 앞서 이야기하기도 했고, 김성구 교수의 1월 6일 참세상 기고문에도 나오듯이 이들은 비용플로우(불변자본+가변자본) 대비 이윤 플로우를 마르크스적 이윤율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이 역사 속에서 또는 미국경제의 현 위기 상황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기 위해선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데이터를 재건하면 된다. 이들은 이러한 해석에 근거하여 70년대 이후로 이윤율이 꾸준히 하락해왔고, 그러한 70년대 이후의 장기침체를 구조적 위기라 부르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도 그 상황에서 발생한 경기변동의 일종이다. 따라서 이들의 위기 진단이 증명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이윤율이 적어도 70년대 이후로 하락경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를 미국중앙은행의 FRB_Z1 통계를 통해 재건할 수 있다(FRB_Z1은 FRB에서 작성하는 자금순환표 형태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비용플로우를 비금융법인기업의 총자본지출+노동보수로 추정한다. 다음과 같은 역사적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아래 그림은 1952년부터 2010년까지 비용플로우 대비 이윤플로우로 작성된 이윤율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윤에 부과되는 조세를 고려하였다.

이 그림은 실제로 우리가 이전에 살펴보았던 자본스톡 대비 이윤이라는 “새로운” 마르크스적 이윤율과 그 경향이 유사하다. 이 데이터 또한 1950년대 높은 수준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내내 지속되었던 하락경향이 두드러진다.

  미국 연준의 FRB_Z1 통계를 통해 재건한 “오래된” 마르크스 이윤율의 추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데이터를 마르크스적 이윤율로 부르는 사람들의 희망과는 달리 1980년대부터 이번 위기 이전까지 지속적 하락경향은 나타나지 않는다. 가장 높은 수준의 이윤율을 보이는 1950년대/1960년대(1952-1964)의 평균이윤율에 대해 1980년대/1990년대 평균이윤율의 회복률은 각각 92%, 96%로 점점 회복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어떤 식으로든 하락경향은 없다. 마지막 부분에 이번 위기 이후 급격한 상승이 보이는데 위기 이후 이윤의 회복이 가지고 있는 기저효과와 새로운 자본지출의 급격한 축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우리가 '마르크스적 이윤율'을 이런 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이러한 이윤율이 어떤 식으로 다른 거시경제적 활동들과 연관을 맺는지 밝혀야 한다.

5. 기고를 마치며

2008년 전대미문의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난 뒤 7년이 지났다. 많은 좌파운동의 이론가들은 이것을 두고 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를 암시하는 묘사적인 현상분석에 매우 충실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윤율 지표의 하락이며, 많은 좌파이론가들은 이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활용했다.

그런데 무작정 이윤율이 하락하면 자본주의 위기라든지 하는 말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자본축적이나 경기변동의 진폭과 주기등과는 어떤 관계를 맺는지, 미시적인 기업지배구조는 이러한 거시적 지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노동관계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의 여러 연구주제들로 퍼져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윤율이 제기하는 자본주의 위기분석의 강점은 이윤율의 상승과 하락이라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위기를 분석하는 기초와 출발점을 제공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다시금 마르크스의 ‘이윤율저하경향법칙’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오래된” 마르크스적 이윤율이 보인 신자유주의 위기의 역설적 모습 또한 “새로운” 마르크스적 이윤율과의 정합성 논쟁뿐만 아니라 현실의 경제현상과 연관성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확대되어야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필자는 브레너나 다른 이론가들의 관점을 좀 더 살펴보려고 하였으나 시간 관계 상 참세상에 이루어졌던 기고는 이만 마치려고 한다. 그동안 혹시라도 관심 있게 보아온 분들이 있다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다시 기고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