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주민조직의 기억과 오늘

[고길섶의 쿠바이야기](6) - 혁명방어위원회(CDR)

9월 28일 밤, 한국에서 신혼여행 온 어느 인터넷신문 기자 부부, 쿠바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어느 여성 커플, 그리고 한국인 3세 등과 함께 아바나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고 있었다.

  사진의 상단왼쪽끝 길게 서 있는 아파트의 맨 꼭대기집에서 아바나 시내를 내다 볼 수 있다.

그 아파트는 17층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미국으로 열리고 있는 대서양 바다와 아바나 시내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였다. 그 집은 아파트의 맨 꼭대기였으며, 어느 유명음악가의 집이란다. 쿠바에서 유명 음악가는 아주 잘사는 부류라고 한다.

  마탄자스의 한 동네 주택에 내걸린 혁명방어위원회 벽서

주변 경관을 배경으로 음악과 춤과 낭만을 즐기기에는 아주 좋은 두 개 층의 넓은 공간구조로 설계되었으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수영장도 있었다. 예전에는 문화적 컨셉이 화려했을 법한 이 집은 지금은 낡아가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민박집을 구하고자 이전에도 한 번 방문했던 그 아파트는 써금써금 낡아가고 있으며 엘리베이터가 고장도 잘 나는지라 졸지에 갇혀버리게 되는 상황을 우려해 17층에서 비좁고 흉흉한 계단을 타고 내려와야 했던 기억도 있다.

그 아파트의 그 17층 꼭대기 집에서 우리는 한국에서 싸질머지고 간 참이슬로 삼겹살(사실 삼겹살은 아닌 짝퉁 삼겹살) 분위기를 돋구었으며, 쿠바의 농산물시장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생돼지고기 맛이 일품이었다. 우리가 삼겹살과 참이슬로 취해가고 있을 때 주인 아들은 친구들과 함께 다른 공간에서 음악과 춤 파티로 한창이었다.

  아바나 시내의 한 혁명방어위원회를 알리고 있는 벽서

바로 그날 밤, 아바나 아니 쿠바 사람들은 동네 축제들을 밤새 벌이고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축제는 벌어졌고, 나중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골목골목마다 흥겨워하는 그들을 보며 무심코 지나쳤는데, 그건 바로 의미있는 축제였던 것이다. 쿠바 전역에 걸쳐 동네별로 모여서 길거리에서 춤과 노래와 음식을 공유하는 행사였다. 동네마다 조직된 CDR(Comite de Defensa de Devolucion)이라는 혁명방어위원회의 축제행사였다.

  쿠바의 한 혁명방어위원회 소재지 벽서

  해질무렵 말레콘에 나와 맥주와 함께 잡담을 즐기는 아바나 사람들

1959년 쿠바혁명이 성공하자 미국은 혁명세력을 와해시키려는 반혁명기도를 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행위가 카리브해의 연안 피시만을 침공하려다 실패한 것이다. 1961년 4월 17일 1천5백 명의 미 침략군이 피그만 해안에 상륙했다. 카스트로는 이들을 물리치고 체 게바라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제국주의의 첫 번째 실패”라고 규정지었다. 카스트로가 쿠바혁명을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선언한 것도 이 전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자리에서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쿠바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풀뿌리 주민조직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CDR이다. 9월 28일은 CDR의 창설일이라 한다. 그 축제는 CDR 창설기념 축제였다.

CDR은 미국의 반혁명 기도에 대응하는 풀뿌리 주민조직이면서도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다. CDR은 혁명 이후 국내의 저항, 사보타주, 무장저항집단 증가 등에 대한 대응이면서도 정부의 결정들을 확실히 집행하기 위한 하향식 주민기구였다. 그것은 한국식으로 보자면 관변조직이되 국가권력과 주민들 사이의 매개공간임을 확연히 보여주는 듯 하다. 창설된 지 40여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CDR은 형식적 조직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주민들의 생활공간 속에서 존재한다.

  혁명방어위원회 창설기념 행사표시

9월 28일 이후 얼마간은 아바나, 마탄자스, 산타 클라라, 산티아고 데 쿠바 등 쿠바의 이곳저곳에서 그 축제의 흔적들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거리를 잇는 쿠바 국기들의 휘날림이나 대문마다 뭔가 표현해놓은 상징들이 그 흔적들이었다. 그러나 그 상징들은 대개 혁명적으로 의식화된 집단적 표현이라기보다 혁명성과는 거리가 있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것들을 표현하였고, 상당히 투박하였으나 주민들의 참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축제행사에는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참여한다.

CDR은 지금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끊임없이 혁명성을 강화하고 반복하는 의식행사의 주관자라기보다 회원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지역일 및 가정사의 공유나 상담 등의 활동을 하는 대화의 장이다.

  혁명방어위원회 창설에 즈음하여내걸린 쿠바 국기

CDR은 지역 커뮤니티의 기초단위이다. 어느 누군가 나쁜 짓을 한다거나 타락한 길을 갈 경우 이를 선도해주는 역할도 한다. 동네 단위의 사회, 경제, 문화, 복지 참여의 장의 역할을 하면서 풀뿌리 주민 커뮤니티로서 그 위상을 갖는 듯하다.

대표를 주민들이 선출하는 CDR은 각 동네마다 설치되어 있으며, 동네마다 어느 소재 CDR인지를 알리는 표현물이 붙여져 있거나 벽에 페인트로 표현되어 있다. 그 표현물들은 어느 하나의 이미지로 통일되어 있지 않고 각각이 제멋대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관변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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