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로 가는 길? 혹은 화폐는 언어다?

[고길섶의 쿠바이야기](7) - 독특한 사회주의 국가의 돈과 욕망

  시골의_한적한_길가에서_외국인들을_상대로_과일을_파는_아주머니


지난 겨울 조선일보는 2007년 1월 1일부터 새롭게 발행하는 쿠바의 10페소 짜리 지폐 뒷면에 ‘에너지 혁명’(Revolucion Energetica)이라는 문구와 함께 현대중공업이 설치하고 있는 이동식 발전설비(PPS)가 그려져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설비는 디젤엔진 등 발전기 구동에 필요한 설비들을 컨테이너에 담은 소규모 패키지형 발전소로, 현대중공업이 모두 7억2천만 달러에 쿠바 전역 41곳에 모두 544기를 설치 중에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현대중공업’이라는 회사명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이런 류의 이동식 발전설비를 만드는 곳은 전 세계에서 현대중공업이 유일하다며 “이번 지폐 도안은 쿠바 정부가 우리 제품에 대해 큰 신뢰와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외국에서 한국 기업의 위상을 드높인 쾌거”(회사 전무의 발언)임을 부각시켰다.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이 사실에 매우 고무되었을 것이고 국내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랬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동식 발전 설비의 설치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사업이길래 화폐의 배경그림으로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산업화의 상징을 화폐의 이미지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문화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현대중공업의 홍보는 아마 아전인수식 해석이었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캐나다에 거주하며 쿠바 사이트를 운영하고 쿠바 사정에 훤한 Shawn M Kim 씨는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쿠바는 매해 ‘ooo의 해’를 지정하는데, 이전에는 ‘호세 마르띠의 해’와 같은 것이 있었고 작년에는 ‘에너지 혁명의 해’였으며, 아마 그런 맥락에서 발전 설비가 화폐에 들어갔을거라고 설명한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쿠바의 전기 사정은 좋은 것만은 아닌 듯 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비날레스라는 농촌지역의 한 외딴 농가는 바로 옆이 면 소재지인데도 전기가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이 농가는 밧데리로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그러나 쿠바 정부는 대체에너지 분야에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한다. Shawn M Kim 씨에 따르면, 호텔이나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하는 곳은 태양열 발전을 유도하고 있고 산티아고 데 쿠바의 경우 병원의 7-80% 정도가 태양열 발전을 이용하고 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UN의 지원으로 피나르델리오에는 태양열 집열판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내국인용으로_통용되는_쿠바지폐


  국내_통용_지폐_환전소


  돈은_욕구다


이중화폐의 중첩된 흐름 속에서

쿠바의 10페소짜리 지폐에 발전설비 그림이 디자인된 것은 에너지혁명이라는 국가의 사회적 욕망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의 욕망이 화폐에 표현된 것이고 화폐가 대중들에게 통용될 때는 대중들의 전혀 다른 욕망들이 생성되거나 소멸되고 혹은 교환되거나 저장될 것이다.

쿠바는 이중화폐가 사용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통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화폐와 자국민들이 통용하는 화폐가 있으며, 그 단위는 두 경우 다 페소로 통용된다. 외국인 관광객용 1페소는 한국 원화로 1000원꼴에 해당하고 내국인용 24페소와 환전된다. 보통 알려지기로는 외국인 전용 페소와 내국인 전용 페소로 구별되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외국인 전용페소로 알려진 화폐도 내국인들이 통용한다. 길거리의 맥주나 음료수를 살 때, 레스토랑을 이용할 때, 혹은 전자제품을 구입할 때 등등 통용된다. 이때는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차별이 없다. 그러나 박물관이나 공연장, 동물원 입장료 등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똑같은 박물관이나 공연장에 들어갈 때 외국인이 외국인용 화폐로 몇천원 혹은 몇만원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면 내국인은 내국인용 화폐로 몇백원이면 해결된다. 고급문화공연도 내국인들은 몇백원이면 관람할 수 있다. 반면 외국인들도 외국인용 1페소(이 경우 1페소=원화 1000원)를 내국인용 24페소(이 경우 1페소=원화 약 40원)로 환전하여 농산물시장에 가면 과일이나 돼지고기 등을 매우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고속버스나 공연장 등은 외국인과 내국인을 크게 차별하여 가격을 매기고 있으나 농산물 등은 내국인에게 판매하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외국인들의 구매를 허용하고 있다. 물건이나 시장의 차이에 따라 통용되는 화폐의 종류가 다른 것이다.

현재 쿠바에서 통용되고 있는 이중화폐의 흐름 속에는 한편으로는 내국인용 화폐에 의한 생활필수품의 안정적 공급, 대중교통수단의 저렴한 이용, 그리고 문화향유의 대중화 등으로 사회주의적 지향성이 지속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인용 화폐에 대한 욕망이 매우 강렬한 속도로 기동하고 있다. 어느 나라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사회주의 체제일지언정 쿠바 사람들도 화폐에 대한 욕망이 강렬하다. 쿠바혁명 이후 1960년 10월에 제정된 도시개혁법에 따라 집세는 급료의 10퍼센트 이하로 고정되었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의료비, 탁아비, 교육비 등이 모두 무상이며, 따라서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책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서 저자 요시다 타로는 “선진국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소득이 많아야 한다. 실제로 돈이 없으면 당장 식량을 구하기도 힘들고 이내 살길도 막막해진다. 하지만 쿠바에 와보면 그런 상식과는 전혀 다른 실상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 쿠바인의 평균 월 수입은 달러로 환산하면 20-30달러 정도이며, 연간 임금은 3백달러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정도만으로 쿠바에서는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다. 배급을 통해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비용으로 쌀, 빵, 콩, 커피, 과일 등 기본 식료품을 대부분 구할 수 있다. 필요 이상의 사치만 하지 않는다면 보통의 생활이 가능하므로, 필사적으로 일할 필요도 없다.”고 적고 있다. 그럼에도 쿠바 사람들도 돈의 욕망이 크다.

  소비를_자극하는_상품기호와_이를_주시하는_한_여성


  아바나_시내의_민속공예시장


돈은 욕망이다?

인류문화유산의 도시 트리니다드에 가면 귀찮을 정도의 과잉친절을 베푸는 호객꾼들을 만날 수 있다. 친절을 베풀고 그에 대한 댓가를 받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1달러만 달라며 앵벌이하는 아이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밝은 표정이다. 댓살과 여덟살 정도 먹어보이는 어떤 여자아이 둘은 늦은 밤 아바나 길거리에서 나와 마주치자 자기네들은 배고프지는 않지만 하여튼 1달러만 달라고 하여 어리둥절케 했다. 비날레스에 외국인용 고속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면 민박집 주인들이 수십명씩 몰려들어 손님들을 잡느라 분주한 풍경들을 볼 수 있다. 민박집의 경우 외국인들에게서 받는 돈은 국가에 절반 정도 세금을 내야하지만 그럼에도 민박집 운영으로 인한 수입이 상당히 짭짤한 모양이다. 관타나모의 한 민박집 주인은 의사였는데, 거실을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이들은 외국인들을 상대하여 수입을 올리지 못하는 대다수 국민들과는 아마 삶의 질에서 차이가 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바나의 말레콘을 배회하다 보면 외국인에게 몸을 팔고자 하는 여성들을 간혹 만날 수 있다(직업적 성매매여성은 아니다). 음악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갔던 클럽에서도 쿠바의 한 20대 여성은 3만원을 제시하며 자기 집에 가자고 졸라댔다. 유료 원나잇 부킹이랄까? 지방에서 올라온 그녀는 방을 하나 얻어 살고 있으며, 이렇게 벌어들인 수입으로 또 다른 소비욕구를 채워나가는지도 모른다.

쿠바의 도시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문화가 없다. 밤에는 대체로 어둑하다. 낮에는 매우 밝은 햇빛면과 눈부심이 가려진 그늘면의 이중분할된 공간구성 풍경이 인상적이다. 그 도시공간의 중심지에는 소비욕망을 유혹하는 상품공간들이 즐비하지는 않지만 하나둘씩 들어서 있다. 맥주나 음료수 혹은 간이음식 판매점들이 아바나 중심가에 흔하게 있고 옷가게, 공예품점, 피자집, 슈퍼 등이나 일반 생활용품 및 전자제품 등을 판매하는 몇 안되는 대형마트의 상품 기호들이 현란하게 진열되어 있지는 않되 상품기호로서 소비욕망을 자극하고 있다.

쿠바가 사회주의국가이지만 국가가 이런 소비의 욕망마저 통제하거나 책임질 수는 없을 터, 개개인들은 소비자주체로서 홀로서야 할 것이고, 그에 대한 지불 역시 그들의 몫이다.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소비하려면 더 많은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오늘날 세계 만인의 상식이고, 쿠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쿠바는 대학교육까지 무료이지만 사교육은 개인의 부담이다. 사회주의 국가이자 무상교육이 잘 되어 있는 쿠바에도 엄연히 과외가 존재한다. 정부의 허락을 받고 과외교사에게 돈을 지불하며, 상당히 비싼 수준이란다. 개인적으로 더 많은 교육기회를 얻으려면 그만큼의 돈이 있어야 한다. 인구 2200만 중에 핸드폰이 10만여대 보급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오래되고 낡은 자동차들이 수두룩하면서도 최신 자동차들도 눈에 자주 띈다. 사물의 존재는 곧 소비욕망을 자극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돈을 소유해야 한다.

  아바나시내의_한_대형마트_건물


  아바나시내의_한_대형마트의_내부


화폐는 언어다?

오늘날 사회주의국가 쿠바에서도 상당하게는 돈이 곧 삶이고 삶이 곧 돈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돈의 노예인 것은 아녀보였지만 사람들은 왕성하게 돈을 좇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쿠바 사람들의 왕성한 돈에 대한 의지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더 많고 더 좋은 사물의 소유 혹은 더 많은 기회의 경험은 돈에 대한 의지를 더욱 촉진시킨다.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징후일까? 아니면 이미 자본주의가 부활한 것일까? Shawn M Kim 씨는 쿠바에서 ‘화폐는 언어다’고 표현한다. 언어란 표현과 소통의 수단이 아닌가. 그렇다면 화폐 역시 표현과 소통의 수단이고 그것의 활성화를 위해서 돈에 대한 의지가 왕성한 것일까. 돈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미루어 돈에 대한 의지가 왕성하다 해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회귀라고 쉬 판단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연결되는 돈에 대한 욕망의 흐름이라면 자본주의적 전망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쿠바 사람들의 돈에 대한 의지 혹은 돈을 통한 욕망의 활성화, 이것은 자본주의와 무관할 수도 있는 또 다른 사회적 욕망과 관계의 표현이자 그 동력으로 볼 수는 없을까? 대외적으로는 남미 사회주의운동이 고조되는 상황과 관련해서도 쿠바 사람들의 돈의 욕망이 흐르는 방향을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폐에 표현된 국가의 욕망과는 또다른 결의 흐름이라 한다면, 아마도 쿠바 사람들의 돈의 욕망은 사회주의이면서도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자본주의의 유혹을 받으면서도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또다른 길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쿠바가 독특한 사회주의 나라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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