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이 알아야 할 에이즈 예방의 진실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7) - 에이즈 예방담론

2007년 12월 13일 동성애 차별금지 법안 저지 의회선교연합은 최근 확정된 정부의 차별금지법안 제3조(금지대상 차별의 범위)에서 ‘그 밖의 사유’라는 용어를 삭제해 줄 것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유는 단 하나. 그 밖의 사유에 성적지향이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고 그로 인한 동성애 확산은 저출산, 결혼률 감소, 에이즈 확산 등 사회병리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 하였다.

차별금지법의 내용을 떠나 동성애가 사회적 논쟁에 중심축으로 떠오를 때 동성애자가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은 에이즈 확산을 들먹이며 동성애를 줄곧 반대해 왔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전제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에이즈는 문란한 성생활을 하거나 위험 성행위를 하게 되면 걸릴 수 있는 질병으로만 여겨지다보니 그 전제에 동성애자들은 문란한 성행위를 하는 비윤리적인 집단이라는 낙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논리대로 동성애자들이 음지에만 숨어있고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은 존재로만 남게 된다면 에이즈 확산을 멈춰 세울 수는 있는 것인가?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

1980년대 한국 사회에 최초의 감염인이 보고되면서 지난 20여 년간 정부가 취한 대표적인 정책은 ‘감염인 격리’와 ‘남성동성애자들을 고위험군화’하는 것이었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질병의 책임을 동성애자들에게 돌린 것과 동시에 공포심도 키웠다. 언론, 교육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순결’을 강조하며 에이즈하면 떠오르는 상징으로 죽음, 공포 등을 각인시켜왔다. 최근에 들어서야 ‘안전한 성관계’의 상징이라고 하는 콘돔사용을 강조하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여전히 ‘올바른 콘돔사용’보다는 ‘순결’을 강조하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1983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뷰캐넌은 에이즈를 두고 “동성애자들이 자연과의 전쟁을 시작했고, 자연은 가공할 만한 천벌을 내리기 시작했다”라고 말한 것처럼 한국 사회도 지나친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 1명, 2명 늘어나는 감염인의 수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을 뿐 에이즈 감염인 인권이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 동성애자들이 단체를 결성하고 PC통신으로 만남이 좀 더 수월해진 1994년 한국에이즈연맹(현 한국에이즈퇴치연맹)과 언론의 히스테리컬한 반응은 도를 지나쳤다. 1994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발족을 두고 ‘이제 한국사회도 공공연한 동성애자 단체의 등장으로 에이즈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동성애자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워하고 거부해했다.

HIV/AIDS는 질병이며 이에 대한 일차적인 접근은 의학 분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하지만 HIV/AIDS 감염인들이 편견과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인권과 사회정의의 문제이다. 감염인에 대한 인권침해와 차별, 편견은 감염인으로 하여금 적절한 정보와 치료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고 문제를 은폐하도록 만든다. 인권에 기반한 HIV/AIDS 치료 및 확산 저지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HIV 감염과 동시에 일어나는 인권침해 현실이 바로 에이즈를 확산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UNAIDS도 HIV/AIDS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대책 마련을 저해하고 확산을 부추기는 주요 요인으로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지적하고 있다. 2004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HIV/AIDS 인권권고안은 감염인과 여성, 수감자,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인권의 시각에서 법률적 정비를 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제 HIV/AIDS는 ‘질병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인권의 위기’에 처해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선후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에이즈 예방의 지름길

동성애자 억압과 차별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에이즈가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동성애자는 특정행위를 하는 사람들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육체적, 심리적으로 같은 동성에게 이끌림이 있는 존재의 의미이다. 행위가 존재를 우선할 수는 없다. 그리고 에이즈는 감기나 백혈병 등 여러 질병 가운데 하나다. 서로 너무 다른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마치 샴쌍둥이처럼 밀접하게 얘기되어온 것이 사실이고 현실이다. 빛바랜 낙인이라고 강조하지만 정부의 교육, 보건정책에서는 여전히 고위험군을 표적삼아 이루어지고 있는 에이즈 예방정책은 변화할 줄 모르고 있고 일반사람들로 하여금 퇴치할 수 있는 질병, 나와 무관한 질병이라는 막연한 안정감만 심어주고 있다.

기존의 예방정책의 패러다임은 변화해야 한다. 비감염인을 보호하기 위해 감염인과의 거리를 물리적, 심리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겠지만 이 정책은 비감염인들로 하여금 에이즈는 매우 두렵고 무서운 것이고 이미 감염된 사람들은 소외되거나 응징 받아 마땅한 존재로 그려지게 한다. 아울러 동성애자와 같이 질병에 취약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위협을 가한다. 이 정책을 계속 유지한다면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며 감염인들은 음지로 더욱 숨어들게 하여 결국 한국 사회에서 에이즈 예방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제 예방의 초점은 감염인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너무나 기초적인 사실이지만 감염인의 권리가 향상되고 양지로 나올 때만이 진정한 에이즈 예방을 이룰 수 있으며 동성애자들을 에이즈 고위험군으로 보는 지금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이즈 예방법 공동행동이 대선후보들에게 보낸 에이즈 관련 질의에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와 금민 한국사회당 후보만이 답변을 보냈다는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이미 에이즈는 국제 사회에서 예방과 지원, 관리정책 등 진일보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주요 이슈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17대 대선에서조차 선거놀음에 가려져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대선후보들은 에이즈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정책과 더불어 에이즈에 덧 씌어진 다양한 은유들을 걷어내기 위한 논의를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에이즈는 한국의 인권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다.

우리는 대선후보들에게 다음과 같이 에이즈 관련 정책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에이즈는 예방 가능한 질병이고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누구라도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지식과 수단으로부터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교육과 홍보의 주체인 정부는 질병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알리기보다 동성애자들의 질병으로 타자화시킴으로써 많은 사람들은 에이즈는 나와 상관없는 질병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언론을 통해 만들어진 왜곡된 공포는 입에 올리기 싫은 금기의 대상이 되었다.

1998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HIV/AIDS에 관한 지식과 교육프로그램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연령과 무관하게 ‘순결’보다 ‘인권’을 중심에 둔 교육을 국민들에게 다각도로 제공함으로써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동성애에 관한 편견이 사라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감염경로 파악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역학조사는 현재 개인의 실명정보는 물론 성적지향까지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런 실명관리로 인해 감염인들은 역학조사 자체를 꺼리거나 사실에 근거한 정보를 작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개인의 성적지향은 질병의 역학을 파악하는 데 불필요한 정보다. 오히려 ‘동성애자는 에이즈 고위험군’이라는 편견만 고착화시킬 뿐이다.

익명성과 자발성의 원칙을 기초로 하여 좀 더 실효성 있는 역학조사서를 만들어야 한다.
덧붙이는 말

정욜 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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