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김상진 씨 이야기

[연정의 바보같은사랑](96)

2012년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부당전보 철회’, ‘외주용역화 중단’, ‘고용안정협약 준수’ 등을 요구하며 38일간 세종호텔 로비에서 파업 농성을 했던 세종호텔노동조합(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의 투쟁이 8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현재 세종호텔노조는 “해고자 원직복직, 강제전보 철회, 성과연봉제,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를 걸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조 탄압의 일환으로 진행된 ‘부당한 전보명령’을 거부하고, 4년째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김상진 씨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기자 주>

해고자는 노동자의 꽃

이름 하나 남아 가슴에 있네 때로는 낙인 되어 불타고
때로는 희망되어 적시는 이름 하나 때론 근육보다 무겁게
때로는 날개보다도 가볍게.....


“가사가 생각이 안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기까지만 불러야 될 거 같아요. 목이 메는 거 같기도 하고요.”

3월 21일 서울 명동 세종호텔노조(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283번째 목요일 6시 집회. 이경옥(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비정규직특별위원회 위원장) 씨가 부르던 노래를 멈춘다. 이소선합창단 단원이기도 한 이경옥 씨는 세종호텔노조 해고노동자인 김상진 씨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발언 대신 노래 <이름>을 부르겠다고 자청한 터였다.

“투쟁하면서 힘들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나 자신을 위해 싸우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세종 동지들도 힘 잃지 말고, 김상진 동지가 현장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함께 투쟁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 길에 저도 동지들과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쉽게도 ‘특별공연’은 다음을 기약하며 마무리 된다. 제법 쌀쌀한 날씨, 시민 강수정 씨가 준비한 따끈한 제주 유기농 레몬차로 몸을 녹이며 집회를 시작한다.

“아까 민중의례 할 때 연세가 있는 여성 한분이 지나가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시더라고요. ‘매주 목요일 날 오시면 이 노래를 부르실 수 있습니다’라고... 할까 하다가 말았고요. 과거에 이런 경험이나 추억이 있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이날 집회의 자칭 ‘땜빵 사회자’ 김상진(세종호텔노조 전 위원장) 씨가 발언 사이사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분이 원래 이렇게 재밌는 분이었나?’싶게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진행에 ‘빵빵’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차현숙 사무국장이 발목을 다쳐 병가 중이라 최근 김 씨가 집회 사회를 보고 있는데, 첨석자가 많지 않은 발언 중심의 집회임에도 나름의 진지함과 즐거움이 있는 시간이다.

“예전에는 해고자가 노동자의 꽃이었습니다. 해고자가 해고를 당한 이유는 자본과 권력에 반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해고자가 앞장서서 투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각 노조에서 해고자 문제를 등한시 하고 있습니다.”

해고자의 신분으로 전해투(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임경택 씨도 세종호텔 해고자 김상진 씨에 대한 관심과 연대를 당부한다.

  3월 21일, 세종호텔노조 목요 집회 장면 [출처: 연정]

홍보 업무에서 연회장 웨이터, 부당전보 명령 거부하자 해고

자본과 권력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가장 앞장서서 투쟁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람. 바로 김상진 씨다. 2006년 세종호텔노조 위원장에 당선된 김상진 씨는 비정규직 입사 1년 후 정규직 전환과 연차 수당 수령을 가능하게 했다. 또, 민주적인 노동조합 운영과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하는 등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상진 씨는 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1년 뒤인 2016년 4월 19일 세종호텔 사측으로부터 징계해고를 당했다. 해고사유는 ‘직무명령 불이행’과 ‘무단결근’이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상진 씨는 1992년 20대 초반에 세종호텔에 입사했다. 1988년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88올림픽을 앞두고 관광육성 붐이 일었다. 상진 씨는 이 분야가 전망이 있겠다고 생각되어 종로에 있는 관광통역학원 호텔종사원 양성과정에 들어갔다. 공부를 마치고 다른 호텔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세종호텔에 입사해서 객실관리와 경리팀, 프론트 업무, 홍보 업무 등을 해왔다. 입사 전에 열심히 공부한 영어에 이어 입사 후에는 일어공부를 했고, 야간 대학에 다니는 등 회사 업무에 필요한 자기계발을 꾸준하게 해왔다.

인터넷 보급으로 각 기업들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인터넷 홍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던 2000년, 상진 씨는 이와 관련된 업무에 관심을 갖고 홍보 업무에 자원하여 해당 부서로 가게 됐다. 업무를 잘 수행하고자 일하면서 웹디자인 학원에 다니고, 사이버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 1월 세종호텔 사측은 상진 씨를 홍보업무에서 연회장 웨이터로 일방적인 전보명령을 했다. 전보명령은 상진 씨를 포함한 12명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들에게 행해졌다. 회사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2011년 복수노조 시행으로 설립돼 사측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세종연합노조’ 조합원 일부에게도 전보 조치를 했다. 상진 씨는 이것이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들만 표적으로 해서 기존 업무와 전혀 무관한 신설 부서와 업무로 전보한 것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부당전보를 ‘공정하고 정당한’ 전보로 위장하기 위해 ‘세종연합노조’ 조합원들을 의도적으로 섞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한국 다른 어떤 호텔에도 없는 조리지원 파트를 만들어 세종호텔노조 조합원이던 30년 경력의 조리사를 이곳으로 보내는 일도 있었다.

“몇 십 년 동안 해온 전문분야가 있는 거잖아요. 호텔 업무 특성상 현장 노동자들은 본인이 요청하는 경우가 아니면 이런 경우 나가라고 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웨이터도 나름의 전문성과 스킬을 필요로 하는 업무에요.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공격한 것과 마찬가지죠. 이런 부당한 인사명령을 수용할 수 없었고, 전임 위원장으로서 이 투쟁에 복무해서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상진 씨는 전보명령을 거부하고 예전에 근무하던 곳으로 출근을 계속했다. 중간에 원하는 부서를 얘기하면 보내주겠다는 사측의 회유도 있었지만, 조합원 12명 전체에 대한 부당전보 철회를 요구하며 거부의사를 밝혔다. 한 달 후에 세종호텔 사측은 상진 씨의 책상을 빼고, 그 자리에 짐을 잔뜩 갖다놓았다.

“화도 나고, 좀 허탈하기도 했어요. ‘회사가 이런 치졸한 행동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며칠은 플라스틱 간이의자를 갖다놓고 앉아있었어요. 그런데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너무 미안해하는 거예요. 그 직원들에게는 불편을 주지말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고 나서 회사가 사무실 열쇠를 바꿔버려서 그 사무실로 더 이상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출근을 위해 열려던 문은 벽이 되어버리고, 상진 씨는 23년 근무했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렸다. 그 후 출근 카드를 찍고 노조사무실에 출근하고, 거리에서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게 됐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책상이 치워져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버티면서 얼마나 서러웠을까?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무실 문을 열고 출근하기 위해 열쇠를 넣어 돌렸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을 때의 그 황망한 심정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담담하게 그때 상황을 이야기하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부당해고 소송을 진행했지만, 법은 사측 편을 들어주었다. 지방노동위원회부터 대법원까지 그 전보명령이 “경영상 필요한 정당한 인사권 행위”이고, 이를 거부한 상진 씨에 대한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심지어 대법원에서는 심리조차 안하고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했다. 세종호텔 사측은 해고무효 소송비용 1700만원을 상진 씨와 세종호텔노조에 청구했다.

“해고자 생활이 재정적으로도 가족적으로도 어려워요. 사회적으로도 해고자 신분이 어렵고 힘들죠. 하지만, 부당전보 명령 거부한 걸 후회 하지는 않아요. 해고자와 원래 있던 부서가 없어진 허지희 조합원 말고는 최근에 다 원직으로 복귀했거든요. 노조가 힘이 없어 4년이나 걸렸지만, 보람이 있어요.”

  3월 21일, 세종호텔노조 목요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김상진 씨 [출처: 연정]

승리라 카는 건: ‘맛집’ 제육덮밥을 기다리며

10명 남짓한 인원으로 시작한 집회에 시간이 갈수록 참가자가 늘어난다. 하루 근무나 일정을 마치고 속속 달려오는 이들이 있다. 얼마 전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투쟁으로 426일 굴뚝고공농성을 했던 박준호 씨와 33일 단식농성을 했던 차광호 씨도 합류한다. 아직도 보식 중이라는 차광호 씨가 수척한 얼굴로 마이크를 잡는다.

“아까 승리라고 이야기 했는데, 과연 어떤 게 승리일까요? 저희들은 승리보고대회라고 이야기하지는 못하고, 조만간 투쟁보고대회를 할 예정입니다. 승리라 카는 건 다른 게 없습니다. 굴뚝 고공농성 426일 하던 게 잠시 매듭지어진 겁니다. 하지만 저희가 바라고 요구했던 것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습니다.”

차광호 지회장은 이날도 하반기에 예정된 복직 관련해서 사측과 교섭을 하고 왔다고 했다. 4월 말까지 단체협약 체결을 하기로 했는데, 112조항 합의를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해고자 원직복직, 강제전보 철회, 성과연봉제, 비정규직 정규직화’ 4대 요구안을 걸고 투쟁하고 있는 세종호텔노조 역시 이것이 투쟁의 끝은 아닐 것이다. 상진 씨는 회사와의 싸움은 과정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복직돼도 싸움은 끝나지 않을 거예요. 어떤 형태로든 싸움이 되겠죠. 끝까지 투쟁하는 노동자로 살고 싶고 싸울 겁니다. 승리를 꼭 만들고 싶어요.”

집회가 중반을 넘어갈 즈음, 고기 볶는 맛있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집회 장소 옆 밥차에서 ‘집밥’ 회원들이 집회 후에 함께 할 식사 준비로 분주하다. 고기와 같이 먹을 막 씻은 싱싱한 상추와 방풍나물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오늘 메뉴는 식사도 되고 안주도 되는 맛집 제육덮밥 입니다. 유명한 비법을 맛집 가서 배운 것 같지는... 않고,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해서 매니저님께서 열심히 준비하고 계십니다.”

외로움이 가장 힘들어요

시의적절한 사회자의 코믹한 멘트와 함께 ‘집밥’ 운영위원 배재근 씨가 소개를 받고 앞에 나온다. 배씨는 최근에 연대했던 금속노조 서울지부 성진CS 여성노동자 투쟁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조 설립을 하자 위장폐업을 한 사측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고 했다. 배재근 씨의 발언이 끝나자 김상진 씨도 청와대 앞에 일인시위를 하러 갈 때 종종 만났다는 이야기를 한다. 참석 인원이 20명 내외인 집회이지만, 세종호텔노조 목요집회는 여러 투쟁사업장 소식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세종호텔노조 투쟁에 함께 하고 김상진 씨에게도 큰 격려를 보내주고 있다. 열심히 싸우고, 상진 씨를 챙겨주는 조합원들도 고맙다. 하지만, 외부에 쉽게 얘기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다.

“힘든 거요? 외로움이 가장 힘들어요. 다른 사업장은 집단해고라 같이 뭔가 해 볼 수 있는데, 저는 혼자 회사 공격을 받으면서 싸우니 힘들고 외로워요. 제가 맨 날 웃고 다녀서 그런 건지... 제가 복직 의사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도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길게 싸운 분들 앞에서 몇 년 안 된 사람이 내색하는 게 좀 그래서 나의 힘듦을 표현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세종호텔노조 해고자는 총 세 명인데, 다른 두 명은 생계를 나간 상황이라 상진 씨만 혼자 노조에서 지급하는 최소 생계비를 받으며 투쟁을 하고 있다. 다른 조합원들은 안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외로울 때가 많다. 전업으로 투쟁하는 해고자가 한 명이다 보니 복직을 위한 투쟁계획을 세우기도 여의치 않을 것이다. 하루 빨리 일터로 돌아가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가족들은 상진 씨의 투쟁을 지지해주고 있는지 물었다.

“지지가 어렵죠. 옳다고 하니까 말릴 수는 없고, 그렇게(투쟁을 하겠다고) 판단한 거니 잘 했으면 좋겠다고 해요. 얘기한다고 해서 말 들을 사람도 아니고... 지지까지는... 그냥 잘 견뎌나가길 바란다는 정도? 이게 지지인가요? 지지네요.(웃음)”

오는 4월 19일이면 상진 씨가 해고된 지 3년이 된다. 천일이 넘는 시간이다. 2012년 1월 38일 간의 파업농성을 기점으로 시작된 장기투쟁도 7년이 됐다. 예전에는 투쟁 3백일, 5백일만 돼도 이를 기억하고, 그간의 고생을 위로하며 격려하면서 힘을 모으는 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천일 이천일이 대수롭지 않은 분위기가 됐다. 하지만,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절박함은 기간과는 무관하다.

영어랑 일어로 잠꼬대, 빨리 현장 가서 일하고 싶어요

“우리 세종호텔 투쟁도 오래 되었는데, 승리해서 끝내야죠. 저도 진짜 빨리 현장 돌아가서 일하고 싶어요. 입에서 영어랑 일어가 막 튀어 나올라고 해요. 영어랑 일어로 잠꼬대 할 것 같아요. 나의 능력을 빨리 보여주고 싶어요. 영어시험 보면 늘 직원들 중에 1등 아니면 2등을 했어요. 왜 웃으세요? 본인은 상 타봤어? 사회도 영어로 하고 싶은데, 못 알아들으시잖아요. 현장에 가서 하고 싶거든요. 올해는 반드시 돌아갈 수 있는 투쟁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집회 마무리 즈음. 김상진 씨가 또 한 번 웃음을 선사한다. 웃고 나니 왠지 허전하고 씁쓸하다. 해고당한지 만 3년이 되어가는 해고노동자가 잠꼬대를 외국어로 할 정도로 간절하게 일터로 돌아가서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말 그대로 ‘웃픈’ 이야기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해고노동자의 심정이다.

상진 씨는 세종호텔에서 일명 ‘상돌이’였다.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손님들의 불편 사항을 해결해주어 ‘모범상’을 수차례 받았다. 또, 사내 어학시험이 있으면 1~3등은 상진 씨 차지였다. 그래서 동기들보다 승급도 빨랐다. 세종호텔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이 있는 그였기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신에게 ‘해고자’ 낙인을 찍은 세종호텔에 서운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예전에는 호텔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호텔 노동자라고 하면 ‘술집 웨이터’나 ‘호텔보이’ 같은 인식이 있었거든요. 드라마 <호텔리어>(2001년)가 방영되면서 인식이 그나마 좀 나아진 거 같아요. 20대에 들어와서 여기가 사실상 첫 직장인데, 애정이 많았던 만큼 마음 한편에서는 불만도 많았어요. 롯데나 신라, 하얏트 같은 소위 메이저 호텔들에 비해 근로조건이 많이 좋지가 않았거든요.”

입사 초기에는 연초에 세종호텔을 그만두고 다른 메이저 호텔로 이직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연례 행사였는데,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20대를 그렇게 보내고 30대를 맞이한 상진 씨에게 새로운 변화의 시기가 시작된다.

“내가 세종호텔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게 된 거죠. 그러면서 노조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20대부터 40대까지 내 청춘을 여기서 다 보냈는데, 노조활동을 하고 회사가 잘못한 것에 반대 목소리 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어요. 해고의 부당함을 증명하고, 명예롭게 복직하고 싶어요. 정년까지 10년 남았는데, 정년까지 세종호텔에서 잘 마무리 해야죠. 해고가 되고 투쟁하면서 힘든 것도 있지만, 많이 배우고 느끼는 것도 있습니다. 해고도 제 삶의 일부가 되겠지요.”

상진 씨는 세종호텔 조합원들의 투쟁과 함께 상급단체와 연대동지들의 연대를 요청한다. 최근 조합원들의 원직복귀로 강제전보의 상당부분이 철회됐고, 사측이 행한 전보가 부당했다는 것이 입증이 됐다. 상진 씨는 ‘이제 나도 원상으로 돌아가도 되지 않나?’하는 마음이 요즘 많이 생긴다고 했다.

미래의 이름, 노동자

마지막 발언자인 박춘자 세종호텔노조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는다. 박 위원장은 전날 만났던 단식농성 하고 있는 콜텍 임재춘 조합원이 “세종은 그래도 사람이 모여서 집회를 한다”며 부러워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슬프다고 했다. 박춘자 위원장이 상진 씨의 외국어 실력을 입증해준다.

“우리 해고자 김상진 동지, 거짓말 안하고 영어 잘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나이 들면 잊어버리는데, 잊어먹기 전에 복직해서 써 먹어야 해요. 2019년에는 원직복직과 나머지 요구사항이 모두 관철될 수 있게 세종 호텔 앞에 사람이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모여서 항의하고 주장해야 할 겁니다. 제가 몸이 안 좋아 같이 식사는 못하지만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끝까지 투쟁하고 버텼으면 좋겠습니다.”

체기가 있어 얼굴이 창백한 박 위원장은 앉아있기도 힘든데, 집회에 참석 했다고 한다. “전날 비도 오는데 선전전을 하고 늦은 저녁을 먹어 체한 것 같다. 위원장 자리가 힘든 자리.”라며 김상진 씨가 따뜻한 공감과 위로의 말을 전하며 박수를 청한다.

마지막으로 다 함께 세종호텔을 바라보며 <파업가>를 부르고, 세종호텔 앞에 깔판을 깔고 둘러앉아 ‘집밥’에서 준비한 제육덮밥을 먹으며 일상을 나눈다. 집회가 끝날 때쯤이면 참석자가 많이 늘어나는데, 다사다난한 봄날 이어서일까. 처음보다 인원이 많이 늘지는 않았다.

불이 환하게 켜진 세종호텔을 바라본다. 저 안에 땀 흘리며 열심히 요리를 하고 친절한 미소로 투숙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들이 있다. 화려하게 빛나는 세종호텔 이름에 가려진 고단한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모습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무수히 많은 투쟁사업장과 투쟁사업장 노동자, 그리고 해고노동자들이 있다. 그 속에서 김상진 씨를 포함한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들을 기억하는 것도 쉽지 않다.

늘 빛날 수는 없지만 늘 기억하고 늘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그이들 자신과 우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소중하고 빛나는 이름 세종호텔노조 김상진 조합원과 그의 동료들이 함께 웃으면서 일하고 투쟁할 그날을 그려본다.

아아 노동자 누구의 이름도 아닌 모두의 이름인 노동자
이어져 내려온 역사의 줄기의 미래의 이름 노동자

이름 하나 남아 가슴에 있네 때로는 낙인되어 불타고
때로는 희망되어 적시는 이름 하나 때론 근육보다 무겁게
때로는 날개보다도 가볍게 어둠 속 빛보다 찬란하게
빛 가운데 황금보다 무겁게 아아 미래의 이름 노동자

- <이름>(김정환 시, 이현관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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