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의 결말은 정치적 야합의 축제

[기자의 눈] 6차 협상과 신자유주의의 미래, 끝장 투쟁의 ‘끝장’은?

한미FTA 6차 협상이 끝났다. 정부는 당초 핵심 쟁점인 무역구제, 의약품, 자동차, 위생검역을 제외하고 일반 쟁점에서 최대한 합의를 본다는 목표를 세웠다. 양국은 ‘가지치기’ 수준에서 합의를 이뤘으며, 핵심 쟁점들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했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핵심 사항의 진척 정도를 두고 “커틀러 대표가 (워싱턴에) 돌아가서 숙제를 잘 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커틀러 대표가 가져간 ‘숙제’란 건 뭘까? 도대체 17개의 분과에서 ‘가지’는 뭐고 ‘몸통’은 뭐란 말인가? 협상이 종반부에 치닫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국민들은 알 수가 없다. 협상 기간 중 한국의 전략 보고서가 노출됐다며 한차례 소동이 빚어지긴 했는데, 노출된 내용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알려주는데 정부도 언론도 친절하지 않다. 오로지 ‘협상 전략이 노출되면 안 된다’는 당위와 ‘누가 빼돌렸냐’는 심리 게임만이 공회전을 반복하며 먼지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커틀러에게 ‘정치적’ 숙제...한국은 ‘결단’ 끝

한미FTA, 즉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철저히 ‘그들’만의 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오는 2월 11일로 예정된 7차 협상 전까지 “고위급 접촉이 잦아질 것”이라는 방침은 ‘그들’만의 협상이 점점 더 작고 깊숙한 밀실로 들어갈 것이라는 예고다.

한국 측의 협상전략보고서는 신주단지 모시듯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심지어 국회 FTA특위 위원들조차도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장소에서 열람할 수 있으며, 복사도 금지된 채 간단한 메모만이 허용될 뿐이다. 보고서 노출 파문 당시 “유출에 대비하여 국회 제출용을 따로 만들어두었다”는 김종훈 수석대표의 발언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한다. 대체 얼마나 복잡다단한 논리와 고차원적인 전략을 담고 있길래 보고서는 이토록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는 것일까?

적어도 협상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정부 보고서에 적힌 내용은 아마 딱 한 줄이 아닐까하는 의혹을 거둘 수가 없다. “정치적 결단에 따라 해결하라.” 익히 알고 있는 ‘무역구제-자동차 · 의약품’ 빅딜에 이어 ‘농산물-섬유’ 빅딜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역시 물밑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이른바 ‘빅딜’이라는, 몇몇 정부 관료들이 거국적 차원에서 배포도 좋게 서로의 에이스 카드를 주고받는 듯한 그림 속에서 풍기는 구린내는 무엇일까?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타결될 것”

한미FTA에서 가장 큰 성과를 얻을 것으로 지목됐던 분야가 바로 무역구제다. 지난 5차 협상 이래 한국이 제시했던 무역구제 관련 6가지 요구 사항(△양국간 무역구제위원회 설치 △반덤핑 조사 때 사전통보와 협의 △산업피해 판정 때 국가별 비합산(덤핑에 의한 산업피해 평가시 한국산만 고려) △수량제한 및 가격약속 활성화 △이용가능한 사실(Facts available):반덤핑 자료조사 시 이용가능한 자료로 판정), △다자 세이프 가드 적용 배제)은 미국이 지난 12월말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 내용이다. 협상은 미국의 무역구제 관련 TPA 시한인 12월을 넘기면서 이미 ‘게임 아웃’ 됐다.

6가지 내용 중 ‘국가별 비합산’을 제외한 나머지 5가지 내용은 미국의 법률 개정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실효성도 없는 내용으로, 지난 5차 협상 때부터 문제가 됐다. 6차 협상에서 커틀러 대표의 “한국이 무역구제에 대해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경우 적극 검토할 의사가 있다”는 발언은 미국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거저 주는’ 내용에 대한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협상단은 무역구제의 비참한 성과를 앞세워 자동차, 의약품에서 ‘퍼주기’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특히 의약품 분과에서 미국의 요구대로 의약품 특허권이 연장되면 향후 5년간 최소 5조 8천억 원의 약제비 추가부담이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농산물-섬유 간 빅딜도 농산물에서 막대한 피해(농촌경제연구원 최대 2조 2800억 원 피해액 추정)가 예상되는 바, 도무지 균형이 맞지 않는 협상이다. 협상단이 일관적으로 주장하는 “쌀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멘트 역시 허구다. 2004년 쌀협상에서 미국은 이미 의무수입물량을 확보했고, FTA를 통해 쌀 개방을 확대하는 것은 WTO 위반이다. 쌀 개방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줄다리기는 ‘그래도 쌀만은 지켜냈다’는 한국의 명분을 위한 연극이다.

쇠고기 수입 재개 역시 “뼛조각이 나온 것은 반송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먹으면 된다”는 김종훈 대표와 “오는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판정에 따라 결정한다”는 이태식 주미대사의 발언에서 정부의 방침 변경을 시사하고 있다. ‘뼛조각 발견 시 전량 반송’이라는 기존 원칙에서 개방 수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얻을 것은 없고 잃을 것만 있는 협상에서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바로 ‘정치적 결단’이다. 커틀러 미국 대표가 한국 측으로 받은 숙제 역시 ‘정치적 제안’이다. 의회에 긴밀히, 매시기마다, 완전히 통고를 원칙으로 하는 미국 협상단과는 달리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한국 협상단의 전략은 ‘정치적 전략’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19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결국 한미FTA 타결 여부가 판정될 것이다”고 밝혔다.

투자, 서비스 ‘점입가경’...국내 ‘자발적 자유화’에도 주목해야

6차 협상에서 핵심 쟁점을 제외한 ‘가지치기’에 성공했다는 정부 발표도 사실과 다르다. 투자, 서비스, 지적재산권, 통신 전자상거래 등의 중요 쟁점들에 대해 대부분 합의했기 때문이다.

금융서비스 분과에서 국책금융기관으로 분류되어 협정에서 배제되어 있었던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개방 대상에 포함되면서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이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또 금융 정부조달의 내국민대우를 허용해 미국인이 국민연금 등 한국 정부 자산의 운용과 국채시장 참여에 있어서 동등한 자격을 부여받게 됐다.

지적재산권 분야에서는 일시적 저장을 복제권 침해로 인정함에 따라 파장이 예상된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컴퓨터에 일시적 저장이 되는데 이를 저작권 침해로 인정해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저작물의 접근통제권을 인정하는 기술적 보호조처를 허용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돈을 내고 DVD나 프린터 카트리지 등을 샀어도 지역코드가 있으면 국내에서 해당 제품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 신금융서비스 개방, 전문직 상호자격 인정,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등 굵직한 사안들이 공개되지 않은 채 산적해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19일 같은 방송에서 “방송, 영화, 디지털 콘텐츠 부분이나 농산물 부분, 투자자 정부 소송제와 같은 극히 민감하고 중요한 부분은 어떻게 됐는지, 이런 부분이 다 고위급으로 미뤄졌는지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6차 협상에서 이들 분과가 핵심 쟁점들에 비해 ‘일사천리’로 타결될 수 있었던 까닭은 한국의 ‘자발적 자유화’ 조치가 미국의 의도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 자유화’로 불리는 국내법 개폐 과정을 추진해왔다. 경제자유구역법, 공공서비스 민영화 조치, 비정규직 로드맵 통과로 이어지는 움직임은 최근 발표된 ‘서비스산업경쟁력강화종합대책(서비스종합대책)’으로 노골화되고 있다.

다가오는 7차, 8차 협상에서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2~3월 끝장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범국본은 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미FTA 협상과 ‘협상국 없는 FTA’로 불리는 국내 자발적 자유화 조치까지, 안팎의 적과 동시에 싸워야 할 형국이다. ‘끝장 투쟁’은 과연 무엇을 끝장내야 할까? 범국본은 눈앞의 협상을 넘어 유럽, 아세안, 캐나다, 일본, 중국까지 이어지는 FTA 도미노와 정권과 자본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전면화에 이르기까지 시야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