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와 헤게모니 정치

[배성인의 정치적 사유]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남북관계를 평가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을 맞이하여 대통령의 상징인 ‘윈칙과 신뢰’가 무너졌다는 일반적인 평가 속에서 남북관계와 외교 분야에서 만큼은 긍정적인 평가다. 자체적으로 조사했든 안했든 거의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국정지지도가 60%를 넘어섰다. 그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남북관계의 경우 개성공단 정상화와 이산가족 상봉이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거나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거의 없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국민들이 국정운영에 만족할 수 있도록 권력층이 불편한 뉴스를 보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것은 지지도만큼의 성과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상호관계, 즉 쌍방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느 일방에 의해서 그 성과를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개성공단정상화나 이산가족상봉은 남북한 서로가 현재의 상태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따라서 양측 모두 남북관계 정상화를 원했기 때문에 나타난 성과라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남북관계를 ‘고장난명(孤掌難鳴)’이나 ‘적대적 의존관계’로 규정하는 이유다.

차별화된 대북정책, 그러나...

북한의 3차 핵실험과 함께 시작된 박근혜 정부에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된 대북정책을 내세웠지만 전쟁위기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의 긴장을 막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출발은 태생적 한계로 인하여 스스로 자기모순적 행태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지난 1년은, 비록 대화의 끈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안보중시가 대화노선을 압도해서 안보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를 규정한 시간이었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인사들이 자신들의 대북정책 실패의 책임을 박근혜 정권 창출에 대한 기여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안보를 축으로 한 우경화로 작동하도록 역할을 하였다. 그럼으로써 지난 1년은 보수세력들이 일치단결을 바탕으로 종북척결과 공안몰이로 소비하였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정상화에 더욱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4.11 남북대화 제의, 6월 장관급 회담 제의와 7차례에 걸친 실무회담 끝에 개성공단을 정상화 시켰고, 9월부터 시작된 이산가족상봉 논의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월 20일 개최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의 로드맵으로 제시한 것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였다. 신뢰 프로세스는 과거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유화 또는 강경 한쪽에 무게 중심이 쏠렸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마련됐다.

과거 정부 대북정책의 장점을 수용, 대화와 압박이라는 두 정책 수단을 균형 있게 활용하면서 북한의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겠다는 게 정책의 핵심이다. 그 결과 남북은 2014년 2월 7년 만에 고위급 접촉을 열고 관계 개선의 큰 그림을 그렸다. 특히 2월 20일 이산가족 상봉을 조건 없이 진행하도록 확인한 것은 새 남북관계 원칙을 북측에 관철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박근혜 정부가 남북 신뢰 구축의 첫 단계로 이산가족 상봉을 꼽아온 만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이번 합의를 통해 본 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체적인 그림과 변화가 필요한 대북정책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그 미래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 비핵화 진전과 얽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확실한 비핵화 의지와 실질적 행동을 그 출발점으로 규정해왔다. 반면 북한은 이번 2월의 고위급 회담에서 핵 문제는 남북 간 협의 사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당면 현안 때문에 핵 문제를 고위급 회담 테이블에 올리지 않아 합의가 가능했다는 점과 향후 핵 문제를 주의제로 다루려 할 경우 대화가 벽에 부딪힐 것이라는 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남북이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선 2010년 천안함 사태에 따른 대북 제재인 5·24 조치를 넘어야 한다. 북한이 다음 회담에서 5·24 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 문제의 매듭을 풀지 못하면 남북관계는 답보 상태에 머물 공산이 크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상당부분 북한내부의 사정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북한의 대남정책과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김정은의 시대적 과제는 선군정치의 계승이라는 선대 수령의 유훈을 지속함과 동시에 인민생활 향상을 통한 대중적 정당성의 확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은 선군정치의 충실한 계승을 선언함과 동시에 시대적 과제로 나선 인민생활 향상을 제일의 목표로 제시함으로써, 김정일 시대의 경제건설에 방점을 찍기 시작한 강성대국 건설의 노선 또한 지속할 것임으로 선언하였다.

북한은 2012년 4월 헌법을 개정하여 핵무장국가임을 명기하고, 2013년 3월 ‘핵무장 및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함으로서 핵 무장국가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계속 추구할 것임을 선언함과 동시에 경제건설을 병기함으로써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김정은 시대의 과제 역시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따라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장성택 숙청에 따른 기존 노선 혹은 정책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은 장성택 숙청이 노선과 정책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장성택 숙청에 따른 ‘북한 급변사태론’ 혹은 ‘북한 붕괴론’은 별다른 근거도 없으며, 장성택 숙청에 대한 과도한 해석에 기반하고 있다.

북한은 경제건설을 위해서도 평화롭고 우호적인 대외관계가 필요로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마련을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개선이 중요한 지렛대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2014년 신년사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시기와 조건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처럼 사실상 북한의 붕괴 혹은 급변 사태를 바라는 식의 희망에 근거한 대북 정책이 가시화될 경우, 북한은 이를 철저히 거부하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남한 대북정책의 실패로 귀결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대북접근 방식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접근 방식은 너무 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유연성이 부족하다. 또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비교적 국제적 지지를 받고 국내적으로도 이의가 적지만 구체적 그림이 나오지 않아 모호하다. 아울러 3차 핵실험 이후 북핵 문제의 진전이 없는 가운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천안함, 연평도 포격 문제를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풀어낼지도 숙제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대박론’은 허구에 불과하다. 결국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지 않으면 행복한 통일시대가 아닌 불행한 분단시대가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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