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혁명의 승리와 베네수엘라 혁명의 위기

베네수엘라 의회 선거

12월 6일 열린 베네수엘라 총선은 집권 베네수엘라 통합사회주의당(PSUV)의 완패로 끝났다. 8일 현재 최종 결과가 집계되지 않았지만, 반정부 야당연합인 민주주의 원탁회의(MUD)는 167석 가운데 111석을 얻었고, 집권여당은 55석에 머물렀다.

한마디로 야당연합의 압승이자 집권당의 완패다. 아직 최종 집계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과 통합사회주의당의 패배는 볼리바르주의 혁명 17년 역사상 최대의 패배임에 틀림없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선거결과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선거가 “야당의 승리가 아니라, 헌법의 승리”라고 못박았다. 그리고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라, 투쟁해야 할 때이며,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선거를 둘러싼 공방 - 폭로된 진실

전반적으로 이번 선거는 야당이나 국제언론 등의 유언비어와는 달리 폭력 사태나 분쟁 없이 평화적으로 치러졌다. 야당은 선관위가 요구한 결과 승복 서약서에 서명하지 않았고, 모든 핑계로 시비를 걸면서 정부와 선거 자체를 공격했다. 이런 시비의 공세에는 미주기구(OAS) 사무총장부터 데이비드 카메론 영국총리와 힐러리 클린턴까지 가세했다.

그러나 선거 직후 모든 시비와 논란은 사라졌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선거제도의 운영과 관리는 지미 카터가 말한 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음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우파의 승리에 도취한 지도자들의 추잡한 위선도 묻혀졌다.

선거 결과 개괄

이번 선거의 유권자 참여율은 약 1900만명 유권자의 74.25퍼센트였다. 2010년 선거의 참여율 66.45퍼센트에 비해 높은 투표참여율이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Venezuelan_parliamentary_election,_2015#cite_note-CNE_data-3

2010년 박빙의 선거결과와 비교하면, 이번 선거에서 반정부 연합의 득표는 240만표 이상 증가한 반면, 집권당의 득표는 채 20만표 증가에 머물렀다. (PSUV 545만1422표, 48.2%, 96석 대 MUD 533만4309표, 47.2%, 64석)

그리고 부정확하기로 소문난 베네수엘라의 여론조사는 심한 편차를 보여 신뢰하기 힘들었지만, 야당연합의 승리를 거의 일관되게 예상했다. 그러나 PSUV의 득표율은 예상치에 비해 10퍼센트 이상 높았다.

패배의 원인 - 문제는 자본주의다

이번 선거에서 통합사회주의당이 패배한 핵심적인 원인은 마두로 정부에 대한 대중적 불만, 특히 경제전쟁에 대한 부실한 대처이다. 2년반 이상 진행된 경제 사보타지와 매점매석으로 인한 생필품 부족사태가 결정적이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유동적인 중간층의 표가 야당으로 몰리게 했다.

야당과 주요 언론의 집요한 반정부 공세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정부세력의 악선전 공세는 가히 살인적이었고, 이번 선거에서 야당연합은 가두 캠페인보다는 소셜미디어에 집중했다.

또한 외부적으로 아르헨티나 우파 후보의 대선승리도 이번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마우리시오 마르시 대통령 당선자는 메르코수르 경제공동체에서 베네수엘라를 제명하겠다고 나서는 등 우파연합을 공공연하게 엄호했다.

또한 니콜라스 마두로의 지도력 부족, 대중과의 소통 취약, 집권당 내부의 부패 등 차베스 진영 내부의 문제점 역시 패배의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사실상 PSUV는 2010년 선거만큼의 득표를 유지했지만, 핵심 지지층만의 표로는 승리할 수 없었다. 동요하는 부동층의 압도적 다수가 정부에 등을 돌리고 야당연합에 표를 던졌다. 다른 측면에서 선거연령이 낮춰져 과거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 역시 정부에 비판적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전망 - 새로운 계급투쟁의 국면

득표와 의석의 편차라는 문제에도 압도적 승리를 거둔 야당연합은 장관과 부통령의 해임은 물론이고, 대법원 판사 교체와 헌법 개정, 소환투표 등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개인적 발언이었지만, 주요 야당인사들은 이번 선거가 마두로 정부에 대한 신임투표라고 주장해 왔고, 새 의회의 임무는 마두로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다.

따라서 향후 베네수엘라 정국은 단지 여소야대 상황으로 치부할 수 없는 폭발적 대치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3년과 2014년 폭력사태를 주도하고 선동한 반정부 진영 내 극우파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번 선거의 패배는 충격적이다. 베네수엘라 볼리바르주의 혁명은 위기에 직면했다. 우파와 자본, 제국의 집요한 공격에 굴복했다. 1973년의 칠레혁명의 비극처럼 결국 경제가 체제를 근저적으로 뒤흔들었고, 2년반이 넘는 경제공세 속에서 차베스 운동은 중간층을 빼앗겼다.

이 충격적 패배는 베네수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르헨티나 대선과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우파의 승리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국의 귀환을 알리는 징조일 수 있다. 특히 브라질 지우마 후세프 정권 역시 부패로 인한 탄핵위기에 몰린 만큼, 핑크타이드의 물결 전체가 일정한 위기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장기화되는 전지구적 경제위기의 책임이 반신자유주의 좌파정권에게 돌려지는 다소 역설적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이번 선거패배는 명백히 차비스타 혁명세력이 선거공간의 계급투쟁에서 패배한 것이지만, 계급투쟁의 공간이 선거정치에 비해 폭넓고 다양하다. 이번 패배로 베네수엘라 혁명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위기에 처한 것은 사실이지만, 혁명이 끝난 것은 아니다.

마두로는 PSUV 당원을 포함한 차비스타 진영에 평가와 반성의 시간을 요청했다. 과연 볼리바르주의 혁명의 주체들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지만,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국제적 연대와 지지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태그

베네수엘라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원영수(국제포럼)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