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가능성으로의 ‘과정들’에 관한 선집

[새책] 정동 이론 (멜리사 그레그, 그레고리 시그워스 저, 갈무리)

<정동 이론>은 해외를 비롯하여 국내까지 계속해서 깊은 관심을 받고 있는 ‘정동’에 관해 5개의 핵심적 주제를 토대로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익히 들어온 용어라 익숙했지만 그 단어가 지닌 다소 희미한 의미로서 ‘정동’에 대한 기억이 있다. 솔직히 정동이란 간단히 단 하나의 단어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동 이론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덧없음과 모호함을 생각해볼 때, 이 책 역시 정동에 대한 하나의 핵심적인 이론을 도출하고자 여기저기 진행된 정동 이론들을 연결한 것은 아니다. 정동 이론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정동에 대한 명백한 이론화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선집(저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 책은 명백하게 선집이다)은 독자들이 정동을 실제로 느끼고 행동하기를 원한다.

본문에 의하면 정동은 사이(in-between-ness)의 한가운데서, 행위하는 능력과 행위받는 능력의 한가운데서 발생한다고 한다. 정동은 순간적인, 때로는 좀 더 지속적인 관계의 충돌이나 분출일 뿐 아니라, 힘들과 강도들의 이행(혹은 이행의 지속)이다. 정동은 다양한 마주침의 리듬과 양태를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일종의 신체적 능력의 기울기, 언제나 조정되는 힘-관계들의 유연한 점진주의로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요즘처럼 여러 가지 힘들이 조우하는 계기가 다양해지고 복잡한 시대에서 ‘정동’이 지닌 파급력은 그만큼 넓어질 것이다. 바로 책상 앞(또는 손 안)에서 쉽게 세계와 마주하는 시대가 된 지금, 정동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지금 내가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동처럼 일상에서 반복되고 지속되는 모든 것들이 정동의 자장 안에 놓인다. 하지만, 특별히 정동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 따로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동의 잠재력을 봤다고 할 수 있다(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영원히-모으는 힘-관계들’의 결착에 정동의 진짜 힘, 잠재력으로서의 정동이 있다면 2002년 자의건 타의건 상관없이 나에게는 광장에 모인 붉은 악마를 통해서 잠시나마 정동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광장에 나와서 봤던/보고 싶었던 것이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월드컵의 붉은 악마가 보여준 정동은 다시 촛불집회를 통해서 그것이 지닌 잠재력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이렇게 정동이 보여주었던 잠재력은 때로는 절망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정동이 지닌 희망과 위협의 모습 둘 다 보여주는데, 한쪽에서는 자본주의적 전체주의와 삶-세계 지배에 대항하는 힘으로 나타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의 ‘세계 만들기’worldings 표면-배치의 공간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마주침의 공간에서 정치는 보다 나은 삶을 향한 더 큰 잠재력으로 발휘되기도, 단순히 키치적인 B급 유희로 전락하기도 한다. 3.11사태 이후 후쿠시마에 대한 정보를 일본 정부가 철저히 차단했을 때, 대중들은 바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발화공간에서 후쿠시마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 내용은 보다 널리 확산되어 갔다. 부정적인 사례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그 어떤 광고 매체보다 파급력이 센 광고매체가 되고 있으며 기업의 광고는 때로는 지인을 통해서 때로는 익명성을 전제로 우리들의 일상을 침범해온다. 이와 관련해서 이 책에서 안나 깁스가 기술한 8장 정동이후가 좋은 인용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2부 미학과 일상에서 정동적으로 경도된 미학은 ‘과정의 진행 중임’의 뒤엉킨 미정형informe에 관심을 가진다. 다양한 정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느끼고, 쓰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정동과 미학의 결합은 본질의 문제보다는 ‘방식’manner의 문제이다. 이는 어떻게 다른 것들에 정동하고 정동 받는지가 문제가 된다. 5장에서는 미학의 문제에서 더 깊이 들어가 사회 미학과 정동에 대한 고찰을 제시한다. 여기서 정치는 경험에 의한 교육의 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한 접근법은 학교 급식을 단순히 영양적 도구로서가 아니라 다문화적인 음식을 통한 의사소통 교육의 방식으로 정치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례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소소한 일상의 정치가 된다.

‘소소한 일상의 정치’라는 단어가 정동 이론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표현일 것이다. 정동 이론은 ‘미명들의 목록’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지속적이며 약하게 빛나는 강도들의 점층적 변화로서 차이에 대한 정념[열정]이다. 갖가지 것들로 모인 정동들 및 몸들과 나란히, 언제나 인간-이상의 집단성으로, 인접성과 지속 속에서 끈질기게 남아있는 관계성인 것이다.

<정동 이론>은 그동안 지속적이면서 여러 가지 갈래로 이루어졌던 정동에 관련된 이론들이 서로 마주하고 부딪히는 발화 장소이다. 이 선집 속에서 정동 이론가들이 제시하는 각기 다른 입자들이 서로 충돌하고 파열하면서 흐름을 쉽게 알 수 없는, 마치 우리 주변에 유동하는 공기 같은 리듬으로 존재한다. 독자들이 선집을 통해 통일된 하나의 정전을 찾으려 노력하기보다는 각 장들이 지닌 간극과 공통점을 통해서 사유하고 느끼는 즐거움에 더 치중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러한 입자들의 간극 속에서 독자들에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연결들을 기대하고 완전히 새로운 관점의 발견을 느껴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관심과 흥분보다는 광활하게 무한한 세계로 여행을 떠나듯 모호함과 두려움을 먼저 마주할 수 있다. 정동의 희망과 약속보다는 위협과 절망감에 빠져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몸과 세계가 끊임없이 마주하며 ‘아직 아님’이라는 과정 속에서 더 풍부한 약속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면 이 선집의 역할은 충분하다.

나도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기까지 많은 마주함과 주저함이 지속적으로 몸과 세계를 통해서 스쳐 지나갔다. 이러한 정동 행위의 ‘아직 아님’속에서 나는 책을 통해서 느꼈던 찰나의 순간적인 감각을 서평에 담고자 노력했다. 그 과정은 물론 어느 하나의 느낌을 문자에 영원히 묶고자 함은 아니다. 이 서평 속에서 독자들이 각자 서로 다른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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