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금융화의 문화정치경제학

[주례토론회] 금융적 포섭을 통한 통치전략


발제 음성파일 바로 듣기(클릭)

질의 및 토론 음성파일 바로 듣기(클릭)



1. 투기적 삶의 유혹

노동자계급의 부와 소득을 착취·수탈하고, 자본주의적 권력관계를 강화하는 금융적 포섭은 금융투자의 합리성을 강조하는 금융적 주체화의 전략에 따라 억압이나 강제가 아닌 대중들의 ‘동의’를 통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었다. 금융적 포섭은 정부의 정책담론에서는 ‘금융의 민주화’ 과정으로, 금융기관과 금융미디어에 의해서는 저금리 시대의 합리적 경제행위로, 재테크 서적들에서는 자산증식의 기회일 뿐만 아니라 자유를 실천하는 윤리적 행위로 표상되었다. 그에 따라 개인들은 ‘금융적 포섭’을 착취와 억압이 아닌 자유의 실천으로 표상하고 경험하면서 금융시장의 적극적인 투자자로 거듭났다. 개별 금융적 장치들은 상이한 논리와 합리성을 제시했으며, 그러한 합리성들은 상호참조적으로 교차하면서 금융시장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환상과 믿음을 확산시켰다. 증권회사는 주식투자의 대박신화를, 자산운용사는 전문가에 의한 합리적인 투자를, 연기금과 보험사는 생애위험에 대비한 안전의 원리를 내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질적인 장치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한 금융적 주체화의 전략은 개인들이 자기책임의 원칙에 따라 금융투자는 물론 생애주기상의 위험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 ‘금융적 통치’와 투자주체의 정치적 형성

금융화를 계기로 금융기관과 금융적 주체에 대한 통치 양식에도 일정한 변형이 일어났다. IMF 외환위기가 발발하자 IMF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한국의 미흡한 금융감독체계를 지목하고, “운영 및 예산상의 자율성이 보장된 통합감독기구를 설치하여 부실금융회사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도록 권고”(금융감독원, 2009: 20)하였다. 금융감독원이 설립되기 이전까지 한국의 금융감독체계는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권역별로 분산되어 있었으며, 동일 금융권역 내에서도 해당 감독기관과 재정경제부 간에 감독권한이 이원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금융의 자유화, 탈규제화 등으로 금융회사 업무가 겸업화·다양화되고, 은행, 증권, 보험 상품의 성격을 모두 내포하는 파생금융상품이 개발되면서 다원적인 감독체계로는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에 정부는 컨설팅업체인 맥킨지(McKinsey)사의 자문을 받아 금융감독원 설립을 추진했고, 1999년 1월 은행, 비은행, 보험, 증권 등 4개 감독기관의 기능을 통합한 금융감독원이 출범했다.(금융감독원, 2009: 19-21)

정부는 금융감독원을 무자본 특수법인으로서 중앙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독립적인 특수 공공법인으로 법제화하였다. 금융감독원을 정부 조직이 아닌 독립된 공법인으로 법제화한 것은 “금융 감독기구가 정치적 압력 또는 행정부의 영향력에 의해 자율성을 잃지 않도록 함으로써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금융감독기능을 구현하기 위함”이었다. 금융감독원의 주요 설립목적은 금융산업의 선진화,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건전한 신용질서 확립, 금융수요자 보호로 규정되었다.(금융감독원, 2009: 27) 금융감독원의 성격 및 지위 규정은 새로운 금융적 통치 양식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정부의 역할이 직접적인 금융기관의 통제에서 금융시장 자체가 규율적 행위자가 되는 환경의 조성으로 이행했음을 의미한다. 과거 경쟁으로부터 금융시장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제 모든 금융행위자들 사이에 경쟁적 환경을 도입하는 것이 과제로 설정되었다. 금융기관의 전업화 원칙이 2000년대 이후 겸업화·대형화와 진입규제완화로 변화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이제 금융기관들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스스로 경영상의 자율성을 제고할 것을 요구받았다.

금융감독원의 금융소비자 보호체계와 담론은 그 자체 정부가 금융수요자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방식과 통치전략을 잘 드러내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2011년 발간한 「금융소비자 보호 백서」에 따르면 금융소비자는 “개인 또는 법인을 불문하고 금융회사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금융서비스 또는 금융상품계약 체결 등의 거래를 하는 상대방으로 정의”되며, 이러한 금융소비자에는 “은행의 예금자, 금융투자회사의 투자자, 보험회사의 보험계약자, 신용카드사의 신용카드이용자 등 금융회사와 거래하고 있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금융회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금융감독원, 2011: 8)고 명시하고 있다. 은행에 저축을 맡기는 예금자부터 신용대출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금융행위의 주체는 ‘금융소비자’로 규정되며, 일반적인 상품거래와 마찬가지로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금융적 주체는 오직 거래하는 상품이 금융상품이라는 점에서만 일반적인 상품소비자와 구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소비자에 대한 보호가 필요한 이유는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성과 교섭력의 부족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 소비자의 교섭력은 상품 선택의 다양성, 가격흥정 가능성, 거래교체 용이성, 정보의 대칭성 등으로 평가되는데, 금융상품은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금융회사와 가격을 흥정할 수 있는 상황이 제한적이고, 일단 거래가 이루어지면 상품교체가 어렵고, 금융소비자는 금융회사에 비해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금융감독원, 2011: 9) 그리하여 금융감독원은 “금융상품의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공정한 금융거래를 위한 교섭력의 균형을 도모함으로써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금융시장을 통한 자원배분의 최적화를 달성하는 것”(금융감독원, 2011: 10)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림 3.4>는 금융감독원의 소비자보호 업무가 크게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 제공, 금융소비자 재산 보호, 금융교육, 피해 구제 등임을 명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소비자업무 개요는 정부가 개인들의 금융거래에 부여하는 가치들과 통치전략을 잘 보여준다. ‘금융소비자 재산 보호’는 금융이 재산증식의 수단이며, 개인들의 금융투자 목적이 재산 형성임을 전제하고 있다. 그 외에 소비자정보 제공, 시장투명성 제고, 금융교육, 피해 구제 등은 개인들이 자율적으로 그러한 목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련의 보호 장치들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개인들의 금융행위를 직접 규제하거나 강제하지 않으며, 개인들이 스스로 정보를 획득하고 금융지식을 습득하도록 보조하는 역할만을 맡는다. 다만 불공정거래나 계약자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상담과 조정절차를 제공할 뿐이다. 시장에서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금융상품의 판매와 구매가 이루어지는 만큼, 공정한 거래를 통해 입은 투자손실은 전적으로 소비자의 몫이 된다.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은 시장 질서를 헤칠뿐더러 금융소비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금융소비자 보호업무 개요
출처: 금융감독원, (2011: 14)


2000년대에 금융감독원의 금융소비자 보호 활동이 주로 정보제공과 투명성 제고, 피해 구제와 같은 건전성 규제와 사후적 처리 위주였다면,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는 사전적 예방을 위한 금융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복잡한 파생상품 거래 등에 관한 금융소비자들의 금융이해력 부족이 지적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금융이해력이란 “개인의 경제활동에 수반되는 금융거래에 필요한 지식과 활용능력”(금융감독원, 2011: 311)을 지칭하는 것으로, 금융이해력의 향상을 통해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자기책임 하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금융소비자를 양성할 수 있다고 인식되었다. 요컨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교육은 경제생활에 필요한 금융지식을 교육함으로써 합리적이고 책임 있는 경제주체가 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며, 이러한 개인의 금융역량 강화는 합리적인 금융행위를 통하여 개인의 경제적 풍요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금융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프라로서 작용하게 된다.”(금융감독원, 2011: 311)

금융교육 담론은 단순히 기술적이고 교육적인 목적을 갖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금융화 시대 특유의 정치적 원리를 함축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사회경제적 현실의 원인은 개인의 문제로 전환되고, 금융위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되건 예외적인 현상이건 간에 ‘주어진 현실’로서 당연시된다. 따라서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은 개인의 역량이나 사적인 윤리의 문제로 환원되고, 새로운 현실에 대한 개인들의 적응만이 문제시된다. 요컨대 금융감독원이 제시하는 “국민=금융소비자라는 정체성의 등식은 금융화된 자본주의적 경제에서의 삶과 그것을 규율하는 정치적, 문화적 원리를 응축”하고 있다. “금융소비자로서의 국민은 ‘상상의 공동체’에 소속된 주체도 아니고 연대의 원리에 따라 공동의 생존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성원으로서의 성원 주체도 아니다. 이 주체는 자신의 생존과 재생산을 금융 혹은 금융적 실천이 제공하는 표상(생애주기, 신용, 금융이해력 등)에 따라 자신의 삶을 인식하는 것이다.”

금융소비자는 금융시장에서 개별화된 인격적 주체로서 각자 자신의 역량에 따라 금융거래를 수행함으로써 시민적 권리를 획득하고 개인적 자유를 실천한다. 국가는 이들의 경제적 삶을 직접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대신, 이들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시장 환경과 일련의 규칙들, 금융역량과 금융이해력 강화를 도와줄 지식들, 자신의 재무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지표들과 평가도구들을 제공한다. 책임 있는 금융적 주체가 되기 위해선 계산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고, 비교할 수 있는 지표를 가져야 하며, 자신의 활동을 양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화폐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Dardot & Laval, 2013: 180) 금융시장에서의 최종적인 성패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며, 이러한 자기책임의 윤리야말로 합리적이고 책임 있는 경제적 시민의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책임감 있는 시민성, 개인적 소유와 자유, 경제적 안전의 보장은 금융자산의 소유를 통해 서로 접합되며, 금융소비자는 자신의 역량과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금융리스크를 관리하고 기업가적인 진취적 태도로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2) 재테크 담론의 인식구조와 시장의 환상

금융적 주체에 관한 담론적 재현은 정부의 ‘금융소비자’ 담론을 통해 위로부터 형성된 것만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마케팅 담론과 민간 재테크서적들을 통해 아래로부터 형성되기도 했다. 정부기관, 금융기관, 민간 전문가들이 생산하는 금융적 주체에 관한 담론들은 서로 상호참조하면서 확대·증식하고, 투자자 주체에 관한 일련의 재현과 윤리적 가치들을 소환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이후 베스트셀러의 목록을 장식한 재테크서적들은 금융적 행위에 관한 담론들을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의 형태로 가공·전달함으로써, 일상의 차원에서 개인들을 금융시장에 유혹적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일련의 재테크담론은 돈, 저축, 소비, 투자 등 경제적 사실들에 관한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면서, 금융적 투자와 자산증식 추구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실천이자 자기책임의 원칙하에 자신의 생애위험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윤리적’ 행위로 승격시켰다. 그리하여 재테크는 단지 경제적 안정과 이익을 좇는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계산적 도구들과 기술들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리하고 통치하는 ‘자유의 실천’으로서 표상되기에 이르렀다.(최민석, 2011)
주식시장은 가공자본의 유통시장으로서 미래의 기대수익에 대한 예측에 근거해 시장가격이 형성되기에 본질적으로 그 정확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을 합리적 시장으로 재현하고, 주식투자 행위를 과학적인 실천으로 규정하려는 담론적 시도들이 꾸준히 전개되었다. 주식시장을 특징짓는 가치와 가격의 괴리는 오히려 다양한 분석기법 및 해석을 가능하게 할뿐더러, 가치와 가격의 불가능한 일치를 꾀하려는 욕망과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기제로 작용했다. 가치와 가격의 괴리가 있기에 다양한 행위자들이 서로 대립하거나 경합하는 지식들을 내놓으면서 주식시장을 둘러싼 각종 서사들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정부가 거시경제 육성 차원에서 주식시장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다면, 주류경제학은 금융시장의 효율성과 합리성에 관한 지식들을 제시했으며, 증권회사와 투자지침서들은 다양한 주가분석 기법과 실용적인 지침들을 제공했다. 개인들은 서로 상충하거나 모순되는 지식들을 별다른 위화감 없이 취사선택하면서 자신의 투자행위를 합리화하거나 서사화했다.

먼저 주류경제학은 금융시장에서의 투자와 대출 행위가 개인의 효용극대화 행위라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행위라는 해석을 제시한다. 금융시장에서는 주식가격의 결정에서와 같이 미래의 현금흐름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이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를 것이라 예상하는 종목의 주가는 오를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주류경제학에서는 “예상은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를 사용하면서 형성되는 최적 예측(미래에 대한 최선 추측)과 일치한다.”는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s)’ 이론을 제시했다.(미쉬킨, 2011: 183) 사람들은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미래에 대해 최적의 예측을 하려고 하며, 특히 금융시장에서는 미래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는 사람들이 부유해진다는 것이다. 합리적 기대 이론을 금융시장에 적용하면, 금융시장에서 증권 가격은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를 완전히 반영하여 결정된다는 ‘효율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을 얻게 된다.(미쉬킨, 2011: 187) 즉, 금융시장은 효율적이며 시장참가자들은 합리적 행위자들이라는 것이 주류경제학의 공리를 구성한다.

그런데 이는 주식시장에서 ‘투기의 불가능성’이라는 역설적인 결론을 이끌어낸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주가의 상승가능성과 하락가능성이 동일한 균형상태를 가정하는 것인데, 이는 주가 변동이 특정한 경향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이라는 가설에 기초한다. 또한 효율적인 시장에서 새로운 정보는 주가에 즉각 반영되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서 거래를 통해 이윤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즉, 모든 투자자는 주식시장 전체의 평균적인 수익률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따르면 주가지수의 흐름에 가장 가까운 대표적인 종목들을 편입해 펀드 수익률이 주가지수를 따라가도록 구성하는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투자방법이다. 물론 효율적인 시장이 꼭 합리적인 시장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주가에 반영된 정보가 늘 정확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특정 종목의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낮을 수도 있고 높을 수도 있다. 그러나 효율적인 시장에서는 어떤 참여자도 지속적으로 다른 투자자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는 없다. 새로운 정보는 이내 시장에 반영되고 모두가 아는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번스타인, 2006: 190)

효율적 시장가설은 증권시장의 전문가들이나 투자자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펀드매니저들은 자신들이 수많은 기업의 회계자료를 분석하고, 정부의 정책과 세계시장의 동학에 주의를 기울이며, 전문적인 매매 기법과 정보 활용 능력을 통해 펀드가입자들에게 일반적인 투자자들에 비해 높은 수익을 돌려준다고 강변한다.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평균수익률을 얻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투자에 뛰어든다. 더욱이 증권시장은 효율적 시장이라기엔 1929년 대공황이나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예측할 수 없이 크게 폭락하거나, 1990년대 후반 미국의 신경제 증시처럼 폭발적으로 상승하기도 하지 않던가. 또한 워렌 버핏처럼 평균적인 수익률을 뛰어넘어 막대한 투자수익을 올리는 천재적인 투자가들도 존재하지 않던가. 그리하여 증권시장에 관한 지식은 학계의 진리와 실제적인 삶에서 통용되는 진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영역 중 하나이다.

증권전문가와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주가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고, 평균수익률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전파한다. 증권시장의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주식시장의 분석방법에는 크게 ‘기술적 분석’과 ‘기본적 분석’이 있다. 기술적 분석은 과거의 주가 흐름을 그래프로 만들어 미래의 주가를 예측하고자 한다. 그들은 차트를 주가 차트를 꼼꼼히 살펴 거래량의 급증이나 주가의 신고점 또는 신저점, 주가 급등 이후 소폭 하락 등 신비로운 시그널들을 찾는다. 이에 반해 기본적 분석은 기업의 실적이나 부채비율, 주가수익비율, 주가순자산비율 등의 지표를 통해 기업의 내재가치를 분석하고 미래의 전망을 따져본다.(번스타인, 2006: 232) 그리하여 내재가치에 비해 주가수준이 낮은 기업의 주식을 구입하여 장기 보유하는 이른바 ‘가치투자’를 실천한다. 한국에서는 ‘기술적 분석’을 통해 현란한 매매 기술을 구사하는 데이트레이딩이나 대세흐름에 편승하는 ‘묻지마 투자’를 대신해, 2000년 초반부터 ‘가치투자’ 기법이 ‘현명한 투자원칙’이자 ‘윤리적인 투자기법’으로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가치투자의 전도사들은 가치투자가 단지 시세차익을 꿈꾸는 투자기법이 아니라, 좋은 기업에 투자 자금을 제공하여 잡초 밭에서 우량기업을 골라내는 작업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부여했다.(오승민, 2015)

이처럼 주식시장에 관한 상반된 분석기법들이 전제하는 것은 기업의 본질적인 내재가치와 그것의 상징적 표현인 시장가격 사이의 불일치이다. 기술적 분석이 내재가치 분석을 불필요하거나 알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면, 기본적 분석은 내재가치 분석을 통해 시장가격과의 괴리가 큰 종목을 발굴해내고자 하는 것이다. 즉, 역설적으로 주식시장에서 “가격책정의 불가능성은 시장의 가능성의 조건”(Bjerg, 2014: 26)이기도 하다. 만약 자산의 가치가 분명하게 결정될 수 있어 모든 기업들에 명확한 가격이 부여된다면 이러한 주식들의 거래는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주식거래가 발생하는 것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가치를 서로 다르게 평가하여, 판매자는 자신이 받아들이는 가격이 가치를 초과한다고 믿고 역으로 구매자는 가치가 가격을 초과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회적 상호작용 형태의 효과성은 참여자들 편에서의 무지의 요소를 전제한다.”(Bjerg, 2014: 26)

라깡식으로 표현하자면 가치와 가격은 각각 실재와 상징계의 영역에 속하며, 매순간의 거래를 통해 생성되는 시장가격들은 가치의 상징화를 의미한다. 다른 한편 금융시장에서의 거래는 가치의 상징화의 불가능성이라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존재론적으로 일치할 수 없는 이 두 질서 사이의 조정은 상상계의 작동, 즉 지식(기술적 분석이든 기본적 분석이든)을 통하여 이 불일치를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시장을 이긴다는 환상’에 의해 추동된다. 그런 점에서 가치는 욕망을 추동하는 금융시장의 실재와도 같다. “가치(value)는 금융시장의 ‘대상 a(objet petit a)’이다. 시장은 이 대상을 획득하려는 욕망에 의해 추동된다. 즉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의 진짜 가치와 시장가격을 일치시키려는 욕망을 위해서.”(Bjerg, 2014: 29) 욕망의 역설적 본성은 주체가 욕망의 대상을 전유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획득하려는 끝없는 분투를 통해 향락을 얻는다는 점이다. 금융시장에서는 거래를 통해 끊임없이 가격을 재산정하는 거래인들의 미친 듯한 활동이 시장에서의 변동성을 창출해내고, 이러한 변동들을 통해 돈을 벌고 잃는 것이 가능해진다.(Bjerg, 2014: 33)

이런 점에서 금융에 관한 각종 지식과 실용적 기법들을 전수하는 데 여념이 없는 금융미디어와 각종 재테크 서적들은 현실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제공한다기보다 금융시장의 참가자들에게 ‘믿음’과 ‘환상’을 주입하는 ‘수행적’ 기능을 수행한다. 금융증권의 가치와 가격은 근본적으로 일치할 수 없지만 끊임없는 앎의 욕망을 추동하면서 개인들의 참여와 거래를 이끌어낸다. 그래야만 금융시장이 비로소 작동하고, 금융기관은 거래 수수료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개인들은 실제로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지만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환상에 이끌려 시장분석과 정보획득에 몰입한다. 미래의 시장가격을 예측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는 투자성과에 대한 주식투자자들의 진단이 언제나 과거형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통해 간접적으로 예증된다. “그때 그 주식을 샀으면 큰돈을 벌었을 텐데”, “그때 분명 그 주식이 오를 줄 알고 있었는데” 등.

주식시장의 참가자들은 매일 매순간을 시장의 동향에 촉각을 기울이며 살아가는데, 그러면서 ‘시장’을 매우 당연한 실체처럼 이야기한다. 시장이 재미없다거나 시장을 이겨야 한다는 둥 말이다. 시장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시장을 마치 독립적인 실체처럼, 자신만의 내재적인 질서와 규칙에 따라 작동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당대의 금융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시장the Market’을 우리 삶의 독립적인 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Bjerg, 2014: 31) 미디어들은 금융을 독립적인 섹션으로 편성해 금융시장의 상태와 소식을 주기적으로 전달하는데, 뉴스프로그램에서 금융시장의 뉴스는 마치 기상예보와도 같은 지위를 차지한다. 이는 금융시장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이며, 우리가 금융시장의 작동법칙을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강화한다.

(3) ‘부자 되기’의 윤리학, 자아의 기술로서 재테크

2000년대 이후 금융화된 일상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은 ‘저축에서 투자로’의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재테크 지침서들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정과 실질소득 저하, 삶의 불안정성이 확대된 현실을 새로운 문제적 상황으로 진단하면서, 저축이 더 이상 합리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과거 절약과 내핍을 통해 일정한 소득을 저축하여 안정적인 재생산을 영위하던 모델의 핵심은 고용안정과 실질소득의 꾸준한 증대였다. 저축의 합리성을 강조하는 ‘생애주기 가설’에 따르면, 가계는 미래에 예측되는 소득흐름에 기초하여 젊은 시절에 저축을 늘려 노후의 지출에 대비하게 된다. 그러나 고용불안정과 저금리에 기초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시대에 이러한 모델은 타당성을 잃고 만다. 저축과 보상의 확실한 연계가 깨지고, 저금리로 인해 저축의 유인이 떨어지기 때문이다.(Erturk et al., 2007) 물론 안정적인 소득흐름의 창출을 위해 고용안정과 복지확대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자유시장의 합리성과 ‘경쟁’의 효율성, 개인책임의 이데올로기를 자명한 ‘현실’로 간주하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체계는 변화한 현실에 대한 ‘개인적 적응’을 주요한 과제로 설정했다.

2002년 한 신용카드 회사의 광고 문구였던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일상적 삶의 변화한 풍경을 긍정하는 선언이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업의 육성을 통해 ‘돈이 돈을 벌어다주는 한국사회의 경제구조’를 지향하겠다던 정부의 야심찬 선언은 일상적인 재테크 담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뿌리내렸다. 2000년 재테크 서적으로는 최초로 연간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기요사키·레흐트, 2000)를 필두로 ‘부자’를 키워드로 한 서적들이 줄지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과거 부자가 되려는 욕망이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행태로 그리 떳떳할 것 없는 삶의 태도였다면, 이제 부자 되기는 누구나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이자 ‘좋은 아빠’ 또는 ‘행복한 시민’이 되기 위한 당위로서 제시되었다.(장진호, 2008; 최민석, 2011)

이때 재테크 담론이 규정하는 ‘부자’란 단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부자란 누구인가? 부자는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자신을 위해 일하게 만”드는 사람(기요사키·레흐트, 2000: 40), “기본적으로 자신의 부를 지키고 이전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 더 이상 부를 늘려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박경철, 2011: 21)을 일컫는다. 즉, 부자란 노동을 통해 소득을 축적하는 자가 아니라 이자 낳는 자본의 동학처럼 돈이 돈을 버는(M-M') 흐름을 만들어내는 자, 즉 자산 수입을 영속적으로 발생시키는 자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미친 자본가로서 화폐축장자와 합리적인 자본가를 구분했던 것처럼, 목돈을 모아 고가의 아파트와 같은 자산을 소유한 것만으로는 부자라 할 수 없다. 자산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가치하락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가가 축적을 위해 기존에 생산된 잉여가치를 부단히 자본으로 재투입하듯이, 부자가 되려면 부동산을 활용한 임대수입과 같이 꾸준한 소득흐름을 창출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부자라면 단지 부의 스톡(stock)에 만족하지 않고 명민한 투자를 통해 자본의 흐름(flow)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부자에 관한 이러한 표상은 노동을 통해 소득을 마련하고, 검소한 소비습관과 절약을 통해 소득을 저축하여 부를 축적한다는 과거의 모델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현실 인식에 기초한다. 운 좋게 대기업에 취직한다 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고, 고령화 시대에 직면해 은퇴 후 장기간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직장과 임금소득은 더 이상 경제적 안정의 최적수단이 될 수 없다. 고용불안과 노후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이제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자산’이다. 기요사키는 이를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리한다. “부자는 자산을 산다. 가난한 이들은 오직 지출만을 한다. 중산층은 부채를 사면서 그것을 자산이라고 여긴다.”(기요사키·레흐트, 2000: 101) 기요사키에 따르면 자산은 부동산, 주식, 채권, 어음, 지적 자산 등 실제적인 수입을 보장해주는 것들이며, 주택융자와 신용카드는 부채이다. 많은 이들이 ‘빚도 자산’이라고 말하지만 소득흐름을 창출해내지 못하는 대출은 그저 부채일 뿐이다.

산업화시기에 고용안정과 실질소득의 점진적 상승에 기초하던 ‘노동윤리’는 신자유주의적 금융화 시대에 이르러 ‘자산의 철학’으로 대체되었다. 지난날 보편적으로 숭배되는 영웅의 본보기였던 부자들은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철저하게 지녔던 노동윤리의 긍정적 결과를 전형적으로 드러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사례는 없다. 이제 숭배의 대상은 부 그 자체이다.(바우만, 2010: 79) 노동이 삶의 준거점이 되지 못하는 시대에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는 대신 모두가 ‘자본가’가 되는 세상을 제안한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적대적 계급관계로 구성된 사회라는 표상은 2000년대 이후 이제 노동자도 자신의 ‘인적 자본’을 활용해 삶을 능동적으로 기획하고 자유를 실천하는 ‘기업가적 주체’라는 신자유주의적 표상으로 대체되었다.(서동진, 2009) 진취적인 신자유주의적 윤리로 무장한 기업가적 주체의 가장 모범적인 형상은 오늘날 금융적 실천과 기술들을 통해 자산을 증식하는 ‘금융적 투자자’인 셈이다.(최민석, 2011)

재테크 지침서들이 공히 금융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알아야할 필수적인 개념으로 꼽는 것은 ‘복리’와 ‘현재가치’이다.(박경철, 2011; 정철진, 2006) 재테크 서적들에서 가장 흔하게 드는 예로 미국의 인디언 사례가 있다. 17세기에 신대륙을 발견한 이주민은 인디언에게 현재 맨해튼을 24달러에 사들였는데, 인디언이 이 24달러를 매년 복리 8% 이자율을 지급하는 은행에 저축했다면 현재 95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불어나 맨해튼의 땅을 되찾고도 남았으리라는 것이다. 복리 개념은 보통 이자율에 대한 지식의 중요성과 돈이 돈을 버는 금융의 환상적인 마법을 일깨우기 위해 활용된다. “부자들일수록 1퍼센트의 금리에 민감하다. 그 이유는 이들이 복리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복리의 힘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박경철, 2011: 35)

마르크스는 이미 19세기의 속류경제학자들이 주창하던 ‘복리의 마법’에 대해 자본은 끊임없이 가치절하를 겪으며, 자복축적의 증대에 따라 자본의 이윤율은 하락하는 경향이 있고, 이자의 상한선은 잉여가치의 생산에 의해 제한된다는 점 등을 들어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복리의 마법이라는 “개념(표상) 속에서는 과거노동의 생산물이 현재 혹은 미래의 살아 있는 잉여노동의 한 조각을 이미 자신의 내부에 배태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 살아 있는 잉여노동에 대한 과거노동의 생산물의 지배가 지속될 수 있는 기간도 단지 자본관계가 지속될 동안, 즉 과거노동이 살아 있는 노동에 대해 자립적이고 압도적으로 대립해 있는 일정한 사회관계가 지속될 동안뿐이다.”(마르크스, 2010a: 521-525) 이런 점에서 오늘날 각종 재테크 서적이 강조하는 ‘복리의 마법’은 화폐와 자본에 대한 물신주의의 현대적 판본들이라 할 수 있다.

금융지식을 갖추는 것은 재테크의 출발점일 뿐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갖추는 것이다. “적절한 재테크 습관은 마법처럼 목돈 만들기 전반을 주도해나갈 것이다.”(정철진, 2006: 66) 좋은 재테크 습관은 단지 도덕적 성향이나 태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기술들로 구성된다. 은행수수료 아끼기, 가계부 작성하기, 개인 재무제표 만들기, 청약통장 만들기, 체크카드 사용하기, 세금 절약하기, 인터넷 사이트를 활용해 펀드수익률과 대출이자 비교하기, 폭넓은 인간관계 맺기 등 실생활에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들 말이다. 재테크를 통해 부자가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익숙하게 여겨왔던 노동윤리나 저축의 습관으로부터 탈피해 부자들의 삶의 방식을 적극 모방하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푸코가 말한 자아에 대한 지식에 따라 스스로를 통치하는 실천으로서 ‘자기의 테크놀로지’의 금융적 버전이라 할 만하다. “자기의 테크놀로지로서 재테크는 ‘부자’라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 영혼, 사상, 행실, 존재 방법의 구현 방식들을 조절하는 지침”(최민석, 2011: 90)인 것이다.

재테크 지침서는 물론 각종 금융교육이나 재무상담의 첫 출발은 항상 개인의 재무상태를 스스로 점검하고 진단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개인들은 복리나 현재가치 등 기본적인 금융지식, 한 달에 소비지출에 쓰는 돈과 용도, 펀드나 보험 가입 유무, 경제관련 뉴스를 접하는 정도, 주식투자 경험 유무, 시중 저축금리와 대출금리 수준, 재테크에 대한 관점 등 금융과 관련해 필수적인 지식은 물론 생활습관과 성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들에 스스로 답해보도록 유도된다. 이러한 진단표는 주체의 금융적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절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조사자 스스로 재테크 지식에 대한 무지와 경각심을 깨우치게 하는 데 주요한 목적을 두고 있다. 재테크하는 주체는 타자의 의사에 따르거나 명령에 복종하는 대신 자신의 행위에 대한 평가를 자각하면서, 자기가 설정한 척도에 비추어 자신을 평가하고 사정하는 자기-평가/자기-감사의 주체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행위의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귀속된다. 그는 자기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므로, 자신의 ‘운명’에 대해 그 책임을 타자나 사회에 돌릴 수 없다. ‘투자로 인한 원금손실의 책임은 전적으로 투자자의 몫’인 것이다.


2. 빚의 마법

금융투자의 확산과 더불어 2000년대 이후 나타난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는 가계부채의 급속한 증대이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이 소비자신용을 확대하고 신용카드사와 대부업에 관한 규제가 풀리면서, 주택담보대출, 학자금대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대부업 등 개인과 가계가 다양한 신용의 원천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와 같이 신용카드 사용을 통해 소비생활의 질을 높이고 삶을 업그레이드하라는 권고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이자 대출을 해준다는 대부업 광고가 2000년대 내내 TV브라운관에서 흘러나왔다. 휴대전화와 이메일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당장 수천만 원의 대출이 가능하다는 ‘모 과장’이 보낸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그에 따라 중산층은 물론 저소득층까지도 대출을 받아 생활에 필요한 자금이나 목돈을 마련했으며, 한국사회의 가계부채는 불과 10여 년 만에 1,000조 원대를 넘어서게 되었다.

IMF 위기 이후 ‘신용의 민주화’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정책당국은 신용을 일종의 ‘시민적 권리’ 또는 ‘복지수단’으로 제시했으며, 금융기관들은 신용이 미래의 꿈을 실현시켜줄 합리적이고 편리한 수단이라고 광고했다. 물론 금융기관 입장에서 담보 없는 저소득층에 대한 신용대출은 매우 위험한 사업이었다. 그리하여 증권화, 높은 이자율의 부과,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채권추심, 채권시장에서의 헐값 처분 등 리스크를 전가하는 한편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술들이 개발·실행되었다. 그 결과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불법추심의 폐해가 심화되자 정부는 이들에 대한 신용회복 및 구제의 절차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채무자 구제가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고 채권자인 금융기관의 이해를 헤친다는 우려 속에서 개별적이고 예외적인 구제책 이상의 적극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오히려 저소득층과 신용불량자에게 다소간 저렴한 금리로 추가적인 신용을 제공하는 금융적 수단들이 강구되었다. 이는 금융투자자와 마찬가지로 빈곤층이나 신용불량자에 대해 ‘금융시장에 의한 통치’가 지배적인 통치원리가 되었으며, 채무자에겐 개별적인 신용등급 관리나 리스크 관리를 통한 ‘자기책임’의 윤리가 부과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1) 권리로서의 빚, 신용을 통한 통치

저소득층의 필수적인 재생산 활동이 신용대출을 통해 영위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과중채무와 채무불이행의 문제가 양산되었고, 그에 따라 채무자들에 대한 통치의 문제는 정책당국의 주요한 과업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금융화 이후 경제적 행위자들에 대한 정부의 통치원리는 직접개입이 아닌 ‘금융시장에 의한 통치’로 전환되었고, 채무자들에 대한 통치 또한 리스크 관리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정부는 위계적으로 배치된 소비자신용의 체계 내에서 대출자 전체 인구를 상이한 리스크를 가진 개체들로 집단화하여 통계적인 관점에서 ‘조절’하는 한편, 개별 신용불량자나 과다채무자들에 대해서는 신용회복 및 법적 구제 등 개별화된 ‘규율’의 원리에 따라 통치하고 있다. 금융기관들 또한 대출인구를 신용등급에 따라 범주화한 후 상이한 이자율을 부과해 전체적인 리스크를 관리하는 한편, 개별 채무불이행자에 대해서는 추심 등의 개별화된 규율 권력을 행사한다. 정부와 금융기관은 신용을 제공할 때에는 마치 신용이 시민적 권리이자 미래의 기회를 얻기 위한 자원인 것처럼 말하다가, 채무가 연체되는 순간 도덕적 담론과 수사를 동원해 채무자의 죄의식을 압박하고 가혹한 추심을 이끌어낸다. 채무자들은 뒤늦게 비로소 신용이 권리나 자원이 아니라, 현재소득은 물론 미래의 가능성을 박탈하는 악마의 유혹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소비자신용의 체계는 은행부터 대부업에 이르기까지 계층화된 구조로 짜여 있다. 각 개인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용등급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금융기관과 대출금리가 결정된다.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부터 고유한 개인신용 평가시스템(CSS)을 도입하고 있는데, 신용평가회사로부터 넘겨받은 개인 신용평점과 등급을 참조하여 자체적으로 고객들의 신용등급을 평가하고 관리한다. KCB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7등급 이하 저신용자는 500여만 명에 달하며, 이는 동 기관이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있는 전체 인구 4,300여만 명중에서 약 12%에 해당한다.

2013년 기준 금융기관별 신용대출 차주의 신용등급 분포를 보면, 은행이 제공하는 신용대출의 83.1%는 1~6등급에 해당하였고 7등급 이하는 16.9%에 불과했다. 이는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의 경우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면 은행대출을 받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정은 상호금융이나 신용카드사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는 주로 고금리의 캐피탈 사나 저축은행을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소비자신용 시장은 차주의 신용등급에 따라 계층화되어 있으며, 은행이 1~3등급의 최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을 지배하고 상호금융기관은 2~6등급, 신용카드사는 4~7등급, 캐피탈사와 저축은행이 6~10등급에 해당하는 차주를 대상으로 주로 활동하고 있다.

금융기관이 신용대출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차주의 ‘상환능력’이다. 이때 상환능력이 개인의 경제적 상태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고소득층이라도 채무 연체 등으로 인해 저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는 저소득층이라도 신용거래를 전혀 하지 않은 개인보다 오히려 높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도 있다. 금융기관은 개인들의 신용도를 측정한다고 하지만, 평가의 목적은 사실상 개인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라기보다 저신용층에게 ‘페널티’를 부과하기 위한 것이다. 1등급을 기준으로 등급이 낮아질수록 채무불이행에 대한 통계적 예측에 따라 페널티 이자가 가산된다. 이를 통해 금융기관으로 포섭할 계층과 배제할 계층을 선별하는 것이다. 요컨대 공식적인 경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시민적 권리의 부여 여부는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기술적이고 수량화된 평가로 대체되었다. 상이한 사회적 가치와 욕망을 지닌 이질적인 개인들은 모두 리스크를 지닌 개별화된 개체들로서 동질화되고, 위계적인 신용체계 내에서 각각 부여받은 신용등급에 따라 집합적으로 분류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러한 신용을 통한 통치는 단지 금융기관이 금융거래에서 수행하는 것을 넘어 정부의 시민들에 대한 통치의 기술로 확장되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기관이 안전한 담보대출 등에 치중하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신용대출이 줄고, 자금수요가 늘어난 서민들이 대부업을 주로 이용하면서 사회적 폐해가 심해지자 정부는 정책적으로 ‘서민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신용등급이 낮아 금융기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금융소외자’를 대상으로 금융에 대한 ‘접근권’을 높인다는 취지하에, 서민들을 대상으로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서민우대금융과 정부가 신용보증을 제공하는 서민신용보증 프로그램들을 잇달아 개발·시행했다. 이에 따라 2008년 9월 신용회복기금이 도입되고, 2009년에는 미소금융 중앙재단이 출범했으며, 2010년에는 ‘햇살론’과 ‘새희망홀씨 대출’이 공급되었다. 또한 국민행복기금과 신용회복위원회가 ‘바꿔드림론’을 시행함으로써 현재 4대 정책성 서민금융 상품이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정책성 서민금융의 확대를 통해 저소득·저신용 계층의 금융접근성을 높이고 자활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서민금융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대증적 개입조치’에 머무름으로써 실질적인 소득개선이나 자활기반 마련의 효과는 미미했다. 개인별 대출 조건이나 상환가능성을 고려한 차별적인 상품의 공급이 아니라, 획일적인 지원기준과 금리조건 하에 자금공급 자체가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서민들 입장에서 다소간 저금리의 대출을 받는 것 이상의 혜택은 없었으며, 무상으로 주어지는 복지혜택이 아니라 원금상환의 의무가 있는 일반 금융상품과 다를 바가 없었다.(박창균, 2014) 더욱이 추가적인 재원마련의 어려움으로 인해 지속가능성마저 우려되고 있다. 미소금융은 금융회사의 휴면예금 출연액이 줄어들면 기금이 감소할 수밖에 없으며, 은행들의 자체 자금으로 운영되는 새희망홀씨 대출도 당초 도입할 때 5년 한시상품으로 설계되었다. 정부가 직접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햇살론과 바꿔드림론에 불과한데, 최근 연체율이 높아짐에 따라 지속가능성이 우려되는 형편이다.(이영련, 2015: 116)

이는 신자유주의적 ‘고용 없는 성장’을 추구하고 신용을 통한 노동자계급의 경제적·사회적 재생산을 자연스러운 현실로 간주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이다. ‘금융소외자’에게 ‘금융 접근권’을 높이겠다는 정책적 목표는 신용을 통한 재생산을 지배적 원리로 삼은 정부의 통치전략을 잘 표현해준다. 복지국가의 통치원리가 소득이 필요한 저소득층에게 고소득층의 부를 재분배하는 것이라면, 금융시장을 통한 통치에서는 시장원리에 따라 신용이 필요한 저소득층에게 더 높은 이자가 부과된다. 경제적 시민권을 얻기 위해선 금융의 활용이 필수적이나, ‘불량율’이 높은 저소득·저신용 계층은 제1금융권으로부터 배제된다. 그 결과 고소득·고신용 계층은 제1금융권에서 저금리로 자금을 대출하여 추가적인 자산증식에 활용할 수 있지만, 저소득·저신용 계층은 제2, 3금융권에서 고금리로 대출을 받아 소득의 상당량을 이자로 상환함으로써 끊임없는 소득저하의 압력에 내몰리게 된다. 이들의 빈곤상태 자체가 제2, 3금융권에게는 수익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정부는 금융시장의 질서를 헤칠 우려가 있는 복지확대나 소득조건의 구조적 개선 대신 금융기관의 사각지대에서 추가적인 금융상품을 제공할 뿐이다. 그마저도 상환능력과 자활의지가 있는 개인에게만 선별적으로 제공되며, 개인들은 빈곤상태의 개선과 경제적 시민권 획득을 위해 스스로 분투해야만 한다.

(2) 규율과 권력으로서의 빚

1990년대 후반 이후 소비자신용의 활성화와 더불어 가계부채가 증대하자 새로운 빈곤주체로서 ‘신용불량자’가 출현했다. 신용불량자는 금융화 시대의 지배적인 규범에서 일탈한 ‘비정상적 주체’의 전형적인 형상을 표현한다. 신용불량자는 단순히 채무가 연체된 자가 아니라, 정부와 금융기관이 설정한 세부적인 기준에 따라 그 규모와 범위가 유동적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이렇게 자의적으로 규정된 ‘비정상성’을 통해 역으로 정상적인 채무자 주체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채무자는 연체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자유의사로 금융기관과 대출계약을 맺은 고객일 뿐이며, 정부나 금융기관은 그의 대출활동과 관련해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다. 오직 채무가 연체되고 대출금 상환에 장애가 발생할 때에만 채권추심부터 신용회복 절차와 파산에 이르기까지 각종 통치기술이 실행된다. 따라서 신용불량자에 대한 재현과 통치전략은 단지 과다채무자에 대한 기술적 구제절차인 것만이 아니라, 채무자 주체성의 형성과 금융적 규범에 따른 ‘정상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04년 말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2005년 4월 28일부터는 신용불량자 등록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신용회복위원회는 이러한 제도적 변화의 의의를 “개인의 신용에 맞는 금융거래 관행을 촉진”하고, “금융거래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용경력 관리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신용불량자 등록제도가 금융거래의 ‘가능/불가능(또는 정상/불량)’이라는 규율적-도덕적 양식에 따라 채무자 주체를 구성하고 재현한다면, 개정된 제도는 신용거래의 ‘흐름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한편 채무 등의 위험을 금융기관이나 법원을 통한 개별적인 구제로 대체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리하여 도덕적 함의가 짙은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는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과다채무자’나 ‘채무불이행자’ 등 중립적인 용어로 대체되었다. 신용불량자라는 규정은 과중채무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채무불이행에 대한 개인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으나, 정부 입장에서는 신용불량자 문제가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인식되어 정치적 해결에 나서야 하는 부담을 안겨준다. 채권자인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채무자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아무런 경제적 효과도 없으며, 그들이 다시 금융거래를 재개해 부채의 일부라도 상환하게끔 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과다채무자 인구 전체의 리스크를 통계적 수준에서 조절하는 기술과, 개별주체를 도덕적으로 규율하는 기술은 동시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신용불량자 문제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서 다양한 채무자구제제도를 도입했다. 2002년 10월부터 개인을 대상으로 채무조정과 신용회복을 지원하는 ‘개인워크아웃제도’가 시행되었고, 2003년 6월 채무상환기간의 연장(5년->8년), 신청자격의 완화, 신청절차 간소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신용회복지원협약 개정안이 마련되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 2002년 11월에는 채무자 대상으로 신용관리 상담, 교육, 채무조정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신용회복위원회가 출범했으며, 신용회복위원회에 가입한 금융기관은 2003년 말 189개에서 2004년 8월말 2,954개로 증가했다.(한국금융연구원, 2013: 306) 신용회복위원회는 출범 이후 2015년 3월까지 130만 명으로부터 개인워크아웃을 신청 받아 120만 명에 대해 채무조정을 확정하였고, 이중 40만 명이 채무변제를 완료하여 개인워크아웃을 졸업했다.1 그 외에 법적 제도로서 2004년 9월부터 법원이 강제로 채무를 재조정해 채무자가 성실히 빚을 갚으면 나머지 채무는 탕감해주는 개인회생 제도가 실시되었고, 2005년 「통합도산법」을 제정하여 채무자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졌을 때 법원이 그 경위를 심리한 뒤 면책 선고로 개인이 채무를 탕감받는 제도인 개인파산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김순영, 2011: 164-65)

개인회생과 파산제도를 통한 과중채무자와 신용불량자에 대한 통치는 복합적인 모순과 딜레마를 함축하고 있다. 채무자에 대한 구제제도는 “과채무자가 소외계층으로 전락할 경우 발생할지도 모를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채무자로 하여금 노동시장에 참여할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경제 전체적인 생산성의 저하를 예방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러나 “채무자의 희생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파산 및 면책을 쉽게 허용할 경우 채무자가 도덕적으로 해이해져 파산절차를 남용하고 채권자의 권리가 침해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채무자 구제제도는 “자유롭게 맺어진 계약은 반드시 실행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면서 채무자 보호와 채권자 권리보호라는 두 가지의 목표를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한국금융연구원, 2009: 29) 이는 채무자에 대한 통치가 채무자를 도덕적 죄인으로 보는 시각과 잠재적인 생산적 노동력으로 간주하는 입장 사이의 간극, 채권자와 채무자 간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 사회 안전 및 시민들의 복지보장과 자유로운 계약관계와 신용질서 유지의 모순적 조건 속에서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개인파산 제도는 법인기업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경제활동 과정에서 과도한 채무가 발생하여 현재 가진 모든 재산과 수입으로도 지급이 불가능할 때, 법원이 이를 판단하여 금융 채무를 면책하는 제도이다. 이에 대해 채무자의 도덕적 타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법적으로 경제적 규제인 파산제도는 파산선고 이전에 형성된 “채무자의 일반재산만이 파산채권자에게 배당되고, 그 후에 채무자가 취득하는 재산에 대하여는 파산채권으로 집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서, “인적 유한책임을 강제하는 것”(김관기, 2004: 111)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계약상 채무에 대해 무한책임의 원칙이 추구된다면 채무자는 ‘채무노예’의 처지에서 헤어나지 못할뿐더러, 신체포기각서나 인신매매와 같은 극단적인 채권의 행사까지도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유한책임의 원칙하에 “주식회사 제도를 인정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한, 개인의 유한책임을 인정하는 것에 대하여 극렬하게 반대할 이유가 없다.”(김관기, 2004: 112) 금융위기 시에 보듯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공적 자금을 투입해 금융기관과 기업의 채무를 사회적으로 떠맡는 일은 이미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채무의 사회화’가 개인들에게 적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법률 전문가들은 법적 절차로서 파산은 “채권의 공동 행사, 기업의 질서 있는 청산 또는 재조직, 부수하여 개인 채무자의 면책을 통한 재기를 위한 법적 기술”(김관기, 2006: 75)이라고 강조한다.

더군다나 개인파산과 법인파산은 실제적으로 그 결과가 결코 동일하지 않다. 법인파산의 경우 파산 결정이 내려지면 회생을 하거나 청산절차를 거쳐 법인을 해산하게 된다. 이와 달리 개인의 경우 면책 후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긴 하나, 여전히 ‘파산자’로서의 불이익을 감당하게 된다. 파산자는 재산을 관리하거나 소유할 수 없으며, 공법적·사법적으로 취업의 자유가 제한되어 공무원이나 전문직, 법률 관련직에 종사할 수 없다.(전효찬, 2001: 5) 즉, 법인기업과 달리 개인에게는 전면적인 유한책임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며, 그의 개인적 삶에서 파산의 이력은 꾸준히 영향을 미친다. 이는 “‘우리’는 모두 축적하는 사람이며, 우리의 개인적 성공은 비단 ‘인적 자본’을 축적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회와 리스크를 평가하고 관리하는 우리 자신의 성과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외치는 신자유주의의 교리가 교묘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유한책임의 원리를 따르지만, 노동자계급에게는 결코 그러한 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 노동자가 유한책임을 진다는 것은 “노동 그 자체는 아니지만 노동을 대신하는 허구적인 법적 개체의 구성을 포함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축적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노동자는 상품자본인 동시에 가변자본이며, 이들 가치의 차이가 잉여가치의 기초이다.”(Bryan et al., 2009: 468-469)

노동만이 잉여가치의 원천인 한, “자본은 기대수익이 실현되지 않아 부도가 나더라도 단지 그 자산이 청산될 뿐이지만, 노동자는 계속해서 노동력을 판매해 부채를 갚아야만 한다.” 즉, 기업에 대한 대부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대부는 결코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 않으며, 자본가처럼 대출을 받아 자산증식을 추구할 수 있다고 해서 노동자계급이 자본가의 지위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이는 ‘신용의 민주화’론이 전제하는 것처럼 신용이 “중립적이고 개인적인 계약관계에 기초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 권력관계에 따른 위계적이고 착취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최철웅, 2015: 76)

(3) 채권추심과 ‘땡처리’, 수탈의 기술

채무를 진다는 것은 채무자가 “무조건적 지급의무를 선언한 채권증서를 발행”(김관기, 2006: 19)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채무자는 채권자가 달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빚을 갚을 것이 기대된다. 이는 “법률상의 원칙(지참채무)”이며, 대부분의 채무자는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러나 채무자가 이행을 거부한 순간 채권자는 자신이 보유하던 채권증서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김관기, 2006: 29) 채무자는 변제의사가 없는 것을 넘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변제능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채무자는 파산절차를 선택하여 채권증서를 공식적으로 무효화시키게 된다. 채권자는 법적 소송절차 등을 통해 채무자의 재산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실시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집행비용을 감수해야만 한다. 더욱이 강제집행을 해보았자 집행비용을 넘어서는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없다면, 해당 채권증서는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전혀 가치가 없는 채권증서는 자산항목으로 인식할 수 없다. “공정타당한 회계원칙은 부실채권의 가치를 상각(write off)하도록 요구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분식회계로 규정”(김관기, 2006: 22)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무자가 변제능력이 없어 채무상환이 중단된 채권증서는 경제적으로 아무런 실질가치도 갖지 않는다. 그 경우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액면가보다 낮은 금액에라도 이 채권증서를 팔게 되면 그만큼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된다. 이런 점에서 채권추심은 가치를 상실한 부실채권을 보유한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해당 채권증서를 되파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채권추심원은 집요한 영업사원이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채무자에게 부실채권을 팔고자 한다. 채권추심원은 이 채권증서를 되사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는 협박을 하기도 하고, 지금 갚으면 이자를 탕감해 준다고 유혹하며 재고처리를 위한 “대폭 세일”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김관기, 2006: 32) 이 과정에서 채무불이행의 결과에 대한 협박, 반복적인 전화 독촉 등의 스토킹, 가정이나 직장 방문, 주변인들에 대한 채무사실 유포 등 갖은 불법적 행위가 자행된다.(송태경, 2011; 제윤경, 2015) 실질적으로 가치가 제로에 가까운 부실채권을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채무자의 상태가 어떠하든 돈을 받아내기만 하면 큰 수익이 남기 때문이다. 이는 채권자 입장에서 실질적인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것보다 개별적인 추심이 훨씬 더 큰 이득이 된다는 의미로, 달리 말해 채무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파산 등의 법적 절차가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다.(김관기, 2006: 45)

금융화를 계기로 채권추심업이 합법화된 것은 빈곤층의 채무증서가 부실채권 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시장에서 헐값에 사고 팔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당초에 여신을 실행한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추심과 관리비용이 드는 채권의 회수가 그리 수익성 있는 사업이 아니다. 예컨대, 한 채무자가 1,0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데 소득이 개선될 여지가 없어 실질적으로 열심히 추심을 하면 30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채권자가 판단했다고 치자. 이 경우 이 채권의 가치는 실제로는 3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추심비용이 들고 또 장래에 받는 300만 원은 일정한 이자율로 할인하여 현재가치로 환산(자본화)해야 하기 때문이다.(김관기, 2006: 102) 일반적인 금융증권과 마찬가지로 이 채권의 가치는 기대수익과 리스크를 고려하여 산정되는데, 채무자의 변제능력이나 관리비용을 생각했을 때 가치가 0이 되거나 심지어 마이너스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은 연체상태가 지속되는 채권증서를 추심기관에 팔아넘긴다. 추심기관은 채권증서들을 대량 매입하여 저렴한 비용으로 관리하고, 또 전문적인 추심기법을 동원해 회수를 달성하여 수익을 올린다. 예컨대 은행이 1,000만 원이 연체된 부실채권을 액면의 5%인 25만 원에 팔면, 이러한 채권을 산 ‘유동화’ 전문 회사는 채무자에게 액면 그대로 1,500만 원을 추심한다. 은행은 가치가 0에 가깝던 채권을 5%에라도 팔아 수익을 내는 한편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추심회사는 25만 원에 사들인 채권으로 1,500만 원이라는 막대한 수익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김관기, 2006: 68)

2013년 박근혜 정부의 공약에 따라 설립된 ‘국민행복기금’은 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에 당면해 금융소외자의 채무를 재조정해주는 제도로 도입되었는데, 이 역시 채무재조정의 명목으로 부실채권을 사들여 큰 이익을 남기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민행복기금의 설립취지는 “금융소외자의 과도한 채무 부담을 줄여 회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자활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정상적인 경제활동의 주체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국민행복기금은 신청자의 상환능력이 부족한 경우 채무자 연령, 연체기간, 소득 등을 고려하여 30~50%(특수채무자는 60~70%) 채무감면 및 최장 10년까지 분할상환 하도록 상환기간을 조정해주고 있다. 만약 평균 소득(월 45만원)과 평균 부채(1,234만원)을 가진 1인 가구가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8년간 매월 13만여 원을 상환해야 하지만, 국민행복기금의 경우에는 최장 10년간 50퍼센트의 면책을 받는 경우 매월 5만 원가량만 부담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워크아웃 프로그램에 비해 채무자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그로 인해 국민행복기금은 도입 당시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킨다며 금융권과 보수언론의 질타를 받았으며, 결국 기금 규모나 감면 대상이 애초 공약보다 10분의 1로 줄어든 채 시행되었다.(제윤경, 2015: 151-153)

그러나 보수언론의 우려와 달리 국민행복기금은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여 채무를 조정해주는 프로그램으로서 꽤 남는 수익사업이다. 2013년 8월 말까지 국민행복기금이 매입한 채권의 가격은 원 채권가격의 평균 3.72퍼센트에 불과했다. 즉, 1,000만 원짜리 채권을 37만2,000원에 샀다는 이야기이며, 50%를 감면해주더라도 500만 원을 돌려받는 구조였다.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실의 발표에 따르면, 국민행복기금 사업으로 은행 등 금융기관이 2018년까지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수익은 총 9,000억 원에 달했다. ‘금융소외자’에 대한 구제책인 국민행복기금이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의문은 국민행복기금이 비록 정부 공약사항이지만, 실제로는 세금이 투입되는 정부기관이 아니라 주식회사라는 사실을 통해 쉽게 풀린다. 국민행복기금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자산관리자로서 자산의 관리·운영을 전담하나, 주요 주주가 금융권 인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은행연합회 회장이 이사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사실상 주주인 금융기관의 이해에 따라 부실채권 시장에서 수익을 올리는 주식회사인 것이다.

이처럼 부실채권을 ‘땡처리’ 판매해 큰 수익을 내는 기법은 과다채무자의 상환책임을 면제하는 대신 그들을 지속적으로 채무의 고리에 잡아두는 방식이다. 추심업체들이 불법을 넘나드는 가혹한 추심행위를 일삼는 것도 이것이 가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고수익의 사업기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채무자는 채무액의 일부를 탕감해주겠다는 추심업체의 유혹에 이끌려 빚의 일부라도 변제를 개시하는데 이는 오히려 채무자에게 부정적 효과를 야기한다. 채무자의 변제의사는 채권의 가치를 높이고, 그에 따라 더 많은 금액을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이 유지하는 리볼빙, 대환, 프리워크아웃, 장기분할상환, 만기연장과 같은 제도에 순응하는 것은 변제의지를 보임으로써 채권자에게 희망을 주고 채권가치를 올린다.”(김관기, 2006: 103) 따라서 ‘신용회복’의 명분으로 제공되는 각종 프로그램은 채무자의 권리인 법적 파산에 따른 채무 면책을 막기 위해 금융기관이 동원하는 각종 수탈의 기술들이라 할 수 있다.

국민행복기금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수탈의 기술은 단지 금융기관만이 아니라, ‘금융소외자의 채무 부담을 줄여 자활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에 의해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채무자는 채무재조정을 통해 다소간 이익을 얻는 듯 보이지만, 이미 그 실질가치가 원래 가치의 3% 수준에 불과한 채권증서에 대해 수년 간 상환의 의무를 다하는 셈이 된다. 그들은 채무재조정의 대가로 면책의 권리를 상실한 채, 수년간 성실하게 상환 프로그램을 이행해야만 한다. 정부는 채무에 대한 면책이 금융기관의 이해를 헤칠 것이기에, 과다채무자에 대한 채무탕감이 아닌 ‘상환능력 회복’을 최우선 목적으로 규정한다. 이는 과중채무로 고통 받는 채무자를 빚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주는 대신 금융시장 내에서 채무자의 상태로 지속시키는 방침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 오늘날 빚을 진 빈곤층은 사회적 권리를 보장받는 대신 익명의 채권이 되어 금융시장 내에서 이리저리 사고 팔리고, 상환능력 회복을 위해 스스로 분투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주

1.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워크아웃 졸업자 40만 명 돌파”, 신용회복위원회 보도자료, 2015.3.25
태그

신용 , 빚테크 , 리스크 , 금융소비자 , 금융적 통치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최철웅(중앙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