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토론회 불참’…요동치는 경주 민심

[총선현장-경주시] 권영국 젊은층 존재감
정종복 큰절에 동정표, “김석기 잘 모르지만···그래도 1번”

‘경합’ 지역. 즉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곳에서 으레 ‘진흙탕 선거’가 벌어지곤 한다. 경주도 마찬가지다. 초반 김석기 새누리당 후보의 구호는 “압도적 승리”였다. 2순위인 정종복 무소속 후보와 지지율이 크게 차이 날 때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 후보 지지율이 반등하며 그 구호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정 후보 쪽에서 ‘마지막까지 눈물로 호소’한다는데요···유치합니다. 우리는 ‘남자가 흘릴 것은 눈물이 아니라 땀’이라고 현수막 달려고 했다가 말았어요”(8일, 김석기 선본 관계자)

7일 정 후보 유세에서 부인 박해현 씨가 빗속에서 시민을 향해 수없이 큰절을 올렸다. 지지율이 세뱃돈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큰절과 눈물을 보며 감동했다. 김 후보는 긴장감을 보였다. 판세를 알 수 없게 되자, 유력한 두 후보 사이에서 ‘흑색선전’ 논란이 오가기 시작했다. 진흙탕 싸움이 시작됐다.

‘진박 싸움’, ‘존영 다툼’, ‘무성이 나르샤’처럼 정치는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도 여의치 않고 몸을 굴리는 것이 여권의 능력이다. 이 지역 야권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이상덕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뒤늦게 108배를 시작하며 진흙탕에 뛰어들었다. 별달리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권영국 무소속 후보는 정공법을 펼쳤다. ‘노동자’, ‘서민’을 앞세우고 TV토론회에 나서 ‘부자 증세’를 이야기하는 등 선명하게 정체성을 드러냈다. 하지만 토론회에서 권 후보는 기대만큼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정 후보는 토론회에 나오지 않은 김 후보를 향해 날 세우되, 토론회에 나온 다른 후보에게 날 세우지 않았다. 선명하진 않았지만, ‘좋은 그림’은 됐다. 먹혀들었다.

‘정책’이 사라지고 ‘사람’이 남자 김 후보가 수세에 몰렸다. 일왕 축하연 참석, 논문 표절 등 해명하지 않은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 김 후보 측 발(發) 공격도 나왔다. “정 후보가 당선되면 (지방의원) 공천 살생부를 가지고 있다”, “한수원 본사 위치 결정을 잘못해서 동경주·서경주 갈등을 유발했다” 등 소문이 돌았다.

토론회 불참 이후 “경주시민을 무시한다”는 원성을 뒤덮기엔 부족했다. 토론회 불참은 김 후보의 잘못된 한 수일까. 혹은 불참 역풍마저 감수할 이유가 있었던 걸까. TK에서 여당 공천받고도 김 후보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뭘까. <뉴스민>은 8일 황성동, 용강동, 성건동 일대에서 시민들을 만났다.

“김석기 후보, 용산참사 때문에 안 돼요”
“김석기 싫어서 정종복”, “어려워도 권영국 용기 줘야”


“용산참사 책임자는 안 됩니다. 새누리당도 싫고 김석기도 싫어요. 권영국 찍고 싶은데 당선은 사실 어려우니까···정종복을 찍었습니다. 정종복도 싫은데 용산참사 책임자보다는 나으니까요.”(김신형, 38, 서부동)

김 후보 이야기를 꺼내자 김 씨는 대뜸 용산참사를 말한다. “위에서 시켜서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여기도 누가 국회의원 시켜준다고 해서 왔겠죠. 누가 시켜준답니까”

성건동 사전투표소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 휴강·수업 마친 후 투표하러 온 20~40대 시민이 주로 눈에 띄었다. 중앙시장, 아파트단지, 초·중학교·대학교를 끼고 있어 비교적 젊은 유권자가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이 지역에서 투표한 현태영 (45, 양남동) 씨는 새누리당을 지지하면서도 김 후보를 찍지 않았다. 용산참사 때문이다. 그는 “용산참사 때문에 주변에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제가 볼 때는 희생이 안 나고도 충분히 마무리 지을 사건이었는데. 책임감 측면에서 후보자로 적절하지 않아요”라고 설명했다.

용산참사를 지적하는 이들은 권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권 후보 당선이 어려워 “차악을 택한다”며 정 후보에 표를 던진 이도 있었다. 당선이 어렵다고 해도 권 후보를 찍는 게 의미 있다는 이도 있었다. 황오동에서 투표하러 온 송예윤(47, 사회복지사) 씨는 “권 후보가 떨어져도 지지해야 자긍심 갖고 앞으로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지를 표했다.

송 씨는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같이 온 딸 하지송(20) 씨를 설득했다. 하 씨는 권 후보의 전과 이력을 보고 망설이며 스마트폰으로 권 후보 기사를 검색했다. “민주화 운동인 거면 나쁘진 않네요···난 그냥 김석기 후보와 새누리당이 싫어요”

TK여당 프리미엄 비해 김석기 후보 인지도 ‘글쎄’
“김석기 잘 모르지만···그래도 1번”
“대통령에게 힘 실어 줘야 안 됩니까”


한편 용산참사를 알면서도 김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은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내세웠다. 김옥조(71, 황성동) 씨는 “대통령님을 위해 수고하시잖아”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용산참사를 묻자 그는 “서울경찰청장이었지만 책임은 더 윗선에 있지 않을까? 사실 젊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린 상관 안 해”라고 답했다.

최수(75, 황성동) 씨는 “새누리당을 좋아하니까 김 후보를 찍지. 용산은 무죄 판결 났어. 사과하면 죄를 인정하는 거니 앞으로 김 후보는 사과도 못 할 거야”라며 “김 후보보다 위에서 지시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용산참사 당시 좀 그랬지만···되는 사람한테 힘 실어줘야지요. 딱히 김 후보 찍고 싶진 않은데, 모교 출신이고”(박홍석, 70, 가명, 황성동)

고령 유권자·노동자 정보 접근 어려워
낮은 투표율 속 ‘묻지 마 1번’ TK정서 무시 못 해


일부 시민들은 “경주는 공천받는다고 다 찍어주지 않는 이상한 곳”(박잠숙, 53, 성동시장 상인)이라고도 한다. 여당이라고 이기란 법은 없다는 말이다. 토론회 불참 역풍을 겪는 김 후보는 타격을 입었다. 그러면서도 김 후보를 둘러싼 여러 의혹과 용산참사 책임 문제를 또다시 비껴갈 수 있었다. 이제 TK의 ‘묻지 마 1번’ 정서가 남았다. 당선자를 가를 관건으로 보인다.

사전투표가 한창인 황성동 주민센터 2층, 그 바로 밑 계단 한쪽에는 청소노동자 쉼터가 있다. 권순자(가명, 55, 동천동) 씨는 8일 오전 11시경 투표 의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시큰둥했다. “우린 김석기고 정종복이고 잘 몰라···” 다른 청소노동자는 “그냥 1번 찍으면 돼”하며 지나쳤다.

옆에 있던 박윤옥(60, 황성동) 씨는 “아직 누가 나온 지도 모르니더”라며 거든다. 김석기 후보도 모르냐고 하니 “모르니더. 그냥 한나라당이 좋지요 뭐. 문자나 자꾸 오는데 몰라. 이런 일 하면 몰라요”라고 답한다. 그 순간 현관 쪽에서 “야 저기 커피 쏟아졌다”는 한 청소노동자의 말이 들리고 박 씨는 자리를 비웠다.

정책이 아닌 후보자 자격 문제가 쟁점이 된 경주 총선. 자격 논란에 ‘흑색선전’이라고 눙치기만 하는 김 후보. 낮은 투표율(사전투표 기준 경북 하위 6위) 속, ‘묻지 마 1번’이 맞물린 상황. 혼탁하게 얽힌 ‘민주주의’의 실마리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덧붙이는 말

박중엽 기자는 뉴스민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민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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