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참 받고 싶은데요

워커스 14호 경제 무식자들 - 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와 대담

  사진/ 김용욱 기자

경제 무식자 요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잖아요. 지난주에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놓고 국민 투표를 시행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성구 다른 좌파들 비판 지점도 비슷한데요, 기본적으로 너무 허무맹랑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유토피아 같은 세계가 열리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주자는 주장은 안 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기 임금을 위해서 노동하는데,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노동 속에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거든요. 거기서는 사람들이 자기 능력껏 일해요. 그리고 필요한 건 사회로부터 다 받거든요. 공산주의에서 기본소득이 들어갈 자리가 없죠.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이란 게 관념적이거나 주관적인 게 아니라 현실의 물질적 토대를 갖는 겁니다. 미래 사회의 요소들이 자본주의 내에서 이미 형성되고 이를 토대로 이행을 준비하고 공산주의로의 실제적 이행 속에서 이들 요소의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적 성격이 탈각되고 공산주의 요소로 전화되는 거거든요. 기본소득은 현실 자본주의하에서 물질적 토대가 없고요, 따라서 공산주의로의 이행 속에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공산주의 사회의 요소도 될 수 없죠.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소득을 달라 하니까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런 주장도 진보 좌파 내에서 제기하는 거라서 좌파들 간에 입장이 갈린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주장이 확산될수록 좌파 운동은 그만큼 망하는 거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은 더 멀어질 겁니다.

경제 무식자 전 기본소득을 너무 받고 싶어요. 좌파들은 비판을 제기하는데, 제 입장에서는 힘 좀 실어 주면 안 되나, 도대체 뭐 그렇게 비판할 지점이 많은가 의구심이 들어요.

김성구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주려면 소득의 원천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노동자들의 노동을 통해 창출되는 거예요. 자본주의 경제에서 그렇게 성과 보상 없이 소득을 주려면 전제로서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본소득이라는 건 이런 전제와 충돌해요. 모든 사람이 노동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게 충분한 정도의 기본소득을 준다면, 자본주의하에서는 아무도 노동을 안 할 거예요. 공산주의하에서는 필요한 걸 모두 사회로부터 받을 수 있지만, 공산주의적 인간은 노동 자체가 자신을 실현하는 생활상의 기본 욕구고 사회적으로 각자의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노동을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착취를 의미하니까 고통이거든요. 노동을 안 하죠. 그럼 소득이 창출되지 않아요. 자본주의 재생산은 불가능하고 무너지죠. 사람들이 노동을 안 하고 부가 가치 생산을 안 해서 GDP 생산 창출이 없는데 어떻게 기본소득을 받겠습니까? 모두가 무소득에 거덜 나는 거죠. 그래서 노동을 하든 말든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기본소득을 주자는 주장은 공상과 몽상의 발로일 뿐입니다. 이 운동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질서 내에서 발전하고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물질적 토대가 없거든요. 자본주의 기본 경제 원리와 연관되는 겁니다. 때마침 기본소득론자들이 기대했던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 투표도 압도적인 표차로 거부되었더군요. 국민들 요구가 높아져서 정말 줘야 한다고 하면 쥐꼬리만 하게 주겠죠. 기껏해야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일부를 충당할 정도로.

합리적 요구는 사회 보장 강화

경제 무식자 전 그 ‘쥐꼬리’라도 받고 싶어요. 월급 수준으로는 못 준다고 하더라도 실직하거나 고용이 불안정할 때 최저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소득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 하는 일이 의미는 있지만 소득이 낮아서 걱정인데, 기본소득을 준다면 낮은 임금을 그걸로 충당하면서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성구 노동자들의 노동력 재생산 수준을 충족시킬 정도로 기본소득을 준다면 자본주의 사회가 운영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국민 요구가 높아져서 준다고 하더라도 쥐꼬리만 하게 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원리상 가능한 대안이 아니라는 거죠. 노동자들의 재생산 유지를 위해서 임금으로 충당되지 않는 부분은 국가를 통해서 보충해야 해요. 기본소득도 국가를 통해서 준다고 하지만, 이건 실현될 수 없는 몽상이죠. 현대 자본주의의 실제적 관계에서 제기되는 요구는 국가를 통한 사회 보장 정책의 강화입니다. 이건 객관적인 토대가 있어요. 자본주의의 생산력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재생산과 위기관리를 해야 하니까 재생산 과정에 국가가 전면적으로 들어와 있거든요. 그중 하나가 노동력의 재생산이에요.
과거 19세기에는 노동력을 일반 노동자 가계가 책임졌어요. 자식 낳고 키우다가 공장에 보내고, 노동 시장에서 자본가들하고 직접 임금 결정을 했죠. 그런데 오늘날은 노동력 재생산이 그렇게 안 되거든요. 현대의 고도화된 기술 체계에 맞는 노동자를 생산하려면 어려서부터 고등 교육에 이르는 국가의 교육 체계가 필요해요. 이 과제를 자본가들에게 위임하면 할 수가 없어요. 자본가들이 자기 비용으로 노동자들의 자식을 교육시켜 줍니까? 그러니까 국가가 고등 교육 체계까지 갖추고 관리를 해 주는 거예요. 국가가 전체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거죠. 고용 보험 같은 것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교육 과정에 국가가 투자해서 노동자들이 현대 생산력을 떠맡을 수 있는 노동자로 성장했는데 산업 부문의 구조조정이다, 위기다 해서 실업으로 노동력이 파괴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국가가 이 부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거예요. 고용 보험을 만들어서 실업 보험금 지급하고 노동자 재교육 프로그램 만들고 일자리 알선해 주고, 이런 게 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체계들입니다. 여타의 사회 보장도 마찬가지예요. 노후 보장도 노동자 계급의 세대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거죠. 그래서 국가가 전면적으로 사회 보장 체계를 갖추게 된 겁니다. 이게 20세기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 나아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발전하면서 나타난 자본주의의 하나의 변화입니다. 이게 현실의 객관적 관계에요. 이 관계에서 발전하는 불가피한 요구를 제기해야 노동자 계급이 그 요구를 현실화할 수 있는 겁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요구는 사회 보장의 확대입니다. 그러니까 기본소득을 달라고 하지 말고 국가가 책임지고 고소득자, 대자산가, 재벌들 세금 높여서 사회 보장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라고 해야죠. 무상 교육, 무상 의료 하라고 하고 국민연금 강화시켜 달라, 전·월세 규제 입법화해서 주거 문제 해결하라 해야죠. 이런 요구는 합당한 요구고 실현될 수 있는 요구예요. 기본소득 주장은 이런 현실적 기반이 없는 구름 위에서 뛰는 것과 같은 주장이죠.
이런 논리적 비약이 생기는 이유가 기본소득론자들에게는 독점과 국가 독점에 관한 이론적 분석이 없기 때문이에요. 현대 자본주의의 변화된 조건 즉 독점 지배하에서 국가가 불가피하게 개입해야 하는 역사적 필연성에 대한 이해가 없어요. 기본소득보다 사회 보장의 요구를 강화하라는 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요구예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이론적 의의가 심대한 거죠. 제가 계속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주장하는 이유도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이런 식의 자본주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개혁과 이행의 요구를 이론적으로 포착하기 때문입니다.

경제 무식자 그럼 정치적 요구가 커져서 기본소득이 실현되면 거꾸로 사회 보장 제도가 위축될 수도 있나요?

김성구 그건 기본소득 주장하는 분들한테 물어봐야죠. 그런데 이분들한테 기본소득과 보육 수당, 주택 수당, 연금, 무상 등록금이 어떻게 연관되냐고 물으면, 그게 다 기본소득의 형태라고 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기본소득하고 사회 보장 요구는 전혀 다른 얘기예요. 이론적으로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기본소득론자들은 현대 사회에서의 국가 독점 자본의 지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가 노동자들과 자본가들로 구성돼 있고, 자본가들이 균등하게 경쟁하는 세계라고 생각해요. 자본가들이 경쟁을 통해서 균등하게 평균 이윤율을 갖는다는 거죠. 그래서 비용에 평균 이윤을 합한 생산 가격의 법칙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하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말할 때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이란 이렇게 ‘균등화된 이윤율’을 말해요. 사회 전체적으로 자본가들이 경쟁해서 이윤율이 더 높은 데가 있다면 자본가들이 그쪽으로 몰려간다는 거거든요. 그 시장의 상품 가격을 떨어뜨려서 이윤을 균등화하는 거죠. 그럼 사회 전체적으로 모든 자본가들을 지배하는 평균 이윤율이 만들어져요. 근데 이 평균 이윤율이,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저하한다는 얘기입니다.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평균 이윤율이 떨어지니까 모든 자본가들에게 위기가 된다는 얘기거든요.
근데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를 평균 이윤율이 지배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독점 이윤율과 독점 가격의 법칙이 지배하죠. 오늘날의 자본주의 질서는 자본가 계급에 의한 노동자 계급의 착취에 기반하면서도 총자본의 내적 구조가 변화되었죠. 한쪽에서 독과점이 지배하고 다른 한쪽에서 중소기업들이 독과점에 수탈당하는 체제입니다. 또 이에 따라 노동 시장도 분단돼 있어요. 재벌 대기업들의 정규직 노동자와 중소기업의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분할돼 있죠. 이 관계가 구조화돼 있어서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임금이 적다고 해서 재벌 기업으로 일자리를 바꾸지 못해요. 또 재벌 기업은 이윤율이 높고 중소기업들은 수탈당하니까 이윤율이 낮아요. 그렇다고 중소기업들이 재벌 기업 부문으로 자본을 이동시킬 수 있느냐? 자본도 부족하고 진입 장벽이 있어서 불가능해요. 구조적인 자본의 격차가 만들어져 있어서 재벌 지배 체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수탈 문제, 노동자들의 차별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이런 사회를 개혁, 변혁하려면 재벌 문제를 인식해야 하거든요. 재벌 문제를 인식하려면 독점 자본의 문제를 이해해야 해요. 그래서 독점자본주의론,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관점에서만 재벌 지배 체제를 개혁, 청산하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개 독점자본주의론을 거부합니다. 그러다 보니 재벌과 협력 업체들의 경쟁력이 똑같다고 주장합니다. 모두 평균 이윤율을 획득한다는 거죠. 이 말은 재벌에 의한 수탈도 없다는 얘기예요. 그러면서 재벌 개혁을 얘기하거든요. 앞뒤가 안 맞는 소리죠. ‘재벌이나 중소기업이나 다 똑같다, 자본의 지배가 문제다’라면서 재벌 개혁 얘기를 아예 안 하는 사람도 있고요. 이 사람들은 재벌 경제의 지배라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는 겁니다. 재벌의 지배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사실 재벌 지배의 핵심이 뭔지 모릅니다. 핵심이 독점 이윤의 문제인데 이 사람들 이론 체계에는 이를 분석할 이론이 없거든요.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재벌 개혁 연구자 중에 홍장표 부경대 교수가 오래 전에 이런 얘기를 했죠. 실증 분석을 해 보니까 재벌 기업이나 협력 업체나 하청 업체나 이윤율이 동일하다고요. 그럼 재벌 개혁을 주장하면 안 되죠. 모두 평균 이윤율을 얻는 동등한 자본인데, 재벌도 없는데 재벌 개혁을 왜 해요. 이렇게 자가당착적인 사람들이 재벌 개혁을 분석한다고 해요.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논자들도 같은 맥락이죠. 독점 자본과 국가 개입주의에 대한 이론이 완전히 결여돼 있어요. 현대 자본주의에서 노동력의 재생산에서 비롯되는 문제 즉 국가의 사회 보장 정책을 분석할 수 없으니까 그 이론적 공백을 메우려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 거죠.

복지 국가를 피해 갈 수는 없다

경제 무식자 기본소득이나 사회적 경제를 육성하자고 주장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복지 체제를 만들라고 주장하는 게 더 유의미하다는 말씀이시잖아요. 근데 좌파들은 복지 국가론도 비판하지 않나요?

김성구 좌파에서 비판하는 건 복지 국가 자체가 목적이 되는 거예요. 정의당 같은 데는 좌파 강령을 폐기했거든요. 복지 국가를 넘어서 사회주의 사회로 가는 길은 관심이 아닌 거예요. 영미권 마르크스주의자 중에서 복지 국가를 비판하는 논자들이 나오는 건 그런 맥락입니다. 그 비판 자체는 틀린 게 없어요. 그 비판을 뭐라 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와의 싸움을 통해서 사회주의 사회로 넘어갈 때 복지 국가를 둘러싼 논쟁을 피해 갈 수는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복지 국가는 자본주의 지배 체제라며 좌파가 복지 국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폄하하고 사회주의 투쟁만을 내세울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사회 보장 체계를 확장하느냐 축소하느냐가 케인즈주의 대 신자유주의의 싸움이거든요. 좌파들은 이런 싸움 속에서 복지 국가를 강화시키고 확장시켜 나가면서 자본주의 사회 내 복지 국가의 한계와 모순들을 폭로하고 보다 더 높은 사회화를 통해서 이를 해결해 나가자고 주장해야죠. 재벌과 금융 부문을 사회화까지 하면 복지 체계가 보다 더 완전하게 높아지는 거거든요. 사회주의 복지 체계로 가는 거죠.

경제 무식자 한국 좌파들은 케인즈도 되게 싫어하던데요. 어떨 때는 자본가나 재벌보다 케인즈와 싸우는 게 더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보여요.

김성구 마르크스주의 좌파도 크게 영미권 좌파와 정통 좌파 두 부류로 나뉘어요. 영미권 좌파들은 복지 국가의 진정한 쟁점인 국가 개입주의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날선 비판을 하지만 현실적 대응책은 완전히 결여돼 있어요. 정통 좌파들도 케인즈주의를 비판하지만 케인즈주의로 표현되는 쟁점들을 피해 가지 않아요. 복지 국가를 둘러싼 논쟁에 개입해서 복지 국가 확장을 요구합니다. 물론 복지 국가를 넘어 사회화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요구합니다. 오늘날은 영미권 마르크스주의자들도 많이들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이탈해서 케인즈주의나 복지 국가로 경사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영미권의 자칭 원칙적이고 어설픈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국가주의를 둘러싼 논쟁에서 정통파를 개량주의라고 공격하면서 폄하하는 거죠.
한국 좌파 사회 단체들도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이런 문제점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 강단에 비하면 사회 단체에는 그래도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상당히 포진해 있는데, 이 쟁점에 대해서 너무 좌편향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요. 노동사회과학연구소라든지 노동해방실천연대도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기반하고 있거든요. 근데도 정책적, 실천적 쟁점을 보면 국가의 사회 보장 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무시하거나 폄하해요. 이 사람들 관점에서 국가 개입주의는 개량이고 기만이고 사회주의로 뒤집어엎는 것만 중요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오늘날의 자본주의하에서는 국가를 통한 구체적 개혁과 싸우면서 이 속에서 사회를 변혁시키는 길을 찾아야지 이런 것을 건너뛰고 변혁할 수 있는 길은 없거든요. 게다가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퇴조한 상태에서 사회주의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내걸 수 있는 계급적, 정치적 기반도 약화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이론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좌파가 발전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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