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민 몰래 이라크에 공군 기지 건설 승인

“정부의 정보 통제,안전할 권리 위협”

정부가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을 고조시킬 수 있는 이라크 현지 공군 기지 건설 사업을 승인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정부는 국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국내 방위 산업체의 이라크 군사 기지 건설 사실을 국내에서만 쉬쉬하며 비밀에 부쳤다.

이라크 공군 기지 건설 사업은 KAI(한국항공우주산업 주식회사)가 수주해 이라크와 한국 정부(국방부) 간 합의에 따라 지난해 상반기 착공했다. 이 사업은 애초 KAI가 개발한 경공격기(FA-50) 24대를 이라크 정부가 수입하기로 한 뒤 전투기 운용 기지 건설도 한국 측이 맡아 달라고 제안하며 성사됐다. KAI의 이번 수출은 후속 군수 지원 등을 포함해 총 21억 달러(약 2조 2000억 원)짜리 사업으로 국내 항공기 수출 역사상 최대 규모다. 공군 기지 건설 비용까지 포함하면 약 3조 원 규모에 달한다. 이번 계약은 한국과 이라크 양국 정부가 보증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라크 국방부와 KAI의 경공격기 계약 체결 장면 [출처: KAI]

한국 방위 산업체의 이라크 내 군사 기지 건설은 IS 테러 위협 등 중동 정세를 고려할 때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이미 IS는 지난해 9월 한국을 ‘십자군 동맹군’이라고 규정하며 공격 대상으로 지목했다. 최근에는 국가정보원이 IS가 한국인 1명과 주한 미군 시설을 테러 대상으로 지목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IS와 내전 중인 이라크 정부의 군사 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자칫 IS 테러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라크 공군 기지가 위치한 곳의 지역적 위험도 크다. 《워커스》 취재 결과, 건설 중인 공군 기지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수와이라 지역에 있다. 이 지역은 현재 IS와 정부군 간 최대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팔루자와 불과 100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IS는 지난해 2월에도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 서부 공군 기지를 공격한 바 있다. IS는 현재도 무장 투쟁 외에 다양한 테러 공격을 감행하고 있어 교민 안전이 쉽게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가 안보나 교민 안전은 고려하지 않고 사업을 승인했다. 경공격기 수출 계약은 2014년 6월 IS가 모술을 기습 점령하기 전인 2013년 12월에 이뤄졌지만, 공군 기지 건설 계약은 그 이후에 체결됐다. 심지어 공군 기지의 착공은 IS가 부상한 이후인 2015년 상반기에 단행됐다. 착공 전에 충분히 사업 승인을 재고할 시간이 있었지만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 사회는 2014년 8월 IS를 폭격하면서 전투가 더욱 격렬해졌다. 유엔(UN)에 따르면 2014년 초부터 다음 해 10월 말까지 최소 1만 8,802명이 목숨을 잃고 3만 6,245명이 부상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착공 직전인 2015년 1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샤를리 엡도 테러가 일어나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같이 내전이 심화되고 IS의 해외 테러에 세계가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지만 KAI는 공군 기지 착공을 강행했고 정부도 승인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무장 괴한들의 동시다발적인 총기 난사와 폭탄 테러로 130명이 사망했다. 올 3월에는 벨기에 브뤼셀 국제공항 등에서 폭탄 테러로 최소 17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한국 정부, 이라크 군사 기지 건설 사실 숨기려 보도 통제

  공습에 불타는 이라크 거리 [출처: TomDispatch]

한국 정부는 이 같은 이라크 기지 건설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정부가 논란을 피하고자 국내 언론의 보도만 통제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애초 이 사실은 국내에선 지난 21일 <한국일보>가 보도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뒤늦게 보도가 나왔지만 사안의 중요성에도 정부는 이라크 군사 기지 건설 사실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 방위사업청은 21일 해당 기사가 나오자 국방부와 외교부 출입 기자단 등에 “우리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으므로 관련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방위사업청은 <한국일보>를 직접 찾아가 보도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국일보>는 22일 인터넷판에서 해당 기사의 내용을 축소해 재발행하는 한편, 계열사인 영자 신문 <코리아타임즈> 기사를 아예 내렸다. 국내 다른 언론사들도 보도를 하지 않았다.

방위사업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21일 《워커스》와의 통화에서 “(이라크 공군 기지 건설과 관련해) 어떠한 내용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언론 보도 통제와 관련해선 “IS 관련 중동 안보와 국내 테러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국익과 교민의 안전을 위해 해당 언론사(<한국일보>)에 항의하고 기사를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며 “해외 IS에 자극이 되기 때문에 보도를 지양하는 것이 올바른 언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랍·영어권 외신은 이미 2014년부터 보도

문제는 이번 사안이 국내서는 비밀리에 추진됐지만 다수의 외국 언론을 통해 이미 보도되었다는 점이다. 뒤늦게 한국 정부가 IS 테러 위협을 이유로 극비리에 사업을 추진한다며 국내에서 보도를 통제했다. 그러나 아랍어와 영어권 외신들은 2014년 7월부터 기지 건설과 관련한 주요 내용을 보도했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이라크 수니파가 다수인 IS는 2014년부터 관련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아랍어로 발행되는 이라크 언론 <부라타뉴스(burathanews.com)>는 2014년 7월 23일 “하성용 KAI 대표가 ‘이라크가 남부에 경전투기 사용을 위한 새 공항 건설을 제안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또 “하성용 대표는 ‘KAI가 다른 건설 회사와 협력을 통해 이 공항을 건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이라크 영자 신문 <이라키뉴스(IraqiNews.com)>도 2014년 7월 23일 “한국 기업 KAI의 하성용 대표는 ‘이라크가 남부에 24대의 경전투기 사용을 위한 새 비행장 건설을 제안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하성용 대표의 말을 인용해 “이라크 당국이 새 전투기를 위한 공군 기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KAI는 이 사안에 대한 논의를 희망했다”고 보도했다.

최근에는 이라크 현지의 ‘국방 포럼’ 등 아랍어로 된 인터넷 사이트에 한국이 공군 기지 건설을 수주했다는 내용이 잇따랐다. 주한 이라크 대사관 홈페이지에도 해당 사업과 관련한 내용이 게재되어 있다.

국내에서 보도가 되지 않더라도 현지에서 착공이 이루어졌다면 IS에 관련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뿐만 아니라 최근 국내 언론사 보도 뒤 이라크 언론 <알마다프레스>는 21일(현지 시각) 바로 “KAI가 바그다드 남쪽 공군 기지 구축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가 국내 보도를 통제하더라도 이 사실을 숨기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국내 언론도 이라크 기지 건설 사업이 논의되기 시작한 2014년 중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방위 산업 수출 성과에만 치중하고 군사 기지라는 핵심 사실은 누락해 논란을 비껴갔다.

<조선일보>는 2014년 7월 22일 “하성용 KAI 사장 ‘이라크에 공항까지 건설 … 세계서 보는 시선 달라져’”라는 제목으로 “세계 각국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찾고 있습니다. FA-50을 빨리 좀 보내 달라고 요청하던 이라크는 최근 아예 공항도 건설해 달라고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하 사장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뉴스1>도 같은 날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기지’ 재건 사업 수주 초읽기”라는 제목으로 공군 기지를 ‘공항 기지’라며 관련 기사를 전했다. <연합뉴스>는 영문으로 “이라크 당국이 새 전투기를 위한 공군 기지에 관한 필요성을 밝혔고 아직 체결은 되지 않았으나 KAI가 후속 논의에 희망을 나타냈다”며 하성용 사장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국내 언론이 입을 다문 것과 다르게 관련 기업은 해당 사실을 홍보하기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에 상세히 밝히고 있다. 건설 솔루션과 컨설팅 전문 S 업체는 지난 10일 홈페이지에 설계도까지 올려놓고 해당 사업이 이라크 수와이라 공군 기지 재건 프로젝트(IRAQ SAB Project)로 포스코엔지니어링 등이 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 H 컨설턴팅 업체 관계자 또한 자체 인터넷 페이지에 2014년 6월을 시작으로 KAI에 이 사업에 관한 상담을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

“테러가 걱정됐다면 공군 기지 짓지 말았어야”

결국 한국 방위 산업체가 군사 기지를 이라크 내전 지역에서 건설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정부와 해당 산업 관계자, 일부 언론사만 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던 셈이다. 가장 중요한 국민의 안전할 권리와 알 권리는 이번에도 뒷전이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정부가 국민 안전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비보도를 요청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으로 김선일 씨 죽음 등 논란이 있었고 최근에는 한국이 테러 대상이 됐다는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사회적 논의 없이 극비리에 공군 기지 건설 사업을 승인한 것이 타당한지 의문스럽다. 또 현지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라면 이미 공개된 사안인데 비보도 한다고 해서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보도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세월호 참사 초기에 정부는 참사 원인을 밝혀내려는 노력과 토론에 대해 유언비어 유포니 명예 훼손이니 하며 통제를 남발했는데, 무엇이 위험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통제하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이러한 정부의 정보 통제 메커니즘이 안전의 권리를 위협한다. 모르면 대비할 수도 없다. 테러가 걱정되었다면 공군 기지를 짓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라크에서는 2011년 미군이 전쟁 종식을 선언한 지 3년 만에 정부군과 IS 사이에 내전이 격화되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IS에 대한 공습을 미국에 요청했고,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 사회는 2014년 8월 IS에 대한 공습을 개시한 한편 미국과 일부 중동 국가들은 2014년 9월에 시리아에 있는 IS 점령지로 공습 범위를 확대했다. 한국은 미국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자이툰 부대를 파병했었다. 현재 이라크 내전에도 다양한 한국 기업이 도시 개발 등 여러 재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워커스 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