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공갈의 경제학

경제로 보는 세상

  홍진훤

‘브렉시트’ 말말말
지난 6월 마지막 주, 대한민국은 온통 브렉시트 논란으로 들썩였다.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할 만한 빅뉴스였으니 대통령도 직접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브렉시트를 비롯한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와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안보 위기가 지속하는 상황 속에서 구조조정을 본격 추진해야 하는 엄중한 상황 …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은 내부의 분열과 무관심 … 과거 월남이 패망했을 때도 내부의 분열과 무관심이 큰 원인이었다 … 분열을 꾀하며 북한을 옹호하는 세력들을 막아야 한다.(6월 27일 대통령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브렉시트 -> 경제 위기 -> 월남 패망 -> 종북 척결’로 이어진 대통령의 이 황당한 담화문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담화 속에 담긴 대통령의 정세 인식을 보면, 곧 불어닥칠 경제 위기 속에서 국민이 단결하지 않고 분열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이른바 ‘충격 요법’의 논리가 담겨 있다. 아니나 다를까 TV 속 패널로 등장하는 일부 정치 평론가들은 한결같이 임박한 경제 위기를 강조하기 바빴다. 심지어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하는 경총의 입장서에도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 위기가 그 근거로 등장했다. 그런데 경제 위기 때문에 영세 자영업자들이 어려워져 최저임금을 동결시켜야 한다는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경제 위기 때문에 빈곤 노동 계층의 위기가 심화할 테니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히려 최저임금이 인간의 삶에 필요한 최저 생활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후자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이처럼 브렉시트나 국가 부채 위기 같은 소재로 경제적 공포를 과장하고 윽박지르며 자기 뜻대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공갈의 경제학’이라고 불러도 될 법하다. 브렉시트로 촉발된 경제 위기 논란이 엉뚱한 방향으로 과잉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만의 사정은 아닌 것 같다. 심지어 브렉시트의 진원지인 런던에선 집값이 앞으로 18%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부동산 저가 매수의 기회가 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앞으로 2년간 18% 떨어질 텐데 왜 지금 사야 할까?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가 뛴다고, 한국의 어느 부동산 케이블 방송에선 주식 시장이 불안하니 실물인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리라 전망하기도 했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매매 차익을 노리는 부동산 투자라는 게 금융 상품 투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대로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똑같이 안전한 방향으로 돈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브렉시트를 둘러싼 ‘말잔치’는 여기저기서 냉소와 실소를 자아내는 논쟁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까지 출연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를 더 씁쓸하게 한다.

브렉시트발 경제 위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차분하게 브렉시트발 경제 위기 가능성과 양상에 대해서 짚어 보자. 일단 장기적으로 점점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통합 유럽의 정치 위기는 여기서는 빼도록 하자.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경제적인 측면의 위기 요소를 먼저 따져 보자.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는 어떻게 되는 걸까? 당사자인 영국 재무부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유럽연합 탈퇴 시 2030년까지 자국의 GDP가 6% 줄고, 가구당 4,300파운드(약 750만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투자 감소와 경기 침체로 인해 향후 2년 내 일자리 50만 개 감소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영국 캐머론 총리는 지난 2월 유럽연합과 협상을 통해 7년간 이민자를 차별할 수 있는 권리와 유로 존의 결정에 대해 세이프 가드를 발동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은 후 브렉시트에 반대해 왔다. 오스본 재무장관은 캐머론 총리의 오른팔로, 영국 재무부가 브렉시트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과장하면 했지 결코 축소해서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막상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오스본 재무장관은 “영국 경제는 현재 직면한 도전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며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 국제통화기금(IMF), 주요 금융 기관의 대표들과 긴밀히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것도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일회성 발언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전망에 기초해 현재 상황을 진단해 보자. 단기적으로 발생한 금융 시장의 동요는 일회성 충격으로 이후 각국 중앙은행의 국제 공조 속에서 어느 정도 관리가 되고 있다. 미국 연준, 영란은행,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 등이 오래전부터 취해 온 양적 완화 정책과 커뮤니케이션 전략 틀 안에서 금융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와 다른 점은 당시 연쇄 부도로 심각한 문제가 된 구조화 채권(CDO)과 같은 파생 금융 상품의 규모가 현저히 줄었고,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이 브렉시트 시나리오별로 대응책을 미리 세워 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금융 시장도 일회성 충격 이후 별다른 동요가 일어나진 않고 있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6월 24일 직후 금융 시장이 요동쳤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29일 현재 영국의 금융 시장도 브렉시트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했다.
중기적으로 보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가 관건이다. 현재 혼란스러운 영국의 내부 상황으로 볼 때, 어느 정도 권력 질서가 정리된 후 이뤄질 것 같다. 영국이 협상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는 자국의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출구 전략을 찾기 위함이다. 유럽연합도 일부 회원국은 격양되어 있으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인 독일 메르켈 총리의 적절한 완급 조절 발언으로 볼 때, 파국적인 대립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국 내에서 벌어지는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분리 움직임과 찬반 진영의 치유되지 않는 갈등의 골은 위험 요소로 계속 작동할 것이다. 그럼에도 유럽연합이 스코틀랜드의 독자 가입을 승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렇게 되면 스페인과 같이 분리 독립 움직임이 있는 유럽연합 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고 이 나라들은 결코 스코틀랜드의 독자 가입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런던 금융 시장의 국제적 지배력은 여전히 논란 거리다. 런던 시티(The City)는 유럽 금융 시장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는데, 유럽연합 탈퇴로 영국이 이런 효과를 누릴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가령 런던에 있던 유럽은행감독청(EBA)은 다른 유럽 도시(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전을 추진 중이다. 유럽은행감독청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인 지난 2011년 유럽연합 내 은행 규제 및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런던에 설립됐다. 또한, 글로벌 금융사들도 영국이 아닌 유럽연합 내 다른 도시로 이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변화가 런던이 누리는 금융 서비스업에 일정한 타격을 줄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런던 시티는 유로화가 생기고 유럽중앙은행(ECB)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어도 지금까지 건재했다. 또한, 유로 존의 위기와 불안정성이 계속되면 유럽연합 탈퇴로 인해 영국의 안정성이 더 부각될 수도 있다. 영국의 대표적 시중 은행인 바클레이즈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혼란을 피한 자금의 안전한 도피처(safe haven)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런던 시티가 여전히 금융 시장에서 국제적인 지배력을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는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의 경제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그뿐만 아니라 런던 금융 시장에서 달러화 1일 거래량이 2조 달러에 달해 미국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유럽의 경제 위기 이후 금융 규제가 한층 더 강화된 상황에서 시티에 있던 대형 글로벌 금융사들이 유럽으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렇게 단기적 충격과 중기적 전망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짚어 보았다. 물론 여기엔 통합 유럽의 정치적 위기를 고려하지 않았다. 브렉시트에 영향을 받은 각국 분리주의 세력의 움직임이 그러한데, 이 정치적 위기는 매우 복잡하므로 단기간에 해소될 순 없다. 영국의 유럽연합 이탈이 어떤 촉매제 역할을 할지는 아직 예견할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적 지배 질서로 기능했던 유럽연합이 질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스스로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가 확실하게 드러났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영국 노동자들은 런던 시티가 어떻게 유지될 것인가 하는 점보다, 런던 시티 금융가의 엄청난 부와 소득 격차에 더 분노하고 있을 뿐이다.

브렉시트에 대처하는 자세
영국 우익들이 브렉시트의 근거로 삼아 온 영국의 유럽연합 분담금을 건강 보험에 쓴다는 얘기가 거짓말이듯, 브렉시트를 하면 영국과 세계 경제가 주저앉는다는 것 역시 거짓말이다. 브렉시트의 위기를 과장해 온 유럽연합의 주도 세력은 신자유주의 외에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TINA)’라고 했던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말과도 같이 유럽연합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을 보이려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브렉시트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재투표를 해 다시 담을 순 없다. 재투표해 다시 잔류로 결정된다고 해도 탈퇴 진영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 갈등의 원인이었던 지역 간, 계층 간 경제적 차별과 이민자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는가에 있다. 혹자의 비판대로 브렉시트 논란에서처럼 우파가 신자유주의 지배 체제를 공격하고 좌파가 그 체제를 수호하는 아이러니한 상태가 지속하는 한, 그 노력은 계속 맴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갈등을 들여다보고 이해할 때, 잔류와 탈퇴 중 어떤 것이 더 옳았는지를 복기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더는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고 있고, 우리가 처한 현실적 조건도 영국과 유럽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잘못된 선동, 소위 ‘충격 요법’과 ‘공포 비즈니스’의 과잉에 대해서 그 허상을 짚어 내고 실질적인 교훈을 얻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대중의 삶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작금의 브렉시트 사태는 이제 그 진단과 위로만으론 사태 해결의 진전을 이룰 수 없다는 걸 보여 줬다. 우리 사회도 뭔가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행동이 필요한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그 임계점을 넘어설 정치적 용기를 과연 영국처럼 우파에게 넘겨줘야 할 것인가? 다행인 건 한국의 우파는 체제의 수호자로서 그럴 용기는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걸 위안으로 삼기엔, 우리에게도 역시 정치적 용기와 결집이 아직 미약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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