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노동자 대표, 한목소리로 “한상균 석방”

105차 ILO 총회 참가기

지난 5월 30일~6월 10일 제네바에서 열린 105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International Labour Conference)에 다녀왔다. ILO 회원국 노사정 대표가 참여해 세계적으로 중요한 노동 현안을 토론해 새로운 국제 노동 기준의 필요성을 검토하는 한편, 각 회원국이 비준한 협약 이행 혹은 위반 사항을 점검하고 개선을 권고하는 것이 ILO 총회의 역할이다. 민주노총은 한국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해당 주제에 관한 한국 노동자의 상황을 전달하거나 국제 노동자 그룹의 일원으로서 관련 논의에 참석한다. 올해는 민주노총을 대표해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 조현주 법률원 변호사, 그리고 필자가 참석해 본회의, 글로벌 공급 사슬과 양질의 일자리 위원회, 기준 적용 위원회에서 각각 활동했다. 각각의 활동 내용과 여기서 제기된 과제를 소개한다.

[출처: 류미경]

한국에서 벌어지는 노동 탄압에 대한 국제 연대 조직

지난해 11월 14일 민중 총궐기의 강제 진압과 무더기 소환, 시위 참가자와 주최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올해 초부터 국제 노총 및 여러 국제 산별 노련에서 여러 차례 민주노총을 방문했고 온라인을 통한 석방 촉구 캠페인도 진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2008~2009년 개시된 세계 경제 위기 이후 청년 실업 해소를 명분으로 해고를 쉽게 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확대하면서 노동 기본권을 축소하는 노동법 개악은 세계적인 현상이고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도 각국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을 이유로 노동조합 총연맹의 위원장을 형사 기소하고 구속하는 일은 한국을 제외하고 찾아보기 힘들다.

빈곤 철폐를 위한 ILO의 과제를 다루는 사무총장 보고서를 놓고 각국 노사정 대표가 토론하는 본회의에서는 프랑스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을 비롯해 각국 정부의 노동 개악을 규탄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역시 이러한 토론에 참여해 한국에서 빈곤을 철폐하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재벌이 조세 책임, 사용자 책임,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국 노동자 대표와 국제 산별 노련 대표들은 토론 과정에서 전 세계적인 노동 기본권 후퇴의 대표적인 예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과 형사처벌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런 언급은 빈곤 철폐를 위해 ‘노동 개혁’이 필요하다고 열변을 토하며 민주노총을 “현실 직시를 거부하고 현상 유지를 바라는 일부 세력”으로 매도하기에 여념 없었던 노동부 차관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각국이 비준한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심의하는 기준 적용 위원회에서도, 심의 대상에 오를 정부 목록을 채택하는 세션에서 전체 노동자 그룹을 대표하는 마크 리먼 대변인은 모두 발언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들이 노동법 개악에 맞서 집회 결사의 자유의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형사처벌에 직면해 있지만, 한국 정부가 87호 협약(결사의 자유)을 비준하지 않아 이 자리에서 심의조차도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힘입어 7월 4일 한상균 위원장의 선고 공판을 앞두고 100개가 넘는 국제 노동 조직 및 각국 노동조합에서 무죄 석방을 촉구하는 서한을 박근혜 대통령 앞으로 보냈다.

국제 노동 기준 상향
글로벌 공급 사슬에서 원청 기업의 사용자 책임을
강제하는 국제적 투쟁 형성


올해 ILO 총회에서 논의된 여러 의제 중 가장 논쟁적이고도 많은 관심을 끈 주제는 ‘글로벌 공급 사슬에서 양질의 일자리’였다. 자본은 비정규직 고용 확대, 다단계 하청과 외주화, 노동력이 싸고 규제가 약한 국가로의 생산 기지 이전으로 비용은 줄이고 책임은 회피해 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확대로 초국적 기업의 행위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의 수는 급증했지만, 이들이 자신의 노동 조건에 대한 책임을 초국적 기업에 물을 방법은 멀어졌다. 국제 노총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기준 설정을 위한 논의를 총회 의제로 다루자고 지속해서 주장해 왔고 이에 따라 해당 위원회가 올해 총회에 설치된 것이다.

국제 노총은 초국적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글로벌 다단계 하청 구조 전반에 국제 노동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지만, 일국적 노사 관계, 정규직 직접 고용을 전제로 수립되어 온 현재의 ILO 협약이 더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총회 개막식에서 뤽 쿼터벡 노동자 그룹 대변인은 새로운 ILO 협약의 채택을 노동자 그룹의 목표로 제시했다. “장소를 불문하고 기업이 행한 권리 침해를 규율할 수 있는 법규를 제정할 국가의 의무를 이 협약의 중심에 놓아야 합니다. 더불어 기업이 자신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권리 침해를 예방할 의무(Due Diligence), 공급망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의무, 안정적인 고용의 촉진 의무, 비자발적이고 비전형적인 형태의 고용 철폐, 산업별 혹은 초국적 단체 교섭, 노동 기본권 보장 등을 명시해야 합니다.”

반면 사용자 그룹은 이러한 협약 수립에 반대하고 나섰는데, 사용자 그룹 대변인은 “정부의 책임을 기업에 전가해서는 안 되며 (ILO에서 새로운 협약을 수립하려는 시도가) 기업과 인권에 관한 기존에 수립된 국제적 합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ILO의 신뢰성을 약화할 수 있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사용자 그룹의 방해에도 ILO 내에 협약을 포함한 새로운 틀을 통해 글로벌 공급 사슬 전반에서 초국적 그룹의 행위를 규제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였다.

채택된 결론문은 국제 공급 사슬을 규율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로 △법 준수 및 노동 행정 시스템 강화 △모든 노동자에게 단결권 단체 교섭권 보장 △공공 조달에서 노동 기본권 증진 △국영 기업/공기업 인권 실사-Due Diligence 실행 △공급 사슬망 양질의 일자리 촉진 △책임 기업 경영 촉진 및 규제 △반부패 △무역 협정에서 노동 기본권 하락이 비교 우위로 활용되지 않도록 노동권 기준 포함 △국제 공급 사슬 내 모든 노동자 노동권 보장 방안 도입을 제시했다. 또 기업의 역할로는 △국제 기본 틀 협약(Global Framework Agreement, 국제 산별 노조와 초국적 기업이 체결하는 낮은 수준의 초국적 단체 협약) 촉진,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 준수 △모든 사업 관계 내(하청, 도급 등) 인권 실사 의무 준수를 제시했다.

노동조합에는 초국적 기업 대상으로 단체 협약 체결을 시도하고 체결된 협약의 이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ILO는 △공급 사슬망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촉진할 기존 협약 비준을 촉진하고 △국경을 넘는 단체 교섭 및 사회적 대화를 촉진하고 이행을 감독할 것이며 이에 관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도록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적절한 시기에 국제 공급 사슬 내 양질의 일자리에 관한 노사정 회의를 개최하고 그 구체적인 시기와 방식은 이사회가 결정하도록 했다.

유성기업 민주 노조 파괴에 현대차가 직접 연루되어 있지만, 유성기업 노동자들과 고용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현실, 수많은 간접 고용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 등을 볼 때 이 주제는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의제가 아니다. 이번 총회에서는 글로벌 공급 사슬을 규제할 기준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지만 새로운 협약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각국 노동조합은 초국적 기업이 공급 사슬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과 비용 전가, 책임 회피를 가시화하며 압력을 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운동이 글로벌 공급 사슬 전반을 포괄하는 연대를 강화하고, 재벌 기업이 산업 수준 또는 공급 사슬 전반을 포괄하는 국경을 넘는 수준의 교섭이나 책임을 거부할 수 없도록 강제해야 할 것이다.

국제 노동 기준 적용 촉진
한국 기업의 글로벌 노조 탄압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각국 정부가 비준한 협약 이행 여부를 심의하는 기준 적용 위원회는 ILO 총회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매년 2월 발행되는 약 500쪽 분량에 담긴 전문가 위원회의 각국 정부의 비준 협약 이행 혹은 위반에 관한 구체 사례 중 24~25개를 선정해 집중 심의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2009년, 2013~2015년에는 한국 정부의 111호(고용 직업상 차별) 협약 이행 여부가 기준 적용 위원회 도마 위에 올랐지만, 올해는 더욱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들이 많아 한국 정부가 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해외 각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해당국의 열악한 노동법과 제도를 이용해, 혹은 경제 자유 구역 등에서 제공되는 법 적용 면제를 남용해 진출국의 협약 위반을 선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므로,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을 위원회 참석 목표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필리핀(87호) 심의에서는 한국 기업이 집중적으로 진출해서 노조 설립 방해 및 탄압을 일삼는 카비테/라구나 공단의 현실을, 인도네시아(87호) 심의에서는 ‘한인 봉제 협회’가 주도력을 행하는 차쿵 수출 가공 지대에서 군부대와 결탁한 노조 탄압 현실을, 캄보디아 (87호) 심의에서는 역시 한국 기업들이 다수 진출해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전환함으로써 노조 설립을 방해하거나 활동을 저해하는 현실을 제기했다. 방글라데시(87호) 심의에서는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해서 직접 제기하지는 못했지만, 영원무역이 설립한 ‘한국 경제 자유 구역(Korean Export Processing Zone, KEPZ)’에서의 모호한 법 적용이 지적되었다.

회의 외에 별도로 만난 세르비아 노동자 대표는 현대기아차 체코/슬로바키아 공장에 부품을 공급하는 1차 부품사인 한국 기업 유라코퍼레이션의 노조 간부 표적 해고 사실을 민주노총에 전했다. 온두라스 노동자 대표 역시 현대기아차 미국 공장에 납품하는 경신리어가 부당 노동 행위를 저지르고도 6억 원에 이르는 과태료를 미납하고 오히려 공장 철수 위협을 일삼고 있음을 환기하며 한국 정부와 면담을 주선해 달라고 민주노총에 요청하기도 했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국제 노동 기준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역할은 민주노총에 요구되는 중요한 과제다.[워커스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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