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면 지킬 수 없는 상가

가로수길 ‘우장창창’ 사태, “법대로 하자” 주장이 옳지 않은 이유

  사진/ 정운 기자

지난 7일 새벽, 신사동 가로수길에 100여 명의 용역이 나타났다. 검은 조끼를 입은 건장한 남자들은 가로수길에 있는 곱창집 ‘우장창창’을 둘러쌌다. 우장창창 사장인 서윤수 씨와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들의모임(맘상모)’ 회원 100여 명이 그들을 막아섰다.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고 맘상모 회원 1명이 실신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철거 용역들은 뒷문을 통해 가게 지하로 진입, 소화기를 뿌리며 철거를 시도했다. 정문으로 진입을 시도한 용역들과 맘상모 회원들 사이에 본격적인 몸싸움이 벌어졌다. 일부 철거 용역들은 우장창창의 영업장 천막 위로 올라가 칼을 들고 천막을 찢었다. 충돌이 격해지면서 철거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집행관은 강제 집행 중단을 결정했다. 이날 강제 철거 현장에는 유례없이 많은 기자가 몰렸다. 우장창창이 입주한 건물 건물주가 유명 연예인 ‘리쌍’이기 때문이다. 철거가 중단되고 인터넷에는 강제 집행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기사에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우장창창 사장인 서윤수 씨와 맘상모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댓글은 서 씨와 맘상모가 “떼를 쓰고 있다”고 했다.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연예인이 건물주라는 점을 악용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을질’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온라인상의 여론은 “리쌍은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서윤수 씨가 임대료도 제때 납입하지 않았다더라, 권리금 조로 3억이라는 무리한 액수의 합의금을 요구했다더라. 사실과 미묘하게 다른 말들도 떠돌아다니고 있다. 여론에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고자 했던 우장창창과 맘상모는 당혹스러워졌다.

우장창창 사태의 전말

서윤수 씨는 2010년 11월, 권리금 2억 7500만 원,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300만 원, 인테리어 비용 7000만 원 등 총 4억 3000만 원을 투자해 우장창창을 개업했다. 1년여가 지난 2012년 리쌍이 우장창창이 입주해 있는 건물을 매입했고 직접 장사를 하겠다며 서 씨에게 퇴거를 요청했다. 2012년 당시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건물주가 직접 장사를 한다고 퇴거를 요청하면 임차인은 권리금을 보전받을 수 없으므로 리쌍은 보상금으로 1억 8000만 원을 서 씨에게 지급하고 지하와 주차장에서 서 씨가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합의문은 건물주가 주차장 용도 변경에 협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 서 씨는 주차 공간의 법정 주차 대수와 용적률을 확인하고 증축과 용도 변경이 가능하다는 답을 얻었다.)
그러나 이후 건물주 리쌍은 합의 내용을 지키지 않고 용도 변경을 거절했다. 용도 변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영업을 재개한 우장창창은 과태료와 영업 정지 등 행정 처분 위기에 놓이게 됐다. 서 씨는 합의 내용을 지키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리쌍은 우장창창이 영업을 위해 설치한 시설물을 이유로 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의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계약 만료 시기가 다가왔다. 건물주 리쌍 측은 임차인 서 씨가 계약 갱신을 요구하지 않았다며 퇴거를 요청했다. 다시 소송이 이어졌고 재판부는 서 씨가 “임대차 관계의 계속 유지를 희망해 왔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내심의 의사만으로는 계약 갱신의 의사가 묵시적으로라도 임대인에게 표시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가게를 비우라고 판결했다. 법원의 판결 이후 리쌍 측은 강제 집행을 신청하고 100여 명의 철거 용역을 동원해 우장창창의 철거를 시도하고 있다.

과거의 법

결론만 놓고 보면 리쌍은 법을 어기지 않았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른 퇴거 요청이었고 법에 따른 강제 집행이었다(용역 100여 명과 굴착기, 칼과 소화기까지 동원된 집행 과정의 폭력성은 차치하고). 그러나 리쌍이 준수한 법은 ‘과거의 법’이다.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2014년과 2015년 두 번에 걸쳐 개정 시행됐다.
2012년 리쌍이 서 씨에게 처음으로 퇴거를 요청했을 당시의 법은 ‘권리금’의 보전을 명시하지 않았으나 현재 개정된 법은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계약 갱신을 요청하지 않아 재계약의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리쌍의 주장도 개정된 법에선 성립하지 않는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대인이 계약 만료 전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에 임차인에게 갱신 거절을 하지 않은 경우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우장창창은 가게의 환산 보증금이 3억 원을 상회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4년 개정 시행된 법은 묵시적 갱신의 보호를 받는 가게의 범위를 환산 보증금 4억 미만의 가게로 바꿨다. 우장창창도 법의 보호를 받는 대상이 된 것이다. 우장창창이 리쌍과 계약을 체결한 시점은 2013년이다.
현재 개정된 법을 적용하면 우장창창은 리쌍의 가게에서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문제는 꾸준히 지적돼 왔고 그에 따라 법은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취지로 개정돼 왔다. 리쌍은 법 취지에 맞지 않는 ‘과거의 법’을 적용해 우장창창을 내쫓은 셈이 된다. 임영희 맘상모 사무국장은 “리쌍이 법을 어기진 않았지만 법의 허점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법대로 하자”

맘상모는 우장창창 이전에도 여러 임차인의 권리 보장을 위해 싸웠다. 한남동의 테이크아웃드로잉, 종로의 만복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임영희 사무국장은 “이전 사안들에서도 법만 적용하면 보호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맘상모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에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다. 임영희 사무국장은 “법도 법이지만 이 사태는 법 이전에 사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흡한 법이 지켜 주지 못하는 임차인의 권리에 관해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것.
최근 방영되는 드라마에는 건물주에게 쫓겨나는 임차 상인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권리금, 재개발, 철거 용역이 등장하는 이 이야기들의 건물주들은 모두 “법대로 하자”고 말한다. 지난 5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의 철거 강제 집행을 막아섰다. 옥바라지 골목 철거도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내놨다. 새누리당도 현행 법안의 미비점을 인정하고 있다. 법이 지켜 주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존재를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법대로 하는 것”이 능사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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