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세모녀법’ 시행 1년, 상황은 더 ‘처참’해졌다

‘주거급여’ 문제 심각… 국토부 담당자 “토론할 거 없다”며 당일 불참 통보

- 서울 후암동에 사는 한아무개 씨는 얼마 전까지 중국집에서 설거지를 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서서히 아파진 허리와 다리 때문에, 최근엔 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큰 치료비가 든다는 의사의 말에 그는 진통제로 버티고 있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부모님과는 20여 년 전부터 연락하지 않았다. 수급 신청을 하려고 하니, 주민센터는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제공동의서가 필요하다고 한다. 가족관계가 단절되었다고 해도 ‘일단은 부양의무자에게 연락 간다’는 말에, 한 씨는 이렇게 사는 걸 가족이 알게 된다는 두려움과 서러움에 결국 수급 신청을 포기했다.

- 동자동 쪽방에 사는 이아무개 씨는 수급비와 기초연금을 합해 총 64만 원을 받고 있다. 기초연금을 신청하던 날, 이 씨는 너무 좋았다. 20만 원 더 받으면 이제 친구들과 술이라도 한잔 하고, 죽을 때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폐 끼치기 위해 저축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급비에서 기초연금만큼 깎여 나온다는 걸 알게 된 날, 그런 희망은 무너졌다. 여전히 ‘마이너스 인생’으로 사는 이 씨는 “정부가 노인네들 데리고 장난하는 것 같다”고 했다.

빈곤의 사각지대에 목 졸리는 이들의 한탄과 서러움이 또다시 국회에 울려 퍼졌다. 기초법바로세우기 공동행동은 19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맞춤형 개별급여 시행 1년을 돌아보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평가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자들은 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이 고질적 문제로 지적된 부양의무자 기준과 낮은 보장 수준을 그대로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제들까지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거급여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주최 측은 토론자로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에도 참석을 요청했다. 그러나 주최 측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담당자는 당일 오전 급작스럽게 불참을 통보했다. 이 담당자는 토론회 시작 후 토론회 장소에 나타나기는 했으나 끝내 토론 테이블에 착석하지 않은 채 돌아가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였다.

“개정으로 수급자 35만 명 신규 유입?” …의미 있는 신규 유입은 ‘11만 명’에 그쳐

지난해 7월, 일명 ‘송파세모녀법’이라는 이름의 ‘개정 기초법’이 시행됐다. 과거엔 복지부가 급여 지급을 총괄했으나, 이번 개정을 통해 급여별로 담당 부처가 쪼개졌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는 복지부가, 주거급여는 국토부가, 교육급여는 교육부가 담당하게 됐다. 급여 보장 수준도 담당 부처가 정하게 됐다.

당시 정부는 이번 개정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던 이들을 흡수할 수 있을 거라면서, 신규 수급자 수를 75만 명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2016년 5월, 정부가 발표한 수급자는 167만 명. 개정 전인 132만 명에 비해 35만 명 늘었다. 애초 정부 목표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다. 게다가 2009년 수급자 수가 156만 9천 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기존 수치를 회복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숫자도 엄밀히 따지면 ‘부풀려진’ 수치다. 수급비를 구성하는 항목별로 쪼갠, 이른바 ‘맞춤형 개별 급여’가 그 사실을 은폐할 뿐이다.

교육급여의 경우, 부양의무자 기준이 없어지면서 2016년에만 신규 수급자가 24만 4천 명 발생했다. 하지만 이날 발제를 맡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교육급여는 소득보장이라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목표와 다소 거리가 먼 급여 내용과 수준이어서 이를 기초생활수급자 확대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즉, 이러한 점을 고려해 의료급여 수급자(143만 2천 명) 기준으로 보면, 개정 전에 비해 수급자는 11만 명 늘었을 뿐이다.

  기초법바로세우기 공동행동은 19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맞춤형 개별급여 시행 1년을 돌아보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평가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개정됐는데 문제는 그대로! ‘고질적 문제’ 그대로 껴안은 ‘개정 기초법’

또한,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많이 완화했다고 하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을 받지 못한다. 개정된 기초법을 ‘송파 세모녀법’이라고 하지만 송파 세 모녀가 살아있다면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여전히 수급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부양능력을 판정하는 소득액도 비현실적이다. 1인 가구의 경우, 부양의무자가 한 달에 156만 원 이하로 벌면 부양능력이 ‘없다’고 보며, 218만 원 이상 벌면 부양능력이 ‘있다’고 본다. 156~218만 원 사이일 경우, 초과 금액만큼 수급자는 수급비에서 삭감당한다. 실제 부양받지 못하더라도, 부양받는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기준선을 발표할 때, 대부분의 빈곤 가구가 1인 가구임에도 4인 가구 기준으로 발표한다. 4인 가구로 계산하면 ‘부양의무 없음’의 기준선은 422만 원으로 오른다. 이조차도 세전 소득이다.

김 사무국장은 “정부가 4인 가구 기준으로 발표하다 보니 상당히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게 있다”면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많이 완화됐다고 해서 기대해서 오는 많은 이들이 발길을 돌린다. ‘나는 관계 단절됐는데 새로운 해결책 없느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된 바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기 위해 부양의무자 기준과 함께 통과해야 할 또 다른 관문은 바로 소득인정액이다. 소득인정액은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의 합으로 구성된다. 이 중 재산의 소득환산액은 일정 기준의 기본재산액을 공제해 주는데, 기본재산액 공제 기준이 2008년 이후 바뀌지도 않을뿐더러 가구 수와 상관없이 적용된다. 대도시의 경우, 근로능력이 있는 가구는 5400만 원, 근로무능력자 가구는 8500만 원까지만 재산을 공제해준다. 그 이상의 재산은 소득으로 환산된다.

김 사무국장은 “그러나 서울에선 5400만 원 전세집도 구할 수 없다. 근로무능력자 가구여도 집 한 채 가지고 있으면 수급자가 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 모든 문제가 기본재산공제액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만 65세 이상의 어르신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이 수급비에서 삭감되는 것도 기초법의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 씩 지급한다고 하였으나, 가장 가난한 노인들은 여기서 제외됐다. 기초연금을 공적 이전 소득이라고 보고 그만큼을 수급비에서 삭감하는 것이다.

'주거급여’ 문제 심각… 국토부 담당자 “토론할 거 없다”며 당일 불참 통보

그렇게 개정안은 기존 문제들을 해결하기커녕, 새로운 문제들까지 덧붙였다. 여기엔 대표적으로는 개정안과 함께 개정된 시행령으로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있다. 과거 복지부는 수급권을 박탈당하더라도 소득이 최저생계비 150% 이하일 경우, 교육급여와 의료급여를 2년간 보장했다. 그러나 2015년 7월 이후, 이 조항은 폐지됐다. 또한 자활사업에 참여한 이들에 대해 자활장려금 명목으로 지급된 자활소득 공제도 폐지했다. 이로써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자활소득이 전액 수입으로 산정되면서 정작 자활수급자들은 수급권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했다.

급여별 담당 부처가 나눠지면서 주거급여 문제도 심각성을 드러냈다. 김 사무국장은 “주거급여 선정 기준은 기존 차상위계층, 즉 최저생계비 120%에도 못 미치는 중위소득 43%다. 게다가 부양의무자 기준마저 잔존하고 있으며, 생계급여 이상의 수급자에겐 자기 부담금까지 책정하고 있다”면서 “월세 1~2만 원 보조받는 가구들이 수급자로 세어지는 착시가 일어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현장은 이러함에도 지난해 주거급여예산은 2500억 원 불용 처리됐다.

게다가 국토부가 주거 급여를 과다지급한 뒤 잘못 지급했다며 이후 생계비에서 차감하는 일들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와 국토부, 지자체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 게임만 할 뿐이다. 이는 개정안 논의 당시, 급여가 쪼개지고 담당 부처가 나눠지면서 가장 크게 우려한 문제였다.

이에 대해 김 사무국장은 “우려가 사실이 되고 있다”면서 “국토부 담당 과장님이 분명 온다고 했는데 오늘 오전 ‘복지부가 전체 관리하기에 딱히 토론할 게 없다’며 토론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토부가 주거급여에 대해 모든 내용을 결정한다. 조사관도 SH, LH에서 파견되어 주택 방문하여 급여 내용 결정하는데 이렇게 토론회에 나오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주거급여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주최 측은 토론자로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에도 참석을 요청했으나, 주최 측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담당자는 당일 오전 급작스럽게 불참을 통보했다. 맨 오른쪽, 국토교통부의 자리가 비어있다.

“우선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해야”… 복지부, 여전히 ‘검토 중’ 반복

이러한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 배진수 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지금 당장 전면 폐지가 어렵다면 주거급여에서만이라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변호사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실제 부양이 아닌 부양의무자의 부양가능성으로 수급 자격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며, “부양의무자 기준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저생계비 대신 도입된 중위소득 기준이 정부의 예산 통제의 수단으로 작용할 위험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문 교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지난 3년간 소득의 평균값을 근거로 기준 중위소득을 구하는 과정에서 2012년, 2014년 농어가 소득은 포함하면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2013년 농어가소득을 뺐다”면서 “지표상 문제로 2013년 농어가소득을 넣으면 기준 중위소득이 올라간다는 게 이유인데,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과거 전물량방식으로 계측된 최저생계비는 매년 5~7%씩 인상됐다. 그러나 작년 기준 중위소득을 정하는 방법을 보며 정부가 중생보위를 통해 기준 중위소득을 자의적으로 정해 예산 통제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중생보위는 대부분 친정부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세부적이고 풍부한 논의가 오갔음에도 복지부는 여전히 모든 사안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만 반복할 뿐이었다.

김은영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사무관은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해 “당장 폐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단계적으로 주거급여에서부터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하는 건 관계부서랑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면서 “오늘 나온 이야기들을 정부도 알고 대안 찾고 검토하고 있기에 내년에 반영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무책임한 정부 태도에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갑갑함을 표했다. 김선미 성북주거복지센터 센터장은 “제도를 ‘점진적으로’ 개선한다고 하는데 우리 삶은 점진적으로 나빠지지 않는다. 극도로 나빠지고, 그 상태에서 크게 절망하는 이들을 우린 만난다.”면서 “이들이 삶에 대해 얼마나 절망하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결국엔 자기 생명을 위협하는지, 잘 ‘못 느끼고’ 계신 것 같다. 좀 ‘느끼고’ 말씀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전했다.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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