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워커스> 21호 복간호를 발행하며


제발, 이런 식상한 제목은 쓰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별것도 아닌데 거창한 듯 얘기를 꺼낼 때, 이런 식의 제목을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한 달을 휴간하고 복간 호를 내면서 편집장이 반성한다는 글의 제목이 바로 그 거창한 듯 식상한 얘기입니다.

고도를 기다리든(Waiting for godot), 슈가맨을 찾든(Searching for sugar man) <워커스>는 창간 이후 지금까지 찾고 기다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론이 뻔한 B급 영화처럼 정해진 결말을 향해 가는 이 시간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슈가맨을 찾아내거나 고도가 나타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슈가맨을 찾는 행운은 우리에게 없었고, 언제나 내일 나타날 거라 기다려 봐도 고도는 오지 않았습니다.

8월 한 달간 <워커스>는 휴간했습니다. 재정 때문입니다. 창간할 때, 어느 교육감께서 “주간지 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많이 모았나 모르겠네”하며 걱정해 주셨습니다. 일본 주간지 ‘금요일’ 기자는 <워커스> 창간호를 보더니 “거기 돈이 많아요”라고 되물을 정도였습니다. 무모하고 무리한 시도라며 모두가 창간을 말렸지만, 내일이면 정기구독자라는 고도가 올테니 걱정 말라며 큰소리를 쳐 댔습니다. 하지만 고도는 오지 않았고 돈 문제다 보니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기자들과 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더 큰 희생만 또 강요하고 말았습니다.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번 호부터는 격주간으로 발행합니다. 주간으로 버틸 돈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지난 5월 구독자 설문조사에서 80% 가까이 격주간 또는 월간으로 발행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여러 독자께서 ‘이번 호 다 읽기도 전에 다음 호가 또 배달돼서 너무 부담스럽다’는 얘기도 하셨습니다. 격주간인 만큼 더 충실한 기획과 내용으로 보답해 나가겠습니다.

비난받는 언론이 되겠다고 창간한 지 이제 불과 6개월 남짓 됐습니다. 그동안 돈 많은 자본과 힘센 권력으로부터 비난받기보다는 <워커스>가 성역으로 삼았던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질책과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디자인이나 글자 폰트, 사진과 기사 내용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 속출했습니다. 채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휴간에다 격주간으로 바꾸기까지 한다고 책망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일이 다 해명하고 설명하지 못한 점, 비판을 받고 즉시 수정하지 못한 점 지면을 통해 사과드립니다.

격주간지로 개편하면서 한 가지 말씀을 더 드리고자 합니다. <워커스>의 기사를 보려면 <워커스> 홈페이지나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서 보면 됩니다. 워커스 기사나 디자인 등에 대한 논쟁도 <워커스> 홈페이지 기사를 링크 걸고 SNS에서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사를 읽고, 정보를 소통하고 교류하는 공간은 지면보다는 인터넷 네트워크입니다. 지금도 독자 여러분이 책을 받아보기에 앞서 단 1시간이라도 더 빨리 워커스의 모든 글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워커스는 앞으로 편집디자인 된 PDF 버전도 인터넷과 온라인에 공개하겠습니다. 정보의 소통과 교류, 기사 내용을 알고 싶다면 굳이 <워커스>를 사보지 않아도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신, 독자 여러분들이 돈을 주고 사서 보는 종이 잡지로서 <워커스>는 읽고 정보를 소통하는 역할과는 또 다른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 가는 데 노력하고자 합니다. 거칠게 말하면, 종이 잡지 <워커스>는 읽으라고 펴낸 잡지라기보단, 동시대인들이 느끼는 최소한의 계급적인 고민과 세상을 바꿀 최대한의 상상력을 공유하고, 서로 자랑할 수 있는 잡지가 되고자 합니다. <워커스>의 독자로서 공감하고 동류의식을 갖고 서로 자랑할 수 있는 잡지. 그러기 위해서 요즘 흔한 말로 새로운 가치창조를 위해 ‘종이로 된’ <워커스>를 내려고 합니다. 스쳐 지나가는 정보의 홍수로 가득한 인터넷 공간이 감히 담을 수 없는 ‘가치’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를 위해 오늘 책 펴낼 돈조차 넉넉지 않은 것들이, 내일 올 우리의 고도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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