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는 화물이다. 그러므로 고속버스에 탈 수 없다...?

2014년부터 명절 때마다 터미널 찾아 “장애인도 버스 타고 싶다” 외쳐
소송에서도 이겼지만 버스사업자들, 여전히 승차 편의시설 마련하지 않아


“휠체어는 화물이에요. 탈 수 없습니다!”

올해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고속버스에 오르고 휠체어를 탄 사람은 터미널에 남겨졌다. 추석 연휴 전날인 13일 오후 3시, 서울 동서울종합터미널 1번 승차홈. 강릉 가는 고속버스가 대기 중이다. 그 앞으로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3시 15분 강릉행 버스표를 내밀며 버스를 타겠다고 하자, 왼쪽 팔에 ‘질서유지’라고 쓰인 노란색 완장을 찬 터미널 관계자가 나타나 손사래를 친다. 휠체어 탄 사람은 버스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정 그렇게 타고 싶으면 휠체어는 화물칸에 실으란다. 그러면서 휠체어 탄 여성장애인은 자신이 버스에 태우겠다며 상대방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몸에 손을 댄다. 옆에 있던 활동가가 고함친다. “몸에 손대지 마세요! 휠체어 탄 채로 버스에 탈 거라니까요!” “그럼 못 탄다고요!” 관계자가 맞받아치면서 몇 번의 고성이 오간다. 장애인들이 “우리도 버스표를 샀다. 왜 탈 수 없느냐.”고 항의하니, 관계자에게서 “(버스 만든) 현대자동차에 가서 말하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버스가 ‘그렇게 만들어졌기에’ 자기는 알 수 없다는 거다.

휠체어 탄 사람은 휠체어를 탄 채 좁은 앞문을 통과할 수도, 계단을 오를 수도 없다. 오를 수 없는 버스 문 앞에 휠체어 탄 장애인은 그저 서 있을 뿐이다. 그 사이,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둘 버스 계단을 밟고 버스에 오른다. 장애인들은 버스 앞유리에 ‘장애인도 시외버스 타고 고향 가고 싶다’, ‘이동권은 기본권이다. 시외이동권을 보장하라’, ‘임산부도, 장애인도 어르신도, 모두가 편리한 저상시외버스 도입하라’고 쓰인 피켓을 붙인다. 버스표를 손에 쥔 이는 자신을 두고 버스가 출발할 수 없도록 고속버스와 휠체어를 끈으로 묶는다. 또 다른 이는 휠체어에서 내려와 두 손으로 버스 앞바퀴를 꼭 잡는다.

버스 출발 시각인 3시 15분이 넘도록 버스가 출발하지 않자 그제야 버스에 탄 승객들이 장애인들에게 항의한다. “여기서 이렇게 피해주시면 안 되죠. 저희가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요.” 활동가들은 “저희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라고 답하며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시민들에게 설명한다.


소송에서도 이겼지만 버스사업자들, 여전히 승차 편의시설 마련하지 않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13일 오후 2시, 동서울터미널에서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과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장연은 2014년부터 올해로 3년째 설날과 추석 명절 때마다 고속버스터미널을 찾아 이와 같은 기자회견을 연다. 문애린 전장연 조직실장은 “매년 해도 바뀌지 않으면서 올해도 하느냐, 다른 걸 하면 어떻겠냐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가 장애인의 목소리를 들어주겠느냐”고 말했다.

전장연에 따르면, 국내 시외버스사업자는 총 8개로 2015년 기준으로 총 1914대의 버스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버스는 단 한 대도 없다. 이에 2015년 국토교통위원회 예비심사보고 자료(2015년도 세입세출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검토보고서)에서 8개 운송사업자당 각 5대의 고속버스 개조비용을 지원하는 16억 원의 예산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예산을 핑계로 이조차도 미루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3일 오후 2시, 동서울터미널에서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과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애린 조직실장은 “내년 정부 전체예산이 400조다. 16억 원은 ‘새 발의 피’도 안 되는데 정부는 돈이 없다고 한다”면서 “그러면서 장애인을 위해 수백억 원을 들어 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데, 버스 타고 고향도 못 가는데 무슨 케이블카냐”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들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장연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5개년 계획 중 2차 계획(2012~2016)까지 전국시내에 저상버스를 41.5% 도입해야 하나 2015년 말 기준으로 저상버스는 19.9%에 미친다.”고 밝혔다. 숫자로 환산하면 전국 시내버스 3만 3776대 중 저상버스는 6737대뿐이다. 이러한 실정임에도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시내 저상버스 도입보조비는 고작 600대를 추가 도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매년 10%의 버스가 기한이 다 되어 대폐차 되고 있는데 저상버스가 아닌 일반버스가 재도입되고 있어 저상버스 증차율은 더욱 더디다. 따라서 전장연은 대폐차 시, 반드시 저상버스로 도입해야 한다는 강제조항과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을 보장하는 조항을 포함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휠체어 탄 장애인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직접 버스표를 산 뒤 버스 타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하지만 버스 문 앞에서부터 터미널 관계자에게 ‘퇴짜’ 맞았다. 이에 항의하는 수십 명의 휠체어 탄 장애인들을 그보다 곱절은 더 많은 경찰이 방패로 에워쌌다. 강릉행 버스 앞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우리는 집회나 시위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돈 주고 표를 샀어요. 지난해 법률적으로도 승소했습니다. 작년에 1심 재판부는 버스운송사업자에게 휠체어 탄 상태에서 탑승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라고 했습니다. 버스운송사업자들은 휠체어 탄 상태에서 장애인을 태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버스는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요. 이건 장애인 차별이에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무슨 휴짓조각입니까? 우리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러 왔는데, 집시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장애인들 협박하지 마십시오.”

2014년 3월,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은 국토교통부와 대한민국 정부, 지자체와 버스사업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해 1심 재판부는 국토부와 정부, 지자체에 대해선 기각하고 버스사업자에 대해서만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버스사업자는 휠체어 탄 장애인이 버스에 탑승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시설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마련된 곳은 여전히 단 한 곳도 없다.

애초에 ‘불가능한 행위’였기에 많은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버스를 탄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상상 밖의 일’이었다. 장애와여성 상상행동마실 회원으로 버스 타기에 동참한 함순옥 씨는 ‘자신도 버스 탈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올해로 57세의 함 씨는 터미널도 이날 처음 와봤다. 소아마비가 있는 그녀는 서울시내를 다닐 땐 전동휠체어를, 서울을 벗어날 땐 자가용 이용을 위해 수동휠체어를 탄다. 함 씨의 고향은 전남 해남이다. 해남 갈 땐 늘 자가용을 이용했다. 승용차로 갈 땐 휴식을 위해 휴게소에 들리긴 하지만 휴게소에서 내려 본 적은 거의 없다. 휠체어로 옮겨 타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장실도 가지 않는다. 정 급하면 차량 내에서 해결한다.


“‘버스라는 걸 탄다’는 건 상상도 안 해봤어요. 이렇게 많은 버스 중에 고향 갈 수 있는 버스가 없다는 게 가슴 아프네요. 저 사람들은 자기 갈 곳들 표를 끊는데 우리는 감히… 상상도 못 하잖아요. 이게 장애인의 현실이구나. 자기네들이 누리는 권리, 그게 권리인 줄도 모르겠죠. 당연하니깐. 그런데 장애인은 그걸 못하는 거잖아요. 그 현실이 저는 정말 너무 충격적이네요.”

그렇게 휠체어 탄 장애인은 버스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오늘 단 하루 자신의 승차를 ‘아무 죄 없이 방해받은’ 이들은 장애인들에게 욕설을 쏟아내며 다른 버스로 갈아탔다. 3시 37분, 터미널 측이 그들에게 대체 버스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릉행 버스는 떠났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몸을 묶고, 앞바퀴를 손에 그러쥐고 있던 버스는 터미널 정류장에 그대로 남겨둔 채. 2016년 추석, 올해도 장애인들은 3시 15분 강릉, 3시 50분 경북 봉화, 4시 용상에 가는 버스표를 구매했음에도 버스를 타지 못했다. 구겨진 버스표가 깃발처럼 휘날린다.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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