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 면접 편의 제공 못 받은 장애인, 불합격 취소 소송 제기

시간 연장, AAC 등 미 제공...“장애인 간접 차별, 위법”

공무원 시험 면접 과정에서 제대로 된 편의를 받지 못하고 끝내 불합격 통보를 받은 장애인 당사자가 인사혁신처와 대한민국 정부에 불합격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22일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윤태훈 씨(28, 뇌병변 1급)는 2016년도 국가공무원 세무직 9급 공채 시험 장애인 구분모집에 응시하여 지난 5월 24일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윤 씨의 필기시험 점수는 합격 최저 점수인 266.56점보다 높은 298.1점으로, 수험자 커뮤니티에서는 합격선으로 분류될 만큼 우수한 점수였다.

그러나 6월 30일 최종 합격 발표자 명단의 이름에 윤 씨는 들어있지 않았다. 6월 25일 진행된 면접에 발목을 잡힌 탓이다. 윤 씨는 스스로 손을 움직이기 어렵고 언어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자기기술서 작성과 5분 발표로 구성된 면접시험을 치르긴 어려웠다. 이에 윤 씨는 인사혁신처에 대필 지원과 같은 편의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나마 이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가 재차 인사혁신처에 편의 제공을 요청한 이후에야 노트북 지원, 대필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자기기술서 작성에 한정된 것으로, 윤 씨는 5분 발표 과정에서 필요한 시간 연장이나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AAC) 등의 편의는 제공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면접 탈락 이후에도 인사혁신처는 윤 씨가 어떤 이유에서 떨어졌는지 면접 점수 등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윤 씨는 이번 공무원 시험에 앞서 수차례 공기업, 사기업 등에 원서를 지원했고 서류 전형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아왔지만 면접 과정에서 번번이 탈락해왔다. 이에 윤 씨는 국가기관이 자신의 실력을 공정하게 평가해 줄 것으로 믿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국가기관 또한 윤 씨에게 공정한 시험 조건을 제공해주지는 않았다.

윤 씨는 2015년 8월 29일 진행된 7급 세무직 공무원 공채 시험 때도 인사혁신처로부터 필기시험 대필 지원을 거부당했다. 다만 당시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긴급구제를 받기는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8월 25일 윤 씨에게 대필 지원 등 편의를 제공하고 향후 국가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에서 장애인에게 편의를 제공하라고 권고했으며, 인사혁신처는 이러한 권고를 수용했다.

이에 윤 씨와 장추련은 왜 인사혁신처가 면접에서 윤 씨를 떨어뜨렸는지 규명하고, 국가시험 면접 과정에서 장애인 차별을 해소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윤 씨는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공무원에 지원했는데 이렇게 떨어지니 막막하다. 취직이 인간의 삶에 중요한 과정인데, 면접을 통과할 수 없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질 못한다.”라며 “이제 나이 30이 다 되어 가는데 언제까지 부모님께 손 벌리고 살아야 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윤 씨는 “이번 소송에서 재판부가 정의롭고 납득할 만한 판결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김재왕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면접관이 면접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재량사항이기는 하나, 절차에 하자가 있다면 재량에 의한 판단을 위법하다고 본 판례가 있다”라며 “(인사혁신처가) 시간을 연장하는 등 윤 씨가 생각을 잘 표현하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했는데도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간접 차별이며, 이는 공무원을 선발하는 법규와 비교해도 위법한 처사”라고 설명했다.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는 “장애인들이 필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더라도 면접에서 탈락하는 고통을 겪는 경우가 잦다”라며 “사람으로서 능력 그 자체를 보지 않고 효율성만 따져서 장애인을 국가 공무원에서 떨어뜨린다면 국가와 기업의 차이는 뭔가”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와 유사하게 지난 7월 7일 장애인 수험생이 광주교육청이 주관한 특수교사 임용시험에서 2차 시험까지 합격하고도 3차 면접에서 언어장애를 이유로 0점을 받아 최종 탈락한 일에 대해 광주지방법원이 불합격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광주교육청이 이러한 판결에 불복하면서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덧붙이는 말

갈홍식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갈홍식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