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 속 무너진 판타지

[워커스 22호] ‘시댁’ 앞에서 코르셋 벗기

[출처: 사진 / 홍진훤]

임신과 출산이 내게 준 건 ‘산산이 조각난 판타지’다. 임신하면 기쁨에 싸여,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며 축복의 시간을 보낼 줄 알았던 내 판타지는 임신과 동시에 깨졌다. 현실은 언제나 이토록 가혹한 것이라지. 신혼 초의 나는 참 아둔했다. 호르몬 변화가 나를 바닥까지 가라앉히고 있으니, 나는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태교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나의 ‘임신과 출산’이 왜 그토록 힘들고 아팠는지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임신과 더불어 출산까지 한 내 몸의 변화에도 놀랐지만 육아로 인한 심적 육체적 과부하는 서른 넘도록 살아온 내게 그 어느 시간보다 가학적이고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 정신적인 폭력과 폭언, 방임, 학대 등이 남편과 시부모에 의해 가해졌다.

시어머니는 내가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 하혈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생명에 대한 경멸, 멸시, 비아냥이 이어졌고 나를 마치 새끼나 까는 동물쯤으로 취급했다. 내 배 속의 아이는 살든지 말든지 경조사나 챙기는 것이 나의 도리라며 강압적으로 막말을 쏘아댔다. 때로는 욕도 했다. 폭언에 노출되고 나면 그 스트레스로 인해 나는 더 심하게 하혈을 하곤 했다. 아이를 유산할 뻔했다.

자신의 부모와 나 사이의 중재를 자처하던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시어머니를 대신했다. “네가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에 엄마가 화가 난 것이다. 네가 반성해야 할 일이고, 며느리 도리를 하지 않는 네가 잘못인데 왜 부모님에게 뭐라고 하냐”며 쪼아대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는 “우리 부모님이 평범하지 않아서 너한테 잘못한 게 맞아. 나를 봐서라도 좀 참아주면 안 되겠니”라고 말하던 그였다.

“애도 낳았으니, 너도 우리 가족이네.
더 자주 찾아오길 바라. 둘째를 낳을 생각은 아니겠지?”
“나는 애가 너무 싫은데, 쟤가 애를 또 가졌다네. 참 애는 잘 만들어. 애가 둘인데 이제 어쩔 거야?”

큰 아이를 낳았을 때와, 큰 아이가 돌이었을 때 시부모에게 들은 말이다. 시댁에게 나는 만삭이건 출산하고 나서건 언제나 ‘임신과 출산 때문에 돈 벌 능력도 없는 년’ 이었다. 자꾸 임신 해서 아들에게 부담만 가중하는 나쁜 년.

내가 아이를 가진 게 죄인 양 너희 엄마 번호를 대라며 윽박지르기까지 했고, 결국엔 사돈인 친정엄마에게 전화해서 막말을 퍼부었다. 남편은 가출을 감행했다. 둘째 낳기 한 달전 집을 나가 시댁으로 달려간 남편은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는 내 문자를 받고도 찾아오지도, 미안하다고 빌지도 않았다. 큰 아이만 데려가겠다고 했다.

남편은 가부장적인 시댁의 말만 들었다. 스스로 한 가정의 책임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외려 가부장적인 남편이 진정 가부장적인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부모 의존이 강했다. 시댁은 결혼 이후에도 자기 아들을 절대 놓아주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남편과 나는 우리의 독립적인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 아이들이 있는데도 그랬다. 매사 시댁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옳다고 강요받았다. 그에 어긋나면 “아들은 내 뜻에 동의하는데 며느리인 너는 왜 받아들이지 않느냐”며 따지고 강요하곤 했다.

남편의 잦은 가출과 외박에도 시댁은 남편을 옹호했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여자도 만날 수 있지”라는 막말로 남편의 가출을 옹호했고, 남편을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 도리어 내게 전화해 “오죽하면 내 아들이 집을 나갔겠냐”며 비아냥거렸고 성격을 고치라 친절한 조언을 남겼다.

며느리에게 마음대로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위치

시댁은 애초에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지 싶다. 말은 “너도 이제 내 딸이지, 내 딸 같아서”라고 시작했지만, 그저 말뿐이었다. 자식이 아닌데 자식인 척 마음대로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위치가 ‘며느리’였다. “네 친정엄마와 가족들을 내 앞에 불러라”는 말을 더는 듣지 않겠노라 선언했을 때 나는 천하의 ‘인간말종’에 등극했다. 딸처럼 생각하고 대해줬는데 거부했다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독립적인 가정을 꾸리길 원했다. 남편과 내가 평등한 부부로서 가정의 투톱이 돼 아이들과 함께 사랑하는 날을 보내기를 원했다. 뒤늦게야 남편은 달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원한 가정, 배우자는 자기 부모에게 순종적이고 자신의 사회생활을 묵묵히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판타지에 부합하지 않았다. 힘들면 화냈고, 평등하지 않으면 더더욱 화를 냈고, 이기적인 부탁이나 강요에 응하지 않았다. 남편이 제 역할을 못 하겠다면 나라도 나서서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했다.

나는 어느새 그가 말하는 ‘기 센 여자, 여성주의를 공부해서 정상적인 사고를 못 하는 나쁜 여자’ 혹은 ‘여성 우월주의자’가 됐다. 이런 마녀 같은 내 몸에서 나왔기에 아이들 역시 제대로 존중받지 못했다.

가부장적인 사회 속의 결혼은 여성에게 바라는 게 많다. 참 이중적이다. 원래 가부장제라는 게 책임 없이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겪어내고 있는 시댁은 가부장제에 편승해 득만 보려는 것처럼 보인다. 남성은 여성보다 계급적 우위고 그런 아들을 둔 부모니까 딸을 둔 너희 부모는 죄인이란 식의 사고다.

결혼, 임신, 출산, 양육 이 모든 것이 내 발목을 묶는 무거운 쇳덩어리였다.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겪은 자존감의 하락 그리고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이것들은 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 지워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경제력을 잃고 강요받은 모성애로 무장한 채 아이들만은 책임지겠다고 혼자 피 철철 흘리면서 걸어가는데, 자꾸 발 걸고 모욕하며 내 처지를 비웃고 깔보던 이들. 그게 내게는 시부모와 남편이었다.

요즘 젊은 여성 중 결혼을 안 해도 무방하다고 대답한 비율이 50%가 넘는다고 들었다. 참으로 똑똑한 결정이다. 아이를 낳으면 회사에서 퇴직을 강요받고, 임신이나 출산, 양육하는 동안 내 경력은 사라지며,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도 다시 내가 하던 일을 할 수 없는 사회적 구조. 거기다 본인들이 뭐라도 되는 양, 아들 결혼시키고 뭘 바라는 시부모들이 존재하는 한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고 할 여자들이 절반도 안 되는 건 당연하다.

국가적 위기라고들 한다. 아이를 더는 낳지 않겠다는 이기적이고 못된 여자들 때문에 위기란다. 조금만 더 평등해지자 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이며 혐오로 몰고 간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이 모든 짐을 지워놓고 언제까지 득만 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조금 더 이기적으로 내 몸부터 챙겼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오지만, 결국 내가 이 제도권을 벗어나지 않는 한 내 몸을 보살피고 나를 지켜나갈 자유는 없다. 나에게 여자의 도리, 며느리의 도리만 원하며 가부장제 기생충을 생산하는 제도권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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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지

    좋은 기사입니다... 이로서 결혼에서 한발짝 더 멀어집니다.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