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울산 "삶의 토대에도 지진이 일어나고 있어요"

[워커스 23호/이슈]

최근 지진이 일어난 울산, 화학단지와 원전이 위치한 이곳의 삶은 더욱 불안하다. 울산에는 미포 국가산업단지와 온산 국가산업단지가 있다. 국가산단에는 원유와 고압가스,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이 즐비하다. 김 모(55) 씨는 온산 국가산단에 있는 석유화학 업체에서 플랜트 건설노동자로 일한다.

9월 23일, 김 씨는 한 달에 한 번 받는 건설업 시행사의 안전교육에 참여했다. 교육을 받는 도중 오전 11시 53분께 교육장이 흔들렸다. 규모 3.5 지진이다. 그는 불안한 마음에 교육장을 벗어나고 싶었으나 안전교육은 계속됐다.

김 씨가 일하는 건설 플랜트 현장처럼 수천 명이 일하는 현장에선 ‘산업안전보건 교육’은 진행하지만 지진 대응 훈련이나 교육은 대부분 하지 않는다. 김 씨는 안전교육이 노동자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하는 것인지, <산업안전보건법>에 걸리지 않기 위한 면피용 교육인지 가끔 의심한다.

김 씨가 일하는 현장은 메탄올, 벤젠, 자일렌, 황산 등 인체에 닿으면 치명적인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한다. 유독가스가 누출돼도 그에게는 방독면이나 방호복이 없으며, 어떤 통로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가 일하는 현장에서 취급하는 메탄올 화학물질 정보를 찾아보니 ‘유해화학물질, 고인화성 액체와 증기, 눈에 심한 자극을 일으킴, 격렬하게 종합 반응하여 화재와 폭발을 일으킬 수 있음, 만약 인체가 메탄올에 오염되면 피부를 물로 씻을 것’ 등의 대응방법이 나와 있다. 그는 메탄올에 오염됐을 때 눈과 몸을 씻을 샤워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비상대피로와 대피소를 모른다.

김 씨처럼 일용직 노동자들만 지진 대응 훈련이나 교육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니다. 울산 석유화학 공단에서 일하는 장 모(31) 씨는 정규직으로 그것도 안전관리 파트에서 일한다. 그가 일하는 현장에도 지진 대응 매뉴얼은 없다.

  울산석유화학공단-용석록

김 씨는 울산 온산 국가산단에서 2km 남짓 떨어져 있는 울주군 온산읍 덕신리에 거주한다. 김 씨가 사는 곳 인근 사업장은 유해화학물질 누출 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주민들에게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다. <화학물질관리법>은 인근 주민에게 유해화학물질 정보와 대피요령 등을 알리게 돼있다.

9월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 이후 울산에서는 부상, 건물 균열, 파손 등 피해 접수가 955건에 달했다. 9월 12일 이후 여진은 455번이나 이어졌다. 울산시는 지진 발생 시 주민 대피 요령을 홈페이지에 게시했을 뿐, 주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주민들은 각자 알아서 대피 요령을 찾아보고, 알아서 대피할 장소를 찾고 있다. 김 씨는 지난 9월 12일 규모 5.8의 지진을 경험한 뒤 피난 배낭을 꾸려놓고 현관에 두고 잔다.

울산 시내 거리에서 행인에게 ‘지진 났을 때 뭐가 가장 걱정되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방사선 누출’이다. 울산은 14기의 핵발전소(고리와 신고리 8기, 월성과 신월성 6기)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도 울산 관내에 방사선을 막아줄 대피소는 단 한 곳도 없다.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원샷 기업활력법은 노동자 죽이기
노동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건 땅속만이 아니다. 이일현(59)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지원부문 대의원 대표(분과장)는 1981년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그는 36년째 현장에서 일했는데 지금은 일을 못 하고 자택 대기 중이다. 현대중공업이 분사한 회사 현대중공업 MOS(MOS)로 전적하라는 걸 거부해서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8월부터 1차로 설비지원 부문 노동자들에게 전적동의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2차로 중기운전, 신호수, 물류 등 사무직과 현장직의 전적동의서를 받았다. 이일현 분과장에 따르면 총 994명 가운데 318명은 전적하지 않고 남은 상태다. 현대중공업이 자회사나 독립법인을 설립해 분사할 대상자는 설비지원 부문 994명, 중기군전 등 722명, 그린에너지 170명, 로봇사업 205명, 통합서비스 134명 등 2,225명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500명, 올해 2,000명을 희망퇴직 방식으로 내보냈다.

이일현 분과장은 “우리가 지금 MOS로 넘어가는 것에 서명하면 현대중공업에 직영은 점점 줄어든다. 젊은이들을 외주, 물량대기 상태로 내몰리게 서명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박근혜 정부가 원샷법을 만들어서 기업에 활력소를 불어넣는다고 하는데 있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노동자는 점점 불안정한 삶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현대중공업은 정규직을 분사하는 방법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한편, 올해 들어서만 8월 말까지 65개 하청업체를 폐업했고 지난해에는 57개 업체를 폐업했다. 하청노동자 임금은 삭감됐다. 또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 소속된 업체가 속속 폐업하면서 고용승계를 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 신 임금 체계 의도 감추고 노조 이기주의로 몰아가기
현대자동차 2016년 단체교섭은 단체협약이 포함되지 않은 임금교섭이다. 노동조합의 요구는 크게 임금인상, 해고자복직, 손배가압류 문제 등이다. 회사 측은 ‘3임’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며 임금동결, 임금피크제 확대, 신 임금 체계 도입을 들고 나왔다. 여기에다 노동부는 ‘불합리한 단체협약에 대한 시정지침’을 민간부문에도 내려 보냈다.

신 임금 체계 도입은 직무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으로 공공부문과 닮은꼴이다. 기존 호봉제를 직무 안에서 평가해 임금을 차등지급한다는 성과주의 임금체계다. 노동부의 ‘불합리한 단체협약’ 시정 지침은 회사 경영권을 노동조합이 제약하거나 통제하는 모든 걸 손대고 있다. 노동부는 현대차에 외주화, 구조조정, 신차 계획 등 회사 경영권에 노조가 관여하는 모든 걸 시정 권고했다. 노동부는 2016년 상반기에는 시정 지침을 내렸지만, 하반기에는 행정명령까지 내리겠다고 예고했다.

민간부문 대표 격인 현대차 사측은 단체교섭 때 개악 안을 설명하겠다고 했고, 노조는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회사 측은 교섭장에서 설명회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는 6월 8일 회사 기관지인 ‘함께 가는 길’ 앞뒷면에 ‘3임 사측 요구안’을 가득 적어 배포했다. 현장은 발칵 뒤집혔다.

단체교섭 기간에 현대차에서는 현장 외주화가 진행됐다. 7월 20일 무렵 1공장은 사업부대표가 조합원이 반대하는 외주화에 찬성했다. 1공장은 200여 명을 전환배치 해야 한다. 이후 현대차 공장 안 노동조합 집회에 통상 3,000여 명 모이던 것이 7~8,000명의 조합원이 모였다.

8월 들어서 현대차 사측은 노동부 쪽으로 공을 넘기면서 은근슬쩍 쟁점에서 비껴갔다. 신 임금 체계도 쟁점으로 부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8월 23일 잠정 합의는 78.5%로 부결됐다. 노조 역사상 매우 높은 비중의 부결이다.

“삶의 토대에 지진을 일으킨 것처럼 삶이 흔들린다”

울산과 부산에서 연극인으로, 인디밴드 보컬로 문화 활동을 하는 유미희(50) 씨는 최근 불안이 엄습하는 자본주의적 삶에 관해 “사회구조 전반을 살펴보면 노동하는 사람이 살아갈 토대가 사라지고, 안심하고 살아갈 만한 공공영역은 축소되고, 핵발전소 정책은 생존 자체를 안심할 수 없게 만든다”며 “자본주의 이윤 체계가 삶의 토대에도 지진을 일으킨 것처럼 삶을 흔들고 있다”고 했다.

유 씨는 현장 노동자로 일한 경험이 있고, 노동조합 간부로도 활동했다. 그는 “옛날에는 뭔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큰 투쟁을 경과했어도 계급적 성격을 바꾸지 못하니까 정치와 삶이 분리되는 것 같다. 자본주의의 욕망 코드에서 벗어나는 사회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노동의 범주는 공장 안에만 있지 않고, 노동조합 운동이 교육, 탈핵, 노동 모두 자기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지진과 자본이 삶을 휩쓸고 간 지금이야말로 노동자가 다른 세계로 나아갈 길을 모색할 때다. <워커스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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