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죄, 명예훼손에 발목 잡힐 수 없다

[워커스 23호] 명예훼손, 무고죄는 어떻게 여성에 족쇄를 채우나 #3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남성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13년간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도 생겼다. 1990년대 초 발생한 두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성폭력 사건은 〈성폭력특별법〉의 필요성을 말하게 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국가의 책임을 따져 묻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성폭력특별법제정추진위원회가 출발했다(이후 성폭력특별법제정특별위원회로 변경됐다).

위원회는 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국민청원을 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며 동시에 거리 캠페인을 진행했다. 1994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을 시작한 지 3년여 만에 법이 제정됐다는 성과와 수면 아래에 있던 여성폭력 문제를 법제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다만 친고죄 폐지 등 여성단체의 주요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아 여성단체는 법 제정과 동시에 개정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이 법은 2010년 4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각각 제정되며 폐지됐다.

법은 대중적 인식과 따로 가지 않는다. 성폭력 관련 법안은 특히 그렇다. 〈성폭력특별법〉 제정 이후 여성폭력과 관련한 여러 법률안의 제·개정이 이어졌다. 완벽한 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준도 정의도 어렵다. 의도는 좋았지만 예기치 못한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할 경우 필요한 과정을 거쳐 개정되거나 신설되기도 한다. 〈성폭력특별법〉은 피해자가 살해자가 되는 사건이 이어지고 제정됐다. 그 안의 모순과 사회적 책임을 묻는 법이었다. 무고죄와 명예훼손죄 역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모순을 만드는 법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까. <워커스>와 <한국여성의전화>가 두 법안과 관련된 논의를 살펴봤다.

# ‘무고로 의심받는 순간’ 모든 권리는 사라진다

성폭력범죄는 성적자기결정권에 반해 일어난 사건을 말한다. 피해자는 ‘동의하지 않는 성적행위가 성폭력’이라 믿고 강제성을 띈 성적 행위가 발생할 경우 법에 호소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법 현실은 성폭력범죄의 유·무죄를 판단할 때 ‘폭행·협박 최협의설’을 적용한다. 최협의설은 성폭력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피해자의 항거가 곤란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었는지를 살피는 것을 말한다. ‘여성이 극도로 저항하면 강간은 불가능하다’는 정조 관념이 바탕에 깔린 해석이다.

피해자의 과거도 들춘다. 사건과 무관한 성 이력이나 고소전력, 피의자와의 관계나 합의 여부, 피해자의 외모나 나이, 직업과 사회경제적 지위 모두 피해자의 고소 의도를 파악하는 데 사용한다. 최근 친고죄 폐지와 성폭력 처벌 강화의 흐름 속에서 검찰을 필두로 ‘성폭력은 무고가 많다’는 통념이 퍼지며 피해자를 바라보는 눈도 한층 매서워졌다. 가해자를 수사하기보다는 ‘가짜’ 피해자를 찾는데 몰두하는 것이다.

검찰청의 ‘범죄분석통계: 범죄자 처분결과’(2014)에 따르면 성폭력 사건의 41.2%가 불기소되고, 불기소 이유의 절반 이상이 최협의설과 증거 부족에 따른 ‘혐의 없음’으로 처리된다. 둘 사이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사건 당사자의 정황 증거에 의존해 수사가 진행되고 명확한 증거가 존재하기 어려운 점도 가해자가 ‘혐의 없음’의 판결을 받는데 한 몫한다. 동시에 성폭력 사건의 상당수는 무고혐의를 판단하는 과정으로 넘어간다. 불기소처분 결정이 통지되기 전 성폭력사건 수사 중에 무고가 인지되고 수사가 진행될 경우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 피의자가 되는 구조다.

문제는 담당 검사 개인의 판단으로 피해자가 무고죄로 인지돼 피의자가 되는 순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모든 보호 장치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형사법절차 상 2차 피해를 방지하고 피해자의 권리 확보를 위해서 마련된 전담조사제, 피해자 국선변호사, 신뢰관계자 동석 등 수많은 제도를 박탈당한다.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은 “피해자가 무고나 명예훼손 등의 피의자가 되어 수사·재판을 받는 상황은 그 자체로 심각한 2차 피해지만, 성폭력 피해자로 받을 수 있는 보호 장치는 부재하다”라며 “특히 성폭력 수사과정에서 담당 검사에 의한 무고 인지의 경우, 다른 피의자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방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인권침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재판이 끝날 때 까지 무고판단은 일단 멈춤’

피해자가 피의자로 뒤바뀌는 상황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피의자가 되는 순간 피해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사라지며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관련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정 의원이 대표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살펴보면, 성폭력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무고 사건은 성폭력범죄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종료되거나 법원의 재판이 확정되기 전까지 수사할 수 없도록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무고 사건에 관한 특례를 규정했다.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다 무고가 인지되면 바로 피의자가 되는 지금의 방식에서 벗어나 재판을 통해 사건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무고죄 여부를 조사할 수 없게 한 것이다. 피해자의 과거를 증거로 채택할 수 없게 한 부분도 있다. 성폭력피해자의 성 이력, 즉 성적인 경험, 성적 행동, 품행, 평판, 성폭력 고소 또는 성매매 범죄 전력 등을 성폭력범죄를 입증하기 위해 증거로 채택하거나 이를 기초로 신문할 수 없도록 했다.

외국에서는 이미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 장치로 증거채택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1974년 미국 미시간 주는 미국 최초로 〈강간피해자보호법(Rape Shield Law)〉를 제정했다. ‘Rape Shield Law’는 성폭력 피해 증인의 과거 성 경험에 대한 신문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률을 말한다. 이후 70년대 중후반에 다수의 주에서 이를 도입했다. 현재 미국의 연방 및 모든 주에서는 연방 증거법 412조인 ‘Rape Shield Law’를 시행하고 있다. 성폭력범죄의 재판과정에서 사건과는 관계없는 피해자의 사적인 성적 생활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재판에서 유효하게 작용한다. 1993년 미국에서 한 여성은 강간죄로 이웃집 남성을 고소했다. 피고인인 남성은 성관계가 동의에 의한 ‘성매매 행위’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가 성매매 여성으로 보이는 여성들과 함께 길을 걸었던 사실과 사건 이후 피해자가 동네 성인 술집에서 상의를 벗은 채 춤을 추었다며 증인 신문을 요청했다. 항소법원은 ‘Rape Shield Law’를 언급하며 “상의를 벗고 춤을 추는 토플리스 댄서(topless dancer)로 일한다고 해서 성매매 여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피고인이 신청한 증거는 피해자의 의심스러운 성격을 부각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며 이는 증거가치보다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부각한다”라고 판시했다.

영국 역시 〈성범죄법(Sexual Offences Act)〉상 피해자의 과거 성 경험에 대한 질문을 제한하고 있다. 영국 검찰청 수사지침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강간 피해자에 대한 평소 행실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여러 건의 강간 피해자가 된 경우에 더욱 무고죄로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강간 피해자는 외관상 약해 보이는 경향이 있어 다른 사람에 비해 강간죄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과거 강간 신고 사실은 현재 강간 신고 사실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자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의 품행 등을 독단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영국 검찰청은 강간 신고의 0.6%만이 허위신고에 해당한다며 강간에 관한 허위신고가 많을 것이라는 대중의 인식이 허위라는 지적도 했다. 무고죄와 관련된 사회적 통념과 신화를 반박한 것이다. 이는 성폭력 〈형사법〉처리 과정에서 피해자를 의심·비난하고 무고죄로 판단하는 것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피해자들이 성폭력 피해를 소극적으로 알리게 하는 또 다른 법으로 명예훼손이 꼽힌다. 현재 명예훼손은 불특정 여러 사람이 알 수 있는 상태로 이야기할 경우 해당 사항이 사실이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해 사실을 유포했어도 불특정 또는 여러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으면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는다. 예외는 하나뿐이다. 피해자가 언급한 내용이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련되는 경우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명예훼손 사건을 조사받는 과정에서 다시 성폭력 사건을 조사받아야 하고, 사실을 적시했던 것이 공공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명예훼손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발생시킨다고 꼽히는 이유다.

성폭력 사건이 아니더라도 명예훼손의 사실 적시 부분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형법>이 ‘허위사실’은 물론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행위도 처벌하고 있다며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1항)를 폐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금 의원은 “세계적 흐름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폐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개정안은 성폭력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지만 법률안이 개정될 경우 성폭력 피해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강경화 전 중앙대 인권센터 연구원은 “명예훼손은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범죄다. 가해자들이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라며 “결국 피해자들은 고소에 소극적이게 되고 고소 후에도 성폭력 사건을 합의해서 해결하고 덮어버리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 성폭력을 근절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구호는 퍼졌지만 성폭력 근절도, 안전한 사회에 대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정책 목표는 설정했지만 현실을 반영한 정책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성폭력범죄에 대한 단호함이 말의 성찬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현재 성폭력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는 제도와 법이 무엇인지 따져 묻고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참고 문헌
<성폭력 재판절차에서의 피해자 증인신문 재판참고사항에 관한 연구>,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2016.
<여성폭력 없는 성평등한 세상 핵심과제>, 한국여성의전화, 2016.
<성폭력 2차 피해를 통해 본 피해자 권리>, 이미경, 이화여대, 2012.
<성폭력 피해 여성 무고죄 적용 요인 분석>, 강경화, 성공회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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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엔

    이건 무슨 소리인가 싶다. 완벽한 헛소리를 장황하게 적어놓은걸 보니 코웃음만 나온다. 잠시 생각해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권리를 주장하는건 옳은 일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의 당연한 권리 집행을 억압해서는 안된다. 중학생만 되어도 배우는 것을 왜 모르는가? 모든 인간에겐 인권이 있다. 나는 살인자의 인권을 보호하는것을 수긍하지는 못해도 그 의의는 이해하고 있다. 인권, 그 당연한 권리는 존중받아야한다. 성폭행 피해자의 권리도 그러하지만 무고죄 피해자의 권리도, 명예훼손 피해자의 권리도 당연히 존중받아야한다. 이 기사의 적나라한 이중잣대에 통탄을 금치 못하겠다.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라는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글이였다. 정의를 집행한다는 목적으로 살인이라는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음은 물론, 성폭행 피해자의 권리 보호라는 목적으로 다른 당연한 권리를 침해함을 정당화 할 순 없다. 이 기사를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무고죄,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발목잡힐 수 없다는 제목으로 성폭행 피해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며 정말 억울하게 성폭행범으로 몰린 무고죄 피해자들의 권리만 주장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해보자. 말이 되는가? 전혀 말이 안된다. 이 글도 마찬가지. 말도 안된다.

  • 리엔의 논지

    나는 강간문화를 적극 지지하며 성폭행 피해자의 권리 보호에는 하등 관심이 없다. 그들은 대부분 여자이고 난 성폭행 당항 확률이 극히 낮은 남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