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서 나온 일침 “여성혐오, 약자 비하는 그만”

[촛불현장] ‘연대하러 나왔다면 정의로운 언어를 쓰자’


10일 서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돋보였던 것은 ‘정의로운 언어를 쓰자’는 제안들이었다. 오후 7시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어김 없이 촛불집회가 열렸다. 비가 온 탓에 바닥은 축축했지만 시민 5백여 명은 촛불을 들고 자리를 채웠다.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상헌 씨는 적어둔 메모도 없이 수려한 말솜씨로 정권을 비판했다. 박 씨는 “최근 학교가 엄청 엄숙해졌다. 수능을 코앞에 둔 수험생은 좋은 대학교 가겠다고 밥 먹을 때도 책을 본다. 정유라는 대학교에 어떻게 갔나?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려고 공부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고 했다. 박 씨는 “아무리 청와대가 오방낭을 달고, 우주의 기운을 간절히 바란다고 해도 민중의 힘을 이길 수 없다. 지난주에 20만이 시민에 이어 이번엔 그에 더해 100만이 나온다고 하는데 감당이나 할 수 있겠나”라며 오는 12일 총궐기에 함께 모일 것을 촉구했다.

성균관대 인권네트워크 ‘사람들’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김진서 씨는 촛불집회서 빈번하게 나오는 여성혐오, 장애인 비하 발언을 지적했다. 김 씨는 “저잣거리 아녀자, 대통령을 정신병원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은 여성혐오고 장애인 혐오”라고 주장했다. 이어 “몇몇 사람들은 그 발언을 듣고 ‘사이다’니 ‘속이 시원하다’고 하지만 나는 속이 꽉 막혔다. 동등한 시민으로서 거리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혐오 발언을 자제해줄 것을 호소했다.

익명을 요구한 영등포에서 온 고등학생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개인의 무능이 성별의 무능으로 비화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나이를 이유로 학생의 사회 참여를 우습게 봤던 윗세대를 향해서도 일침을 날렸다. 그는 “어린 애들이 뭘 안다고 집회에 나서냐는 게시글을 인터넷에서 봤다. 그렇게 방구석에 앉아서 키보드나 두들기는 인간보다 나와서 시위하는 학생이 더 낫다”고 말했다. 이어 “나 하나가 나선다고 바뀌는 게 없을지 모르겠지만 나 하나라도 나서야 뭔가 바뀌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집회 참여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자유 발언의 말들과 무관하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큰 소리와 욕설로 집회를 방해하던 한 남성은 학생들이 조용히 해 달라고 요구하자 “요즘 어린애들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어” “당신네보다 운동 더 많이 했어” “고등학생한테 왜 발언권을 줘. 진짜 답답해” 등 혐오적 언사를 쏟아냈다. 그는 결국 그 장소에서 끌려나갔다.

앞서 저녁 7시 촛불집회 전에 있던 ‘하야하라 대학생 성토대회’에서도 같은 취지의 발언이 나와 큰 박수를 받았다. 서강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은영 씨는 “최근 진행되는 시국 관련 발언을 들어보면 입에 담기 힘든 욕도 많고, 박근혜를 비하하며 여성과 약자를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의를 외치고자 한다면 연대하고자 하는 약자들에게 혐오 발언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가 나라를 망친 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며, 최순실이 나라를 망친 건 권력을 부당하게 가져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이 나라 시스템에 대한 문제인데 남성들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회의원부터 남성이 훨씬 많고 여성에겐 큰 자리를 주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편 오후 8시 촛불집회를 마치고 집회 참가자들은 인사동을 지나 북인사마당까지 행진에 나섰다. 민중총궐기는 이틀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측은 100만 명의 시민이 참여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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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혜민

    정말 맞는 말이군요. 박근혜가 여자인 점을 공격할거면 이명박도 남자인 점을 공격했어야죠. 촛불시위도 점점 긍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