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정신을 지배하려는 집단, 시댁

[워커스 25호] 기획연재_코르셋 벗기

  사진/홍진훤

새소리가 들리는 창가에 하얗고 폭신해 보이는 침구가 깔린 침대 위에 남편이 자고 있다. 아침을 준비하던 아내는 다가가 키스로 남편의 잠을 깨우고 둘이 함께 이불 위를 뒹구는 아침이 그려진다. 아내는 남편의 넥타이를 챙겨주고, 양말과 와이셔츠를 갈이입기 좋게 정렬해놓는다. 혹은 화가 난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기고 헤어짐을 종용한다.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장면이다. 연예인들의 가상 결혼 같은 프로그램은 몇 년째 수명을 이어가고 있다. 광고는 또 어떤가. 이미지화되고 정형화된 성 역할이 반복된다. 진절머리가 난다.

결혼적령기라 불리는 30대 초반 청년들에게 이상형이 어떠냐고 물으면, 잘 빠진 몸매의 여성이나 남성 이야길 하지 않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배우자(결혼하면 내 부모에게 충성을 다할), 아이를 귀여워하는 남자친구(결혼해서 육아에 도움을 줄 남자), 존경심이 들 만한 이성을 꼽는다. 나 역시 결혼 전 남편에게 내가 왜 좋은지 물었을 때 들은 대답은 “네가 어른(외할머니)을 모시는 모습이 대단했고, 너의 사상과 행동력이 실천 가능한 것들이어서 여타의 여자와 다른 것 같아서. 무엇보다 니가 편해”였다.

저 말을 풀어보자면 그는 나에게 ‘자신의 부모를 내 부모인 양 모시길 바랐던 것이고, 돈벌이에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 것 같이 보였으며, 이 모든 부담을 지웠을 때 별로 반항할 것 같지 않은 현대적인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원한 건 슈퍼우먼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결혼해서도 네가 경제활동은 했으면 한다. 그것이 너의 자아실현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말은 또 어떠한가. 남편과 나는 같은 대학을 졸업했고, 심지어 같은 학과 같은 학번이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임신했다. 임신 과정이 건강치 못했기에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노동력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박탈당했지만, 시댁은 마치 내가 남편의 등에 빨대를 꽂은 빈대인 양 취급했다. 임신 기간에 남편과 시부모로부터 식충이 취급받기 일쑤였다. 이런 현실이 갑갑해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돌아온 답은 어떠한가. “너는 모성이 없는 엄마다. 엄마 자격이 없는 여자”라고 비난했다.

나는 독신주의자였다. 남편이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가부장적인 남편과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혼을 안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는 “그것은 내가 어떻게든 해결 볼 테니 제발 결혼 안 한다는 이야기만 하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시부모 편에 서서 시부모의 아바타로 살아가며 나와 꾸린 가정에서 본인 자리를 걷어차 버리고 마치 싱글처럼 지낸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불금을 즐기며, 혼자 여행을 다니고 그러고 산다. 마치 아이들과 나는 없는 인간처럼.

남편이 싱글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은 그의 부모로부터 전폭적인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가출해도 “오죽하면 내 아들이 가출했겠어. 며느리 너 성깔 안 고칠래?”라고 말하는 시부. 몇 달간 내가 찾지 않으니 야밤에 아이들과 나만 있는 집으로 찾아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자기 아들 어떻게 할 거냐고 인터폰에 소리치는 그의 부모. 어느 집은 시부가 골치 아프게 하면 시모는 감싸주기도 한다던데. 나의 시댁은 부부가 정말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아서 시너지 효과만 날 뿐이었다. 이 집의 외며느리 종년의 위치인 나는 사는 동안 밧줄에 목을 매달고 죽어야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녹록치 않은 결혼 생활을 이어왔다.

나에게 며느리의 도리만을 줄기차게 원하는 그의 부모, 그리고 그런 사람의 아들인 내 남편도 별로 다르지 않은 부류임이 틀림없다. “미안해. 우리 부모 대신 사과할게. 나를 봐서 그냥 넘겨줘”라고 말하던 그도 이제는 “시부모 문제는 제치고, 너와 내 문제이니 갈라서자”고 요구한다. 정작 ‘오케이 콜, 갈라서자’ 하면 입 꾹 닫고 몇 날 며칠 몇 달이 흐르건 그냥 하숙집에 기거하는 싱글처럼 마음대로 살기만 한다.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새벽에 문이라도 잠겨있으면 잠자는 8살 아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대며 문 열어달라고 메시지를 날리는 정신적 미숙아로.

시부모는 아들이 정작 이혼이라도 하면 큰일 나는지 아들 명의로 돌려놓았던 작은 빌라도 나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매매해버리기도 했다. 남편의 보험 역시 시모가 계약자로 8년이 흘렀다. 남편이 혹시라도 사고를 당하면 시모가 다 처리해줄 모양이다. 어느 보험사의 어떤 상품인지도 난 모른다. 남편에게 알려달라고 해도 말하지 않는다. ‘인감도장 어딨어?’라고 물어도 모르쇠. 남편의 모든 권리와 책임은 시부모의 것으로 시부모의 아들인 남편은 그저 잠만 자는 존재로 살았다. 한 번도 ‘저 이와 내가 가족이구나. 아이들에게 보호자로서 법적 책임을 함께 지는 사이로구나’하고 생각한 적 없다.

재산도 시부모 마음대로 보험도 시부모 마음대로, 도대체 아들을 왜 놓아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옷을 챙기니 시부가 문지방에 서서 이런 말을 했다. “양복 하나만 가져가. 다음 주말에 와서 또 한 벌씩 가져가고, 주말마다 집에 와야지? 지금 다 가져가면 안 올 거잖아. 한 벌만 가져가.” 영화 올가미를 보며 ‘세상에 저건 말도 안 되는 허구다, 저런 시부모가 어디 있겠어?’ 했다. 현실 속에서 극영화의 캐릭터 이상의 실존 인물을 둘이나 만난 나는…. 지지리도 박복한 년이다.

누가 이 사람들을 이토록 비인간적이고 자신만 아는 인간으로 만들었을까. 시대는 바뀌는데 왜 그들의 사고는 근대 이전일까 싶다. 하긴 그들에게 가부장제는 그냥 도구일 뿐 아니겠는가. 나는 갑이고 너는 을이라는 지배 구조 안에서 만족을 원하기 때문에 그들은 며느리인 나를 배우자인 나를, 동등한 인격체로 사고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재화도 결혼과 동시에 그들 것이란 욕심을 부렸고, 내 몸, 내 정신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에서의 결혼이고 부도덕한 가부장제의 떡고물에 취한 비루한 인간들의 결혼이구나 하는 생각. 결혼 생활 내내 아무리 싸워보고 설득하려 해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성벽처럼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며느리 되길 포기했다. 남편에게 더는 너희 집 며느리 안 한다고, 네 마누라로 죽을 생각이 없다고 선언했다. 정작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니 저쪽에서 나를 피한다. 아니 그냥 무시하고 있다. 건강이 안 좋아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나는 여전히 혼자만 육아를 하고 있다. 물 한잔, 밥 한 끼 얻어먹거나 도움 받은 적 없다. 내가 얼마나 나쁜 년이기에 이런 취급을 받나 스스로 한탄도 많이 했는데, 그냥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시부모라서 나에게 이렇게 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결론이다. 착취해야겠는데 고분고분하질 않으니 미워할 수밖에.

언제쯤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나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워커스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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