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절망이 이렇게 설명될 수 있구나”

[워커스 25호/고급진] 김상우, 석지연을 듣다

  사진/정운

나의 증거를 얘기해봐
나는 무엇의 의무일까?
얼마나 무례해야 나의 이유를 알까?
내가 마셔 비워진 술잔의 이유를 들고 더러운 거리를 쏘다닌다
영혼이 다 빨린 꽁초 하나가 일을 마치고
검은 쥐가 다니는 수체 구멍으로 빠질 듯 비틀거린다


김상우(김) 2012년 ‘작가세계’로 등단했다. 당시 스물한 살이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습작해 온 건가?

석지연(석) 수능 보기 3달 전에 수능 보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얼마나 생각이 깊었겠냐마는 대학에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 봤다. 거기에 대한 답이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아서 내가 나에게 답을 내놓을 수 있을 때까지 대학에 가지 말자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친하게 지냈다. 사회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며 많이 어울렸다. 그 때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도서관에 드나들었다. 딱 20살 때다. 그러다 시집을 접했고 내가 써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겨서 혼자 쓰다가 공모전에 투고해서 당선됐다. 문학을 접하기 전까지는 문예창작과나 국문학과를 통해 공부하고 등단을 하는지 몰랐다. 내가 한 게 등단이라는 것을 몇 달 뒤에 알았다. 문단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됐고. 그러다 스물두 살에 학교에 갔다.

순서가 좀 바뀌었네.

선배나 또래 작가 만났을 때 과정이 특이하다는 말 많이 들었다.

학교에서 주목받지 않았나.

나 스스로 없는 사람처럼, 투명인간으로 학교에 다니고 싶었다. 데뷔했다고 바뀌는 것도 없고 똑같은 학생인데 뭐. 등단했든 안 했든 글을 쓰는 사람이지 차이는 없다고 본다. 작가하기 위해서 등단이 목표가 될 수는 없지 않나. 나 역시도 시가 좋아서 시를 썼다. 등단하고 싶어 시를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등단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어떻게 사람들이 알게 됐다. 수업시간에 서로의 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합평’ 시간이 있다. 이때 좀 기분이 이상했던 적이 있는데, 내 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더라. 시가 정답이 있는 게 아닌데,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의도가 있다고 보거나. 시에 작가의 의도가 있다고 해도 꼭 그렇게 해석할 필요는 없는 건데, 좀 나를 다르게 보는구나, 어렵게 생각하는구나 싶어서 아쉬웠다.

시 쓰기에 대학이라는 공간이 괜찮을까.

문학을 하는 자아는 끊임없이 자기에게 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꼭 제도권에 맞춰 정규교육을 받아야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있다.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에 대해 공부 하는 것 자체도 좋고. 아무래도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문학을 배우고 접하기 위한 인문학적 성찰과 접근이 쉽지 않을까. 물론 자신의 한계가 한 번씩 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모든 질문의 답은 책 속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사람을 통해서 알아갈 수 있는 부분 역시 많다. 생각을 나누고 공유할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 같다. 그 기회를 누리기에 대학은 좋은 공간이라 생각한다.

등단이라는 명패를 달고 개인적으로 바뀐 것이 있나.

작가를 희망하고 공모전을 준비하는 사람 중에는 등단하면 무언가 크게 달라질 거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전혀 이득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또 생각만큼 큰 변화는 없다. 본질적으로 등단이라는 게 내 삶을 많이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등단해도 그다음 문제와 과정이 있으니까. 시집은 언제 내지, 왜 또 시가 안 써지지 고민의 연속이다.

사실 등단이라는 게 뭔가 자격증처럼 취급받기도 해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학교에서 습작생의 시와 시인의 시를 나누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시인과 비시인을 나누는 거지. 그 말 자체도 좀 웃기고 등단한 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신분 계급처럼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는데,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등단 제도가 계속 있는 게 좋은 걸까.

종종 등단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훌륭한 제도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등단 제도를 바로 없애는 것 역시 정답은 아니라고 본다. 등단의 투명성 문제이지 등단 제도 자체를 없앤다고 문단 내의 권력화 같은 문제가 해결될까. 예를 들어 등단 제도가 사라지면 추천제로 회기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이것이 더 불공정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자기 제자를 등단시키거나 추천 자체를 권력화하기 쉬울 거 같다.

요즘 문단이 시끄럽다. 개인적인 결론은 시만 쓰는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시에만 목숨 걸 때 사고가 나지 않나.

시만 쓰는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타인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자기 세계에만 갇혀 있으면 타인을 못 들여다보지 않을까. 공감의 차원인 거 같다. 타인이 이런 일을 행했을 때 상처를 입겠다, 아프구나, 공감해야 하는데 대부분 문제가 생기면 ‘그럴 줄 몰랐다’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사실 몰랐다기보다는 그 일로 인해서 얼마나 아플지 모르고 있었던 거 같다.

타인을 좀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사고를 좀 덜 친다. 젊은 시인을 대표해서 사회 참여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사회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이게 도대체 내 삶에 무슨 영향이 있지, 무슨 의미가 있지, 묻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 진도를 다녀왔다. 유가족을 만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한 것이 이게 정말 내 일이 될 수도 있었구나 하는 거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언젠가 내 일이 될 수도 있구나. 그래서 뭔가 잘못됐으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많이 찾아보게 되고 관심이 생기고. 특정한 단체에 속하기보다는 나 개인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일이 뭘까 하면서 조금씩 참여한다.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건 무엇인가.

여성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부당한 일을 겪은 적 있나 생각해보게 되고. 문단 내 성폭력도 대다수 피해자가 여자다. 나 역시도 비슷한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데뷔 초에 그런 일이 많았다. 어떤 시상식에 가면 거나하게 취한 남자 시인이 다짜고짜 ‘지금 나가서 나랑 성관계하자’고 요구한다든가 폭언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상처가 돼서 이 문제를 갖고 다른 남성 시인에게 괴롭다 말했었다. 그 시인은 ‘그거 여기서는 흔한 일이야. 왜 너만 그게 상처라고 인식을 해’라고 말했다. 진짜 그런 일인가, 내가 예민한 건가 싶어서 당시에는 덮었다. ‘남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왜 너만 문제시 하냐’는 말에 조용히 있었던 거지. 요즘에야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내고 고발하는 것을 보면서 괜찮았던 일이 아니란 것을 의식하고 있다. 내가 나에게 ‘정말 괜찮았던 일이라고 생각해’라고 묻는다. 그게 내게는 의미 있는 출발이다. 단발성으로 묻힐 게 아니라 피해자가 연대하고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 거 같나.

‘탈조선’ 해야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는데 정말 외국 나가서 살고 싶을 때도 있다. 동시에 그게 꼭 답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이곳에서 계속 버티고 있으며, 연대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절망과 슬픔 속에서 글을 밀고 나가게 하는 힘을 어디서 얻나.

습작할 때는 되게 몰랐다. 시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렇게 공부하다 어느 순간 시에서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지 그 방식을 배우고 있다. 이별하거나 사랑할 때, 기쁠 때, 슬플 때. 지금도 걸어갈 때나 좋은 풍경을 봤을 때, 이 풍경에는 어떤 시가 어울리는지 자연스레 떠오른다. 내 삶 안에서 시는 일상이다. 시하고 나하고 삶에서 밀접하게 같이 사는 것 같다.

보통 어디를 바라보며 시를 쓰나, 어디서 낯설게 됨을 발견하나.

대부분의 문학은 인간에 대해 얘기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이기도 하고. 시를 읽을 때 시를 읽어 기쁘기보다 내가 시를 읽어 절망스러울 수 있구나 생각할 때가 많다. 내 절망이 이렇게 설명될 수 있구나, 그걸 보듬어주는 것이 시의 역할이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언제 제일 외롭나.

항상 외롭다. 언제가 딱 외롭다기보다는 사는 게 힘들다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요즘 문단 내 성폭력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 나와 연계되어 있고 내가 발붙이고 서 있는 곳이니까 아무래도. 불온한 면들을 발견하면서 내가 여기에 서 있는 의미가 뭐지하고 자문하게 된다. 왜 내가 여기에 서서 이걸 하고 있지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내 신념으로 거짓되게 살지 말자 노력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러다 보면 좌절하게 되고 외로워지고 그렇다.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싶은 시집이 있다면.

종종 좋아하는 시인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하는데, 김혜순 시인이라 답한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이나 여성이나 젠더에 대해 관심이 높은데, 김혜순 시인은 이런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시를 쓴다. 여성의 몸에 대해 감각적이고 치열하게 시로 풀어내서 많은 이가 읽어보면 좋을 거 같다.

또 최근에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다시 읽고 있다. 철학적 고찰을 많이 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많이 두는 시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시가 많다. 감성적으로 이를 써내려갈 수 있는 시인이랄까. 굳이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

요즘 문단에서 멋있는 시를 쓰는 건 대부분 여성 같다.

시인마다 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 시인 중 섬세한 언어를 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남성적인 언어를 쓰는 여성 시인이 있을 수도 있고. 여성시인이라고 여성적 언어를 쓰는 건 아니고.

젊은 사람들이 석 작가를 좋아하는 거 같다. 다들 언제 시집 내나 기다리고 있다.

아무래도 좀 그런가. 누군가 내 시를 좋아해 준다고 생각하면 좋다. 좋아해 주니 감사하고. 요즘 주위에서 시집 안내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써왔던 원고의 반을 불태웠다. 마감이 있다 보니 마감에 쫓겨 글을 쓰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내가 쓰고 싶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내가 시를 만들어내고 있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고 책 읽으며 생각을 좀 해보니 나만의 방향성이 생겨났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결국, 내 목소리가 아닌 시를 내 시로 치부하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처음부터 가자, 적어도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자는 마음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시를 태웠다.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어떻게 시를 써야겠다는 방향성이 확실히 세워진 건 아니지만, (물론 변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세운 방향성은 여성으로서의 내 목소리를 조금 더 담아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쓴 시 중에 여성의 몸에 대해 직접적으로 쓴 것은 없다. 외려 시에서 여성의 몸을 다루는 것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 최근에야 생각이 바뀌었다. 언젠가 예전 원고를 들여다봤는데, 내 몸이나 여성 화자로서의 목소리를 내려고 했던 것들이 있더라. 나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써 내려 갔던 거지. 의식 하느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여서 이번에는 제대로 생각하고 써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일단은 그렇다.

인터뷰_김상우 / 정리_신나리 기자 / 그림_양유연
덧붙이는 말

김상우 _ 시인, 이리카페 사장, 밴드 ‘마음’ 드러머, 은총이의 삼촌. || 그림 양유연 _ 세상의 밝은 모습보다는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보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평생 그림쟁이로 살아가는 꿈을 꾸며 매일 매일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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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자의식도 장난 아니네요. 쉬운 말을 뭐 그리 어렵게 하고 돌려 말하는지, 솔직히 인터뷰 너무 진부합니다. 이 바닥 걸어갈 때 당신 스트레스도 장난 아닐 것 같네요. 부디 잘 되시기만을 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