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제작) 문화와 사회적 기술 감각의 회복

[워커스25호] 기술문화비평

[출처: 홍진훤]

빅데이터, 가상·증강현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포스트휴먼, 나노테크놀로지 등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기술의 상찬으로 신들렸다. 인간의 역사 그 어느 시절에도 이만큼의 기술 혁명 쓰나미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 신종 기술의 논리는 인간 삶에 깊숙이 들러붙어 새로운 사회의 가치값을 구성한다. 그렇게 동시대 현실은 동시다발적으로 연쇄 반응하면서 폭발하는 신종 기술 혁명 앙상블에 의해 규정된다.

과거 인간의 기술은 삶을 구성하는 여럿 가운데 하나였다. 허나 이제는 이 기술들이 인간 삶의 모든 곳에 스며들고 전체 삶을 규정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위한 기술이 차고 넘칠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더 커진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가면 갈수록 인간의 기술에 대한 통제 능력이 퇴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술의 미래와 진화 방향은 갈수록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의 삶과 멀어져 간다. 대신에 이를 소비하는 인간의 손끝과 말초신경의 감각만이 발달해간다. 현대인은 기계를 쓰는 데 능숙할지 몰라도 뭐 하나 제대로 다루는 데 서툴다. 진정 무엇을 제대로 다룬다는 것은 그 기계와 기술이 지닌 고유의 설계를 파악하고 그 최적의 쓰임새를 잘 알고 있을 때 쓰는 말이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은 과연 그러한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 현대인은 신흥 기계의 고삐를 꽉 움켜쥐고 있으나 이를 어찌 부릴지 어떤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지 전혀 모르는 신생아와 같은 처지다. 그러니 기술의 미래를 보는 눈도 사라져 근시안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차고 넘치는 기술은 미래에 대한 투명성을 증대하기보단 우리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저 멀리 어두컴컴한 ‘암흑 상자’(black box)와 같은 미래로 인도한다.

‘비판적’ 메이커 문화의 부상

메이커(maker) 혹은 제작 문화는 바로 암흑 상자 같은 기계와 기술에 대한 현대인의 무뎌진 몸을 일깨워 잃어버린 문명의 감각을 회복하는 행위이다. 이미 메이커 문화는 오래전부터 손 제작, 적정기술, 뜨개행동주의, 메이커운동, 크리티칼 메이킹 등의 용어로 등장해, 자본주의 사회 내 소비 능력보단 생산하는 손 감각의 쇠퇴에 대한 문명 회복의 문제의식을 지역과 시민 공동체의 화두로 삼아왔다. 반면 이제까지 자본주의 공장이나 수공업 공정에서 기계를 만지는 숙련공은 각 방면에서 뛰어난 장인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들 공장에서 기계적 수행성은 자유로운 감각을 찾는 행위라기보다는 이윤 수취의 공정에 몸을 맡기는 몸 감각의 종속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자본주의 기계 노동과 달리 문명 감각 생산의 흐름은 이렇게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의 직업적 독점화나 전문화 대신에 누구나 생산과 소비의 자발적 주체로 참여하고 협업할 수 있는 개방적 메이커 문화에서 성장한다.

메이커 문화 속에서 무엇인가 만드는 행위에는 특정 손재주나 대대로 내려오는 장인의 비법이나 전문가적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술 제작의 보편적이고 평등한 문화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메이커 문화는 누구나 손쉽게 적은 비용으로 소비형 기술에 접근할 수 있고, 짧은 시간에 오픈 소스형 매뉴얼과 가이드를 통해 그 원리를 익히고,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에서 뿌리내린다. 오늘날 메이커 문화는 목공, 뜨개질, 수제 화로와 아궁이, 가구 제작 등 로우테크 제작문화에서부터 아두이노와 3D 프린터 등을 활용하는 하이테크 창·제작 행위를 모두 아우른다. 역사적으로는, 산업주의 초창기 수공예 제작이나 목공운동, 적정기술, 그리고 오픈소스 기반 소프트웨어운동에서 부터 오늘날 3D 프린터와 사물인터넷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이어지는 개념으로 메이커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누군가 기술의 암흑 상자에 손을 내밀어 이리저리 휘휘 손을 뻗어보고 어두운 곳에서 뭉글뭉글하게 잡히는 기계의 질감을 느끼는 행위는 처음에 공포심을 주지만 곧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기계 설계에 대한 흥미진진한 탐구 행위로 바뀐다. 시작은 어렵지만 손끝에 닿는 기술의 질감을 익히다 보면 그것의 설계와 원리에 대한 관심과 이해에 맞닿아 간다. 오늘날 이와 같은 기계와 기술 설계의 체득은 잃어버렸던 내 현실의 사회적 감각을 점차 회복시킨다. 하지만, 우리는 현존하는 자본주의 기술 질서가 끊임없이 인간의 사회적 감각을 후퇴시켜 왔던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무엇인가를 만들고 그것의 디자인과 설계를 파악한다는 것에는, 특정의 기술을 고쳐서 다시 쓰고자 하는 수리, 중창, 재설계(리엔지니어링)라는 변형이나 재구성의 가능성을 전제한다. 우린 법적으로 이미 스마트폰을 열어볼 권리도 없지만 설사 의도적으로 열어보더라도 이를 어찌하거나 고쳐 쓸 능력 또한 없다.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구입한 진공관 라디오 키트를 납땜하며 그 기판의 원리를 익히던 필자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오늘날 느끼는 기계 앞의 무기력증은 가히 격세지감이다.

결국 어떤 기계의 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다시 만들고 고쳐 쓰는 것은 메이커 문화를 지탱하는 기본이자 기술 대안의 경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제작 문화는 그래서 현실 자본주의 기술 구조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대중 스스로가 자본화된 기술 체제에 의해 죽어가는 제작과 수리 문화의 감각을 되찾아 우리 모두가 인류 문명의 제작자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까닭이다. 즉 우리는 메이커 문화에서 자본주의 기업들의 사유화된 질서에 대항한 독립적인 생산자 커뮤니티에 대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은 국내에서 징후로 머물고 있지만, 엔지니어, 문화활동가, 적정기술자, 창작자, 디자이너 등이 함께하는 ‘비판적’ 제작 문화에서 우리는 기술 과잉의 시대에 자본주의 기계 발달의 진행 방향과는 다른, 그들의 손과 몸으로 도발하려는 새로운 대항 기술의 새로운 흐름을 살필 수 있다.

또 다른 시장 논리 혹은 새로운 문명 감각의 확장?

문제는 메이커 문화의 많은 성과물이 시간이 갈수록 인간 창의적 사고와 의식을 잿밥으로 삼는 약탈적인 시장질서의 아이디어 뱅크로 흡수될 위험성이다. 마치 기업 주최로 열리는 대학생 아이디어 공모에 수많은 무급의 열정 시간이 자연스레 흡수되듯, 시장 지배적 기업들은 내부적으로 고갈된 아이디어 자원을 주로 외부에 널리 존재하는 마이크로 제작자들의 창작 활동으로부터 대거 포획하는데 의존하려 한다. 즉 대중의 아이디어나 새로운 기술 결과물 등 메이커 문화의 창발성을 흡수해 사적으로 전유하려는 기업 욕망이 꿈틀거린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중앙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 기관은 신흥 메이커 문화에서 신종 먹거리 산업 창출 이상의 것에 도통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메이커 문화가 지닌 기술의 사회적·문화적 가치의 독려와 확산은 기술 정책과 행정에서 늘 후순위다.

메이커 문화의 또 다른 난관은 특허권, 저작권, 상표권 등 지식 재산화되어 있는 난공불락의 자본주의 질서 속 생존 가능성이다. 대부분이 지식재산권으로 시장화하는 현실에서, 일반 아마추어가 무언가 새로운 제작을 하는데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에 설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크게 존재한다. 이에 궁극적으로는 커뮤니티와 개인들 사이에 상호부조와 공유의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 시민들 ‘공통의’(common) 유무형 기술 자산이 축적되어야 한다. 메이커 문화의 활성화는 바로 이와 같은 공통의 기술과 기예의 시민 자산의 기획 없이는 불가능하다. 즉 메이커 문화를 공감하는 이들이 이제까지 일궈왔던 기술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시민 자산 목록 리스트를 누적해 기록하고 이를 공유해 대중이 손쉽게 창·제작에 관여하도록 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들 공통의 기술 자산 목록은 ‘사회적’ 특허 방식이나 공용 라이선스 모델을 도입해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이 공통의 자산을 통해 마이크로 제작자들은 각자의 시장 경제 행위를 도모할 수 있는 재생산의 근거지로 삼아야 한다.

메이커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은, 서로 다른 소규모 마이크로 제작자들이 활동하면서 그들 스스로 가치 있는 물건이나 창작물을 시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서, 좀 더 지역 커뮤니티에 적절하게 필요한 물건을 최적의 조건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생산과 소비의 민주화된 질서를 내다본다. 이 점에서 부상하는 메이커 문화는 이제까지 경제 성장과 사적인 부의 축적보다는 지역 커뮤니티나 사회의 부나 증여를 확대하는 쪽에 더욱더 가치를 두는 의식 전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조타수 없이 마구 어디론가 달려가는 기술 미래의 불투명한 조건에서, 메이커 문화는 우리 주변의 기술 일부는 인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평범한 우리가 기술에 성찰적으로 개입하고 기술에 대한 감수성 회복을 요청하고 더 나아가 기존 기술주의적 패러다임의 수정까지도 요구한다면, 지배적 기술의 논리를 바꾸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메이커 문화는 사회적으로 지배적 기술 권력이 강요하는 블랙박스의 암흑 논리를 벗어나 기술 대상을 뜯어보고 요리조리 살펴 우리의 성찰적 설계를 하는 행위, 즉 ‘역설계(reverse engineering)’의 지혜와 맞물린다. 역설계는 자본주의 줄이 그어진 상업 기술과 기계의 설계 방식을 주체의 의도에 맞게 뜯어내어 완전히 새롭게 재설계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이와 같은 역설계의 현대적 장인 감각을 키우는 일은 향후 인간의 생존과 연결된 다른 기술의 생성적 지혜를 키우는데 필수적이다. 역설계는 오직 소비만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시장 상품 논리를 우회해 우리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쓰는 문화를 추동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다.

동시대 기술 과잉의 파고 앞에서 메이커 문화는, 탈성장(de-growth), 회복력(resilience) 등 느리더라도 공존과 공동의 호혜적 가치를 보장하는 ‘사회적’ 기술의 패러다임이 유효함을 실제로 증명한다. 메이커 문화는 바로 지배적 기술의 대안적 프레임을 짜는 일이자 기술주의로 자행되는 다양한 기술착취와 주조된 기술 물신을 막는 궁극의 길이다. 과학기술의 성장주의와 발전론이나 시장 가치화는 종국에는 인류를 기술 통제 불능이란 파국의 길로 이끌 공산이 크다. 그래서, 기존 과학기술의 성장, 발전, 승자독식 개념을 메이커 문화 등 공동체적 공생의 기술 프레임을 가지고 재규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상하는 메이커 문화에서 이제라도 대중과 그리 인연 없는 기술 경제성장의 동력을 찾으려 헤맬 필요는 없다. 그 보다는 우리 모두가 조금 느리더라도 주어진 환경에 맞춰 움직이는 기계와 기술의 구상을 찾는 ‘기술-몸의 앙상블’이란 문명의 지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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