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밀듯 밀려오는 시위대 앞에 무릎 꿇은 아르헨티나 대통령

[워커스 26호] 21세기 민중봉기가 끌어내린 대통령들(2)

헬리콥터 한 대가 대통령궁 위를 날아갔다. 수많은 사람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델라루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몰려든 군중을 피해 도주한 장면이다. 그는 이틀 뒤 2001년 12월 21일 하야한다.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100만 명 이상이 시위에 나섰고 문자 그대로 정부를 전복했다. 결국 대통령은 민중봉기에 무릎을 꿇었다.

아르헨티나 민중들은 거리와 정부청사를 장악했다. 학생들은 학교를, 노동자들은 공장을, 주민들은 마을 광장을 점거했다. 대통령궁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말을 탄 경찰은 곤봉으로 내리쳤고 고무총과 최루탄도 썼다. 그러나 밀려오는 민중의 물결을 제지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모든 계층이 일어났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당시 3년여 간 깊은 경기침체에 빠져 있었다. 일자리가 메말랐고 사람들은 굶주렸다. 한 가족이 오밤중에 거리로 나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도 빈번했다. 인구의 절반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했다. 슈퍼마켓이나 상점 약탈이 일어났다.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12월 말 하루에 27명이 사망하는 참사도 일어났다.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을 가진 아르헨티나. 품격 있게 탱고를 추던 그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통화기금(IMF)의 우등생으로 손꼽힌 나라였다. 그러나 정부는 점점 더 국민들을 수탈했고, 실업자와 노동자, 도시빈민을 양산했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중산층은 “모두 다 물러나라”라며 반체제투쟁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출처: socialistreview.org]

“모두 다 물러나라”

아르헨티나의 정치경제 상황은 30년 가까이 누적된 신자유주의 조치로 파산난 국가의 모습이었다. 아르헨티나는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이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오랫동안 신음해 왔다. 당시 남미 대부분의 나라에서 군부가 집권해 노동유연화, 공공기관과 자산 민영화, 사회복지비 삭감 등 신자유주의 조치를 도입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외채를 끌어들여 개발 드라이브를 주도했고 이윤은 외국자본과 기득권층에 돌아갔다. 1976년 80억 달러였던 외채규모는 1983년에 5배가 넘는 450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차기 정부들은 외채 상환을 위해 더 열악한 조건으로 더 많은 외채를 빌려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막대한 외채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 말기 빈곤율은 40%, 실질실업률은 18%까지 치솟았다. 군부는 좌파와 민주세력을 상대로 악명 높은 ‘더러운 전쟁’을 벌여, 3만여 명이 죽거나 실종되는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다.

이러한 군부는 마침내 대중의 저항에 부딪혀 알폰신 급진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그러나 이들은 군부에 면죄부를 준 한편 신자유주의 노선도 그대로 따랐다. 이 때문에 1986년 살인적 인플레와 대중적 반발로 알폰신 정권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사퇴해야 했다. 이후 페론주의 메넴 정권이 들어섰지만 이들 역시 신자유주의 노선을 지속했다. 특히 이 정권은 인플레를 통제한다는 이유로 통화주권을 일부 포기하여 페소화와 달러화의 교환비율을 1대 1로 고정한 고정환율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전 인구의 50%가 넘는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미국과 IMF는 새로운 구제금융을 허용하면서 이 조치를 좋게 평했지만 수출에 악영향을 미쳤고 외채도 더 늘었다.

결국 페론주의 메넴정권의 신자유주의 노선과 극도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낀 아르헨티나 민중은 1999년 10월 중도좌파 선거연합 동맹(Alianza)의 후보로 출마한 델라루아 대통령 후보를 선택했다. 그러나 델라루아 대통령마저 IMF 요구에 굴복하고 고질적인 부패 문제에도 눈을 감으며 메넴정권의 노선을 되풀이했다. 그 결과 상하원 선거에서 페론주의당에 패배하고 연정 세력까지 등을 돌리면서 정치적으로 고립됐다. 더구나 메넴정권 하에서 경제장관으로 악명 높던 카바요를 다시 경제장관으로 불러들여 연금과 사회복지비 삭감을 주도했다.

GDP의 절반이 넘는 막대한 외채의 누적, 무차별적으로 진행된 민영화는 달러-페소 고정환율제와 더불어, 아르헨티나의 경제주권을 사실상 IMF와 국제금융자본에게 넘겨줬다. 2001년 중반, 중도좌파 정부가 못마땅했던 IMF는 차기연도 예산안을 문제로 13억 달러의 구제금융 분할분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고, 2001년 300억 달러가 넘는 자본이탈이 발생하면서, 아르헨티나는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로 치달았다. 정치적으로 고립됐고 자본유출에도 속수무책이었던 델라루아 정부는 비상조치로 예금인출을 동결함으로써, 사회적 양극화 속에 빈곤층으로 내몰리던 중간계급을 냄비 두드리는 거리의 투사로 변모시켰다. 델라루아 협조하지 않았다. 또 군부를 동원해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지만 우익 성향의 군부는 중도좌파 정권에 거리를 뒀다.

체제를 넘어선 급진적인 투쟁

제일 먼저 나선 것은 실업자들이었다. 이들은 수천 명 규모로 거리를 봉쇄했다. 당시 거리에서 시위한 마르틴스 코메스는 “다수가 실업자다. 그럼에도 정부는 긴축을 도입하고자 했다. 길을 막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거리를 봉쇄하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 목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중산층을 비롯한 시민들은 냄비를 들고 광장과 거리로 모여 소위 ‘카세롤라소(cacerolazo)’라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여러 시간 동안 주요 도로를 따라 행진하거나 모퉁이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많은 사람이 마을마다 모여 이런 시위를 벌였다.

노동자들은 수백 개의 공장 점거 운동을 시작했다. 기업이 의도적으로 파산한 뒤 임금을 체불하고 생산수단을 매각하는 데 따른 대응이었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해 수년 동안 운영했고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어 냈다. 2001-2002년 사이 전국적으로 약 2,500개의 작업장이 폐쇄됐는데, 그중 150~200개가 노동자들에 넘어가 생산을 계속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 민중회의를 조직했다. 냄비시위를 함께 한 시민들은 거리나 공원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정치에 관해 토론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3백여 개의 민중회의가 조직돼,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일상 투쟁의 기획과 집행만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를 논의하는 정치토론의 장으로서 기능했다.

정치경제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노동자와 시민 사이의 연대가 자라났다. 사람들은 ‘민중부엌’을 개설하고 나눴다. 가난한 사람들끼리 음식이나 옷가지를 나눠 쓰는 연대는 더욱 눈에 띄였다. 도심에는 야채와 옷가지를 교환하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됐다. ‘새로운 시대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서로를 기만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정서가 지배했다.

대중주의 노선으로의 전환과 우파의 복귀

2001년 12월 델라루사 대통령이 하야한 뒤에도 아르헨티나에선 매일 평균 19건의 시위가 벌어졌다.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던 페론주의 정의당이 정국을 주도하여 이 당 출신의 인물들이 차례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그 사이 정부는 외채 1,000억 달러에 대한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 고정환율제 폐지와 통화 평가 절하 등의 조처를 하며 경제를 안정화했다. 결국 2003년 선거로 당선한 페론주의 좌파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2004~5년 원금의 4분의 3을 탕감하는 부채협상을 체결하면서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일단락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와 염증 속에서 선출된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무엇보다 30년 동안 지속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대중주의 노선을 취했다. 그와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잇따라 집권한 12년간, 정부는 50%가 넘는 지지율 속에서 석유공사, 철도 등 주요 기간산업을 재국유화했고, 고속도로와 공공주택에 대한 투자를 2배로 확대했다. 또 ‘더러운 전쟁’을 벌인 군부 책임자에 대한 면책법을 폐기했으며, 제국주의에 맞서 역내 좌파정부들과 공동 노선을 취했다. 이 같은 조치들 때문에 ‘키르치네르주의’라는 명칭도 생겼다. 급진당이나 공산당 같은 좌파의 지지도 받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는 반대했지만 개혁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이뤄졌다. 노동자 자주관리나 민중회의 같은 급진적인 운동도 이 안에 머물렀다.

아르헨티나에선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우파가 승리했다. 세계 경제공황의 여파로 시작된 경제위기 속에서 우파는 전 대통령 가의 부패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경제 회복을 약속하며 승리했다. 하지만 이들이 취한 건 경제 위기의 책임을 다시 민중에 돌리는 것이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긴급조치로 키르치네르 시대의 정책을 발 빠르게 개정하며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회귀했다. 또 부채협상에 반발하여 소송을 벌여온 미국 투기자본에 950% 이상의 수익을 안겨줬다. 결국 집권 3개월 만에 35만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또 기업에선 수만 명이 해고됐다. 정부는 오는 12월 보조금을 새로 삭감할 예정이다. 이미 총파업으로 반발해왔던 노조를 비롯해 사회운동은 대중적인 저항을 예고하고 있다.[워커스 26호]

* 참고자료
이명재, 아르헨티나: 부르주아 정치제체 파산상태
참세상 뉴스, 아르헨티나 봉기 1주년: 어디서 어디로?
허석렬, 노동자 통제 운동의 두 경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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