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와 이재용, 3세들의 권력 대물림

[워커스 27호] 게이트의 본질, 세습자본주의

“능력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 나 욕하기 바쁜 xx들이 다른 것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

최순실 딸 정유라(정유연)가 2014년 12월 3일 사회에 던진 일갈이다. 사실 이 메시지는 자신을 비판하던 특정 지인을 겨냥한 것이었다. 타인이 자신과 부모를 욕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내가 만만하니? 너희들은 생까기(모른 체하기) 민망해서 그냥 인사하는 그 수준이야. 상대하기 더러워서 안 해”라며 자신의 위치를 추켜세웠다.

정유라에게는 최태민-최순실로 이어진 3세 정치권력이 주어졌다. 한편에선 ‘삼성-국민연금 파동’을 통해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진 3세 경제 권력의 민낯도 드러냈다. 그리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터졌다.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한국사회 권력 대물림에 대한 분노도 같이 터져 나왔다.

권력의 시작, 미성년 자식에 주식 몰기

이미 국내 대기업 총수 일가의 자녀들은 미성년 때부터 엄청난 부를 소유했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실에 따르면, 대기업 총수 일가 미성년자 43명이 약 1,000억 원의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광온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집단별 미성년자(친족) 주식 소유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4월 기준 16개 그룹 총수 일가 미성년자 43명이 상장 계열사 20곳, 비상장 계열사 17곳에 주식을 보유했다. 구체적으로는 두산 총수 일가 미성년자 7명이 소유한 주식 가치는 31억 원, GS는 5명이 737억 원, LS는 3명이 33억 원, KCC는 1명이 100억 원의 주식을 가졌다. 이렇듯 16개 그룹 총수 일가 미성년자가 가진 상장 계열사 주식 가치는 지난 8일 기준으로 총 1,019억 원이다. 미성년자 한 사람당 23억 7천만 원의 상장 주식을 보유한 셈이다.

그룹 총수 일가 미성년자가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16개 대기업 중 15곳은 전경련 회원사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GS 42억, LS 16억, 두산 11억, 대림 6억 원 등 총 75억 원을 재단법인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재벌들이 자식에게 증여하는 건 상장 회사 주식만이 아니다. 박광온 의원실은 “상장 회사뿐 아니라 비상장 계열사 주식도 총수 일가 자제에 증여한다. 기업 경영진들은 자사 계열사들의 내부 사정을 판단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 주식을 자식들에게 미리 증여한다. 자산가치가 폭등하고 주식을 증여하면 그만큼 증여세도 높아지게 된다. 가치가 낮을 때 미리 증여하는 절세 편법”이라고 전했다.

권력의 집중,‘20대 최고 부호’ 아모레 3세 서민정

그러면 20대 최고 부호는 누구일까? 바로 아모레퍼시픽 그룹 서경배 회장의 딸 서민정이다. 기업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그는 2016년 1월 기준 20대 주식 부호 1위다. 올해 25세인 서민정이 가진 주식 평가액은 2,094억 원에 달한다. 서민정은 2, 3위를 차지한 함윤식(오뚜기 함영준 회장 아들·25) 씨 859억 원, 구형모(LG 구본준 부회장 아들·29) 818억 원에 비교할 수 없는 주식 부호로 등극했다. 블룸버그가 발표한 ‘세계 200대 억만장자 순위’에서 서민정의 아버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세계 163위, 한국에선 1위인 이건희 다음이다. 3위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보다 재산이 많다.

서민정은 이미 12세 때부터 주식을 증여받았다. 15세에 아모레퍼시픽과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을 취득했다. 현재 서민정의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의결권 전환예정)은 2.93%로, 개인으로는 아버지 서경배 회장에 이은 2대 주주다.

2012년, 21세 때 서민정은 아버지 서경배 회장에게 아모레퍼시픽 그룹 계열사인 에뛰드하우스 19.52%, 이니스프리 18.18%의 지분을 받았다. 서민정이 지분을 받은 시점에 이니스프리와 에뛰드하우스는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이니스프리 2012년 매출은 2,294억 원으로 전년 대비 64% 증가했다. 같은 해 에뛰드하우스 매출은 2,805억 원으로 31% 증가했다. 핵심 계열사가 성장하기 전 지분을 증여 함으로써 증여세 절감과 주식가치 급상승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봤다.

해를 거듭할수록 서민정의 권력 승계 구도는 명확해졌다. 서민정의 동생 서호정은 올해 21세로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이 전혀 없다. 서경배 회장의 누나들은 보유 주식을 잇달아 매도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서미숙은 보유한 주식을 2012년부터 16차례 나눠 전부 장내에 매도했다. 서은숙과 서혜숙도 주식 매도와 함께 지난 8월 아모레퍼시픽그룹 특별관계인에서 제외됐다. 서경배 회장의 방계 일가 지분이 줄어든 반면, 직계인 서민정의 그룹 내 입지는 더 확고해졌다. 서민정은 아직 아모레퍼시픽그룹에 입사하지 않았다. 서민정 씨는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컴퍼니에 작년 7월에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의 날개, 자사 아닌 외국 컨설팅 회사에서 인맥 관리

재벌 3세들이 그들만의 리그로 진출하기 위해 수업을 받는 건 자사보다 외국 컨설팅 회사다. 대표적으로 베인&컴퍼니가 있다. 기업 인수 합병, 기업 확장으로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자문하는 외국 컨설팅 회사다. 맥킨지, 보스턴 컨설팅과 함께 세계 3대 컨설팅 회사로 손꼽힌다. 재벌 3세들은 자사 회사의 경영, 업무 파악보다 재벌 자제들이 모여 있는 컨설팅 회사에 입사하는 걸 선호한다. 재벌 자제들이 모인 이곳에서 다양한 인맥을 쌓는다. 컨설팅 회사에도 재벌 3세 입사는 이점이다. 재벌 3세들이 컨설팅 회사에서 ‘경영 수업’을 마치고 자사에 입사하면 계약 수주를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베인&컴퍼니에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서민정뿐 아니라 SK 최태원 회장의 장녀 최윤정(25), LG패션 구본걸 회장의 조카 구민정(27)이 일하고 있다. 또 현대가 정몽준의 장녀 정남이(33),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삼남인 조현상(45) 효성그룹 부사장이 이 컨설팅 회사를 거쳤다. 일각에서 베인&컴퍼니를 비롯한 컨설팅 회사를 ‘경영 사관학교’라 부르는 이유다.

약탈경제반대행동 홍성준 사무국장은 “컨설팅 회사에 경제 정보가 집중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재벌 자제들이 경영 세습을 위해 가는 컨설팅 회사가) 기업의 계속적 가치와 맞게 운영하냐는 것이다. 컨설팅 회사는 한국의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재벌 사기업은 쪼개 판다. 주주 자본주의만 남고 노동자는 배제한 채 기업을 상품으로 만든다”며 컨설팅 회사를 비판했다.

홍성준 사무국장은 또 한국 재벌 3세를 두고 “이병철, 정주영 등 재벌 1세의 성과는 지금에 와서 정당하다고 할 순 없지만, 공은 있다. 하지만 3세는 경영 능력이 검증된 게 아무것도 없지 않으냐. 3세가 경영해 도산한 삼부토건은 매각에 들어갔고, 이에 투자한 회사도 모두 문을 닫게 됐다”고 지적했다.

권력의 정점, 초고속 승진

재벌 3세들은 출발선뿐 아니라 경주 속도도 달랐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30대 그룹 총수 직계 자손 중 자사 기업에 입사한 재벌 3~4세 임원은 모두 44명인데, 이들 중 33명을 분석한 결과, 평균 28세에 입사해 3년 반 만에 임원직에 오른다. 반면 대학졸업자 직원은 임원직에 오르는데 평균 21년이 걸린다.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의 장남 정지선(45)은 입사 10년 만에 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1997년 과장으로 입사, 2001년 이사, 2003년 현대백화점 총괄부회장을 거쳐 2007년에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에 올랐다.

한편, 한라그룹 정몽원 회장의 장녀 정지연(34)은 계열사 만도에 기획팀 대리로 입사해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근 한라건설에 여성 임원이 처음으로 나왔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정지연을 임원 승진 시키려는 밑작업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라그룹 관계자는 “회장님은 현재 정정하고, 승계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2014년 기준 한국 억만장자 중 상속 부자 비율이 74.1%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 밝혔다. 반면 중국 2%, 일본 18.5%, 미국 28.9%, 유럽은 35.8%다. 세습자본주의는 3세까지 내려와 롯데그룹 신동빈 신동주의 ‘왕자의 난’, 한진그룹 조현아의 ‘땅콩 회항’을 거쳐 삼성 이재용과 정유라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터뜨렸다. 지지율 4%의 박근혜 대통령도 박정희 권력의 대물림에서 탄생했다. 2세, 3세들의 권력이 탄핵 정국을 만들고 국가를 마비시켰다.(워커스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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