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서곡, 우리의 힘을 믿어야한다

[기고] 세계인권선언일에 생각하는 탄핵 이후

“하늘에서 우리 아이들이 도와줬어요.”

오만가지 감정이 마음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날 울어서야 되겠냐며 마음을 굳게 잡고 있었는데, 그 한마디에 우르르 무너졌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직접 들으러 국회 앞 도로에 있던 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인 정원석 님의 엄마 박지민 씨의 어깨를 감쌌다가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다. 꺼어억 꺼어억. 환하게 웃던 원석 엄마를 안자 갑자기 그녀가 저 깊은 땅 밑 물이 끓어오르듯 눈물의 곡을 한참 쏟아낸다. 막내 원석이를 가슴에 묻고 보낸 지난 세월의 통한! 아, 이 고통이 우리를 민주주의로 이끌었구나.

[출처: 김한주 기자]

여의도에 모인 수많은 사람 속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도 있었다. 속이 뚫린 거 같다는 수진 아빠, 시원하게 웃어보이던 호성아빠, 세월호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딸이 수고했다는 문자를 보냈다는 생존학생의 아빠, 이 감격스러운 장면을 준우가 같이 했다면 더 좋았을 거라며 목소리가 낮아지는 준우 엄마, 국민이 위대한 정치지도자라는 재욱 엄마, 돈보다는 생명을 중시하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더 열심히 싸우자는 찬호 아빠….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눈물과 웃음으로 서로를 토닥이던 세월호 참사 가족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 시작이죠.”

혁명의 서곡이 될 것인가

맞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은 서곡일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대통령만 바뀐다고 만들어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을 비롯해, 재벌과 기업만을 위한 정책을 노동자와 서민, 농민을 위한 방향으로 바꾸고,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청소년 이주민 HIV/AIDS감염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했던 관행과 법제도를 바꾸며, 표현의 자유를 옭아맸던 국가보안법, 테러방지법을 폐지하고, 집시법과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고, 검찰을 갈아치우고, 법원을 개혁하고, 국정원을 해체하고, 입시교육을 혁파하고, 투기형 주거를 근절하고, 복지재정을 확대하고 세수정책을 전환하며, 사드배치 무효화를 비롯한 동북아평화체제 수립, 그리고 가장 먼저 박근혜 일당을 처벌하는 일 등이 최소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합의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누구나 존엄한 인간이고 평등하다는 가치를 실현하기에 적합한 제도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논의하고 우리 안에 무의식적으로 내재된 차별을 성찰하고, 사회의 평등을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그럴 때 민주주의는 커지고 다른 세상을 향한 영감은 솟구칠 것이다. 기존 질서에 익숙해진 우리의 생각과 문법을 서로의 힘에 기대 깰 수 있을 때,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라는 말에 다가갈 것이다.

그렇지 않고 광장에서 나와 단지 헌법재판소 판결만을 기다리거나 대통령만 교체하면 된다고 여길 때, 우리 투쟁은 혁명의 서곡이 아니라 87년의 후렴구가 될 것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봉건제는 끝냈으나 민중의 민주주의로 이어가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아닌’ 백인 남성 부르주아만의 인권을 선언한 것에 그친 것처럼 말이다.

[출처: 정운 기자]

세계인권선언일에 되새겨보는 우리의 힘

오늘은 세계인권선언일이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 이후 맞이하는 세계인권선언일이기에 남다르다.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이 체포됐던 작년 세계인권선언일을 떠올리니 더 감격스럽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을 믿고 서로의 힘을 길어 올리는 일이다. 그동안 흙수저들의 삶은 인생으로 보지 않았던 사회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힘을 몰랐다. 아니 우리는 우리의 힘을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존엄이 짓밟혀도 꼼짝하지 않는 체념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긴 모욕에 맞서 싸운 세월호 참사 가족들을 비롯한 동료시민들의 저항에 힘입어, 우리는 우리의 힘을 다시 깨달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무너진 가슴을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들, 현대차 재벌이 기획한 노조파괴 시나리오로 괴롭힘에 시달려 목숨을 잃은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의 죽음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 대기업에 맞서 싸우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소리 없는 죽음을 맞이했던 이들의 가족과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죽거나 병든 노동자의 가족들.

[출처: 정운 기자]

그들이 싸우지 않았다면, 그들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공고화된 탐욕의 질서를 넘어서는 방법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지치지 않은 그들의 싸움 덕에 민주주의와 인권을 우리의 삶 속에 소환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존엄한 인간이 불의에 맞서고 평등을 지향하는 방법을 기억해냈다. 따라서 6주간의 급진적 결과는 사실상 짧게는 4년, 길게는 10여년의 결과다.

그러니 조금은 더 자신 있게 우리를 믿고 힘과 돈에 무릎 끓게 하려했던 세상에 맞서자. 질서 있는 퇴진을 운운하던 자들과 내각총사퇴로 무마하려 했던 보수정치인들이 “이제 그만 일상으로!”를 외칠 때, 이제 법절차를 믿고 선출된 권력을 믿고, 헌법재판소를 믿고 가자고 할 때,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주먹을 쥐어야한다. 무너진 대의제 민주주의를 이끌어온 촛불의 민주주의를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 이제 시작이다.

12월 10일, 오늘 우리가 이뤄낸 성과를 축제처럼 즐기되 광장에서 이룬 정치를 어떻게 확장할지, 다른 세상의 방향과 정책에 대해 토론하자. 혁명의 서곡이 될 수 있도록 상상력을 발휘하며 우리의 길을 모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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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 탄핵 , 혁명 , 정권퇴진 , 박근혜 ,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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