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쓰레기 적재함, 그곳에 사람이 산다

[워커스 28호] 이수역 노점 새벽 철거…농성 84일째

[출처: 빈민해방실천연대 최인기]

이수역 7번 출구 앞, 5톤 쓰레기 적재함 안에서 사람이 48일째 살고 있다. 철거에 생존권을 잃은 12명의 노점상이다. 12월 14일 자정 동작구(이창우 구청장, 더민주당)가 집게차, 굴삭기, 용역 70명을 이끌고 왔다. 이수역 7번 출구 앞 떡볶이, 호떡, 국수, 타로 노점상을 철거하기 위해서다. 벌써 다섯 번째 강제 철거다. 이날 모든 노점이 철거됐다. 용역은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이수지부장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폭력을 행사했다. 경찰이 말릴 정도였다. 이전 철거 때는 노점 상인이 가로수에 목을 매달아 자살을 시도했다. 다른 상인은 휘발유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이곳 노점이 아니면 살아갈 길이 막막한 사람들이었다.

노점 상인들이 자살을 시도하자 동작구는 집게차로 부순 철거 잔해물을 그대로 두고 철수했다. 11월 5일 철거 잔해물을 실으려던 쓰레기 적재함도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이 곳은 생존권 사수 농성장이 됐다. 상인들은 약 10m 길이의 쓰레기 적재함 위에 비닐 지붕을 만들었다. 은박지 돗자리로 바닥과 벽을 덧대었다. 안에는 이불과 휘발유 난로가 있었다. 전기난로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집게차가 발전기마저 부쉈다. 비닐 지붕으로 환기는 안 됐고, 돗자리와 이불은 자칫하면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쓰레기 적재함은 악취도 심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이 퉁퉁 붓는다고 했다. 한 상인은 기관지가 좋지 않아 목에 심도 박았다. 다른 상인은 허리를 펴지 못한다. 700만 원이 있으면 허리에 심을 박아 펼 수 있지만, 치료비는커녕 난방비, 수도세도 못 내고 있다. 노점상 12명의 평균 나이는 67세다. 대부분 최빈곤층이라고 했다.

“여기서 안자면 다 가져가잖아”

“여기(쓰레기 적재함)에서 안자면 (노점을) 다 가져가잖아. 추워도 어떡해. (용역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적재함에서 잠을 자는 한 노점상이 말했다. 동작구 행정대집행 예산이 2억 원 정도라고 허동준 더민주당 동작을지역위원장은 밝혔다. 이 예산으로 9월 29일 용역 약 300명, 10월 2일 100명, 11월 5일 100명, 12월 14일 70명을 대동했다. 상인은 “2억이면 우리 도와주고도 남는 거잖아. 왜 철거 용역에 써. (동작구청은) 용역 쓰면서 일자리 창출이라 말한대”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 상인은 손자뻘인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용역도 봤다고 말했다. 상인은 이들에게 위험하니 돌아가라 했지만, 젊은 용역들은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60~70대의 노인들을 폭력적으로 끌어냈다. 용역뿐이 아니다. 구청은 노점을 부수기 위해 집게차와 굴삭기, 트럭을 끌고 왔다. 그 후 상인들은 매일 새벽 5시 반 출근하는 건설 기계들이 농성장을 지날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깬다고 한다. 구청 직원들은 수시로 와 노점 천막을 커터 칼로 찢어놓고 간다고 했다. 포장마차 천막이 찢겨 청테이프로 붙인 곳이 많았다.

11월 5일 새벽 4시, 용역들이 모든 노점을 강제 철거했다. 12월 14일 자정엔 합동 포장마차도 철거했다. 행정대집행법은 일출 전, 일몰 후엔 대집행을 금지하고 있다. 새벽 기습 철거가 있던 11월 5일엔 동작구청을 점거하기도 했다. 12월 14일도 이창우 구청장을 만나러 갈 예정이었지만 자정 철거에 무산됐다. 노점 상인들은 이창우 구청장에 수차례 면담 요청을 했다. 농성한 지 84일이 됐지만, 상인들은 이 구청장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동작구청 “노점은 특혜”

동작구청은 지난 9월 동작대로 보도블록 공사를 하겠다며 노점상에 자진 철거 계고장을 보냈다. 노점 상인들은 보도블록 공사에 협조할 테니 장사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도로 점용료도 내고, 노점 포장마차도 자비를 들여 철제 박스로 만들어 운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구청 직원들은 동작대로에 노점상은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지난 13일 《워커스》와 통화에서 “형편이 정말 어려운 분들은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데, (상인들이) 재산 실태조사에 응하지도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점상에 특혜를 제공할 수 없다. 일단 노점은 불법이다. 동작구 주민들도 노점에 대한 반발로 민원을 많이 넣는다. 노점은 이런 주민 동의까지 필요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또한, 구청은 상인들에게 노점 운영 대신 직업훈련을 지원하고, 기초생활 수급권자 선정을 알선하겠다고 했다. 노량진 ‘컵밥 거리’에 컨테이너 노점에 한 자리가 났으니 노량진으로 노점 이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컵밥 거리’는 이창우 구청장이 노점 특화 거리로 만든 곳이다. 지난해 이 구청장은 ‘컵밥 거리’를 두고 “그동안 철거나 단속으로 대응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어 대화로 해결책을 모색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9월 29일 불법 강제 철거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13일 《워커스》와 통화에서 “서울시 강제 철거 방지 대책은 주거에 한정된 부분”이라며 “(이수역 노점 강제 철거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서울시는 3개월 동안 일어난 이수역 철거 현장을 모르고 있었다.

최영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조직위원장은 “광화문에 노점상이 많이 늘어났다. 동작구 같은 지자체들 때문이다. 광화문으로 온 건 사람이 많아 장사가 잘되는 것도 있지만, 지역에서 쫓겨나 온 분이다. 여기서도 쫓겨나면 다시 신도시로 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전 세계에서 노점 없는 거리는 없다. 노점과 지역 상권은 같이 발달한다. 그런데 상생이 아닌 용역을 앞세워 새벽 군사작전을 한다”고 전했다.

이수역 7번 출구의 ‘웰빙 이모네’에서 파는 ‘야채 떡볶이’는 이수역 맛집으로 유명하다. 바로 옆 호떡 포장마차도 항상 줄이 서 있다. 이 노점을 포함한 12개 노점이 모두 철거당하고 상인들은 합동 장사를 한다. 이 합동 포장마차마저 지난 14일 자정 굴삭기에 눌려 철거됐다. 14일 철거 전, 20대의 단골이 합동 포장마차에 왔다. 18년 동안 노점을 한 할머니의 손이 아프단 것을 알고 한참 동안 할머니의 손을 쓰다듬었다. 이 어르신도 48일째 쓰레기 적재함에서 잠을 자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작구의 슬로건은 “행복한 변화, 사람 사는 동작”이다.(워커스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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