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UN 총장의 성소수자 권리 지지는 ‘분홍 세탁’?

[워커스 28호] “나는 LGBT 인들의 평등을 위해 항상 싸울 것”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국내 복귀를 앞두고 임기 중 행보와는 180도로 다르게 동성애 권리 옹호를 부정했다는 발언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됐다.

최근 반기문 총장의 측근 임덕규 전 의원은 반 총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은 동성애 옹호론자가 아니”며 “유엔 입장에선 만민이 평등하다 그런 개념이지 동성애를 지지하고 찬양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TV조선에 밝히며 논란을 낳았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반기문 총장은 하루아침에 말을 바꿨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기문 유엔 총장이 임기 내내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옹호해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 총장도 이 주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으면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21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LGBT 권리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국제사회에 촉구하며 각국 대표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여기서 반 총장은 “나는 LGBT 인들의 평등을 위해 항상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출처]유엔

애초 유엔에서의 LGBT(성소수자) 권리 토론은 반기문 총장의 임기와 함께 시작했다. 1945년 창립한 유엔에서 LGBT 권리는 2006년 12월에야 처음으로 노르웨이가 성적 지향성과 젠더 정체성에 기초한 인권 침해에 관한 성명을 제출하면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어 2008년 12월 66개국이 LGBT 권리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지만 다수표를 얻지 못하면서 좌초했다. 이후 2011년 처음으로 유엔은 동성애자와 성전환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런 만큼 LGBT 권리는 반기문 총장의 임기와 시기를 같이 하는데, 반 총장도 특히 LGBT의 인권을 강조해왔다. 대표적으로 반 총장은 2012년 3월 7일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때가 됐다”며 “현대의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나라가 동성 간의 사랑을 계속 범죄화하고 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연설 도중 일부 회원국들이 퇴장할 만큼 이 연설은 극렬한 반대를 낳았지만 반 총장의 LGBT 권리 옹호는 계속됐다. 2014년에는 유엔 직원의 모든 동성결혼을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LGBT 권리가 “우리 시대에 가장 경시되는 인권 중의 하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뉴욕에서 열린 성소수자 인권 보장 행진에 참여해 강도 높은 지지 발언을 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그는 “LGBT 인권이 침해될 때, 우리가 모두 작아진다”며 “내가 이끄는 UN은 차별에 맞선 싸움에서 결코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동성결혼 금지에 위헌 결정을 내리자 이를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반기문 총장이 한국 복귀를 앞두고 하루아침에 말을 바꾼 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LGBT 인권 옹호는 그의 소신이 아닌 ‘분홍 세탁(pink washing)’일 가능성이 높다. ‘분홍’과 ‘세탁’이 혼합된 이 말은 마케팅이나 정치 전략을 목적으로 성소수자에 친화적인 언사를 동원해 이 이미지를 빌리려는 기법이다. 그동안 이스라엘 정부가 ‘문화 다양성을 장려하는 민주 국가’라는 이미지를 유포하기 위해 중동에서 유일하게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라고 선전해 왔다는 것을 비판하는 용어다. 어쩌면 세계무대에서 친이스라엘 정책을 고수해온 미국의 입노릇을 한 반기문 총장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당연한 본분인지도 모른다.

러시아와 중국뿐 아니라 아프리카, 아랍과 무슬림 국가들은 유엔 사무총장의 이 같은 동성애 옹호 방침을 반대해왔다. 동성애는 최소 73개국에서 범죄시하고 있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15개 상임이사국은 반기문 총장이 측근에게 동성애 지지 입장을 부인한 2일 뒤인 14일(현지시각) 그에게 동성애 권리를 증진했다는 이유로 특별 감사 서한을 주려 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가디언>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반기문 총장에 대해 임기 중 특히 동성애 권리를 증진했다는 이유로 감사의 서한을 전달하고자 했으나 러시아의 제동으로 가로막혔다”고 보도했다. 이날 안보리 회원국 대표 15명은 반 총장에 감사를 나타내기 위해 LGBT 문구가 들어간 감사 서한을 전하고자 했으나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미국 등 회원국은 “여성, 어린이와 LGBT공동체가 주목과 지원을 받고 이들 목소리가 세계 도처와 중심에서 더욱 크게 울리게 된 것은 당신 덕분이다”라는 문구를 넣고자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반대로 이 문안은 “가장 취약하고 소외된 이들이 유엔에 의해 점점 더 주목받고 지원됐다”고 바뀌었다.(워커스 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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