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인 상대하며 골병드는 집배원 "감정 노동 인정하라"

집배노조, 인권위에 감정노동 정책 촉구 전정서 접수


전국 집배원들이 감정 노동 관련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연간 노동시간이 3,000시간에 달할 정도로 과다 업무에 시달리는 집배원은 악성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스트레스까지 감내하고 있다. 사용주인 우정사업본부는 민원인의 폭언과 배달 물품 변상 등 무리한 요구를 집배원 개인에게 전가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교통사고, 심정지 등으로 올해만 5명의 집배원이 사망했는데 집배노조는 스트레스를 주원인으로 꼽고 있다.

최근 부산 강서 지역 집배원이 받은 징계는 집배원이 악성 민원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집배원 류기문 씨는 악성 민원인의 폭언에 맞대응했다는 이유로 지난 11월 28일 ‘견책’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왕복 3시간 거리의 타지역 우체국으로 출근하라는 인사발령도 떨어졌다. 징계로 인해 성과금 등도 받지 못하게 돼 경제적 피해 역시 상당하다.

징계의 발단은 민원인 A 씨로부터 ‘1년 전 등기를 받지 못해 재산피해가 막심하다’며 폭언을 들은 지난 10월 5일부터다. A 씨는 류 씨의 거듭된 자제 요청에도 전화상으로 계속 폭언을 했고, 피해 금액 300만 원을 물어내라며 금전을 요구하기도 했다. 계속된 막말에 류 씨가 참지 못하고 맞대응하자 A 씨는 우정사업본부에 거듭 민원을 제기했다. 류 씨는 민원인 문제를 해결 못 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돼 견책을 받았다. 류 씨는 “부당 징계로 파악, 소청 심사 진행 중이며 심사 결과에 따라 행정 소송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은 21일 오전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배달 노동자의 감정노동을 인정하고 집배업무용 감정노동 매뉴얼 개설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집배노조는 기자회견문에서 “정부 기관인 우정사업본부는 민원 응대에 있어 민원인의 권리만을 절대적으로 사고한다”며 “우정사업본부가 민원을 함께 해결하기는커녕 징계로 해결할 수 있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감정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어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한편 감정노동에 따른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등 전향적인 접근과 해결방안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최승묵 전국집배노조 위원장은 “주민과 직접 대면하는 집배원은 제때 우편물을 못 갖다 줬다는 하소연을 부지기수로 듣고, 항상 친절할 것을 강요받아왔다”며 “집배원이 더는 쓰러지지 않고 건강하고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국가기관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언 피해 당사자인 류기문 전국집배노조 부산지역준비위원장도 기자회견에서 “극심한 노동강도와 열악한 근무 조건에서 부하 직원을 감정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고, 징계위에 회부한 건 말도 안 되는 행위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2만여 명의 집배원, 7만여 명의 택배 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한 이 배달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집배노조 관계자들은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집배노조는 진정서를 통해 △우정사업본부 감정노동 관련 대책 마련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한편 감정노동에 따른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 △감정노동자 교육과 상담을 위한 조직과 건강 지원 프로그램 및 고충 처리 장치 마련 △감정노동자의 과도한 업무량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할 것 등을 주문했다. 국가인권위 접수처는 이 사건을 ‘차별조사과’에 배당했다. 일주일 이내에 조사관이 배정되고 조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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