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병들었다고 내쫓지 말라"

인간의 권리 외친 '2016 홈리스 추모제’

  서울역을 행진하는 추모제 참가자들 [사진/ 정운 기자]

‘홈리스는 살아있다. 괄시받지 않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년에는 노숙인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함께 살 권리를 외치는 홈리스의 소원이 성탄을 준비하는 트리에 적혀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내쫓기지 않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내몰리지 않을 권리를 빼곡히 적어놓은 트리다. 2016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은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인 21일 저녁 서울역 광장에서 ‘2016 홈리스 추모제’를 열었다.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은(이하 공동기획단) 홈리스 생활여건과 복지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43개 시민사회단체 연합체다.

이날 기획단이 말한 권리는 홈리스의 의료와 주거, 노동과 추모부문이다. 추모제에 참석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에 따르면 홈리스의 평균 수명은 48세다. 지난해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81.8세인 것과 비교해보면 홈리스에게 죽음은 약 30년을 앞당겨 다가온다. 인의협은 “홈리스의 죽음을 자연사로 볼 수 없다. 이들은 사회적 제도에서 배제된 채 죽음을 맞이한다. 사회적 죽임이라는 문구가 과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역 앞에 차려진 홈리스 추모 제사상 [사진/ 정운 기자]

죽음은 가깝지만 홈리스가 받을 수 있는 의료급여 기준의 벽은 높다. 홈리스가 이용할 수 있는 노숙인 1종 의료급여의 선정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선정이 된다고 해도 지정병원만 갈 수 있기 때문에 이용 가능한 병원을 찾기 힘든 실정이다. 인의협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요양병원은 진료시설로 지정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홈리스를 대상으로 하는 불법 요양병원의 유인 행태가 발생하고 있다”라며 “대규모 수용시설의 경우 적절한 의료지원을 받기 힘들고 아파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인의협은 의료 접근성이 높고 의료 범죄를 조장하는 홈리스 의료대책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시설 입소 홈리스에 대한 의료지원 대책을 강화하고, 노숙인 1종 의료급여 보장 확대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홈리스가 이용 가능한 요양병원 지정에 대한 요구도 말했다.

인간답게 죽을 권리 역시 홈리스에겐 간절하다. 돈 때문에 빈소를 빌리지 못한 채 ‘장례’가 사치가 됐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장례식장은 공설장례식장 정도다. 하지만 서울에 위치한 72개 장례식장 중 공설장례식장은 5개에 불가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무연고 사망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공설장례식장 이용기준'을 발표했지만 실제로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장례식장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공동기획단은 “무연고사망자 사망신고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5개에 불과해 실효성 없는 공영장례지원제도가 아닌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공영장례지원제도를 마련하라”며 “기초생활수급자 장례를 위한 운구차 등 장례지원서비스를 현실화하라”고 요구했다.

  연대발언 중인 문애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사진/ 정운 기자]

쪽방 지역 개발로 길거리에 내 몰린 이들의 호소도 나왔다. 쪽방은 낡고 좁고 위험하지만 홈리스가 거리나 시설, 병원보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동자동 사랑방 차재설 홍보이사는 “더는 얼어 죽을 수 없다. 쪽방이 개발 되며 우리는 계속 쫓겨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는 질문은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말이다”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홈리스에게만 이유를 따져 묻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시 빈민의 대표적인 쪽방은 개발로 인해 사라지는 추세다. 2005년 서울역 주변 중구 소재 400여 개의 쪽방은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전면 철거됐다. 2008년 용산구 소재 쪽방과 고시원을 포함한 도시 빈민의 거처 80여 개도 사라졌다. 도시환경정비사업 때문이다. 최근에는 서울역7017프로젝트로 인해 해당 사업지 인근 쪽방 건물이 폐쇄됐다.

이들은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쪽방 개발에 대한 규제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쪽방지역 개발에 대한 대책 매뉴얼을 수립하고 쪽방 지역을 개발하고자 하는 개발 주체에게 규제를 가하라는 것이다.

  촛불을 들고 함께 추모하는 참가자들 [사진/ 정운 기자]

공동기획단은 추모제를 통해 홈리스의 구체적인 상황과 어려움이 공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치료받을 권리와 내쫓기지 않을 권리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도 호소했다. 홈리스의 죽음이 개별적인 죽음이 아닌 우리가 방치한 죽음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날 추모제에는 무연고 사망자를 기억하기 위한 시민분향소가 마련돼 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의 분향과 헌화가 이뤄졌다.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제도를 요구하는 시민 목소리를 엽서에 담은 ‘1000인의 우체통 프로젝트’ 이벤트도 열었다. 공동기획단은 추모주간 동안 시민들이 작성해준 엽서를 모아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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